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의 심은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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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 NKRV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의 영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시편은 책의 제목 그대로 시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시라는게 그 안에 영혼의 감정과 생각들이 굉장히 함축되어 있지 않습니까? 시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은 다양한 저자들의 생각과 감정이 하나님께로 토로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정말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데요. 그래서 존 칼빈은 시편을 영혼의 거울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시편은 영혼의 모든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읽게 되면 우리 영혼에 대해서 잘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이 고백하는 대상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시편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배할 때 불리는 찬양으로 많이 쓰여졌습니다. 각각의 시들은 우리가 오늘 날 부르고 있는 찬양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렇게 사용되었습니다.
시편은 참 다양한 사람들이 썼습니다. 그리고 시편중에 50편의 분량 3분의 1이 저자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밝혀지지 않은 것을 빼고 저자가 확실한 것만 추려도 10명 이상의 저자가 있습니다. 그중에 시편에서 가장 많은 시는 장의 제목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다윗입니다. 무려 70편이 넘는, 시편의 절반정도를 다윗이 썼습니다. 특별히 시편 1편부터 41편까지 1,2,10,33편을 제외하고는 다 다윗이 썼다고 머리말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머리말에는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들이 다윗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은 2편은 하나의 세트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시편 1편이 다윗이 썼다라는 3개의 근거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탈무드에서는 시편1,2편 두편을 다윗이 썼다고 기록하고 있구요. 두번째는 시편의 구조입니다. 시편 1편의 시작은 복 있는 사람은 이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편 2편의 끝은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복 이라는 단어로 시작과 끝을 탄탄하게 잡아주며 맥의 흐름을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그리고 세번째는 성경이 근거가 됩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입니다.
사도행전 13:33 NKRV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사도행전 13:33에서 시편 둘째 편이라고 즉 시편 2편이라고 나와있는데요. 이 시편2편에 저자가 다윗임을 그래서 1,2편이 원래는 합쳐져 있었다는 근거로 보구요.
또 시편2편을 그대로 인용한 성경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4:25 NKRV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시편2편1절입니다.
시편 2:1 NKRV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한글로 보면 다른데 원어로 보면 토시하나 다르지 않고 완전 똑같습니다. 근데 사도행전에서 이 똑같은 부분을 두고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시편2편은 다윗이 기록한게 확실하고, 또 시편 1-2편이 한 세트라고 봤을 때 다윗이 시편 1편의 저자라고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1편은 시편의 문을 여는 시편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은 포문을 열면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시편은 150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 방대한 분량이 흩어지지 않고 한 방향으로 잘 흘러갈 수 있게끔. 시편 1편은 150편의 방대한 분량이 가야할 옳은 방향과 선한 길을 가리킵니다.
먼저 다윗은 복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줍니다. 여기서 복은요. 아쉬레 라고 하는데요. 똑바로 걷다. 복은 무언가를 얻고 가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방향에 따라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라는 두 가지 선명한 선택지가 나뉘어집니다. 그리고 성경은 복 있는 자 즉 의인과 악인을 비교합니다. 먼저 악인의 길입니다.
꾀(생각) - 길에 서다(멈추다) - 앉음(죄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
이것은 죄의 영향력이 어떻게 커지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생각하고, 멈추고, 죄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죠.
생각, 행동, 태도
제가 초등학교 때 주일마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교회에서 직분을 맡으셔서 일찍이 나가시고 저는 시간맞춰서 혼자 교회를 나갔습니다.
(혼자 교회를 가는 길에는 유혹거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큰 유혹이 두가지가 있었는데요. 먼저 첫번째는 디즈니 만화. 지금이야 디즈니를 OTT로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그 때는 비디오로 녹화하지 않으면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근데 항상 주일학교 예배가 딱 디즈니 만화하는 시간이랑 걸쳤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슈퍼마켓 앞에 오락기)
죄의 발전 과정을 보여줍니다.
반면 의인의 길은 이런 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죄를 즐거워하지 않고 무엇으로 즐거워합니까?
오직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의인의 길,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율법을 그냥 읽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을 읽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요. 의무나 책임감에 의해서 이 말씀을 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 또 이것을 밤낮으로 곱씹고 곱씹고 묵상하는 사람. 바로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묵상은 히브리어 하가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소리내어 읽으면서 중얼중얼거리면서 읽어서 온 몸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가를 이사야 31장4절에서는 젊은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하가라고 합니다. 아무도 못뺏어가 악인이 이 말씀을 뺏들어가려고 하면요. 으르렁 거리면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게 내 생명을 살리는거에요. 여러분 밥 매일 드시죠? 어제 밥 많이 먹었다고 오늘 밥을 안먹는 미련한 사람은 없죠.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어제 많이 읽었다고 오늘 안읽으면요. 말씀이 아니라 악한 소리가 나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서서히 생각, 행동, 태도가 세상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무엇에 영향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 말씀이 오늘 우리를 살게 합니다. 오늘 다이어트를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처럼 오늘 읽을 말씀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의인과 악인의 대조
의인 - 시냇가에 심은 나무
뿌리가 깊고 안정적임, 생명 공급이 지속됨,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음, 형통
악인 - 바람에 나는 겨
가볍고 뿌리가 없음, 근본이 없음, 실체가 불안정함,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의인의 그룹안에 들어가지 못함, 심판
시편 1편이 가리키고 있는 우리의 영혼 향해야 할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곁입니다. 우리 영혼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이유는 생명수가 넘치는 시냇가 옆에 있기에 가능합니다. 나무인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오직 생명되신 하나님 옆에 꼭 붙어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6절에서는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인정은 단순히 오케이 맞았어, 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의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 히브리어로 야다라고 하는데요. 야다는 알다라는 뜻인데. 남녀 간의 사랑하여 동침을 할 때도 야다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야다한다는 것은 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반면 악인의 길은 스스로 멸망의 길로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이 멸하시는 것이라기보다, 생명의 근원인 시냇가를 떠났기에 스스로 멀어진 결과인 셈입니다.
시편 1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성도님들의 복의 뿌리는 지금 어디에 닿아있습니까?
* 한 목사님 이야기 - 개인의 질병으로 인해 강원도에 있는 요양소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요양소는 입소해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거기에 명상에 대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명상은 어떻게 하는건가 궁금해서 가봤답니다. 거기에는 명상에 대해 강의하는 강사와 남자 청년 한 명과 여자청년 한 명, 그리고 중년 여성이 한 명 앉아있었답니다. 그리고 강사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언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낍니까?
남자 청년 : 일이 잘풀릴 때 여자 청년 : 맛있는것을 먹을 때
중년 여자 : 공기 좋은 산을 등산할 때
목사님 : 인생에 절대적인 의미를 느낄 때
현재인의 삶은 몇십년 전에 살던 삶과 너무 다릅니다. 하루종일을 걸어도 닿을 수 없던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매일 출퇴근을 합니다. 요즘은 프로그램이 발달해서 예전에 수십명이 처리하던 일을 혼자서 넉넉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이 무한경쟁사회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쌓아야 할 스펙은 끝이 없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눈코뜰새 없이 달려야 하는 삶의 소용돌이가 나의 행복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있어서 행복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던지면 답을 못하거나 행복이 전혀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답합니다.
젊은 남자 청년은 일이 잘 풀릴 때 행복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보니까 어떻습니까? 일이 잘 풀릴때가 많습니까? 일이 잘풀리지 않을때가 많습니까?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고 하면 인생은 일이 풀리지 않는 끝없는 여정입니다. 그 남자 청년이 일이 잘 풀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 청년은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것입니다. 여성 청년은 맛있는 것을 먹으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경제적인 여력이 없어지면 어떡하죠? 아니 돈은 있는데 맛있는것이 옆에 있는데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병원에 가보세요. 우리 영은이 요양병원에 계시는 분들중에 정말 맛있는 것만 매 끼니 드시는 분이 계시던가요? 돈이 통장에 쌓여있어도 한 숟갈 한 젓가락도 못먹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만약에 이 여성청년이 이런 형편을 맞이한다면 불행하게 살 것입니다. 중년 부인은 공기 좋은 산을 등산할때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닫고 지내는 날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공기가 깨끗한 산을 등산해야 행복한 여자가 미세먼지로 뿌연 일주일을 창문을 닫고 지내야한다면 우울해지겠죠. 병들면 어떻게 합니까? 아니 병들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쇠약해집니다. 나이가 들면 병들지 않아도 등산 더이상 못합니다. 중년 여성이 나아기 들어서 등산을 못하는 때가 될 때 불행해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 있다가 내일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물질적인 것, 상황적인 것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오늘 시편 기자가 행복에 대해 말합니다. 시편 기자는 행복은 오직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이 맞닿아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시편의 기자가 다윗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말씀을 드렸었죠. 다윗의 예를 한 번 들어봅시다. 시편 1편보다 훨씬 인기가 좋은 시편 본문이 있습니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도 아는 시편. 바로 23편입니다.
시편 23:1–4 NKRV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의 상황은 음침한 골짜기를 거니는 어두운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두고 성경학자들은 두 가지의 상황일거라 추측합니다. 하나는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 혹은 사울에게 쫓길 때 상황입니다. 이러나 저러나 도망자의 신세로서 광야에서 뭐 하나 의지할 것 없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맞닿아 있던 곳은 바로 하나님의 시냇가였습니다. 다윗은 환경이 좋아서 부족함 없다.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한다.라고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비참한 상황과 환경이었지만 우리 영혼의 진정한 복의 근원 되시며 생명의 원천인 시냇가인 그분께 우리의 영혼이 맞닿았던 다윗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행복이 아니라 우리의 조건과 환경과 관계없이 영원한 행복의 요소이신 하나님과 맞닿는 인생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악인들의 삶을 쫒지 마십시오. 말씀을 쫓으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즐거워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주야로 하가 하십시오. 말씀을 계속해서 읊조리고 중얼거리며 다른 것에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사자처럼 으르렁 거리며 말씀으로 생각을 지키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인생, 야다 하시는 인생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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