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8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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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신앙생활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서론] 신앙생활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신앙이 뭘까요?? 신앙생활 이라는게 뭘까요?? 우리가 삶의 일부를 말할때 학교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 이런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학교생활 학교가 내삶의 전부가아니라 일부죠 직장생활 직장이 나의 삶의 전부는 아니죠 일부죠 사회생활 지인들과의 관계들이 내삶의 전부는 아니죠 일부죠.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데 이 신앙생활을 학교 생활 직장 생활 사회생활 취미생활 등등 으로 생각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그러한 개념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단어들과 비교 했을때 신앙 생활이란 표현은 맞는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 즉 신앙생활은 삶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삶의 전부 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그의 삶전반에 찾아 오신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성경의 역사는 모든 시간 전체속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창조주 이시며 아버지 되십니다. 일반적인 세상이 만들어낸 신의 개념이 아닙니다. 적당히 시간을 들여 한순간 신앙적인 뭔가를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 모든 순간에 역사하시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매순간 입니다. 우리의 삶이 신앙생활이라는게 무엇인지 오늘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 나눠 보겠습니다.
[본론 1] 율법과 삶, 우리를 인도하는 '초등교사'
[본론 1] 율법과 삶, 우리를 인도하는 '초등교사'
오늘 갈라디아서는 율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전에 율법아래에 매여있었고 그율법은 초등교사 였다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 율법아래 그들이 매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가치와 방식이 주어지자 그들이 그 가치와 방식안에서 자유로워 지는게 아닌 매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킬수가 없는겁니다.
그들 스스로 율법을 지켜낼수 없던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말하면 그들스스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수가 없었다 입니다. 그들의 조건으로 백성이 된것이 아니다 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이 초등교사가 되었다라는 것은 너희로는 의로워 질수 없다. 너희로는 완전하지 않다 이룰수 없다. 를 알려주는 교사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매어있었습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을 자랑 으로 삼았습니다. 온전히 지킬수 있는것은 아니었죠. 율법을 너희가 너희스스로 지킬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이 다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또한 율법은 그것을 완전히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이 앞서 말한 초등교사라는 겁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너희를 이끄는 초등교사일뿐라는 겁니다.
그럼 우리에게 이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아아 율법은 그런거 였구나 아아 율법이 초등교사였구나라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오늘본문은 갈라디아서 교인들에게만 향해있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도 향하며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은 그들의 삶이 었습니다.
노예였던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졌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삶에 살아가는 방식 규율이 생긴 겁니다. 율법은 그들의 삶을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그들의 삶자체를 의미 합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말씀에는 율법 다시말해 그삶이 다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겁니다. 더있다. 라는 겁니다.
너희가 다라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보다 더큰 하나님의 것이 있다 너희는 믿음이 오기전에 삶에 매여 있었다. 라는 것과 너희삶은 초등교사라는 겁니다.
그럼 우리에게 율법처럼 아래에 매어있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초등교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삶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에 매어 있고 이세상안에 갇혀 있습니다. 삶에 매어 있는 겁니다. 세상에 매어있는 겁니다. 이 틀안에 갇혀 사는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 매어있던 우리에게 복음이 다가왔으며 믿음이 시작되었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삶 유한함 속에 갇힌 우리에게 영원한 것이 여기 있다. 나를 바라봐라 영원한것을 그가치를 바라 봐라 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삶에 매어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교회왔습니다로 만족하는 기도했습니다로 만족 하는 성경읽었습니다 로 만족하는 삶을 삽니다. 십일조 했습니다. 주일헌금 했습니다. 구제헌금 했습니다.로 만족합니다.
여전히 세상의 가치의 시선을 두고 있고 그삶에 매어 있습니다. 성공하는 삶에 매어 있거나 아니면 남들처럼만 이라는 삶에 매어있거나 아니면 삶에 낙을 찾는 삶에 매어있거나 그삶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뭐하고 있어 가자 여기가 끝이 아니야 이게 다가 아니다"
(그렇다고 삶을 내팽겨 치라는.… 삶에서 치열함이 있지만 모든 나의 시간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것....)
[본론 2] 믿음이 온 후, 우리는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않습니다
[본론 2] 믿음이 온 후, 우리는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초등교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초등학교 는 취학해서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입니다.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가고 대학교도 가야하는데 초등학교안에 갇혀서 초등학교만 다닌다면 얼마나 답답 하겠습니까.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이 온후 다시말하면 복음으로 인해 우리에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은혜이며 값업는 조건 대가 없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초등교사 즉 우리는 이 삶에 세상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매어있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지 마십시오 아둥바둥 악착같이 살지 마시고 하나님의 것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이제 많이 느끼셨을 겁니다. 내뜻대로 되는거 없고 내가 다 대비 할수도 없고 ... 얼마전에 제 가정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걱정이 한가득 입니다.
무사히 잘자라야 할텐데 나도 아내도 건강해야 할텐데 지켜줘야 하는데 라는 염려와 걱정이 앞섭니다. 여기서 무엇을 느낍니까?? 이 삶 내가 어찌할수가 없다 입니다. 이아이 내가 최대한 위험 불안 요소를 미리대비하겠지만 완벽히 지켜낼수는 없다. 입니다.
여기서 믿는저에게 세어 나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 도와주세요” 입니다. 나로는 안되는겁니다. 나로는 이생명을 완전히 완벽히 길러갈 재간도 지켜낼 힘이 없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지켜주세요 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 수많은 일들 앞에 내가 어찌할수 없는 상황들을 겪으 셨을 겁니다. 이삶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나로는 도저히 할수 없다 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인해 구원을 얻은 복음의 내용이 담긴 우리들은 "주님 나는 안됩니다" 입니다.
그게 삶입니다. 삶이 무엇입니까 ?? 그리스도 께로 인도 하는 초등교사 입니다. 그러니 이삶에 목매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에게 영원한 생명이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겁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내가 한다 내가 이룬다 내가 온전하게 한다 입니다.
[본론 3] 소속의 변화: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상속자
[본론 3] 소속의 변화: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상속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우리의 소속이 바뀐겁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소속이 바뀐 겁니다. 내가 어찌할수 없는 세상에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혜 그사랑으로 다시말하면 믿음으로 인해 그분이 우리에게 먼저 주시고 시작하신 믿음으로 인해 우리의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나로는 어찌할수 없는 세상 아래에 매어 있던 삶에서 하나님께로 옮겨 졌습니다. 매임이 아니라 자유가 선포 된겁니다. 묶인 삶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뿐아니라 아들이라는 말은 상속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아둥바둥 어찌할수 없던 자가 지금 창조주의 상속자가 된겁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주어진 아들의 신분으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아래 매어 신분이 바뀐줄도 모르고 노예처럼 사시겠습니까??
여러분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매어놓을수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스스로를 세상에 매어두고 있습니다. 성공 성취 명예 좀더 나은 저들만큼만 을 붙잡으시겠습니까?
27절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입었다는 표현은 신분 정체성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침례 라는 단어가 있는데 신분이 바뀌었음을 드러내는 표현 입니다.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분 소속이 바뀐자 세상속에 매어있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바뀌었다라는 선언입니다. 침례는 소속 자리 위치 신분이 바뀐자가 입는 옷 같은겁니다. "나 아들입니다" 라는 선언 입니다.
26절에 "너희가"라고 시작합니다. 우리의 신분 위치가 바뀌고 우리가 세상에 매임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자유롭게 될때에 그렇게 영원한 가치가 주어졌을때에 우리는 개인적 으로 홀로 위치와 신분이 그리고 세상 아래에서 하나님의 가치로 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와 침례 는 우리가 세상에 매임에서는 홀로살아가는 내가 주인 이고 내가 결정하는 삶아래 매어 있었으나 지금은 공동체 즉 교회로 함께 나아간다는 겁니다. 침례는 교회앞에서 선언하는 겁니다. "나도 그은혜와 사랑으로 신분이 바뀌어 함께 나아갑니다" 입니다. 교회로써 함께 하게되는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공동체 교회안에서도 초등교사적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가 계급 성취 성공 비전 세상에서 영향력(세력) 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스스로이루려 하는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에 만족 교회에 세속화 교회의 성장속에 욕심과 이기심이 초등교사적 역할을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이 교회들에 잘못을 내버려 두시는 것은 교회들에게 스스로 고백하며 교회의 성장 부흥 세력 전통 아래에 매인 우리에게 "더있다. 내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영원한것 나의것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교회안에서도 세상과 다를 것 없이 여전히 계급이 생깁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열심과 성과가 기준이 됩니다. 이렇게 초등교사가 작동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불완전한 공동체를 만드시고 부르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완전함을 불완전한 교회들에게 담아내려 하시려는 겁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로 깨닫게 하십니다.
[결론] 유업을 이을 자로 살아가십시오
[결론] 유업을 이을 자로 살아가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에게 물어보면 장래희망이 늘 비슷합니다. 대통령, 판사, 변호사. 그 아이들이 틀린 게 아닙니다. 다만 아직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초등학문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해 있을 때는 잘 사는 것, 성공하는 것, 버티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 자리에서 부르셔서 “너희는 그 이상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단지 잘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들이다.
또한 초등학생이 대통령, 판사, 변호사를 꿈꿀 때 그 아이에게는 늘 보호자가 있습니다. 아이의 꿈이 작다고 해서 보호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초등교사 아래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전부인 줄 알던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보호 아래 두셨습니다. 그러나 보호는 목적이 아닙니다. 보호는 때가 이를 때까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아이로 두시려는 분이 아니라, 유업을 이을 자로 부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구원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은 유업까지입니다. 초등학문 아래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이제 천국 가니 끝이다” 하고 다시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초등교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이로 남겨 두시려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유업을 이을 아들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초등교사 아래서 불러내셔서, 더 넓은 세계, 더 큰 약속, 유업을 살아내는 자리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