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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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기쁨
제목: 하나님의 기쁨
본문: 이사야 58장 1-12절
본문: 이사야 58장 1-12절
찬송: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찬송: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빛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하는 주현절 후 다섯째 주일입니다. 어둠을 뚫고 이 땅에 참된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의 심령과 가정 위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정성껏 예배를 드리고, 때로는 간절한 마음으로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는데, 왜 내 삶은 그대로입니까?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까?" 이 질문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음이기도 했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 따지듯 묻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들의 뜨거운 열심을 외면하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로 미소 지으시는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인생이 어떻게 하면 가문 날에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물 댄 동산'이 될 수 있는지 그 은혜를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비워 '우리'를 채우는 나눔
나를 비워 '우리'를 채우는 나눔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한두 끼 밥을 굶는 형식적인 금식보다, 내 안에 가득 찬 욕심과 고집을 굶기는 '진정한 금식'을 원하십니다. 본문 6절과 7절은 이를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고,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삶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단어는 7절에 나오는 '나누어 주며'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파로스'($פָרֹ֤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단순히 여유가 있을 때 남는 것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빵을 반으로 쪼개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의 "콩 한 쪽이라도 나누어 먹는다"는 정신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파로스'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먹을 떡 한 덩이를 쪼개어, 내 곁에서 고통받는 이와 함께 나누는 그 애틋한 마음이 참된 경건의 시작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가 바로 이 파로스의 정신을 실천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온 세상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안디옥 교회 성도들 또한 결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든 흉년의 때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각각 그 힘대로"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더 부자가 되면 돕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흉년의 한복판이었지만, 그들은 지금 당장 자신들이 가진 것 안에서 빵을 쪼개어 나누기로 결단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내 형편이 좀 나아지면' 누군가를 돕겠다고 생각하며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지금 당장 우리가 쥐고 있는 그 작은 빵 조각을 쪼개라고 요청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차고 넘쳐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 저도 지금 당장 쓸 것이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손을 펴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내 안의 결핍에 대한 불안함을 굶기고 이웃의 아픔에 시선을 돌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금식입니다.
성도 여러분, 거창한 일을 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혀의 욕심을 굶기는 '말의 금식', 내 걱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아픈 교우의 이름을 불러보는 '중보의 금식'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를 비워 그 빈자리에 이웃의 눈물을 채울 때, 비로소 우리의 메마른 영혼에 하나님의 기쁨이 솟구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나눔은 우리의 것을 빼앗기는 희생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통로가 됩니다.
서운함을 '물'에 새기는 화해의 용기
서운함을 '물'에 새기는 화해의 용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또 다른 길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박힌 서운함의 멍에를 과감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본문 9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손가락질’($שְׁלַ֥)은 내 안에 쌓인 서운함과 미움이 독한 비난과 정죄가 되어 상대방을 찌르는 칼날이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서운함은 물에 새겨야 한다"는 지혜의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맞는 말이지만, 우리의 연약한 실상은 늘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은혜는 흐르는 물에 새겨 금세 잊어버리고, 누군가에게 받은 서운함과 섭섭한 말 한마디는 심장 속 깊은 돌판에 새겨두고 평생을 되새깁니다. 이 앙금 같은 서운함은 결국 우리 영혼을 메마르게 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됩니다.
멕시코의 '아야파네코'라는 언어에 관한 실화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 언어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단 두 명의 어르신만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소중한 유산인 이 언어가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이 언어가 소멸될 위기에 처한 데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두 분이 아주 사소하고 오래된 서운함 때문에 서로 등을 돌리고 수십 년 동안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섭섭함이 한 민족의 역사와 언어를 통째로 소멸시킬 뻔한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혹은 오랫동안 함께 신앙생활 해온 교우 사이에 서운함을 돌에 새겨두고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통해, 우리 교회를 통해 세상에 들려주길 원하셨던 '사랑의 언어'와 '축복의 통로'가 막혀버립니다. 나의 작은 서운함이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것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이해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이 깊은 서운함을 씻어낼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되고 더 나은 금식자'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제자들의 배신과 사람들의 조롱이라는 말할 수 없는 서운함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서운함을 보혈로 깨끗이 씻어내시고, 우리를 향한 사랑만을 주님의 생명 위에 새기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고 공동체의 소중한 허리라면, 주님을 본받아 먼저 손 내미는 화해의 용기를 내야 합니다. 서운함을 굶기고 예수님의 긍휼을 채우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무너진 관계를 복원하는 가장 위대한 금식입니다.
무너진 밭둑을 고치고 물길을 내는 축복
무너진 밭둑을 고치고 물길을 내는 축복
우리가 그렇게 사랑의 물길을 낼 때 하나님은 놀라운 회복의 복을 약속하십니다. 본문 11절과 12절은 참으로 아름다운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나눔과 화해를 실천할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우리를 "물 댄 동산) 같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12절의 말씀은 우리가 평생 흙과 더불어 살며 해오신 소중한 일과 똑같기에 더욱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성도 여러분, 이 '보수하는 자'라는 표현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친근하게 다가옵니까? 장마철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면 논밭의 둑이 허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정성껏 키운 곡식이 다 쓸려 내려가고 말 것인데, 그때 우리는 진흙을 나르고 돌을 쌓아 그 둑을 다시 견고하게 만듭니다. 바로 밭둑을 고치는 농부의 그 간절한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끝이 아니라, 화해의 손길은 더 큰 복으로 이어집니다. 가뭄이 들면 우리는 막힌 보를 틔우고 물길을 냅니다. 아무리 내 논에 물을 대고 싶어도 물길이 막혀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내 고집을 꺾고 이웃의 아픔을 돌보며, 서운함을 먼저 풀어주는 일은 바로 우리 공동체라는 논밭에 막힌 물길을 트는 작업입니다. "나는 죽어도 저 사람하고는 말 안 해" 하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은 은혜의 물길을 큰 돌덩이로 꽉 막아버리는 일 입니다. 그러면 내 논도 마르고, 우리 마을도 마르고, 교회 공동체 전체가 가뭄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며 화해의 삽을 들어 막힌 곳을 뚫어내면, 하나님의 은혜가 콸콸 쏟아져 들어와 우리 모두를 시원케 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내 무너진 밭둑을 고친 참된 일꾼이다"라고 흐뭇하게 웃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물길을 내며 한 걸음 다가갈 때, 우리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내가 여기 있다"라고 응답하시겠다고 9절에서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웃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며 곁에 서줄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생의 가장 고단한 현장에 나타나셔서 "내가 여기 있다, 내가 너희의 뼈를 견고하게 하리라"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낸 작은 물길 하나가 우리의 영혼을 시들지 않는 '물 댄 동산'으로 만드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화려한 종교적 형식을 갖추었느냐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의 그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입은 사람답게, 곁에 있는 이에게 콩 한 쪽 나누어 주듯 작은 마음을 쪼개고, 마음속에 새겨진 서운함은 주님의 보혈에 씻어 흘려보내며, 허물어진 관계의 밭둑을 다시 쌓는 그 소박한 순종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마음의 논밭을 한번 정성껏 둘러봅시다. 서운함으로 꽉 막힌 물길은 없는지, 욕심과 고집으로 터져나간 밭둑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그리고 빛으로 오신 주님의 손을 잡고 그곳을 하나씩 고쳐 나갑시다. 내가 먼저 웃어주고,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고, 먼저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소멸해가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저와 여러분의 삶은 가문 날에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고, 항상 푸르른 '물 댄 동산'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의 따뜻한 은혜가, 무너진 데를 보수하며 생명의 물길을 내는 우리 모든 중앙교회 성도님의 걸음 위에 이번 한 주간도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현절의 밝은 빛 가운데 우리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나 중심의 신앙에 가득 차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밥을 굶는 금식보다 내 안의 욕심과 서운함을 굶기는 참된 금식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의 돌판에 새겨진 섭섭함의 글자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내어 주시고, 막혔던 사랑의 물길을 다시 틔우는 화해의 일꾼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이 가문 날에도 영혼이 만족함을 얻는 '물 댄 동산'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기도
헌금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주님의 복된 산상으로 불러 모아 주시고,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복된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의 밭둑을 점검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복을 얻으려던 교만을 버리고, 이미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을 쪼개어 생명의 떡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며 이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주님,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먼저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 헌금자 이름] 성도님을 축복해 주옵소서. 이들이 자신의 지혜와 노력을 자랑하기보다, 삶의 모든 갈피마다 찍힌 '하늘의 결재 도장'을 기억하며 구별하여 드렸사오니, 하늘 창고의 신령한 복을 이들의 삶에 부어주옵소서. 생업의 모든 현장에서 "너는 내 것이라" 인정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이사야 58장의 약속처럼 가문 날에도 뼈를 견고케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또한 감사헌금을 드린 [감사헌금자 이름] 성도님의 마음을 받아주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비록 세상의 눈으로는 비어있는 것 같고 서운한 상황일지라도, 그 '프토코스'의 가난함 속에 주님의 위로가 머물고 있음을 고백하며 드리는 예물입니다. 이들의 감사가 마중물이 되어 일상의 시린 순간마다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경험하게 하시고, 서운함은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며 찬송하는 성숙한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선교헌금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동참한 [선교헌금자 이름] 성도님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들이 드린 정성이 쪼개어 나눈 빵 한 조각이 되어 땅끝까지 '화평의 언어'를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복음의 온기가 필요한 어두운 땅마다 하나님 나라의 물길이 터지게 하시고, 선교사님들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오늘 우리 삶을 뚫고 들어오는 산 소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주님의 은혜 가운데 새롭게 믿음의 가정을 꾸린 최석남 집사님, 노길신 장로님의 장년 최미선 양의 가정을 축복합니다. 두 사람이 하나 되어 세운 이 가정이 서로를 향한 '파로스'의 사랑이 넘치게 하시고, 어떠한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사랑의 밭둑을 쌓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물 댄 동산'과 같은 명문 가문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9일과 10일에 있을 중고등부 현장학습을 주님 손에 의탁합니다. 오가는 길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이번 현장학습을 통해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이 꿈과 비전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품 안의 어린 자녀들로부터 장성하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자녀들까지,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셔서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이 시대의 거룩한 일꾼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정헌금, 구역헌금, 성미,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모든 봉사자를 축복합니다. 이들의 수고가 공동체의 찢긴 틈을 메우는 '하나님의 바느질'이 되게 하시며,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미 하나 된 복을 누리는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