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우리를 일하게 하셨을까

직업과 소명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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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참 많은 병을 안고 살아갑니다. 감기나 우울증 같은 일상적인 질환부터 고혈압, 당뇨, 폐렴 등 그 종류도 다양하죠. 그런데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아니 대다수가 앓고 있는 병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월요병’입니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월요일 아침 알람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어지며 출근하기가 괴로워지는 병이죠.
많은 이들이 일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하곤 합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통장 잔고를 채우기 위해 버텨내야 하는 것”, 혹은 “돈만 많으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것”이라고 말이죠. 최근 경제적 자립을 통해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이 등장한 것도 결국 일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심리를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시각은 신앙인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노동을 ‘아담이 죄를 지어 받은 벌’이라 생각하며, 천국에 가면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기대하곤 하죠.
만약 일이 정말 저주라면, 인생 80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일터’는 곧 지옥이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오늘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일하게 하셨을까요?”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5절을 다시 한번 주목해 봅시다.
창세기 2:15 NKRV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결정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모습입니다. 즉,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 완벽하고 아름다웠던 에덴동산에도 이미 ‘일’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일이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설계’ 중 하나였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창세기 3장을 보면, 죄의 결과로 땅이 가시덤불을 내고 인간이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죄로 인해 일에 고통과 허무함, 갈등과 착취가 스며든 것이지, 일 자체가 저주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을 원어로 보면 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경작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바드(Abad)’는 ‘노동하다’라는 뜻입니다.그런데 이 단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예배하다, 섬기다’**로도 번역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가 하나님을 ‘예배’하겠다고 할 때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거룩한 예배와 치열한 노동은 같은 단어인 셈입니다. 우리가 손을 들고 찬양할 때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 엑셀을 정리하고 주방에서 요리하며 물건을 배달하는 그 모든 순간이 곧 ‘아바드’입니다.
둘째, ‘지키다’라는 뜻의 ‘샤마르(Shamar)’는 ‘보존하고 소중히 여기다’라는 뜻입니다.대상이 망가지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해 돌보는 ‘파수꾼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121편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편 121:4 NKRV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일터에서 무언가를 관리하고, 점검하고,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순간은 단순한 잡무가 아닙니다. 세상의 파괴를 막고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파수꾼’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샤마르’하고 있기에, 우리 사회라는 에덴이 오늘도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목회자나 선교사 같은 사역자들만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하루 종일 숫자를 입력하며 오타를 잡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하나님의 영광이 될까?” 싶겠지만, 그가 이 일을 소홀히 하면 누군가는 큰 손해를 입고 사회적 혼란이 생깁니다. 그가 성실히 일할 때 질서가 유지되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보존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설거지와 기저귀 갈기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고된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의 기저귀를 빨거나 하찮은 일을 수행할 때, 하나님은 모든 천사와 함께 미소 짓고 계신다. 그것은 행위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가 믿음으로 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저귀를 가는 행위보다 그 한 생명을 돌보고 키우는 일을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 보시기에 평등하며,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노동은 그 자체로 거룩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고대 근동의 다른 신화들을 보면 신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노동시킬 존재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완벽하게 만드신 후, 우리에게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경영권’을 맡기셨습니다. 즉, 노동은 우리를 비천하게 만드는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누리는 ‘존엄한 특권’입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은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 묘사가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짓게 될 ‘성막’의 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성막의 입구가 동쪽을 향해 있듯 에덴의 입구도 동쪽이었고, 성막 안을 장식했던 금과 보석들이 에덴에도 가득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니시던 '임재의 장소'였습니다.
즉, 에덴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인류 최초의 성전이었으며, 아담은 그 성전을 관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켜내는 최초의 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나무를 가꾸고 동물의 이름을 짓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은 단순히 지루한 '정원 관리'나 '생물 분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행하는 가장 거룩한 사역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책상 위, 여러분의 작업대 위에도 이와 똑같은 영성이 흐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서류를 작성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아이를 돌보고, 환자를 진료하는 그 행위 자체가 성경적으로는 ‘제사장의 직무’와 같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서류 한 장을 정직하게 작성할 때 세상의 무질서가 바로잡히고, 여러분이 정성껏 내린 커피 한 잔이 지친 이웃의 마음을 위로한다면, 그것이 바로 제사장의 사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일터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돌볼 때, 우리는 그곳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바꾸고 있는 위대한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봅시다. 내일부터 우리가 마주할 그 일터는 단순히 고구마 같은 상사가 있고,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돈을 버는 '생존의 현장'입니까? 아니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성전'입니까?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네가 받는 연봉이 곧 네 존재의 가치야. 성과를 내지 못하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혹은 “성공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면 네가 하는 잡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라고 말입니다. 이런 세상의 소리는 우리를 끊임없는 비교와 열등감, 혹은 교만함으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그런 소모품으로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결과물로 우리를 평가하시는 채점관이 아니라, 우리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 앞에서(Coram Deo) 그 일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라고 말입니다.
비록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그 일을 해낼 때 그 일은 하늘의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혹은 여러분이 지금 씨름하고 있는 그 일 앞에서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하나님, 오늘도 저를 이 작은 자리의 제사장으로 세우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친절을 전하게 하시고, 제가 하는 이 작은 일이 세상을 조금 더 이롭게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주시기 위해서 일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일은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주신 축복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이 세상을 다스리고 보존할 '영광스러운 파트너'로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일은 거룩한 소명입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마주하는 갈등과 피로가 때로는 우리를 지치게 하겠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정체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하는 제사장'입니다.
그 거룩한 소명을 따라 우리가 흘리는 정직한 땀방울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가장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모두 일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양을 치다가, 베드로는 그물을 던지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일터가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그리고 기쁘게 나아가는 귀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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