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부흥 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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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흥 9장과 마무리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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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거룩한 부흥. 제 9장. 부흥.
거룩한 삶의 시작.
부흥과 책임.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불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세기 35장 13절로 15절. 부흥은 사라져도 그 결과는 오래도록 교회 안에 남아서 거룩한 영향을 끼칩니다. 부흥은 많은 영적인 거목들을 배출하고 그들을 존경하는 거룩한 후회들을 자하게 합니다. 부흥 그 이후 성경은 베들에서 있었던 부흥의 영광스러운 마지막 장면을 다음과 같이 보도합니다. 생육하고 본성하라.
(00:38) 국민과 많은 국민이 내게서 나고 왕들이 내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내게 주고 내가 내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창세기 35장 15절 11절 12절. 이처럼 감동적인 약속을 주신 후에 일어난 일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니라 하시느니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이름을 베들리라 불렀더라. 창세기 35장 13절로 15절. 어떤 의미에서이 장면은 부흥이 끝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01:08) 우리가 부흥을 연구하에 있어서이 장면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가달금이 장면이 부흥 이후에 일어나야 할 일에 대하여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살은 우리가 앞부분에서 충분히 알 수 없었던 부흥에 대한 또 다른 원리들에 대하여 확실한 이해를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흥은 지나갑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위대한 부흥의 순간의 마지막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우리는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연 영광스러운 부흥의 마지막 장면에 어울리는 묘사이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너무 의외라는 느낌이 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제시해 주시고 메시아가 태어나실 언약까지 구체화해 주셨습니다.
(01:43)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부흥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는 것이고 그 하나님이 다시 우리 가운데서 떠나가심으로 끝이 납니다. 부흥은 이처럼 한시적인 것입니다. 저는 부흥의이 당연한 특징에 대해 일일이 예를 들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오신과 함께 시작된 것이 부흥이라면 하나님이 떠나신과 함께 부흥이 끝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 속에서 보존되고 확장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속을 위한 계시로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무리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라도 항상 이러한 부흥 속에서 살지는 아니하였습니다.
(02:13) 부흥은 하나님의 비상한 간섭입니다. 부흥은 인간이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히 교회와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붕의 이러한 성격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인데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몰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닷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의 벽이 되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과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를 뒤쫓아 바닷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시록기 14장 21절로 2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했으나 홍해 앞에 받다았고 뒤에는 애굽의 기병대가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02:48)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싸우셨습니다. 추격하는 애굽의 병거와 마병들을 흑암 가운데 불기둥으로 가로막아 이스라엘을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당신의 백성임을 보여 주시는 여호와의 위대한 손은 거기서 그거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홍해가 갈라져 마른 땅에 길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우의 바닷물이 기둥이 되어서 있게 하셨습니다. 누가이 일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더라도 누가 하나님께서이 일을 하시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의 결과입니다.
(03:15) 그 일이 있은 후로 이제 약 3,5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홍해도 여전히 있것만 그렇게 바다가 갈라지고 육지가 드러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위대한 기적은 잡실로 잠깐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짧은 역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보존하셨고 그들에게 당신의 위대함을 알리셨습니다.이 사건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두고두고 찬송 제목이 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홍해를 걷는 뒤 다시 합쳐진 물길을 타고 낙엽처럼 무리 위에 떠다니는 애굽의 병고와 마병들의 시체를 보며 건너편 언덕에 올라 부르는 장음한 찬송을 들어보십시오.
(03:40)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요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끝한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여호와여 신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까 주와 같이 거룩하며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험이 있으며 귀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 줄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출굽기 15장 1절로 11절 >> 그렇습니다. 부흥은 항상 잠깐 동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먹은 대로 영원히 계속되도록 만들거나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부흥을 불러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정하신 때에 부흥은 시작되고 그분이 원하는 시간에 끝납니다.
(04:09) 구약 성경에 나타난 모든 부흥은 그 지속된 기간에 있어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들을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들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부흥은 평범하고 긴 역사가 이루어 놓을 수 없는 그고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다를 때 성령의 지속적인 영향력이 임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은총의 시기에 각별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장 위대한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이 점을 사람들은 쉽게 지나칩니다. 부흥이 일시적이기 때문에 소홀하게 취급받기가 일수이고 심지어는 부흥을 통해 고향되었던 영적인 상태가 다시 평범한 상태로 돌아올 때 느끼게 될지도 모르는 상대적 빈공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흥을 구하기는 구하기를 마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04:41) 그러나 이것은 모두 부흥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부흥은 필수적이라는 의미. 부흥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자신들의 노력으로 회생을 기대할 수 없는 죽은 자와 방불한 교회를 소생시키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분을 아는 지식으로 축복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출굽기 6장 7절. 부흥은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교회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된 도구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도은 잃어버린 채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에 대해 냉담하던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교리적으로 느끼게 되는 의무 이상의 무거운 부담을 안겨주어 그들을 구령의 깃발 아래 모이게 합니다.
(05:11) 부흥은 냉담하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잃어버린 세상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거룩한 열망으로 타오르게 합니다. 이러한 위대한 부흥이 없던 시대에도 선교사들은 파송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한 일들은 계획되어질 수 있습니다. 구제도 행해질 수 있고 사람들은 예정과 다름없이 교회에 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 회복되는 교회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비하면 너무나 철라한 것입니다.이 이 자에 대하여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관심을 기울리고 바라보고 듣게 하는 전능하신 분의 역사하심이 필요하다.
(05:36) 과거에 모든 부흥은 예외 없이 부흥의 결과로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부흥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내가 당신들에게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강건하는 것도 바로이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시면 사람이 자신들의 조직을 가지고 50년 동안 섬기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1분 내에 행하실 수 있다. 그러면 붕이 도래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무 희망이 없는 것입니까? 이대하여 조암스롱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일 비수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부흥이 오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없고 복음을 전파할 수도 없으며 기도할 수도 없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제자를 삼을 수도 없다는 것이라면이 무음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
(06:04) 분명히 교회는 부흥이 없이도 하나님의 축복과 도우심을 받아봤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을 위하여 강구해야 하고 또 부흥이 오는 것이 바람직한 이유는 그것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한 부흥은 대체로 상실되어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초점을 다시 바로 잡아 준다. 부흥이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유일한 방편은 아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사모해야 하는 축복을 가져다 주는 놀라운 방편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결핍과 무기력한 상태를 지내온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부흥은 만병 통치약과 같은 것도 아니고 부흥이 없으면 우리 모두 절망하는 일만 남은 것은 아닙니다.
(06:29) 우리는 부흥을 기다리며 절망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부흥이 없어도 우리는 중성스럽게 살아갈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심각하게 세태하는 실 속에서 매우 미미한 열매들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보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런 일상적인 섬김과 수고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부흥이 없어도 우리는 섬길 것이며 부흥을 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갈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적은 능력으로도 충성스럽게 살아갈 것입니다.
(06:52)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지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의 약속이 있는데 어떻게 작은 성과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헌신을 부르는 풍. 하나님께서 야곱과 말씀하시던 곳에서 올라가셨고 베들에 있었던 하나님의 임재는 거두워졌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거기서 전에 없는 위대한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계시된 일에 그의 집안에서 거의 잊진 하나님의 새 이름 엘르시아다이도 새롭게 계시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맺은 언약을 구속의 약속으로까지 확장하셨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그 후에 야곱이 행한 일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07:19)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코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는 곳에 이름을 베들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35장 14절로 15절 하나님이 떠난 오나 올라가신 후 그가 한 일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돌기둥을 세운 것이고 둘째는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이름을 베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야곱이 부흥을 경험한 후에 한 일들을 살펴보면서 부흥의 또 다른 본질과 그것에 대한 경험이 부흥 이후에 우리의 삶에 대해 주는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07:44) 이렇게함으로써 우리는 부흥 일시적인 역사이기는 하지만 그 영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부흥은 헌신을 불러일으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베들에서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는 부흥이기 전까지 야곱의 삶은 자기 중심적이었고 이기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부흥을 겪은 후 그의 관심은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베들로 여호와의 전이 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금 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로 세워진 것은 돌기둥이었습니다만 그것을 세우고 여호와의 만남을 기념하는 그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요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08:10)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잠들어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자기만을 위하는 이옥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너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하여 가슴이 박차지거나 떨어진 주의 이름을 인하여 아파하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이 관대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한없이 인색하며 이웃의 아픔에 대해서는 무관각합니다. 모든 관심이 자신들이이 세상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누리고 행복하게 사느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냉담하고 자기의 이욕에 대해 과도의 관심을 갖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들에 귀 그려 보십시오. 그들의 발은 교회로 향하나 그들의 화제는 온통이 세상의 이야기들입니다.
(08:38) 그들은 자기들의 고통을 인하여는 그토록 슬피 울고 자기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인하여는 가슴을 쓸어앉지만 자신들 가운데 높여지지 못하는 하나님의 이름과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지켜지지 아니하는 여호와의 율법을 인하여서는 흘릴 눈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 있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은 이처럼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은 바로 실패한 고린도 교회의 정신이었습니다. 이러한 이기심은 급기와 욕심을 따라 파당을 만들고 교회의 영성을 파괴합니다. 교회가 말씀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가난해지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이기심에 떨어집니다.
(09:02) 이기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는 결과입니다. 그들은 복음이 주는 축복은 원하여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서 마땅히 지불해야 할 희생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들지 않습니다. 여건데 베들에서 새롭게 하나님을 경험하기 전까지 야곱의 삶이 바로 이러했다는 것입니다. 베리티나의 사건을 만나기까지 그의 삶은 세계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히 세상의 안락을 누리며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과 나아가서 인류의 구속을 위한 구원의 계시를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함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을 택한 것은 여전히이 땅의 세속적인 동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 있었습니다.
(09:27) 그러나 이제 그가 베들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더욱 여기에서의 만남은 창세기 28장과 32장에서의 만남과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경험하였으며 디나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그 하나님의 신앙적인 기대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들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야곱의 심령에는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돌기둥을 세웠을뿐 아니라 그 위에 천재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전제물을 붙는 것은 일종의 제사로 재물 위에 물이나 표주를 붙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피의 전제도 언급합니다.
(09:52) 후일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 의식 속에서 자리를 잡게 될이 전제는 다른 제사와 함께 드려지는 제사 의식이었습니다. 번제와 함께 드려지기도 하였고 소대와 함께 드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헌신 위에 완전히 드림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자기의 순교를 가르치는데이 제사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부흥을 험한 야곱은 지금 전제물을 붓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헌신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흥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한 헌신을 불러일으킵니다. 부흥이 일어나던 시기의 두렷한 특징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모아진다는 것입니다.
(10:18) 그때에 땅에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은 하늘에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인하여 무너집니다. 그래서 부흥이 일어날 때 그리스도인들은 종종이 땅에서의 일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비성경적인 현실도 피주의로 흐르도록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말씀으로 그들을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지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흥을 편만하게 경험하게 되는 때에 교회의 강단는 두 부류의 대적과 마주해야 합니다. 한쪽은 참된 하나님의 부흥을 틈타 들어와 사람들에게 오직 열광적인 체험만을 추구하거나 현실을 도피하게 만드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영적인 세력들의 괴이고 또 한쪽은 부흥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면서 무조건 혐오하는 무지한 강팍함입니다.
(10:43) >> 부흥을 기념하라. >>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는 장면에서 우리들이 읽어야 하는 또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야곱이 돌기둥을 세운 가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제사를 드리기 위한 준비만은 아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사람들이 도를 쌓거나 비석을 세운 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1장에는 야곱과 라반의 언약을 기념하기 위한 증거로서 돌무기를 쌓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수아 4장에는 여호와의 법계가 요단강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걷는 것을 기념하는 돌을 가져다 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1:07)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괴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매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무릎 가로되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물이 여호와의 언약교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교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물이 끊어졌으므로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령한 기념이 되리라 하리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들을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대해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현재 일에 몰두한 나머지 위대하게 하나님을 경험했던 얼마 전의 역사에 대해서도 까마득하게 입고 있습니다.
(11:34) 그러면서도 거의 불편을 못 느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찰하고 무엇이 잘못되는지를 살릴 계획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홀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성경에 비춰보고 교회의 역사에 비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교회의 영적 상태와 우리의 영적 경광함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과 삶의지를 다른 시대에 그리스도인들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고 우리가 정말 경고하게 믿음 위에서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복음 사역이 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정말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관계를 고치기에 충분한가를 살펴야 합니다.
(11:58) 이러한 일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최초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역사 속에서 교회가 영광스러운 존재로 나타났던 시기에 교회의 영성이 어떠하였으며 말씀으로 섬기던 그들의 강단이 얼마나 복음에 불타고 있었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질은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살아보야 합니다. 야곱이 불기둥 불기둥을 세운 것은 제사를 드리기 위한 단을 쌓는 것과 함께 이처럼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돌기둥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기념비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세우는 일이 그에게 왜 필요했을까요? 야곱이 그것을 세움으로써 기대했던 것은 현재의 헌신의 상징 말고 또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지적하고자 하는데 그가 돌기등을 세움으로써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억 기념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과 이런 시계 만남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12:35) 그렇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과 완벽히 동행한 믿음의 조상이라도 어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일상적이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점이 이것입니다. 왜 그런 부흥은 항상 순식간 일어나는 바람처럼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느냐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흥은 우리가 성령을 근신케 하거나 슬프게함으로써 축복스러운 행제를 멈추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하니더라도 부흥은 항상 일시적인 왜 그럴까요? 그것은 부흥을 통해서 교회를 간섭하시는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삼으시는 것이 그분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3:03) 이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비상 간섭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할지라도 한 나라가 영원히 비상조치하여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해서이 땅에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일반적인 섭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교회로 하여금 그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게함으로써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더욱 그들 안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부흥을 맞이하였던 이들의 의무 우리에게는 부과 같은 하나님의 비상한 간섭이 필요합니다. 그것 없이는 교회가 거룩한 순수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약 교회의 역사가 이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가 하나님과 만난 감격을 상실하고 영적으로 순결을 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망이 사라져갈 때 하나님은 종종 부흥을 주셔서 새롭게 하시고 교회를이 땅에 세우신 당신의 목적과 의도를 구현하게 하십니다.
(13:39)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비상한 간섭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부흥을 구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성경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 아니는 영혼들과 심히 사라져가는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셔야 할 절박한 필요를 느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이 땅에 강림하시는 영광스러운 부흥을 주시기를 간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부흥이 영원히 지속되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합니다. 얼마 후에는 하늘을 가르고이 땅에 강림하신 주님이 부흥을 주신 후에 곧하시려는 사실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부흥을 구하여야 하는지는 말서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14:04) 영광스러운 부흥이 끝날 때 우리 여러분은 무엇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영광스럽고 유대한 부흥을 경험한 것이 그 부흥이 떠나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의무는 무엇입니까? 마치 화려한 경기가 끝난 경기장 모든 관종이 사라져 버리고 휴지가 날리는 운동장을 물끄러이 바라보는 것 같은 마음으로 또다시 부흥이 일어나기를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이 지문에 대하여 오늘 본문이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야곱에게서 하나님과의 영광스로 만남은 끝났습니다.이 야곱의 심령은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고 새로운 계시를 통해 주어진로 인하여 하나님께 헌신되었습니다. 주님은 야곱과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셨습니다.
(14:29) 매우 특이한 방법으로 베들로 올라온 야곱을 만나 주신 주님은 다시 일상적인 방식으로 그를 인도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주님은 야곱을 떠나 올라가셨고 하나님과의 영광스로 만남은 일단 끝나서도 하나님은 그와의 만남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땅에 남겨두고 가셨습니다. 특별한 방식으로 야구을 만나 주심으로 그의 신앙을 순식간에 회복시켜 주셨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새로운 지식을 주셨고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이후로 일생 동안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14:53) 세계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 동안 은밀하게 들어온 세상에 대한 사랑과 집착들을 버리게 하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을 불러 일으켜 주심으로이 정결한 삶을 살 힘을 주셨고 그 삶의 동기들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그는 다시 가족들과 함께 구약의 역사에 도도에 흐르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서 인류 구속의 계시를 간직하고 전파할 수 있는 계시의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흥 사라지지만 이처럼 우리가 부흥 없이 수십년을 연구해도 어려운 것이 개념밖에 파악할 수 없는 진리들에 대한 선명한 인식을 가져다 줍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순수한 부흥의 경험은 변한 설교자들을 태어나게 합니다.
(15:17) 열심과 거룩한 신으로 영혼을 섬기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온 땅 가득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를 갈망하는 전도자들을 만들어냅니다. 전대 신앙을 파수하기 위하여 생명을 건 진리의 사람들을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부흥은 곧 사라지지만 그 잠깐 동안에 부흥이 남겨주고 가는 선물은 너무나 위대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와 조국교회의 형편을 정직하게 바라보십시오. 지금야말로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과 방불한 우리 교회들을 살려 주시고 상한이 땅을 고쳐 주셔야 할 때가 아닙니까? 조국 교회 안에 가득한 형식적인 신앙생활과 복음 사역으로 부름받은 일꾼들의 태만함을 보십시오.
(15:42) 열심히 섬겨도 섬김의 동기가 정화되지 못하게 하는 이기심을 분세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거룩하고 완전한 헌신을 누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까? 부흥이 아니면 무엇이 조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현실에 대한 그리움의 목매이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간섭하시는 부흥이 아니면 무엇이지지 부진한 순교의 전선의 획기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부흥이 아니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강한 영적인 군사로 다시 태어나겠습니까? 이처럼 부흥은 곧 사라져도 부흥의 결과는 오래도록 교회 안에 남아서 영향을 끼칩니다. 부흥은 수많은 영적인 거목들을 배출하고 그들을 존경하는 거룩한 후회들을 만들어서 순수한 신앙 사상이 선승되도록 만들어줍니다.
(16:10) 오늘날 우리는 묘목과 같은 교인들과 존재와 같은 지도자들로 가득찬 교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쟁이들의 국민 투표에 의하여 움직이는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제도나 방법들을 더 신뢰하고 성령의 인도하심보다는 자신의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진 계획이나 부운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시 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려가는 교회가 되기보다는 이제 교회 경영 기법이라는 영어가 등장할 정도로 사람을 의존하는 행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이 일도 적은 열매 밖에 거두지 못하고 사람들이 교회 모여도 근본적인 영혼의 변화하는 너무나 거리감은 교회 생활로 일관하는 다수의 무리들을 봅니다.
(16:38) 우리에게 어찌 부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부흥과 교육.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부흥과 교회의 어떤 관계 있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대한 부흥이 끝나면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부흥을 통해서이 땅에 남겨 주신 것들과 그리스도인의 가슴속에 새롭게 부어 주신 것들 갱신된 교회의 강단들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누리며 살아야 할 책임이 남습니다. 이때 요구되는 것이 가르침입니다. 하나님 자신에 대한 깊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받는 교육과 좋지 못한 사람들이 받는 교육의 성과가 얼마나 다를 것인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봉이면 무엇이든지 다 되고 그것이 아니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험한 생각에 떨어지기 싫습니다.
(17:06) 20세기 개혁주의 신학의 기술라고 할 수 있는 찰스 합치는 미국의 복음주의가 비평주의적인 사도와 타협하고 프리스턴 신학교가 자유주의적인 경향으로 기울기 시작하던 시기에 복음적인 신앙과 신학을 파수하던 신학자였습니다. 그 당시에 부흥의 영향을 받았던 교회의 목사와 어머니들에게 준 경고는 배석해 볼 만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부흥만을 기대하고 자녀의 신앙 교육을 위하여 도무지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려고 하는 부모들은 각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흥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실뿐 아니라 이미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의 자녀들을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사실입니다.
(17:30) 그의 엄격한 경건과 성경에 대한 탁월한 종심은 그의 어머니의 경건하고 열성적인 교육에 힘이 입은 바습니다. 우리가 부흥의 축복을 구한다는 구실로 이러한 모든 상과 교육의 가치를 무시해 버려서는 곤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변천하는 사회의 여러 현상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조국의 장례를 예측하고 대안을 연구하고 조교 교회에 나아갈 바에 대하여 진지한 성찰를 해 나가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윤곽 속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욕인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힘들이 좋은 교육과 섬김의 정신을 통해서 보다 더 잘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파수하고 그것들을 우리의 지체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18:04) 이러한 모든 교육과 탐구를 위한 논의와 미래의 조국 교회와 사회에 대한 대안들은 기독교회의 근본 진리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매우 조금밖에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섬기고 살아야 할 바를 알려주는 많은 가르침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만큼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런 교육만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타오르는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목표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에 불타오르는 내적인 갈망을 갖는 것은 부흥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분이신지를 알게 될 때 가능합니다.
(18:29) 이제 일상적인 가르침과 후의 말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며 의에 주리고 몽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설교에 관한 책들을 얼마나 탐구하면 우리의 가슴이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진리의 불길로 타 올라서 마르틴루터처럼 데이비드 브레인네처럼 러버트 홀처럼 리처드 백스터처럼 생사를 건 마음으로 자기 청중들을 주고하는 영혼들로 보고 설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교육에 관하여 얼마나 공부를 하면 여러분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자신을 드릴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적인 만져 주심 없이도 이렇게 변화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무리 진리를 많이 알아도 경험하지 않은 진리를 붙들고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8:56) 그리고 진정한 복음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에 강단히 설교할 중심적인 메시지들을 잃어버린 것도 바로 이런 맥락 안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의 진정한 의미와 하나님의 거룩을 경험하였던 지나간 세계들의 강단의 선포가 출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설교자들과 정들이 받았던 부흥의 영향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자기의 사상을 전파하는 일을 진리를 전하는 일보다 더 급하게 생각하고 아예 대중 훈하의 차원에서 떨어져 잡다한 이야기들로 예배 시간을 채운 설교단의 외도를 보십시오. >> 아멘.
(19:22) 이는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종들이 세워져야 할 시급한 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부흥은 수많은 진리의 종들을 만들어내고 보다 깊은 말씀의 지식에 목마른 영혼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그림의 사무치는 마음으로 복음의 능력을 하나님께 나아야 할 때입니다. 죄인들을 그으로 고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하도록 하는 일에 구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만한 힘이 있는 없는 교회에 대한 부담을 안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할 때입니다. 부흥을 통하여 앙상하게 개념만 남은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고 우리가 전수받은 진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경험하여야 합니다.
(19:48) 우리는 부흥을 통하여 교회의 참 모습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거룩한지를 인식하고 망가진 교회 생활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참된 신앙으로 돌아가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흥이 없는 시대에 있으며 섬기면서도 부흥을 고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부흥의 영향. 마지막으로 야곱은 그곳을 기념하여 베델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베델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베들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처음 지어진 이름은 아닙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게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곧 이름을 베들리라 하였더라.
(20:13) 이 성에 본 이름은 루스더라. 이처럼이 성경은 루스의 계명을 이미 창세기 28장에서 베드리라는 고유명칭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그가 하나님을 만난 감격적인 신앙 경험을 기념하여 지어붙친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 사는 동안 야곱에게 베이라는 지명은 이스라엘이라는 언약의 이름과 함께 잊혀진 명사였습니다. 베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루스가 베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새롭게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그는 그곳이 하나님의 집임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흥이처럼 우리 자신이서 있는 삶의 자리에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만들어 줍니다.
(20:38)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우습게 알던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특별과 같은 존재들임을 고백하게 만들어 줍니다.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고 거룩한 삶을 갈망하게 만들어 줍니다. 거짓과 허의와 위선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불붙는 사랑을 알게 만들어 줍니다. 무엇보다도 부흥은 교회로 하여금 잃어버린 영혼들이 있는 세상을 향하여 애정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부흥은 냉내한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구령의 열정이라는 불을 놓습니다. 부흥은 텅빈 교회를 다시 사람들로 가득차게 하고 교회에 가득한 사람들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만들어 줍니다. 거룩한 삶을 향한 갈망을 갖게 하고 상하는 마음으로 거룩게 이르게 하는 진리를 배우게 합니다.
(21:07) 오늘날 조국 교회 안에 있는 안에 유리적인 설교는 있어도 거룩해져 가는 성화의 행복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소수인 것은 바로 우리가 이러한 부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이 땅의 모든 육체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마르는 풀과 같은 육체들의 영광은 단지 시대는 꽃과 같음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령이 서게 됨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대안 아닙니다. 지금 교회가 마주 조국 교회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창세기 34장에서 야곱이 마이 맞이한 상황과 흡사합니다.
(21:33) 우리는 참된 영적 부흥이야말로 비사 상태에 있는 교회를 향한 마지막 처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를 비웃듯이 열러가는이 타락한 시대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기력해져야 하지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까?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잃은 교인들로 가득한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지난 시대에 관목할 소장의 역사에 잠만하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노래 부를 때가 아니라 가슴을 찢으며 탄식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이러한 말로 우리가 모든 불경관는 속박과 아니라의 사슬을 끊고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조국 교회의 복음의 영광을 보여 주시기를 간하여 할 때니다.
(21:58) 야곱이 결란을 들단을 하고 세상적으로 번영했으나 신앙적으로는 실패했던 땅 세계을 떠나 베들로 올라갔던 것처럼 세속 지의 결배를 표선언하고 교회 안에 가득차인 본주의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여야 합니다. 충천하는 불법과 같은 진리의 능력으로 아무 희망이 없는 세상의 죄인들을 권하고 교회 안에 명목상의 친자들을 하나님 사랑에 불타는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조국 교회가 얼마나 영적으로 가난한지를 깨닫고 영적인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러한 때에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눈물로 자비와 긍휼를 호소하여야 합니다.
(22:23) 왜냐면 교회의 희망은 우리의 지혜로운 대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거룩한 부흥 마치는 이야기 부흥이 없는 날에도 부흥이 지속되지는 않지만 그 효력은 항상 지속된다. 칼턴 부스 부흥이 오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울면서 그 일을 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 우리에게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만약 제게 천개의 영혼이 있다면 저는 그것들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인간이 전 삶을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으면서도 행복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23:05) 저는 천국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저의 모든 소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저의 썩을 몸은 이제이 집에서 밖으로 나가 묘지에 묻입니다. 그리고 거기는 저에게 어울리는 장소인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섬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큰 위안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조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이나마 섬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주님을 더 많이 섬기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픕니다. 우리에게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며 그리스도께서 섬기셨던 것처럼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 외에 무슨 가치 있는 일이 있겠습니까? 저는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향하여 살며 그분만을 기쁘게 하고 그분의 온 뜻을 행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만족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23:43) 이것은 데이비드 브레인너드 선교사의 장례식에서 조나던 에도워즈가 행한 설교 중 인용된 고인과의 대화의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 말고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죽는 날까지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우리는 부흥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흥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섬기는 모든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흥이 오지 않는 것을 핑계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땅히 힘쓰도록 명하신 일들을 테만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부흥이 오지 않아도 부흥이 오지 않아도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24:12) 한편의 설교로 수많은 죄인들을 거꾸러뜨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죄인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그치지 아니할 것이니라. 말씀을 가르칠 때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는 축복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진리와 양심을 따라 가르칠 것입니다. 커다한 감동을 받고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없어도 우리는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촉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파성한 선교사들이 많은 성계를 쓰고도 1년에 담밖에 구원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계속 기도하며 후원할 것입니다. 부흥이 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도할 것입니다. 바로 조일 온 지체들과 함께 발이 부르트도록 전도하러 다녀도 단 한 사람의 결신대조차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죽는 날까지 그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24:50) 그러나 우리는 울면서 그 일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부흥을 주시면 이룰 수 있는 위대한 결과와 그렇게 수고하였어야 얻을 수 있는 적은 성과 사이의 차이 때문에 우리는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다하여도 변화되지 않는 교회와 세상 때문에 좋으신 주님을 그렇게 초라하게 섬기는 처지 때문에 흔느기면서 섬길 것입니다. 부흥을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 같이 있어.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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