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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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내가 인정 받지 못할때?
내가 인정 받지 못할때?
친구들, 우리가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다 보면 이런 상황들을 만나게 돼요.
내가 엄청 열심히 하고 있는게 있는데, 그 일과 관련해서 내가 아닌 다른 친구가 더 주목을 받고 있을 때,
또는 내가 어떤 분야에서 중심이 되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으로 인정받고 있거나, 성적이 좋거나 했는데 어느순간 부터 점점 내가 여기에서 밀리고 있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는거에요.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점점 내가 중심이 아니라 다른 자리로 넘어가게 되는 거죠.
또 이런거 많을 것 같아요. 내가 인스타를 업로드하거나 하면 항상 내 주변에 누군가가 더 반응이 좋은거죠.
한마디로 인기가 더 많은 친구를 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요?
많이 복잡할거에요. 서운하기도 하고 자꾸 그 대상과 비교하기도 하고, 하필 잘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 이 때 나는 왜 인정받지 못하고 중심이 되지 못하는가 싶기도 하죠.
오늘 말씀에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딱 이 마음이었어요.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이 말은 사실을 말하는 것 같지만 제자들의 마음 속에 불안과 두려움, 질투가 있는 말이었어요.
우리 안에도 이런 마음이 들 때,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을 다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비교되는 상황을 바라봐야할까?
이거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며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비교하지만 하나님은 역할을 주신다.
우리는 비교하지만 하나님은 역할을 주신다.
오늘 세례요한은 제자들의 보고에 이렇게 말해줍니다.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당시 고대그리스로마사회에서는 스승들 사이에서, 또는 운둥들 사이의 경쟁구도가 흔했어요.
철학으로 싸우고, 종교로 싸우고, 누가 더 좋은 가르침인가를 놓고 대립하는 구도가 흔했었죠.
그러다보니 예수님과 세례요한에 대해서 사람들이 경쟁을 붙이고는 했어요. 누가 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는 사람이냐, 더 나아가서는 누가 구원자일 것 같냐 하는 말로 서로를 경쟁시켰죠.
요한과 예수님이 직접 경쟁하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 경쟁은 사람들로부터 이뤄지고 더 나아가선 요한의 제자들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었죠.
그런데 오늘 요한의 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과는 너무 다른 답을 하고 있는거에요.
우리는 보통 이런 비교를 당하면 이렇게 생각하곤 해요.
“그래도 내가 먼저 시작했지”, “그래도 나도 의미있는 사람이야” 등등 내가 위축되지 않으려고 나를 방어하는 말과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요한은 사람은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가질 수 있는게 없다고 고백하는거에요.
이건 어떤 고백이냐면, 요한은 자기의 위치가, 자신의 사역이, 자신의 영향력 등 모두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잠시 맡기신 것이라고 고백한 거에요.
우리가 비교의 마음이 들고, 마음이 어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를 여기에서 발견해요.
우리가 반장을 하든, 성적이 좋든, 어떤 동아리에서 리더가 되든, 심지어 같은 반에서 영향력이 있는 위치에 있든 이게 내가 이룬거 라고 생각을 하면 우리는 비교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비교당하는 순간 내가 이룬 것들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동시에 내가 잘해서 된 줄 알면 어쩔 수 없이 나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비교할 수 밖에 없게 돼요.
내 가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보니, 내가 비교했을 때 좀 더 나으면 우쭐대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나보다 혹시라도 더 뛰어나보이는 존재가 등장하면 질투하고 시기하고, 경쟁하게 되는거죠.
그런데 요한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바라보는 법을 알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 이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요한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맡기셨기 때문에 지금 내 위치가 위태로워보여도 괜찮아~ 라고 말하는 것이죠.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앞에 보내진 사람!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앞에 보내진 사람!
요한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라는 인식이 명확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한과 제자들은 어떤 차이가 있던 걸까요?
요한의 이 고백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요한은 처음부터 명확했어요.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앞서 보낸 사람이다. 라는 고백이었어요.
요한은 처음부터 자신은 표지판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역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죠.
반대로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 목적이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요한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가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등장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위협이었어요.
그래서 요한에게도 과장되게 말하죠.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간다.”라고 말이에요. 잘생각해보자구요.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가면 지금 요한 앞에 있는 자신들은 무엇이죠? 요한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다’ 가 아닌가요?
사실보다는 위기감에 과장된 표현을 하고 있는거에요. 마치 어떤 잘못에 “너는 원래부터 그랬어” 라는 표현처럼 감정이 섞여 과장되게 말하고 있는거에요.
우리의 모습도 같아요. 모든 일이 ‘나’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내 위치’가 중요해지면 우리는 비교하는 가운데에 계속 마음이 어려워지고 감정이 더욱 격해져서 과장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내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맡은 사람’ 이라는 마음이 있다면 내 역할은 명확해져요.
내가 해야할 일은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고, 나를 높이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오늘, 이 자리를 의미있게 누리고, 나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시는 것을 중심으로 살아가면 열심히 살아도 의미가 있고, 내가 좀 뒤쳐져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아요.
오늘 주어진 은혜를 누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다니까요.
내 역할, 내 위치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내비게이션은 길을 안내하지만 목적지가 내비게이션은 아니에요. 길을 알려주는게 네비게이션의 역할이죠.
시험풀이 영상은 설명이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 우리가 궁금한 것 답과 풀이에요.
우리가 내비게이션의 역할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역할로 주셨다면 우리는 길을 안내만 하면 돼요. 내가 목적지가 될 필요는 없어요.
시험풀이 영상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면 우리는 답과 풀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하기만 하면 돼요. 내가 답이 될 필요는 없어요.
이게 경쟁하지 않고, 마음이 복잡하지 않고 오늘 주어진 자리를 누리는 방법이에요.
내가 중심이 아니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내가 중심이 아니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사랑하는 친구들,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내 성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는 문화속에 있죠.
우리의 역할이 ‘주인공’ 이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해서 주인공의 자리를 얻어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살아야 하고, 주인공인 위치에 있어도 언제 어떤 사람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계속 사람과 비교하면서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거에요.
하지만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바라보는 가치는 분명히 달라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인식은 오늘 요한 처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누리고 사는 삶’이에요.
하나님께서 나를 표지판으로 부르셨다면 길을 잘 보여주면 되고, 내비게이션의 역할처럼 부르셨다면 길을 잘 안내하면 돼요.
여러 역할로 우리를 부르시고, 그 곳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기뻐하길 원하세요.
우리가 이 인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요한이 가지고 있던 인식이었어요. 이런 인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내가 피해보고 희생만하고 아픔만 가득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요한의 설명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라는 인식이 어떤 기쁨을 누리는지 마지막으로 살펴볼게요.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우리는 신랑의 친구들 같은 위치에요. 신랑은 예수님이세요. 신랑의 친구들은 신랑의 친구들의 역할에 맞게 결혼식장을 빛내주고, 신랑이 주목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결혼식이 잘된 것이 신랑, 신부의 친구들에게도 기쁨이 되는거죠.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자리를 살아간다는 건, 내가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것을 기쁘게 누리는 걸 말해요.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작아지거나, 우울해지거나, 불안해하는게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신 것들을 기쁘게 누리면서 살아보는 거에요.
이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라는 인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하루하루를 누리는 방법이에요.
그렇게 되면 요한 처럼 어떤 비교와 경쟁에서도 이렇게 편하게 고백할 수 있어요.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이 말을 우리한테 맞게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정도 허락해주셨으면~! 나는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누리면 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걸 허락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아~!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를 누리는 자녀니까
한주간도 많은 경쟁속에서 비교 때문에 마음이 지칠 만한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맡겨주신 자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우울함이 아닌 오늘을 기쁘게 누려보기를 결단하고 누리는 우리 친구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