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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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 타락

창세기 4:1–12 NKRV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범죄 스릴러와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가? 보통 그런 영화를 느와르라고 부르는데, 사람을 죽이거나 복수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해서 잔인한 장면이 많기에 거의 대부분의 작품은 19세 미만은 시청할 수가 없다. 연쇄살인마 같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대부분 살인을 하는 동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게 되면 분노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나 배우자가 살해를 당하여 그로 인한 분노로 복수를 성공하는 장면으로 똑같이 살해하게 될 때 시청자들에게는 사이다와 같은 장면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나는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렇게 똑같이 복수해서 사람을 죽인다고 피해당한 당사자의 속이 완벽하게 후련해질까? 나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살인마를 보면서 “찢어죽여도 모자른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 가족이 살해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복한다면 살인자와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이처럼 살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에게 해를 가할 뿐만 아니라, 주변을 공포스럽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십계명 6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라고 이웃 사랑 중 ‘~을 하지말라’는 계명의 첫 번째로 등장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심을 알 수 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을 말해주는 내용이다. 본문의 주로 등장하는 인물 두 명인데 누구인가? 가인과 아벨이다. 가인의 직업이 무엇이었는가? 농사를 하는 농부였다. 아벨은 양을 치는 자로 목축업을 하는 것으로 성경은 설명해준다. 그런데 어느 날 세월이 지나 두 사람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 가인은 무엇을 드렸는가? “땅의 소산(열매)”으로 제물을 삼아 드렸다. 아벨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렸는가? 처음 태어난 아기 양과 양의 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누구의 제물을 받으셨고 누구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는가? 아벨의 제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우리는 뭔가 제물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인은 잘못된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다. 제사의 종류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곡식을 곱게 빻아서 한 움큼을 쥐어 완전히 태워버리는 ‘소제’의 제사가 있다. 그렇기에 가인의 제물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인의 마음이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자 가인의 반응이 어떠했는가? 가인은 엄청나게 화가 나서 표정관리를 못하고 안색이 변해버렸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물으신다.
창세기 4:6–7 NKRV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우리가 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예를 들어 내가 어느 나라의 왕께 정성스럽게 준비한 것을 대접했는데 왕이 받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인지, 제가 무슨 불편한 행동이나 잘못을 했는지 물어보는게 보통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치 “감히 내가 준비한 것을 안 받아?”와 같은 생각으로 무시하고 깔보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만약에 여러분의 친구의 마음이 훤히 보인다고 가정하자. 내 생일에 “어떻게 하면 내 친구를 기쁘게 선물을 준비할까?”라고 생각하는 친구의 선물과 “지 생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 귀찮아 얘는 이런거 좀 안 바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친구의 선물 중에 어떤 선물을 흔쾌히 받고 싶겠는가? 그렇다. 나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친구의 선물 안에 들어있는 내용보다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진다. 후자의 친구의 선물을 “미안한데 못 받겠어”라고 말했는데, 그 친구가 표정관리가 안되면서 “하 어이가 없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충격이겠는가? 이처럼 가인도 마찬가지다. 그의 마음에 중심이 하나님이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심이 되어버린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고개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이 마치 점점 분노와 죄에 사로잡혀서 유혹에 굴복하고 있는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이 말씀은 죄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숨어서 이미 마음의 왕좌를 노리고 있는 주인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죄가 너를 원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의 충동이 가인을 향해 있음을 보여준다. 그 다음으로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계속해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인에게 주고 계신다. 지난 주 전도사님 설교 기억하는가?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렇다. “다스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하나님의 형상임을 기억하게 하는 이야기처럼 말씀하신다. 그래서 “다스릴지니라”의 히브리어의 의미는 모호하다. 3가지 형태로 볼 수 있는데, 먼저 약속의 형태로 “너는 그것을 다스릴 것이다”, 명령의 형태로 “너는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 , 제안의 형태로 “너는 그것을 다스릴 수 있다.”로 각각 읽을 수 있다. 가인은 이렇게 숨어 있는 죄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가인은 죄를 다스려야 한다. 결국 선택권은 가인에게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가인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기는 했지만, 그의 죄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굳어져 버린 상태는 아니었다. 가인이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라는 사실보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선택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존재라는 점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가인은 지금 옳은 길과 잘못된 길 사이에서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서 있다. 만약 가인이 선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의미 없는 말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가인은 원한다면 지금 이 죄의 충동을 이겨낼 수 있는 책임과 기회를 가진 상태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강력히 말씀하신다.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라고 말이다. 이 말은, 가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핑계 댈 수 없는 책임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가인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동생 아벨을 들로 불러서 들에서 보자마자 쳐죽여버리게 되었다. 자신의 제물이 거부당했을 때 가인이 보인 반응은 그의 부모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을 만났을 때 보였던 반응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담과 하와는 변명하고 스스로 결백을 주장했디만, 적어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가인은 자신의 분함과 비참함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고서 자신의 분노를 유일하게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아벨에게 쏟았다. 아벨이 살해당한 이유는 가인의 속에 있는 시기와 질투를 스스로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인은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하나님이 받아들이신 것 또한 거부한다. 이로 인해 가인은 계속해서 상황이 악조건으로 빠지는 딜레마를 만든 것이다. 가인은 아벨을 제거했지만 이제 범죄 이후 하나님의 취조가 시작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질문하신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거짓말로 대답한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그러면서 다음 이야기를 할 때 가인은 하나님의 질문이 지금 상황에 물어볼 질문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그렇게 말한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이 말은 즉,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하냐고 하나님께 따지는 것과 동시에 책임을 회피하며 시퍼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창세기 4:10 NKRV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역할을 심문자에서 검사로 바꾸신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것은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로 끝나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정보를 알자고 물어보신 것이 아니라 고발하시는 것이다. 아벨이 흘린 피가 땅에서부터 부르짖고 하나님이 그것을 들으신다는 것이다. 피 자체는 가인에게 어떤 위협을 주지 않는다. 피가 베놈처럼 움직여서 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흘린 피는 그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문제를 맡긴다. 아마도 아벨의 피가 부르짖는 것은 살려달라는 구원을 호소하는 것이다. 가인은 살인을 저질렀고, 피를 흘린 것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아담의 죄로 인한 형벌로 땅에 경작에 어려움이 생겼다면, 가인은 땅에서 추방되어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자가 되었다. 가인은 여호와의 임재가 가득했던 존전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나님과 땅으로부터 단절된 가인의 형벌은 부모의 형벌을 닮았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에서 두 가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첫 번째로 이 이야기는 인간과 땅 사이의 계속적인 관계를 말한다. 가인의 행동은 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땅이 아벨의 피로 인해 오염된 것이다. 두 번째로는 불의한 행동은 인간과 땅 사이의 단절을 계속해서 빠르게 만들어간다. 인류에게 먹을 것을 주었던 땅은 이제 하나님의 형벌의 대리자가 되었다. 더 이상 자연환경은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것처럼 인간을 자동적으로 돌보지 않는데. 이제 자연환경은 적대적이고, 이런 적대감은 어느 정도 인간의 불의한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여러분이 읽는 성경은 생명과 죽음의 책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말한다. 생명은 육체적 생명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과 같은 영적 생명을 포함한다. 타락의 결과인 죽음 역시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이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삶에 종말을 가져오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리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지지 않으면 영적 죽음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 즉 영원한 사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기뻐하신다. 죽음이 생명에 침투하여 누구도 예외 없이 모두가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죄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표시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이 생명에 삼켜진 것은 예수님의 구원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는 표시이다. 십계명의 여섯째 계명이 무엇인가? “살인하지 말라”이다. 이 계명은 생명과 죽음이 하나님의 주관과 그분의 손 안에 달려있음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의 주관자이시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중 한 부분이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여섯째 계명이 말해준다. 웨스터민스터 대요리문답에서는 여섯째 계명을 이렇게 말한다.
Q135. 제6계명에 요구된 의무는 무엇인가?
A135. 제 6계명에 요구된 의무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주의 깊은 연구와 합법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누구의 생명이든지 불법하게 빼앗아가려는 모든 사상과 목적에 대항하고 모든 격분을 억제하고 모든 기회와 시험과 습관을 피하는 것이다.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 하나님의 징계를 조용한 마음으로 참고 견디며 술과 약과 수면과 노동 및 오락을 절제있게 하며, 자비로운 생각과 사랑과 인애와 온유와 우아함과 친절과 화평과 부드럽고 예의있는 언행과 관용과 화해되기 쉬움과 상해의 관용 및 용서 또는 악을 선으로 갚음과 곤궁에 빠진 자들을 위로하고 구제함과 죄없는 자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것이다.
Q136. 제6계명에서 금지된 죄는 무엇인가?
A136. 제6계명에서 금지된 죄는 공적 재판이나 합법적인 전쟁 혹은 정당방위 외에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모든 행동이다. 합법적이며 필요한 생명 보존의 방법을 소홀히 하거나 철회하는 것, 죄악된 분노, 증오심, 질투, 복수하려는 욕망을 가지려는 것, 모든 과도한 격분, 산란하게 하는 염려와 육류, 술, 노동 및 오락을 무절제하게 사용함과 격동시키는 말과 압박, 다툼, 구타, 상해, 다른 무엇이든지 사람의 생명을 파멸하기 쉬운 것이다.
제6계명이 가리키는 바는 단순히 살인을 자제하라는 것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고 잃어버리게 하는 모든 조건과 상황과 요소들을 주의하고 바로 잡으라는 명령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여섯째 계명을 가르치시면서 살인뿐만 아니라 분노와 욕설도 금지하신다. 왜냐하면 살인의 행위가 증오와 분노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누군가를 향한 적대감을 해소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사람은 여섯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요한1서 3:14–16 NKRV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살인은 폭력이 극대화된 경우이다. 얼마나 크게 피해를 입혔는지는 천차만별이지만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해친다는 점에서 폭력 역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침해라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살인과 다를 바 없다. 폭력은 가정과 학교와 길거리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자신의 언행이 폭력이라는 인지가 부족하면 놀이, 장난, 사랑이라는 말로 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조차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자.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원수 같은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만약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볍게 여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무리 나와 스타일이 다르더라도, 생각이 다르더라도, 심지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소망한다. 더 나아가 나 자신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나의 몸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은 화가나는 상황이 온다면 반드시 바로 눈을 감고 기도하시라. “하나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을 향해 너무 화가 납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을 다스려주세요.”, “저의 마음도 주님 손에 맡깁니다”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시며 평안을 주실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자유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바로 분노로부터 자유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그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용서하셨기에 나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감정을 다스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러한 힘이 없기에 방금 함께 고백한 기도를 드리며 예수님처럼 원수같은 나를 사랑했듯이 나도 미워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는 기도로 살아내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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