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은혜의 지배_서문 및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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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죄와 은혜의 지배
저자 서문 하눈이 온 천지를 뒤덮은 어느 해 겨울밤이었습니다. 저는 산골 마을에서이 교리를 묵상하다가 한없이 울었습니다. 무지 가운데서 살아온 날들이 너무나 서러워서 울었고 내 안에 있으나 내가 알지 못하던 많은 죄들 때문에 통곡하였습니다. 그때 제 손에는 17세기의 청교도 존 오 60여쪽의 작은 논문 한편 아티 of the 도미온 of sin and가 들려 있었습니다. 존 오는 17세기 영국의 총도되였습니다. 철로 역정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존 번영과 같은 시대 인물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크로멜의 공화정과 왕정 복고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01:05) 걸출한 청교도 설교자들이 풍비하던 시대였지만 존 오해는 그 경건한 열정과 학문적인 지성 그리고 영적인 깊이에 있어서 사회 추종을 불러하는 목회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청교다의 황태자라고 불립니다. 회심한 일례로 저는 늘 제가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욱 특별한 주인일 거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설교나 성경을 통해서 듣는 신자의 당연한 모습과 저 자신의 모습 사이에 너무나 큰 격차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때는 가장 사악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스스로 많이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다가는 나처럼 죄에 대하여 많이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터문이 없는 자만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02:01) 그러나 그 작은 논문은 저와 복음의 약속들을 믿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버태지도 않고 감하지도 않은 그대로의 진실을.이 이 책은 참된 신자가 되고 싶어 하는 한 그리스도인의 구도의 흔적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존재가 되고 또 그러한 신자로 살아가기를 사모하던 구도의 길에서 깨닫고 체험하게 된 복음 교리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쉽게 넘어지고 깨어지는 부족한 죄인을 누립니다. 그 후 자신의 신앙적인 필요에 의하여이 교리를 보다 집중적으로 탐구하였고 거룩한 삶의 진보에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이 교리는 그 후로 상담 기간이 지난 후에야 약 20여년 주간에 걸쳐서 교인들에게 설교되었고 많은 지체들이 저처럼 영혼의 어둠 속에서 헤어나오는 은혜를 노렸습니다.
(03:07)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 중 구원 다음으로 소중한 것은 저의 신앙과 학문에 있어서 최고의 스승인 존 오엔이라는 청교도를 만난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인간들 중 참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고 해박하게 알았던 인물로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모두 그분을 통해 베푸신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는이 책을 꼬박 밑에 동안 썼습니다. 신자 안에 있는 죄와 은혜의 지배에 관한 교리를 탐구하고 그것을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설명하다 보니 이렇게 두꺼운 책이 되었습니다. 책을 쓰는 동안 많이 울었습니다.
(04:00) 때로는이 교리를 알게 하셔서 짐승 같은 삶을 벗어나게 하신 은혜 때문에 그리고 때로는 이런 찬란한 계시의 빛을 바꿔서도 아직도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저 자신의 부패성 때문에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은 지성적인 탐구 없이 불가능합니다. 막상 집회를 끝내고 보니 이제껏 채 책을 읽던 분들이 아닌 독자들에게는 좀 더 쉽게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읽기 어려운 책일수록 작은 분량에 더 많은 양의 지식이 담길 수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책을 내놓습니다. 탐구심을 가지고이 책을 읽는다면 독자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에 있어서 커다란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04:52) 특히 함께 출관되는 스터디 교재로 몇 사람이 함께 공부하며 나눌 수 있다면 더욱 큰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 이 책이 죄마은이 세상에서 성화의 길을 가기 위하여 분투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붓이 진실한 신자가 되어 어디서나 망가진이 세상을 고치는 그리스도의 손발이 되소서. 2005년 4월 평촌 연구실에서 그리스도의 노예 김남준
죄와 은혜의 지배 1장_신자 안에 있는 은혜와 죄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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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1장 신자 안에 있는 은혜와 죄
1장 신자 안에 있는 은혜와 죄
우리는 ‘신자 안에 있는 죄와 은혜의 지배’라는 교리를 다루기 전에 먼저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야 될 성경 본문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이 교리의 진술를 위하여 살피고자 하는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서 6장 14절.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I. 기초본문 : 로마서 6장 14절.
I. 기초본문 : 로마서 6장 14절.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시작하여 본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영적 생명이 이르게 된 것과 그 생명이 어떻게 신자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살게 하였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00:58) 그러나 사도 바울은 생명을 얻는 신자의 영광스러운 구원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의 그 삶의 낙관만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긴장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거듭났고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그를 구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안에 남아서 역사하고 있는 죄 때문입니다. 거듭나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심겨진 생명의 원리와 함께 죄가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이 부분을 희랍어 성경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너희에 대하여 주인 노릇 하지 못할 것인데,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02:04) >> 네. 윤상 목사님 두만 정도 읽어주세요. >>
II. 불신자의 삶 :죄의 절대적 지배 아래 있음.
II. 불신자의 삶 :죄의 절대적 지배 아래 있음.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은 여전히 죄가 그 사람 안에서 주인 노릇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상태를 본문은 ‘법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신자는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죄의 영향을 받거나 힘 아래 놓이게 될지라도 은혜를 통해 그 상태를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가 율법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그가 지은 죄와 또한 그 그의 죄인된 상태를 보여주고 정죄할 뿐입니다. 불신자는 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02:59) 그것은 상대적인 지배가 아닙니다. 불신자는 죄의 절대적인 지배 아래 있습니다. 당연한 이치지만 여기서 말하는 불신자는 사실상의 불신자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거듭나지 못한 채 단지 교회에 출석만 하는 신자들이 포함됩니다. 비록 기독교적인 문화와 종교, 환경 속에서 살아가지만 실질적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모든 형식적인 교인들까지 포함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기 전에는 모두 은혜가 아닌 죄의 지배 아래 삽니다. 하나님께 반항하고 인간의 창조의 목적에 반항하는 죄의 경향성에 대항할 어떠한 통제력도 소유하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갑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원인이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04:01)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것이 곧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적대시 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자신을 모든 우주의 중심에 있는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대신 갖다 놓은 우상숭배적인 자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는 흔히 죄라고 하면 구체적인 실행죄를 생각합니다. (04:55)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등 마음으로 짓는 죄와 도둑질과 간음, 살인과 거짓말 같은 행동으로 짓는 죄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모든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실행 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이 세상의 중심이 인간인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 없이도 넉넉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곳에 인간을 두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교재하면서 살아가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대하신 삶은 하나님을 온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인생의 (06:00) 참된 가치를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데서 찾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하나님께는 만족을 드리며 인간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때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러한 창조의 목적을 외면한 채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 믿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멸시이자 반역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온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의존하며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06:55) 이 목적을 떠난 모든 것이 죄입니다.
III. 신자의 삶 : 은혜의 통치 아래 있음
III. 신자의 삶 : 은혜의 통치 아래 있음
개혁주의 성화론에 있어서 결정적인 유산인, 그러나 지금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 영광스러운 교리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전에 먼저 서론적으로 살펴볼 내용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감격적인 어조로 피력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으니라.”롬 8:1-2
사도 바울에 이하면 신자는 죄를 단번에 영원히 용서받은 자이고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07:49)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에게서 신자에게 있어서 죄는 무엇인가? 과연 신자 안에 죄가 거할 수 있는가? 만약 죄가 신자 안에도 거한다고 하면 그것은 신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 그 죄가 신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거스린다면 그것은 곧 해방된 죄와 사망의 법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만약 죄와 은혜가 신자 안에 함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신자가 받은 구원의 실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성경적인 답은 이것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죄의 절대적인 지배는 종식되었으나 죄는 현존한다.”
원리적으로 거듭나는 신자는 죄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습니다. (08:42) 여기서 은혜란 신자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입니다. 즉 죄인의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거룩한 영향력입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자가 죄 가운데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깊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속에 부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를 받게 되면 그의 마음은 은혜가 없었던 때와는 다른 내적인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은혜로운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마음은 변화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은 외적인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09:29) 그것은 영혼과 마음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에게는 은혜받기 전이나 은혜받은 후나 상황은 별로 다른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집안도 그대로이고, 다니던 회사도 그대로이며, 갑자기 승진을 하거나 돈을 많이 벌게 된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괴롭게 하던 삶의 상황들도 하나 없이 그대로입니다. 그런데도 은혜를 받고 나면 신기하게 마음속의 기쁨과 평강이 넘칩니다. 매일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도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랑과 감사 속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입니다. 은혜를 받고 나면 예전에는 멀리 하나님이 계신 분으로만 느껴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자신 곁에 자기 안에 살아 계신 분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10:19) 자신을 그렇게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강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받기 전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할 수 있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란 성령 자신 혹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영향력입니다.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모든 사람에게는 이런 은혜가 심겨집니다. 그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순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심겨지면서 이러한 은혜의 능력을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신자에는 죄가 여전히 현존합니다. 비록 여전히 부패한 성품이 남아 있고 죄가 남아 있지만 하늘 사랑 안에는 보다 더 큰 지배력을 가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존재합니다.
(11:12) 그는 이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죄의 다스림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그는 그 은혜를 따라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닮아가도록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갈기 위해 필요한 하늘 자원을 공급받게 됩니다.
IV. 신자에 남아 있는 죄의 세력
IV. 신자에 남아 있는 죄의 세력
A. 죄의 지배와 영향
A. 죄의 지배와 영향
신자가 거듭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사람 안에다 그리고 그렇게 신자 안에 심어주신 영적 생명은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생명의 원리는 신자의 안에 존재하던 죄와 사망의 법을 타파하는 것과 함께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12:12) 그러한 죄의 통치는 중생과 함께 종식되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영혼에는 새로운 주도적인 성향이 심겨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순종하며 살려는 마음의 성향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심겨진 하나님의 은혜의 생명은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마음과 정결한 생활 속에서 자라납니다. 나무가 양분이 충분히 공급되고 비가 내리고 햇빛이 비치고 적정 온도가 유지되어야만 땅속히 비 뿌리를 내리고 가지뻗어 성장하게 되는 것과 같이 중생과 함께 심겨진 하나님의 생명도 순결한 마음과 죄를 죽이는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성장을 거듭하게 됩니다. (13:01) 따라서 신자의 경건은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 생명이 풍성히 자라게 되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러한 진리를 적용시켜 보십시오. 오래도록 교회를 다녔다고 해서 반드시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은혜의 생명은 성화의 이치를 잘 깨닫고 죄를 죽이는 경건한 생활과 거룩한 삶의 실천을 통하여 풍성해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비록 큰 체험 속에서 회심하였다고 할지라도 자신 안에 있는 죄를 죽이는 삶에 대하여 무지하거나이를 실천함에 있어서 게으른 삶을 산다면 그는 결코 영적인 생명력을 지닌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13:53)
B. 죄의 절대적 지배와 상대적 지배
B. 죄의 절대적 지배와 상대적 지배
인간에 대한 죄의 지배는 절대적 지배와 상대적 지배로 나뉩니다. 거듭나지 아니한 불신자들은 항상 죄의 절대적인 지배 아래 놓여 있고 거듭난 신자는 은혜 안에 살지 아니할 때는 죄의 상대적 지배 아래 있게 됩니다. 죄가 절대적으로 그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중생과 함께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신자에 대한 죄의 지배는 상대적인 지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 죄의 절대적 지배.
1. 죄의 절대적 지배.
거듭나지 않는 사람은 죄의 절대적인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는 죄와 사망의 법로 속박된 채 이 세상에서 태어납니다. (14:48) 그들은 신분에 있어서 죄의 종이며 마음과 영혼의 상태에 있어서도 죄의 법에 매어 있습니다. 마음과 영혼은 어둠의 세력들에게 장악되어 있고 존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생각은 철저히 자신의 존재의 근원적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고 정서는 하나님의 심정이 아니라 자기의 정욕에 합치된 상태이며 의지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이 모든 절망적인 상황은 곧 죄의 절대적인 지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불신자들 역시 여전히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일부를 지니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리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죄의 지배는 숙명처럼 지속되고 있으며 자력으로는 결코 이러한 죄의 지배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15:48) 한낱 피조물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창조주를 알지도 못하고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허탄한데 굴복하며 창조의 목적과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총체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가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형벌을 쌓아갑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죄는 신분은 물론 내면 세계와 외적 삶, 그의 삶이 지향하는 목적 등에 총체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렇게 살다가 죄 가운데 죽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그 죄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됩니다.
2. 죄의 상대적 지배.
2. 죄의 상대적 지배.
죄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이렇게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싶어하지만 거듭난 신자에 대하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16:50) 중생과 함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인간을 죄와 사망의 법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지배하였지만 신자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 안에서 그 법을 파멸시켰습니다.
중생과 함께 그의 죄를 용서하셨을뿐만 아니라 죄와 사망의 법을 파멸시켜 버리셨습니다.뿐만 아니라 전에는 없던 새로운 법을 그의 내면에 심어 역사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이제 거듭난 신자에게는 내면에 심겨진 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의 자리를 대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지성으로는 하나님의 생각을 좇고, 정서는 하나님의 감정을 공유하며, 의지로는 지성으로 알게 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54) 이제는 그가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의 통치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그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마음과 영혼의 상태에 있어서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자유함이 있으며 존재로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위하여 선을 행하고자 하는 주도적인 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신자는 어떠한 상태에서도 성령을 따라 순종하면 이러한 내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원리적으로 은혜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은 불변적이지만 어느 정도 은혜의 상태에 있는가는 가변적입니다. 처음 중생과 함께 신자는 온전한 은혜의 지배 아래 살아가기 시작하지만 그 은혜의 상태는 더하기도 하고 덜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상태는 신자의 죄를 죽이는 생활의 철저함과 비례합니다. (18:56) 즉 신자가 은혜와 믿음의 원리에 따라 복음적인 죄 죽임을 실천하는 삶을 살면 그 안에 심겨진 생명의 성령의 법은 더욱 강력하게 번성하게 됩니다.
신자의 경우 중생함으로써 죄의 절대적인 지배력이 궤멸되었지만, 죄가 그 사람 안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 세력은 신자 안에서 여전히 잔존하고 있습니다. 중생의 역사로 말미암마 신자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은 등뼈가 부러져서 설설 기어다니는 처지가 되었으나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닙니다. 비록 합법적이고 절대적인 지배력을 잃어버리기는 하였지만 죄는 신자 안에 여전히 남아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는 비록 지배권은 상실하였지만 죄의 고유한 성질 자체에 어떤 변화가 (20:02) 온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불신자 안에 있는 죄나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나 모두 본질상 동일합니다.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는 이제 합법적인 것이 아니라 불법으로 존재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잔존하는 죄는 본질 면에서 예전과 동일하기 때문에 잔존하는 죄의 세력들을 규합하고 정욕의 도움을 받아서 신자의 영혼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그 영향력을 증대하여 불법한 상태에서라도 지배력을 얻고자 합니다.
이때 신자가 복음적인 원리를 따라서 자기 안에 있는 죄를 죽이고 은혜를 강화하면 죄의 영향력은 쇠퇴하고 이미 심겨진 생명의 성령의 법을 역사하는 힘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21:07) 그러나 신자가 자기 안의 죄를 죽이지 아니하고 정욕이 일어나 활동하도록 방치하면 합법적인 생명의 성령의 법은 약화되고 불법적인 죄의 영향력은 급격히 증대합니다. 신자의 내면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이러한 싸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중생과 함께 합법적으로 세워진 생명의 법과 불법하게 신자 안에 잔존한 죄의 영향력 사이의 싸움은 신자가 죽는 날까지 계속됩니다.
3. 두 지배의 결국은 동일함.
3. 두 지배의 결국은 동일함.
신약 성경의 진리들을 정직하게 살펴볼 때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 이러한 사실입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영원히 단번에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22:01) 그러나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죄는 여전히 그들 안에 잔존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신자들은 이미 죄로부터 해방된 사람이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아직 완전히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효과는 완전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보탤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우리의 구원도 취소될 수 없는 완전한 구원입니다. 사망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거기서 끊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신자 안에 간절한 죄를 죽이지 아니하여 번성하게 되면 그것은 신자 안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22:53) 그리고 신자의 불순종의 도움을 받아 중생과 함께 신자 안에 심어 놓으신 생명의 성령의 법을 대항하여 은혜를 쇠퇴시키고 정욕을 번성하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적절한 방법으로 다루어 죄를 죽이지 아니하고 방치하면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죄 절대적인 지배 아래 살아가는 불신자와 방불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이 우리가 신자가 된 후에도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까지 죄의 죽음의 실천을 통하여 순결하고 거룩해져 갈 것을 촉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신자에게는 죄의 지배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스스로 죄 스스로 죄에 굴복하였기 때문에 다다르게 된 상대적 지배일 뿐입니다. (23:49) 신자가 진심으로 깊이 회개하면 오래된 죄의 세력들이 단시간 안에 파멸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신자에 대한 죄의 지배는 실제이지만 그것은 불법이며 원리적이며 이미 심겨진 영적 생명의 법을 없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요일 3:4)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원리 때문에 사도 바울은 죄에 복종하지 말도록 진지하게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롬 6:12)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으로 의해 이르느리니라”(롬 6:16).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떠고 죄의 낙에 길들여지게 되면 빠른 속도로 그 (24:53) 죄에 빠져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의 궁극적인 계획은 신자를 죄 가운데 살도록 사로잡아 두어서 하나님을 거스리는 배교에 가까운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흐르는 강물을 따라 헤엄을 칠 때에는 그 흐르는 물에 힘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흐름을 거슬러 수영하고자 하면 비로소 흐르는 물의 힘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바입니다. 자신 안에 죄의 강력한 힘을 느낀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25:48)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사도 바울 역시 죄를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항거 하려고 분투하는 가운데서 죄의 힘을 느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영적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영적 생활이란 그의 영혼 안에 새롭게 심겨진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신자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심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와 생명이 무성하게 자라는 법칙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법칙을 따라서 살면 풍부한 영적 생명을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고 그렇지 않으면 핍절하고 가난한 영적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영혼과 마음은 죄의 지배로 가득 차게 되고 삶은 불순종과 악으로 뒤덮입니다.
(26:49)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에 따르는 영적 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데도 불만족이나 고통이 없다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가 경건을 잃어버리고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될 때는 반드시 마음의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V. 은혜 아래 있는 신자의 의무
V. 은혜 아래 있는 신자의 의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원리를 따르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용서와 은혜와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경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고 했습니다(롬 5:20). 그러나 거기서 사도가 말하는 죄는 신자가 지금 사랑하며 붙들고 있는 죄가 아닙니다. 그 죄는 예전에 그것을 저지른 자는 자신이었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미워하고 있고 아직도 남아 있지만 지금은 맞서 싸우고 있는 죄입니다.
(27:41) 따라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 위해서는 단지 죄만 많아서는 됩니다. 오히려 죄 가운데 있던 사람이 어느 한 순간 결단하고 은혜의 원리로 돌아와서 다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그에게는 은혜의 원리를 따라 죄를 대적하고 죽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신자는 이제 더 이상 죄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미 주신 은혜 아래서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 안에 있는 죄를 살피며 하나님의 은혜를 거슬러 살게 하는 죄를 죽임으로써 자신 안에 주님께서 충만히 사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28:33)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우리 안에도 잔존하는 죄가 있음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비호하거나 무지로 인하여 우리 안에 안전히 거하고 있는 죄는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죄에 대하여 진실한 참회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여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이미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에게 여전히 죄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정하고 경건한 슬픔과 거룩한 자기 비하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소망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29:26) 아아 지금도 과거에 저처럼 영혼의 어두움과 무지 가운데 죄의 지배 아래 있는 핍절한 지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 세상에서 그분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영광스러운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죄에 허덕이며,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소중한 날들을 허비하는 많은 지체들의 얼굴이 제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죄의 지배를 벗어나 은혜 안에 살면서 거룩하고 진실한 신자가 되어가고 이 땅을 고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드러내도록 섬기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를 그렇게 살게 할 이 교리가 우리 모두를 그렇게 진리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기를... 아멘.
한눈에 보는 1장 신자 안에 있는 은혜와 죄
I.기초 본문 : 롬 6:14
II.불신자의 삶 : 죄의 절대적 지배 아래 있음
-누구든 거듭나기 전에는 죄의 지배 아래 살아감
-자기를 우주의 중심으로, 자신의 행복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여김
-자기 중심적 삶은 우상 숭배적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서 떠난 모든 것이 죄임
III.신자의 삶:은혜의 통치 아래 있음
-신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된 자임
-신자 안에서 죄의 절대적 지배는 종식되었으나 죄는 현존함
-원리적으로 신자는 죄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
-은혜 아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공급받음
IV.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의 세력
A 지배는 불가, 영향은 가능
-죄의 통치는 중생과 함께 종식됨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순종하려는 주도적인 성향이 심겨짐
-은혜의 생명은 죄를 죽이는 거룩한 삶의 실천을 통해 풍성해짐
-죄 죽임의 실천에 게으르면 영적인 생명력을 지닌 풍성한 삶을 살 수없음
B.죄의 절대적 지배와 상대적 지배
1.죄의 절대적 지배
-인간은 죄와 사망의 법에 속박된 채 태어남
-신분에 있어서는 죄의 종이며, 마음과 영혼은 죄의 법에 매여 있음
-자력으로는 죄의 지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음
2.죄의 상대적 지배
-신자가 원리적으로 은혜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은 불변하나, 그정도에 있어서는 가변적임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는 비록 지배권을 상실했으나 성질 자체가변한것이 아님
-잔존하는 죄는 불법적으로 존재하는 것임
-잔존하는 죄는 정욕의 도움을 받아 영향력을 극대화하려고 애씀
-합법적으로 세워진 생명의 법과 불법적으로 세워진 죄의 영향력의 싸움은 죽는 날까지 계속됨
3.두 지배의 끝은 같음
-잔존하는 죄를 죽이지 않으면 번성하게 되어 신자 안에서 힘을 발휘함
-이 상태를 방치하면 죄의 절대적인 지배 이래 사는 불신자와 방불한 삶을 살게 됨
V.은혜 아래있는 신자의 임무
-사도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고 말함
-여기에서 죄는 사랑히여 붙들고 있는 죄가 아니라 미워하여 맞서 싸우고 있는 죄임
-우리 안에 죄가 있음을 깊이 깨달고 하나님 앞에 겸비해져야 함
-모든 죄에 대해 진실한 참회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은혜를 소망해야 함.
스터디
제1장
신자 안에 있는 은혜와 죄
1. 희랍어 성경에서 로마서 6장 14절 을 직역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본문이 위치한 성경의 문맥을 통해 우리가알 수있는것은 무엇입니까?(25-26, 각주 1)
2. 불신자의 상태에 대해 본문은 어떻게 말합니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기 전, 인간의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26-27, 33)
3. 성경이 말하는 죄는 무엇입니까?(27-28)
4. 신자 안에도 죄가 거할 수 있습니까? 죄는 신자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칩니까? 여기에 대한 성경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30)
5. 거듭난 신자는 원리적으로 죄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말할 때. 은혜란 무엇입니까? 구체적인 자신의 경험을 말해 보십시오.(30)
6. 하나님께서 신자 안에 심어주신 생명의 원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신자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하게 자라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입니까(32)
7.신자가 어느 정도 은행의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이 가변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35)
8. 1장의 내용을 통해 은혜 아래 있는 신자의 의무에 대해 깨달은 바를 나누어 보십시오(4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