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을 자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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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2장 37-42절
주제: 말씀의 찔림을 거부하지 않고 회개로 반응하여, 빛 되신 주님과 연합하는 자가 진짜 복 있는 자다.
서론: 빛이 들어올 때 어둠은 아파한다
서론: 빛이 들어올 때 어둠은 아파한다
우리는 보통 '복(Blessing)'을 생각할 때, 위로받고 인정받고 채워지는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말하는 복의 시작은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큰 찔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찔림'은 마치 예리한 송곳으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 같고, 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이었습니다. 왜 말씀이 우리를 아프게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빛'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한복음 3:19–20)
캄캄한 방에 갑자기 강렬한 빛이 들어오면 눈이 부셔 찡그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빛 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내면의 어둠을 비추면,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죄와 자아가 드러나기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오늘 이 찔림의 고통을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진짜 복'으로 바꿀 수 있는지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찔림을 '의사의 진단'으로 받아들이는 자 (37절)
1. 찔림을 '의사의 진단'으로 받아들이는 자 (37절)
첫 번째로, 복을 받을 자는 '아픈 찔림을 예수님의 초청으로 듣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3천 명은 찔림을 받았을 때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똑같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음에도, 이를 갈며 돌을 들어 설교자를 죽였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공격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청년이 말씀의 지적을 비난이나 정죄로 듣습니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라며 방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1-32)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자신을 '괜찮은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뼛속까지 죄인인 존재들입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우리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앉으셔야 할 마음의 보좌에 '나 자신'이라는 우상을 앉혀 놓고, 돈과 명예, 내 안락한 삶만을 위해 달려갑니다. 우리가 탐욕스럽게 "내 것, 내 영광"을 외치며 왕 노릇 하려 할 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에서 종처럼 발가벗겨지셨습니다. 우리의 교만이 하늘을 찌를 때, 예수님은 그 교만의 대가로 십자가라는 처형대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명령,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피곤하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이유로 생명 같은 예배를 헌신짝처럼 버리지 않았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귀찮아하며 등을 돌릴 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받으며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의 불성실함이, 우리의 게으름이 예수님을 그 처절한 고독 속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 앞에 떳떳하십니까? 겉으로는 효도하는 척하지만, 뒤돌아서서 부모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짜증 내고,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부모와 권위자에게 내뱉은 그 독 섞인 말들이, 가시관이 되어 예수님의 머리를 찔렀습니다. 우리의 거역하는 눈빛이 예수님의 이마에서 피를 쏟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살인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마음속으로 수십 번 난도질하고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 용서하지 못하는 그 악독한 마음이 예수님의 손바닥과 발등에 굵은 대못을 박았습니다.여러분이 누군가를 미워하며 주먹을 불끈 쥘 때마다, 골고다 언덕에는 '캉, 캉' 하는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 못은 로마 병정이 박은 것이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의 '미움'이 박은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또 어떻습니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으니 죄가 아닙니까? 주님은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우리의 눈과 생각은 얼마나 더럽고 음란합니까? "아무도 모르겠지" 하며 즐겼던 그 추악한 상상들이 예수님의 거룩한 몸을 발가벗겼습니다. 우리의 더러운 쾌락을 씻기 위해, 주님은 살점이 뜯겨나가는 채찍질을 견디셔야 했고 옆구리에 창을 맞으셨습니다.
우리는 탐욕스러운 도둑들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고요?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교묘한 말로 이웃을 깎아내려 그들의 평판을 도둑질하고,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정죄하고 험담하는 입술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십시오. 우리가 죄를 짓고 있는 그 순간에도, 십자가 위에서 피를 토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우리는 이웃을 죽이는 말을 내뱉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는 우리를 위해 용서를 비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찢긴 살과 흐르는 피를 보십시오. 그 상처 하나하나가 바로 내가 지은 죄의 증거입니다. 내가 뱉은 거짓말이, 내가 품은 음란함이, 나의 교만과 혈기가 예수님을 저토록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내 죄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 뼈저린 찔림과 통회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말씀에 찔려 아프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고칠 의사다"라고 찾아오신 신호입니다. 찔림은 공격이 아니라, 내 영혼이 병들었음을 알려주는 정확한 진단입니다. 복 받을 사람은 찔림을 느낄 때, 설교자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제가 환자입니다. 저를 고쳐주옵소서"라고 의사이신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이 찔림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 복의 시작입니다.
2. 회개하여 예수님과 '방향'을 맞추는 자 (38절)
2. 회개하여 예수님과 '방향'을 맞추는 자 (38절)
두 번째로, 복을 받을 자는 ‘회개하여 삶의 방향을 예수님께로 돌리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가장 먼저 외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15)
여기서 회개는 단순히 눈물 흘리며 후회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 되어 걸어가던 길에서 멈춰 서서, 예수님이 가신 길로 방향을 완전히 트는 것(U-turn)입니다. 도덕적인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 없이 내 계획대로 살았던 '불신앙의 죄'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나는 이제 예수님과 죽고 예수님과 산다"는 공개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유행을 따르던 발걸음을 멈추고, 십자가의 길로 방향을 트는 결단, 그 구체적인 '돌이킴'이 있는 자에게 성령이 선물로 임하십니다.
3.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머무는 자 (42절)
3.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머무는 자 (42절)
마지막으로, 복을 받을 자는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회개하고 세례 받은 3천 명의 청년들은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왜 굳이 모여야 할까요? 혼자서 유튜브로 설교 듣고 은혜 받으면 안 될까요?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20)
예수님은 마지막 밤, 제자들과 함께 떡을 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 떡을 뗀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고 서로를 한 몸으로 확인하는 거룩한 예식이었습니다.
빛이 들어와 내 죄가 드러나고, 회개하여 방향을 바꾼 후에는 반드시 이 '거룩한 사귐'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왜 구원받은 이후에 꼭 공동체가 필요할까요? 혼자서는 결코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기도로 지켜주고, 말씀을 나누는 그 자리에 예수님이 강력하게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실화 예화: 칠레 광부 구조 사건]
지난 2010년, 전 세계를 감동시킨 '칠레 광부 구조 사건'이 있었습니다. The 33이라는 이름의 제목으로 영화로도 제작되었었습니다. 때는 2010년 8월 6일, 산호세 광산이 무너지면서 광부 33명이 지하 700m 아래, 캄캄한 갱도에 갇혔습니다. 그들이 가진 식량이라곤 48시간분밖에 없었고, 구조될 기약은 없었습니다. 그 좁고 어두운 곳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려 69일을 버텨내고 전원 구조되었습니다. 그 기적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공동체'였습니다.
작업반장이었던 우르수아의 지도와 리더십 아래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적은 양의 참치와 우유를 똑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했습니다. 그 캄캄한 지하 막장에서 그들이 붙잡은 것은 서로의 손이었고, 함께 부르짖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나중에 구조된 광부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33명이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34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때로는 무너진 갱도처럼 캄캄하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두려움에 잡아먹히고, 영적인 굶주림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라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칠레 광부들이 서로 떡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버텼던 것처럼, 우리도 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떡을 떼며, 기도로 서로를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그 '함께함' 속에 예수님이 임재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결론 및 적용: 복을 받을 자는 찔림을 은혜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결론 및 적용: 복을 받을 자는 찔림을 은혜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진짜 복'이 무엇인지 확인했습니다.
말씀이 아프게 찌를 때, 빛이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음을 믿고 도망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한 수술의 시작입니다.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외침에 반응하여, 세상의 방식에서 예수님의 길로 방향을 돌리십시오.
나 홀로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이 약속하신 '두세 사람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서로 떡을 떼고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듣고 찔림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이자, 복 중의 큰 복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앞에 정직하게 반응합시다. "주님, 말씀이 나를 찌를 때 내가 주님께로 돌이킵니다." 이 고백을 통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고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복된 청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내 죄가 보여 아프고 찔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도망치거나 거부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 찔림을 통해 내 죄를 회개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나의 비참함을 십자가의 은혜로 덮어주시고, 이제는 죄 사함 받은 기쁨을 우리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며 누리는 복된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여! 한번 크게 부르고 기도합시다! 주여!
결단 찬양 - 복의 근원 강림하사
마무리 기도문
“사랑의 주님. 오늘 주신 말씀이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찌를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고치시기 위해 찾아오신 의사 예수님의 손길임을 깨닫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친 자들처럼 말씀을 거부하지 않게 하시고, 빛 되신 주님 앞에 내 안의 어둠을 솔직히 드러내며 회개하게 하옵소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 삶의 방향을 돌이킵니다. 이제 나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세우신 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 떡을 떼며 기도할 때, 우리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참된 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