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신호 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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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분 등단
정각시작
다같이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찬송가 569장입니다. (아멘)
찬송가 570장입니다. (아멘)
이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기도하실 때, 오늘 하루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와 동행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주님 함께해주옵소서.
다음으로 기도하실 때, 행복한 동행 40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진행되는 모든 과정 가운데, 지치지 않게 하시고 회복을 경험하는 행복한 동행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통하여서 기도를 통하여서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님들이 되도록 주님 함께해주옵소서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 되게 하옵소서. 세상과 구별되는 한국 교회, 거룩하게 살아가는 한국 교회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본질을 붙잡게 하시고,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 가운데, 하늘의 지혜와 성령의 능력을 덧입혀 주옵소서.
1. 오늘 하루의 삶과 거룩함을 위한 기도
1. 오늘 하루의 삶과 거룩함을 위한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새날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모든 발걸음이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걷는 '할라크'의 여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혼란스러운 소음을 내뿜지만,
우리는 오직 목자 되신 주님의 휘파람 소리에만 반응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서 있는 가정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드러내며,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해내는 승리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2. ‘행복한 동행 40일’을 위한 기도
2. ‘행복한 동행 40일’을 위한 기도
"회복의 주님, 우리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행복한 동행 40일'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40일의 시간이 형식적인 행사가 되지 않게 하시고,
메마른 심령마다 성령의 단비가 내리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길을 걷다 지치는 성도들이 없도록 새 힘을 공급하여 주시고,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마다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안의 상처가 치유되고, 주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복구되는 진정한 '행복한 동행'을 맛보게 하옵소서."
3.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
3.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이 나라 이 땅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고,
이 민족이 다시금 복음 앞에 바로 서게 하옵소서.
특히 한국 교회가 외형적인 성장에만 매몰되지 않고,
십자가 복음의 본질을 붙잡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모든 사역자에게 하늘의 지혜를 더하셔서,
타협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대표기도
하나님, 오늘도 새 날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새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합니다.
주님, 우리의 삶을 붙잡아 주셔서,
말씀 위에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 살아가도록 힘주시고 능력 주옵소서.
주님, 이제 주님의 말씀 듣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발견해서 믿음의 반응하는 우리의 삶 되게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나누실 새벽말씀은 스가랴 10장 7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구약 1321쪽에 있습니다.
한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인도자 먼저읽고 청중읽을때 같이읽기)
2026.02.11. 목요새벽설교
제목 : 회복의 신호 휘파람.
본문 : 스가랴 10장 7-12절
서론
1.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2월 12일 목요일 새벽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스가랴 10장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으로 “회복의 신호, 휘파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2. 최근 AI 기술이 많이 발전했습니다. 우리는 AI를 통해서 많은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업무를 AI를 통해 자동화하고, 우리는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AI는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각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고, 복잡한 난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3. 최근에는 AI기술을 활용해서 헤어진 이산가족을 디지털로 복원하여 다시 만나게 해주는 프로젝트가 화재입니다.
통일부는 장기 단절로 인해 재회가 어려워진 이산가족을 위해 ‘이산가족 AI 가상 상봉’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디지털을 통한 만남이지만, 보고 싶었던 얼굴을 다시 보고,
흩어졌던 이들이 다시 모이게 되어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4.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바로 그 일, 흩어져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시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한곳으로 모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본론
5. 그리고 오늘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서 ‘회복의 신호’를 보내십니다. 그 회복의 신호가 오늘 본문 8절에서 나와있습니다.
[8절]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6. 고대 유대 산지는 대부분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골짜기가 많은 지형입니다.
유대 산지 같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곳은 낮은 주파수의 목소리를 쉽게 흡수합니다.
평지에서는 사람의 목소리가 멀리 퍼지지만, 굴곡이 심한 산지에서는 소리가 사방으로 튀어 전달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반면, 특정 지점에서 부는 휘파람은 절벽 면을 타고 반사되어 계곡 전체에 울려 퍼지는 효과를 냅니다.
휘파람은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 중 주파수가 가장 높은 소리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실험에 따르면 인간의 외침은 수백 미터에 그치지만,
잘 훈련된 목자의 휘파람은 험한 산지에서도 1km 이상의 거리까지 선명하게 전달됩니다.
양들은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높고 날카로운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휘파람은 목자가 자기 양을 부를 때 내는 친밀한 신호입니다.
목자가 휘파람을 불면 흩어져있던 양들이 목자 주변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죠.
7. 특별히 오늘 본문 8절에서 하나님께서 휘파람을 부신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휘파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곳으로 부르신다는 뜻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8. 오늘은 하나님의 휘파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휘파람에 담긴 의미 첫 번째는,
휘파람은 오직 목자의 양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와 같습니다.
어떤 영상을 봤는데요.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지 실험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양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을 때, 목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양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아무리 양들을 불러도 양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목자가 양들을 부를 때, 양들은 그때야 식사를 멈추고 목자를 향해서 모였습니다.
양들은 목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목자의 소리에만 반응합니다.
마찬가지로, 고대 유대 목자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휘파람 가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 목자의 양 떼가 한 우물가에 섞여 있어도, 목자가 휘파람을 불면 신기하게도 그 소리를 기억하는 양들만 고개를 들고 목자를 따라갑니다.
8-1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늘 소란스럽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들려오는 전쟁과 테러의 위협, 지구적 재난,
또는 경제적 불안과 개인의 염려 등 세상의 소음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휘파람은 이 모든 소음을 뚫고 우리의 영혼에 박히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이 시끄럽고 혼란스러워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듣고자 하는 백성들에게 확실한 사인으로 들려옵니다.
마치 유대 산지에서 목자의 휘파람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듯,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고 선명하게 들립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무리 소란스럽고 혼란스럽다고 할지라도, 오직 우리의 참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휘파람 소리, 즉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줄 믿습니다.
9. 두 번째로, 하나님의 휘파람은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9절의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으려니와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이 살아서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9-1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진 일차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계는 언약 관계입니다.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지만,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바벨론의 지배를 받은 것은, 수백 년간 누적된 불순종에 대한 결과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흩어짐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였습니다.
9-2 하지만 오늘 본문 9절에서 사용된 ‘흩으려니와(zara)’라는 단어는 zara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농부가 씨앗을 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한 흩어버림을 “씨 뿌림”으로 승화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즉, 심판으로 시작된 흩어짐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열방 가운데 죽이려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기회로 바꾸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흩으심은, 버리심이 아니라, 심으심입니다. 그 심겨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를 연단시키시기 위함입니다.
9-3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감히 성도님들의 상황과 어려움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은 없습니다.
제가 어찌 성도님들의 어려움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타락했기에 심판을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마음은 결국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연단의 과정에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백성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고난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회복을 꿈꾸시는데,
하물며 우리 성도님들의 고난과 어려움을 주님께서 그냥 내버려두겠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의 시간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결국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것에 있는 줄 믿습니다.
9-4 그렇게 긴 연단이 끝나고
하나님은 마치 연단이 끝났다고 OK 싸인을 내리시듯,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휘파람을 부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진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고 기억하기 시작할 때,
그때야 비로소 목자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죠.
그렇기에 하나님의 휘파람은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10. 다음으로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휘파람은 승리의 선언입니다.
11절의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11절]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 갈 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10-1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휘파람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목자가 양 떼를 부를 때 사용하는 신호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셔서 그들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휘파람을 부셔서 그들 모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을 책임지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휘파람을 불어 우리를 부르셨을 때,
우리는 11절의 말씀에 나오는 고난의 바다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면,
더 이상 앞에 놓인 바다라는 장애물은 장벽이 아니라, 갈라져야 할 길일 뿐입니다.
10-2 그러고 보니 11절의 말씀은 출애굽기의 홍해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있고, 옆에는 광야가 펼쳐져 있으며,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라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 눈 앞에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기적을 일어난 보이지 않는 힘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과
모세에게 주신 약속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눈 앞에 놓인 큰 산과 큰 바다는 하나님께서 가르시는 길일 뿐입니다.
10-3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휘파람 안에는 하나님의 승리를 보장하는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 눈앞에 큰 산과 큰 바다가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면 그 장애물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닙니다.
그 길은 갈라져야할 길일 뿐입니다.
11.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오늘도 담대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2절 말씀 읽고 마치겠습니다.
[12절]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2절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에 행하리라는 할라크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과 길을 걷는 것을 의미입니다.
또한 정복자가 자기 땅을 밟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휘파람 소리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주의 백성들은
더 이상 세상의 포로가 아닙니다.
마치 군대가 지휘관의 구령에 맞춰 질서 정연하게 전진하듯,
우리는 오늘도 담대하게 하나님이 왕되심을 선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할라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결론
12.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져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한 곳으로 모으시겠다고 회복의 신호를 보내십니다.
그 회복의 신호는 하나님의 휘파람입니다.
하나님의 휘파람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3. 첫 번째로 휘파람은 오직 목자의 양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에만 귀 기울이는 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4. 두 번째로 휘파람은 회복의 시작입니다.
지금의 고난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흩어짐’이 아니라, 꽃을 피우기 위한 ‘심겨짐’임을 기억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5. 세 번째로 휘파람은 승리의 확신입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할라크)의 발걸음 앞에는 우리를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휘파람 소리에 반응하며,
담대하게 승리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 스가랴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휘파람 소리를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때로 우리의 삶이 고난의 바다 한가운데 흩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꽃 피우기 위해 심으신 은혜의 자리임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세상의 소음이 아무리 커도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의 음성을 선명하게 분별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백성으로서 당당하게 걷게 하시고,
우리 앞에 장애물이 주님이 여시는 길이 되는 기적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승리케 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오늘 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세상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리, 주님의 말씀, 주님의 마음, 주님의 휘파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고난 가운데 있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도록 믿음을 허락해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담대하게 살아가는 오늘 한날 되게 하옵소서.
2. 다음으로 기도하실 때,
가지고 나온 기도의 제목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며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응답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주님,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병마가 떠나가고,
우리의 큰 산과 큰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가지고 나온 기도제목들을 주님 앞에 아뢰이며
주여 세번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