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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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전형상화(말씀 이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목마른 자를 만나주시는 예수님 이야기 입니다. 마태복음 5:3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영적 갈급함의 원인을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고갈된다. 하나님과 파이프라인이 끓어진 인간의 숙명이다.
15절까지 대화를 잘 푸시다가 16절 갑자기 예수님은 여인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말하고 예수님이 여인의 말을 인정해 주면서 여섯 명의 남편을 언급 합니다. 여인은 놀라면서도 예수님에게 예배의 처소문제를 물어 봅니다. 예수님은 왜 여인의 치부를 물어 보셨을까요? 그것은 여인에게 수치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수치에서 회복시키고 온전하게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여인은 갈급함의 원인을 남편에게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찾고 찾다가 6번째 남편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주님은 그 갈급함의 원인이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여인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인은 감정이 상한 것인지 예배의 처소 문제라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난제이자 다툼의 근원적 질문을 던집니다. 20절의 질문이 그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 혹은 에발)에서 예배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맞나요? 이런 질문입니다. 싸우자는 질문이지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왜 원수가 되었는지 역사적인 내용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솔로몬의 사후 이스라엘이 두개로 나뉘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리 되었는데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기원전722년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기원전 586년에 망하게 됩니다. 이후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이방인과 혼혈이 되어 순수성을 잃어 버립니다.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후 페르시아왕 고레스 칙령에 따라 70년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바벨론 유수의 약 10%의 인력만 귀향으로 하고 그 백성을 인도한 사람이 에스라와 느헤미아 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마리아에 있던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정착을 방해하고 성전을 짓는 과정에 동참을 요구했으나 거절을 당하여 세겜 땅에 자신들의 성전을 짓고 서로 경원시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주전 128년 유대 왕 ‘요한 히르카누스’가 사마리아의 성전을 파괴하는 일이 있고, 기원후 6-9년 유월절에 사마리아 인이 예루살렘에 몰래 와서 성전에 죽은 사람의 뼈를 뿌려놓는 일이 있었으니 그 관계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사실 예배의 처소를 놓고 싸우는 것은 종교적인 접근 태도입니다. 사마리아인도 유대인도 모두 예배의 처소를 두고 서로의 종교적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주님이 예상 못한 답변을 하십니다.
21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이 말씀에서 먼저 주님은 여인에게 믿으라! 고 하십니다. 우리는 논리에 근거한 사실을 증명하면 믿겠다고 하지만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세상 지식과 과학이라면 그런 방법론이 유효하기도 하겠습니다만 근원에 대한 질문은 논리로는 설명 안되는 진리인 것입니다. 믿음은 논리에 근거한 사실 인식에 기반하지 않고 권위에 근거한 인식을 기반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어떤 예배 처소가 맞느냐는 질문을 해체 하시고 예배에 처소에 관심을 두는 종교적인 물음에 예배의 대상으로 관심을 전환하는 관계적 신앙적 접근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에 나왔다 예배 드리고 가면서 하나님을 만나지도 않고 돌아가는 많은 선데이 크리스찬을 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예배의 처소 그 공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오늘 말씀 하셨듯이 예배의 대상 되신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면서 잘못된 지식도 바로 잡아 줍니다. 22절, 사마리아인들이 알지도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데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는 것이다. 아는 것을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배는 예배의 대상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예배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선포하십니다. 23-24절 함께 읽겠습니다.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예배하다’ 는 누군가에 입을 맞추거나 존경을 표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행위라고 합니다. 23절 이때는 헬라어 ‘눈’ 입니다. 지금이라는 뜻입니다. 여인의 앞에는 성전의 원형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여기서 영은 헬라어 ‘퓨네우마티’ (퓨뉴마 원형)로 성령 혹은 우리의 영을 말합니다. 진리는 헬라어 ‘알레테이아’ 로서 참, 사실, 진리입니다. 이것은 진리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도 하며 우리 마음 중심의 진실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1:16~17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예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신 것 같지만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죠! 그러면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고 선행을 배우고 약한자를 돕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약과 신약의 예배는 실천적인 삶을 중요시 합니다.
이제 사마리아 여인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예수님의 새로운 말씀을 듣고나서 이제 자신의 깊은 곳에 감추인 열망을 드러냅니다. 25절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놀랍게도 이 여인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자신의 부끄럽고 상처받은 인생이 변화되고 왜 이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인지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소망했습니다.
4장 7절부터 시작된 예수님과의 대화속에 겉돌던 질문을 깨고 이제 진짜 질문을 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이 여인을 만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25절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주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바랬던 한 여인! 인생의 성공과 안정과 남편 같은 것으로 채워질 수 없는 그 깊은 목마름을 채워 주실 분을 바라고 소망하는 한 여인,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한 여인을 예수님은 만나셨고 오늘도 우리를 만나주시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사도는 권면합니다. 여인에게 드디어 제대로 된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26절의 정답을 말씀해 주십니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주님은 신적인 본질을 드러내십니다. ‘에고 에이미’ 내가 네가 찾는 그 존재이다’ 말씀 하십니다.
‘에고 에이미’ 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에 8번 나옵니다. 생명의 떡(6:35), 세상의 빛(8:12), 양의 문(10:7,9), 선한 목자(10:11,14), 부활이요 생명(11:25), 길, 진리, 생명(14:6), 포도나무(15:1) 이렇게 술부와 함께 나오고 오늘 본문 4:26에 독립적으로 나옵니다. 이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말씀 하셨듯이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마음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자를 만나주시고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입니다. 모세를 만나주시듯,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시듯, 오늘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삶이 바뀌고 가치가 전도됩니다. 이전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더 중요한 것으로 인하여 뒤로 미루어 집니다.
재형상화( 적용)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와4장의 사마리아 여인은 매우 독특 합니다. 니고데모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이고 사마리아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위와 신분과 관계없이 영적인 목마름속에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이 세상 길은 어떤 선택이던지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 예수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기쁨과 생명을 얻습니다.더이상 갈증으로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삶이 변화되고 가치가 전도됩니다. 이전에 소중했던 성공과 물질의 부, 명예와 권력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여러분! 하나님 한분만으로 충분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더 이상 믿음으로 성장하지도, 주님께 질문하지도 않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아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주신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계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정직하게 자신의 영적인 상황을 바라봤고 주님 앞에 나아 왔습니다.니고데모도 정직함으로 주님 앞에 영생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난 성경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주님 앞에 내려놓고 도움을 구했고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고백합시다. 겸손히 그분의 도움을 구하고 무릎을 꿇고 예배합시다. 기도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