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주님이 바꾸신다.(요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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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주님이 바꾸다.

요한복음 2:1–12 NKRV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결혼식은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시간입니다.
결혼을 하는 당사자도 기쁘지만, 그 당사자들을 축복해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기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결혼식과 같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라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사랑하는 두 남녀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결코 결혼식과 같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결혼식의 즐거움과 기쁨을 상징하는, 포도주가 다 떨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노인과 바다’ 등의 소설을 쓴 어니스트 허밍웨이는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자전적인 소설을 자주 쓰곤 했는데, 그는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죽어가는 사냥꾼의 아내가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완벽한 사람이에요”라는 내용을 쓸 때, 자신의 아내가 허밍웨이에게 하는 말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말년에 집에 있는 총으로 자살을 함으로써,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성경은 종종 주님을 우리의 신랑으로 표현하고, 우리는 그분의 신부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삶이 언제나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정작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삶에, 텅 비어버린 포도주와 같이, 기쁨이 사라지고, 공허한 종교 의식만이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당시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건은, 환대문화가 강했던 유대 사회에서는 연회를 망치고, 심지어 고발까지 당할 수도 있는 굉장히 큰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예수님께 찾아가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어떤 이적을 일으켜달라고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자신의 큰 아들에게 어머니로써 처한 어려움을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이 연회의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어머니와 나에게 있어서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시죠.
요한복음에서 ‘때’는 일곱 번 언급되는데,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영광에서 고난으로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에서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쩌면 예수님 자신의 삶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지금 혼인 잔치에 있지만, 언젠가 십자가 죽음의 때를 향해 나아가야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포도주가 떨어진, 즉 기쁨과 즐거움을 상실하는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바로 그 때를, 다시 기쁨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 세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여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위한 돌항아리였다는 점에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정결예식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잘 받아들여지기 위해 의례적으로 사용한 도구입니다.
또한 이 돌항아리는 여섯 개였습니다.
돌항아리가 6개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유대교에서 6은, 완전수 7에서 1개 모자른 숫자로 여겨졌기 때문에, 불완전의 수로 생각되어왔습니다.
그래서 이 돌항아리는 불완전한 채, 메마르고, 공허하며, 종교적 의식들로만 가득차 있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교회 안에서 많은 봉사도 하지만, 내 안에 진정한 신앙의 기쁨이 없습니다.
매주 예배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 가운데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그냥 시간만 떼우다 갑니다.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삶은 뭔가 자꾸 메말라가고, 피폐해져 가고, 공허해져 갑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돌항아리가’ 가리키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교적 의식으로 가득차 있고, 우리의 힘으로 회복하려고 애쓰는 우리의 삶을, 진정한 포도주로 변화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메시야 시대를 상징합니다.
예레미야 31:12 NKRV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호세아 14:7 NKRV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아모스 9:13–14 NKRV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구약에서는, 포도주를 메시야를 통해, 세상이 회복될 때, 누리게 될 풍요로움을 상징하는데 사용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하는 그 메시야 시대의 삶은, 갈수록 더 풍요로워집니다.
알렉산더 맥클라렌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좋은 것을 마지막까지 남겨두십니다. 그분의 선물은 날마다 더욱 달콤해집니다. 어떤 시간도 그 선물을 싫증나게 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선물은 더욱 귀하고 더욱 필요하게 됩니다. 이 여정에서는 끝이 시작보다 더 좋습니다. 그리고 삶이 끝나고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때, 우리가 꿈꿔왔던 것보다 얼마나 더 좋은지 깨닫게 되면서 놀라움과 감사함으로 우리의 입술에서 이런 말이 나올 것입니다. "주께서 좋은 포도주를 이제까지 두셨나이다.
우리의 삶에 진정한 기쁨을 회복하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도 아니고, 우리의 노력도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분만이 메마른 우리의 삶을 풍요로운 기쁨의 삶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없는 삶은, 포도주 없는 연회처럼, 공허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분과 함께 하는 삶은, 날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쁨은 커져갑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마침내 이 땅에 다시 오실 그 날은, 지금까지 이 땅에서 우리가 누렸던 그 어떤 기쁨보다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2–3 NKRV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우리는 신앙의 연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주 종교생활에 빠집니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도, 연애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진정한 사랑의 마음보다는, 어떤 의무감으로 무엇을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의무감에 연락하고, 의무감에 기념일을 챙기면서, 그렇게 모든 것이 무미건조해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신앙도, 하나님과의 첫사랑은, 점점 식어지고, 모든 것이 하나의 종교의식으로 바뀌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함에도, 계속 공허해지는 것이죠.
우리는 이것을 ‘영적 매너리즘’이라고 부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때로는 우리의 행위와 노력이, 우상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자발적인 헌신이 아니라,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기계적인 과업으로 여기거나, 또는 자신의 만족이나 자신의 성취감을 위해서, 또는 복과 건강과 재물이라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 없이 형식만 있는 율법주의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종교개혁 운동도, 형식과 껍대기만 남아있던 율법주의와 카톨릭에 대항해 다시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려 했던 운동이었습니다.
내 개인의 신앙도 형식과 껍대기만 남은 채, 공허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본질,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시 본질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이 이적의 일련의 과정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7절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즉 그 명령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포도주를 채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무엇을 채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무엇일까요?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소함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물을 채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함으로 물을 계속해서 채워나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이 다 이해되지 않고, 그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소함 속에서, 기쁨의 회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인들은 분명, 이해되지 않았지만, 말씀을 듣고 행했습니다.
우리도 듣기만 하지 말고, 사소한 것이라도 삶에서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이 본질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봉사를 하는 것도, 내가 직장에 다니는 것도, 내가 공부를 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게 하십시오.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고, 우리의 작은 순종의 삶들이 모일 때,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8절에서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기쁨이 회복되었다면, 이제는 그 기쁨을 믿음의 동역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십시오.
내가 나누는 그 기쁨이, 나 뿐만 아니라 내 믿음의 동역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질 때, 기쁨은 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점점 더 커져만 갈 것입니다.
내 삶에 빈 항아리를 그대로 두지 마시고, 기도로 채우십시오.
내 힘으로 부족하다면, 주변에 동역자들에게 빈항아리 들고 가세요.
기도로 채워달라고 하십시오.
주님 앞에, 빈 항아리 들고 무릎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그러한 사소함은, 우리 주님께서 포도주로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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