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나님의 속성
일대일동반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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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암송
말씀암송
역대상 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29:12 부와 존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시편 36: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36: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지난주 배운 내용.. 구원의 확신이다.
구원의 확신은 구원의 확실성에서 온다고 이야기 햇다.
나로부터 오는게 아니라 구원을 예정하시고 시작하시고 이루신 그분이 확실하기에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구원의 확신은 확실성..
하나님은 신실하신데 그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이기에 신실하다는 것.. 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뭐냐?? 구원은 신앙의 목표가 아니라 시작이다.
지식을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구원을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으로 사는게 중요하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출발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눔) 구원이 우리의 삶에 가져온 변화가 있나?
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욕망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없게 합니다.”
로마서 7:21–25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내 지체 안에서 하나의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잡아가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변화된것,, 변화 되어야 하는데 너무나 힘든것이 잇다면?
설명) 하나님은 구원을 통해 천국과 영생에 대해 약속해주셨다.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 살고 있다면 이유가 뭘까? 왜 바로 데려가시지 않을까?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라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라고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제자 삼으라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남겨두신 이유는 변화에도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변하지 않는다. 구원을 받을 때 일어나는 변화(신분의 변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위치의) 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두고 변화(체질, 습관, 마음) 하는 것이 있다.
변화를 위해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경건의 훈련..
디모데전서 4:7–8 (NKSV, 새번역.. )
7저속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을 물리치십시오.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십시오.
8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 이후의 과목을 배우는 이유이다.
여러가지 사역들.. 경건의 훈련이다.
우리가 일대일 동반자를 하고 양육자 반을 하는 이유는 뭐냐? 구원의 확신을 가짐으로 시작된 성도의 삶을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해.. 구원은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이기 때문에 구원 이후의 삶을 그리스도인 답게 살기 위해서 훈련받는 것을 기억하라.
이러한 과정은 하나님게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목적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도입) 오늘 함께 나눌 내용은 하나님의 속성.
이 과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게 될 것이고,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축복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될 것이다.
이 과를 배우는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다.
먼저 여러분과 하나님에 대한 베이스를 깔고 가면 좋겠어요.
토성에서 찍은 사진.. 지구에서 별을 본다. 땅에서 하늘을 본다.. 토성이 작은 점에 불과하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토성에 고리가 있는데 토성 고리에 하나의 점이 지구이다.
우리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을 뒤집어서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토성만 봤지.. 토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은 생각지 않았다는 것..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우리가 어떤 위치인지 알 수 있다는 것..
토성 둘레 안에 .. 점인 존재가 지구인데 우리는 지구안에 너무나 작은 점이다.. 아무것도 아닌존재.
거대한 토성에서 지구를 보고 …. 그 지구안에…. 거대한 생태계 중에(산, 바다, 나무.. 벤프)… 나를 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에 멕시코에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70억인구에서 한명이다..
모래밭에서 우리는 모래 한알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다 알 수 있나? 이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모래알갱이 하나가 어떻게 하늘을 이해할 수 있는가? 광대하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
이것을 먼저 인정하는게 하나님의 속성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 (베이스…)
한사람을 사랑해도 그 사람에 대해서 다알지 못한다.
1년은 최소한 겪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하면 또다른 모습이 나오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생기면 또 다른 모습이 생긴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사람도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다 알 수 있을까? 그러나 말씀 속에서.. 계시된 내용을 부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 하나님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드러내어 주신 부분 말씀을 통해 들어내신 것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말씀에서 증거된 하나님을 우리가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이해에 따라서 하나님이 잘 못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모습으로 존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이렇게 말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자이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여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라고 말이다.””
하나님의 속성! 나는 스스로 있는자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 절대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다. 내 이해가 하나님을 좌우 할 수 없지만..
내가 가진 이해는..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것인가? 이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것인가..
오늘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는 이 내용들을 통해서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거 하나님이 이런 분이신데 우리가 뭘 놓치고 있을까?
하나님 이런 분이신데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나는 왜 이것을 내 고집으로 하려고 햇을까?
내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이해를 우리는 이 하나님의 속성을 배우면서 조금씩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시는지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알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은 내 삶을 온전하게 하는데에 하나님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질문 나눔 ) 하나님에 대해 아는대로 설명해봐라..
(어떤 분이신지, 어떤 능력과 성품을 지닌 분으로 알고 있는지?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솔직한 감정이 무엇인지?)
Skip)
설명) 하나님은 상수다..
수학.. 이과를 나왔는데.. 수학은 그렇게 잘 하지 못했음.
수학에 두가지 수가 있다. 변수와 상수이다.
변수는 뭐냐? variable.. 식당에서 메뉴와 같다.. 공식이(메뉴.) 있는데 내가 뭘시키냐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는 것이다. 주문메뉴.. 김치찌개, 순두부, 육개장.. x라는 값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 변수..
상수는? Constant 이다. 한번 정해지면.. 값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식당의 기본반찬같은 것이다.. (파이는 3.14, 일주일은 7일, 하루는 24시간, 1+1=2) 상수나 정해지는 것..
하나님은 뭔가? 상수이다.
하나님은 상수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이해하건 간에 변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건 이건 안 변해 상수잖아요.
근데 변수는 우리죠.
우리는 계속 바뀐다. 따라서 변수인 우리는 상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의 인생은 함수와 같다. 늘 x y z와 같은 미지수가 있는거에요. 그런데 여기에 아무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넣는 것이 아니라 상수를 넣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온전한 상수가 들어가야 풀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죠 여러분?
이것도 알고 이것도
하나님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어디나 계시고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질투하시고, 싸우시는 하나님이시고.. 이게 아는 게 뭔 소용이 있냐는 거죠?
그걸 우리가 알든 모르든 하나님은 먼저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거룩하시다. 이 하나님의 속성은 변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상수를 아는 변수는 값이 하나님이 원하는 값으로 바뀐다는 거에요.
세상이 원하는 값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값으로 바뀝니다.
때문에 뭐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배우는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skip. )
지난주의 내용.. 이 구원의 확신은 구원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 삶에 연결되어 있는 주제다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갑자기 확 꽂혀서 이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 아까 상수라는 말씀드렸는데 그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지요.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믿음을 얻게 되는 구원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에 그 구원에 대한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구원은 확실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그 구원의 확신은 천국 가는 데 필요한 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데 필요한 거다.
시작 )
질문나눔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을 이야기 햇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맞다. )
하나님의 속성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 아는 것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이게 더 중요하다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속성 전지해 전능해 선하셔 변치 않으셔 사랑이 많으셔.. 거룩하셔 질투하셔 싸우셔.. 치유하셔.. 평화..
그걸 알아서 내 삶에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는데? 어떻게 적용하면서 살아갈 것인데?
설명) 하나님을 아는 것이 왜 필요한가?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서로 무엇인가를 주고받는다.
부모와 자녀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모르면 무엇을 구해야할지 모르고…. 무엇을 드려야 할지 모른다….
부모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거에요..
또한 받은 것(칭찬, 선물) 왜 받았는지 모르고,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반대로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꼭 뭘 받고 드리기 위해서 유익을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이유가 부모가 주는 것을 얻고 누리기 위함때문만은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이처럼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그분과 나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우리의 인생이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제 입양을 가서 부모 없이 자라다가 당시 부모를 만났어요.
내 아버지시군요. 끝 그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그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건강하고 온전하려면 부모도 자녀를 알아야 되고 자녀도 부모를 알아야 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신다.
문제는 우리는 부모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부모를 아는 것은 나와 그분과의 관계를 더 깊어지게 하는 거이다.
고아원의 아이들.. 상처와 아픔이 많다.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
한 선교사님이 아이를.. 입양했다. 그 아이가 유독 마음의 상처가 많고, 사람들로 부터 버려져.. 고통.. 입양했다.
그런데 아이는 선교사님께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 아이가 자라가면서 학교에 들어가서.. 여전히 마음을 열지 않았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어디에서 사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했다.
그런데 너희 부모가 누구냐는 질문에. 아무말도 못했다.
그랬더니 친구들은 그 선교사님이 너희 엄마랑 아빠잖아.. 라고 이야기를 했다는거..
입양되었다는 것이 다 해결된게 아니라 선교사님을 아빠와 엄마로 받아드리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앎이다..
그래서 그 아이가 못되게 굴고.. 선교사님을 상처주었던 것에 용서를 구하고
엄마 아빠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해다는거..
선교사님은 아이를 보면서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고맙도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마치 이와 같다는 거다..
상처나고 거친 우리의 마음을 품어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그분 알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눔) 부모에게 가장 받았던 선물중에 소중한 선물은 무엇인지? 왜 주었는지? 그것이 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인지?
읽기) 66p 첫번째 단락 읽기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확고해질 것입니다..
말씀읽기
호세아 6:3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알기 위해 전심전력하자. 그가 오시는 것은 새벽이 오는 것처럼 분명하다. 그는 마치 비처럼, 마치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호세아 6:6 “내가 바라는 것은 인애이지 제사가 아니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지 번제가 아니다.”
교재 읽기
세번째 문단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강조한 것은 ?? 답하고..
성경을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을 공부합시다..
교재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깊이 알아가도록 하자
질문 1,2 답하기
질문 1-1)
읽고 답하기
답: 하나님은 주권자 & 통치자
설명) 하나님이 세상의 주권자이신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창세기 1:1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가장큰 변화는 인생의 주인이 세상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나눔)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뭐가 달라질까?
고아원의 이야기.. 뭐가 달라질까?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게 된다. 공동체가 교회로 모이게 된다. 공동체가 예수를 따르게 된다. 세상안에서 빛으로 살아가게 된다. 노숙인사역..
내가 아니라 주인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면서 살게 된다. 서로 사랑하라..
질문 1-2)
읽고 답하기
설명) 영원하다는 것은 끝이 없다. 한결같다 동일하다 변함이없다. 의미한다. 무한하다 완전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끝이 되시고 모든 것의 이유가 되신다.
그런데.. 사실 이 영원이라는 개념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영원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를 하겠어요?
내가 프랑스 파리를 가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파리를 알 수 있을까요?
실제로 그곳에 가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영원도 마찬가지.. 우리가 영원이라는 시간을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영원을 알수 있냐는 것이다.
그 영원히 처음부터 끝까지 계시는 분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이 영원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원의 테이블에서 우리의 인생은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점이고,, 우리는 먼지에요.
뭔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광대한 우주에서 안보이는 안개와도 같고 모래알과도 같다.
야고보서 4:14 “여러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입니다.”
시편 103:14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가 흙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안개이고 먼지다. 이걸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광대하신 하나님이 보기에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예수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은 무엇인가?
먼지와 같은 우리가 인생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하나님과 연결이 된것이다.
우리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니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나는 뭘까? 의미를 찾는다.
skip)
인간은 영원이라는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적으로 여러가지 사고를 하고 나름대로 이렇게 풀어가죠..
시간의 무한성.. 이 관점에서 영원은 **'끝이 없는 시간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무한히 이어지는 선형적인 시간입니다.
2. 무시간성.. 가장 형이상학적인 정의로, 영원을 **'시간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로 봅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영원한 현재'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이다.
시작)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으신 분입니다.”
과거..
시편 90:2 “산들이 나타나기도 전에, 주께서 땅과 세상을 만드시기도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8:58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현재
출애굽기 3: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여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라고 말이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미래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이신 전능자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나님은 ? 베드로후서 3:8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우리는 영원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키에르케고르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겸 신학자는 영원을 관념이 아닌 **'순간(The Moment)'**에서 찾았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영원이 시간 속으로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을 알 수도 없고,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심으로 영원이라는 순간이 우리에게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영생(Eternal Life)'**과 연결됩니다.
영생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분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질적인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을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함으로 영원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들어오고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
하나님의 속을 아는 것의 가장 큰 변화는 우리의 삶에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알게 되면..
영원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계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신다.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있다.
Skip)
제가 이전에 설교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끝을 아는 인생은 선택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과속을 하면 경찰에게 티켓을 먹습니다. 진짜 먹어보지 않으면 정말 그럴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몰래 몰래 죄를 짓고 과속을합니다. 안보이는 곳에서 그런 불행한 끝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찰이 어느날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거에요. 그러면 걸리게되고 엄청난 티켓을 먹습니다.
교통법규 과속해서 걸리면.. 벌점으로 인해 보험금이 10-15%인상됩니다. 그걸 계속 내야 하는거에요.
이 끝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더 조심하고 주의를 한다는 것이에요. 막 운전하지 않고.. 법규를 잘 지키려고 합니다.
시작)
지금이 전부이며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앎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금의 순간이 끝이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것..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만 자신의 삶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아는 게 왜 중요하냐?
이 세상의 시간안에서 나는 어떻게 보면 여전히 흔들리고, 무너지고, 때로는 내가 생각하는 나는 부질없고 시간 너무 빨리 가고 이러는 것도 없을 것 같고 없고 앞으로 그러지도 않을 것 같고 그런 삶이지만
소망이 없는 모습인거 같은데..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난 인생은 그 삶을 의미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3-5번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다
질문 1-3, 1-4, 1-5) 답을해보자.
1-3)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1-4)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고 (편재하시고..)
1-5) 전능하시다.
시작)
우리는 어떤 형상으로 창조되었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의 속성을 이야기 할 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공유적인 성품이 있다. 비공유적인 성품도 존재한다.
68p 맨위에 비공유적 속성이 있고, 72p 공유적 속성이 있다.
1. 비공유적 속성 (Incommunicable Attributes)
1. 비공유적 속성 (Incommunicable Attributes)
**"오직 하나님께만 있고, 피조물인 인간과는 공유될 수 없는 성품"**을 말합니다.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적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자판성(자존성):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외부의 도움이나 원인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은 부모, 공기, 음식 등이 있어야 생존 가능합니다.)
불변성: 하나님은 그 본질과 목적, 약속에 있어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마음도 몸도 매순간 변하죠.)
무한성(영원성):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에 갇혀 있습니다.)
단일성: 하나님은 나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하나이십니다.
2. 공유적 속성 (Communicable Attributes)
2. 공유적 속성 (Communicable Attributes)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Imago Dei)대로 만드실 때, 인간에게도 부분적으로 나누어 주신 성품"**입니다. 물론 인간이 가진 것은 하나님의 완전함에 비하면 그림자 수준이지만, 그 흔적이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구분 하나님의 성품 (완전함) 인간의 성품 (유한함)
지혜/지식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함 배우고 경험하며 얻는 지식
선하심 선의 근원이시며 절대적인 선 타인을 돕고 배려하는 도덕적 선
사랑 아가페(Agape)적인 무한한 사랑 부모, 친구, 연인 간의 유한한 사랑
거룩함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한 깨끗함 죄를 멀리하고 구별되려는 노력
공의/정의 완벽하고 공평한 심판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
진실함 거짓이 없으신 신실함 정직하고자 하는 성품
비공유적 속성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Worship)**하게 만들고, 공유적 속성은 우리가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닮아가게(Imitate) 만듭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야지" 혹은 "정의로워야지"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이 심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비공유적 속성은 우리의 능력 밖에 이야기다.
사실 공유적인 성품도.. 사실 유한과 완전하심으로 나뉘게 된다. 공유적 성품에서도 우리는 한계를 경험한다.
하지만 공유적인 이 성품을 우리가 우리가 좀더 알기 위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우리는 양면에 다 부족함을 경험한다.
때문에 우리의 이 부족함을 채우시고 도우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을 알면 일어나는 변화는 기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자하게 되는 것..
예전에 어떤 성도님이 기도를 그렇게 했대요. 저도 그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다 아시죠? 끝 엄청난 믿음이죠.
더 기도할거 없지. 뭐 하나님 다 아시는데, 내가 뭘 기도하나.. 하나님 다 아시니까.. 하나님 나는 그냥 다 해주세요.
나중에 자기가 기도를 잘못 드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왜 잘못된 기도일까요? 이렇게 다 아시죠? 하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는데 내가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잊고 산다는 거에요.
내가 모르지 뭘 모르느냐 ?
내가 모르는 큰 착각과 오산은…….
하나님은 다 아시는데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신다는 거에요..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그냥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 삶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느껴지지 않기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모르는게… 우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예요.
오히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하나님의 전지 전능 편재하심(어디에나 계심..) 이런 이런 능력들을 이렇게 가로막는 그러한 벽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시죠? 다 아시는데….
왜 지금 고난이 있어? 왜 고난이 있을까요?
전능하신데 왜 우리의 삶에 고난이 있을까?
어디에나 계신데 왜 나는 구덩이 있지? 왜 나는 지금 이런 불행한 상황속에 있지? 라는 질문을 합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왜 하나님은 고난을 주실까요?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질문이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관심이 있으셔서 그렇습니다.
지금이 전부이고 그래서 좋은 것만 주시면 잘 되고 잘 나가면 좋다.
탄탄대로.. 너무 좋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문제는 이게 우리의 마음이 꼬여 있잖아요.
좋은 걸 줘요. 나중에 우리는 하나님 필요 없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했더니.. 변한다. 하나님은 나한테 좋은 거 주면 돼. 좋은 것만 주면 되는 거야. 이렇게 하나님을 내 원함을 들어줘야 하는 우상으로 치부하는 거에요. 도구로 삼는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속성을 앎을 통해 저는 우리의 삶에 변화가 있었으면 해요..
하나님을 도구로 여기는 것을 끊어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겟어요..
이집트에서 출애굽해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요?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상에게 절을 했다는 거에요.
실제로 바알에게도 절을 했지만, 그들이 숭배하고 예배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들이 만든 황금우상 이미지였어요.
내 소원들어주고 내 필요를 채워주시고 나를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내는 나한테 좋은 것주는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우리를 인도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는거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자꾸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겠어요? 확 가잖아. 한 방에 훅 가잖아요.
그래서 고난을 주고 회개하고 돌아오고 또 좀 이따 또 꼬여가고 또 등을 돌리면 고난을 주고…
역사적인 하나님은 지금 우리는 우리가 딱 붙어서 살고 있는 지금 이순간에 여기만 알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 미래 나중 그때 우리 모습도 알고 계신다는 거예요.
이게 어디로 향해 갈지 우리는 몰라요. 우리는 영원하지 않기에..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세요.
그래서 안 내버려 두시는 거라는 것이죠.
이것을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속성 전지 전능 편재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통해 믿어야 한다는 거에요.
145편 말씀을 보면 이렇게 돼 있어.
시편 145:15–16 (NKRV)
15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16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말씀에서 모든 사람이 앙망합니다. 소원이 있어요. 그러니까 나만 소원이 있는 게 아니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소원이 있어요.
악인도 죄인도 의인도 모두 마음에 소원이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소원을 어떻게 만족시키실까?
하나님 편재하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들 다 충만하게 만족시켜줘야 하는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실제 모습은 안그런 경우가 허다하죠..
여러분 재미있는 비유인데 우산장수가 있고, 집신 장수가 있어요.
우산 장수는 비가 오도록 기도해요. 집신장수는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비가 한쪽에 오고 한쪽에 오지 않는 그런 이상한 현상은 없어요.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의인에게도 하나님은 똑같이 비를 주세요. 햇볕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 분이죠.
진짜 쉽지 않죠..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은?
하나님이 전지하시고 편지하시고 전능하시고 알면 뭐 해..
우리는 지금 저도 그렇고 대답을 못하고 있어요. ^^
전지하시고 편재하시고 전능하신 거 알면 뭐 하냐는 거죠..
지금 우리는 왜 내 기도를 하나님이 왜 안 들어주시는지를 모르고 있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속성은 변하지 않아요..
이 이야기는 우리의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속성을 바꿀수 없다는거에요…
그럼 어떻게 변하면 될까 둘 중에 하나예요.
우리의 기도가 바뀌든지, 내가 하나님에 이끌려서 옮겨지게 된다는거에요.
그래서 그 기도 하나님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 기도를 계속하다 보면…
비가 그자리 안오는게 아니라, 비가 안 오는 데에 우리를 거기다 갖다 놓으세요.
가정의 문제.. 저를 떠나 보내시는 하나님.. (가정의 어려움.. )
보스턴 리더쉽과 트러블.. 떠나 보내시는 하나님.. (관계.. 어려움)
그렇게 응답하신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 기도가 바뀌든지 내가 바뀌든지 둘 중에 하나지…
하나님 안 바뀐다.
1-6질문 ) 변치않으신다.
로마서 8:28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을 압니다.”
제약과 한계가 있는 우리와 달리 하나님은 신성을 지닌 분이시다.
그러니까 이걸 잘 생각하세요. 기도하시고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모순이 생길 때 답은 여러분 안에 있어요.
하나님을 바꾸는 게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했잖아요.
둘이 다른 기도를 할 때 한 사람이 기도가 바뀌든지 아니면 그 사람을 다른 곳으로 두시든지 하시지
비가 그쳤다 왔다 비가 그쳤다 왔다 이런 건 없다는 거다.
한결 같으시니까 언제나 변해야 될 것은 나의 기도이든지, 나이 든지 둘 중 하나다..
이게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과 전지와 전능과 편재하시는 속성속에서 나를 알아야 되는 이유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맞춰지게 해달라고 바뀌게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다 아시지요.. 이렇게 기도하고 끝이 아니라..
기도를 더욱 깊이 하면 할수록.. 더욱더 기도가 깊어질 수록..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맡겨드리고 의지하는 기도가 터지게 되는 것이다.
기도가 무르익어 갈수록 내 필요를 기도하다 점점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이걸 모르면 우리는 하나님 전지전능하신데.. 그 하나님을 자꾸 바꾸려고 기도를 하게 된다는 거..
하나님이 모든 걸 아신다는 거를 우리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이상한 기도를 하는 거거든요.
2번 공유적 속성. (주님을 닮아가는것..
2-1 질문) 읽기 답..
설명)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첫째, 말씀.. 성경을 통해.. 말씀은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 안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구나. 성경은 바로 나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통해서 자연 만물을 통하여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상황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져온 결과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변하지 않는 속성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2-2 질문) 읽기 답..
성실.. 부지런한것.. 열심히한다..
부지런하다 그런단어 아니다. 신실하다.. 이런 뜻이다.
거짓이 없다. 속과 같이 똑같다. 말한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다.
이것이 성실이다.
저 사람. 신실해..위선적이지 않아.. 보여지는 모습과 같아.
하나님은 그 약속에 성실하시고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런 신실함을 원하신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신실할 수 있을까?
나에게 이웃에게 하나님께 3가지로 신실할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한다..
예배
하나님께 신실함으로 드러나는 어떤 행위는? -> 예배라고 생각한다.
참된 예배..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 신실한 것.. 예배입니다.
진짜 신실한 예배는 예수를 중심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는 예배이다.
예수 없는 감정만 흔드는 예배는 거짓 예배이고, 율법만 이야기하는 예배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예배가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과 말씀으로 드려지는 예배이다.
주님께 신실하다.. 그런 에배를 내가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이것이 지표이다.
신실한 예배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분의 삶과 말씀을 따라 예배하는것..
하나님과 우리가 올바르게 관계 맺는 유일한 길이 예배이다.
2. 사랑을 실천
이웃과의 신실함.? 사랑 실천 사랑 실천 사랑
밀알, 노숙인 사역, 선교, 우리 주변에 이웃을 돌보는것..
그런데 동기가 중요하다. 단순히 선행이 아니라 십자가 은혜를 기억하는 것….
이웃에게 사랑을 행할 때 내 유익을 구하지 않고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것.. 십자가다.
바리세파의 가장 큰 문제점 자기 부인이 없었다는 것이다.
3. 나에게 신실함..
끊임없이 성령을 구하는 것..
내 힘으로 살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
예수를 닮아가는 모습이 있는가? 하나님의 공유적인 성품을 내가 닮아가려고 애쓰고 있는가?
나를 주님의 자녀로 세상의 자녀가아님을 기억하고 살아가는가?
내 자신을 말씀에 비춰보고.. 기도하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려는 신실함..
2-3) 의로움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전해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비결은 예수로 말미암아 칭의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과거 의로움을 드러내는 기준과 방법은 율법이었다.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방법.. 율법이죠..
그런데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 율법은 기준이지 길은 아니었다.
그래서 또다른 의가 들어났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율법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셨고.. 그 의는 인간의 의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의로움이 공유적인 속성이지만 우리는 부분적인 의를 지키는 것도 버거운 존재다.
그걸 보게 하는게 율법이다. 그럼으로 그 율법은 결국 내 의로는 닿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의가 잇다는 것을 보게 되고.. 결국 나는 은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거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나는 그 의로움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기에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난 은혜없이 살수 없다!!!!!
로마서 3:21–22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별개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로마서 3:24–25 (DKV): 25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그분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은혜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 구원에 이르게 되는 은혜. 또 다른 의였다.
자…. 여기서 질문..
구원받은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네? 아니오?
왜 지켜야 하나? 왜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가?
율법을 지킬 수 있는가? 우리는 지킬 수 없다.
율법은 빠져나갈 길이 없다. 그래서 완전히 지킬 수 없다.
율법에 의해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없어요.. 구원을 율법으로 이루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
율법은 그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삶을 말씀대로사는 것이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에는 율법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거에요………… Oh no…
때문에 지킬 수 없다 라고 단정하는 것도.. 뭔가 찝찝하죠..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없다.
하지만 내가 아닌 예수를 통해서는 지킬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4 “율법이 육신으로 인해 연약해져서 할 수 없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량해 주시려고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 안에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이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이에게는 율법의 요구가 이루지게 하시려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성령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
율법을 예수를 통해 지킬 수 있는 이유?
새 계명을 주셨다.. 사랑이다.
요한복음 13: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구약의 율법도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새 계명의 기준은 '나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방식'**입니다.
즉,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희생적 사랑(Agape)이 새로운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 계명이 '새로운' 이유는 율법의 수많은 조항을 단 하나의 원리로 통합하고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갈라디아서 5:14 “왜냐하면 모든 율법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신 한마디 말씀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새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단순히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함께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주하시고 공급하시고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1. 내주하심: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2. 공급하심: 우리가 사랑할 수 없을 때,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3. 나타내심: 그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아닌 예수로 말미암아' 지키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613가지의 복잡한 율법 조항을 지키려 애쓰는 삶은 무거운 짐이지만,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새 계명의 삶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참된 자유이자 안식입니다.
저는 우리청년들이 하는 사역에 예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사역이 되어지길!! 리더쉽들 순사역도 예수의 사랑을 나타내는 새 계명을 지켜내는 사역이 되길..
우리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영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새 계명(사랑)이야말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유일한 가치입니다(고린도전서 13:13).
고린도전서 13: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인데 이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옛계명을 보면..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은 유대인의 생각…. 원래는 구원은 율법대로 사는것이 아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구원받은 백성의 모습의 가이드이다....
출애굽 한 뒤에 율법을 주셨다.. 그 이유는.. ?? 출애굽 한 뒤에 율법을 주셨다는 구원은 율법과 별개라는 것이다.
구원하신 뒤에 율법을 주신 것은… 가나안에 들어가 살 때 그들의 삶을 본받지 말라고 주신 것이다. 구원받은 인생의 삶의 모범적 모습..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응답하는 삶의 열매이다..
순서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에 대해서 율법을 지키고 안지키고가 좌우되지 않는다. 예수로 좌우 되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예수 안에거하면 사랑하게 된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법적인 지킴 (전가):그가 내안에 있고 내가 그안에 있으면…. 예수님이 완벽하게 지키신 율법의 공로를 나의 것으로 인정해 주심 (하나님이 보실 때 나는 이미 율법을 다 지킨 자임). 나를 의롭게 여겨주신다.
그러나 실제적인 지킴도 따른다.
실제적인 지킴 (동행):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마음(성령)이 나로 하여금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게 하심.
결국 **"내가 지킨다"**고 생각하면 다시 '율법의 저주'와 '정죄' 아래로 떨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 안의 예수님이 하신다"**고 고백할 때, 그리스도인은 비로소 자유함 가운데서 율법이 말하는 참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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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적인 이야기 ..
고전 8, 9장.. 우상에게 바쳐진 재물이야기..
원칙을 이야기 하신다. 첫번째 원칙 자유하다. 우리는 율법에 자유하다. 우리는 율법을 안지킨다고 해서 구원이 틀려지는 것 아니다
2. 두번째 유익에 대한 법칙.. 형제에게 유익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유익하지 않으면 안하는 것이다. 시험들겠는데
3. 세번째 원칙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이게 세상에서 하나님을 드러나는 방법일까?
4. 네번째 원칙.. 사랑에 대한 원칙이 있다.
2-4)
공의=십자가
하나님은 공정하시다 공평하시다.
하나님은 정말 공평하신가?
하박국 1:2–3 “오 여호와여, 제가 언제까지 부르짖어야합니까? 주께서 듣지 않으시고, “폭력입니다”라고 제가 주께 외쳐도 주께서는 구해 주지 않으십니다. 왜 저로 하여금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왜 죄악을 쳐다보게 하십니까? 파괴와 폭력이 제 앞에 있습니다. 갈등이 있고 싸움이 일어납니다.”
하박국 1:13 “주의 눈은 정결해서 죄악을 보시지 못하시고 죄악을 그냥 바라보시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들을 파괴시키고 있는데 왜 반역자들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계십니까?”
하박국은 하나님께 던진 질문이다. 왜 세상이 이렇습니까?
질문) 우리가 상상하는 공평함이 무엇인지 나누어보십시오.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공의와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의로 하나님의 공의를 판단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를 질문한다.
세상이 이런데 정말 하나님은 공평한가? 정의로우신가? 질문한다. 세상이 공평해보이지 않는다. 공평하게 살아가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들의 죄악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공평한 잣대로 보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동일하지않다. (능력, 조건, 은사 등..)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게 동일하게 가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사랑과 은혜를 끊임없이 베푸신다..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품꾼의 비유.. 오후 5시에 온 품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주인의 은혜: 1시간만 일했음에도 12시간 일한 사람들과 동일한 하루 치 임금(한 데나리온)을 받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를 보여줍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공평하시다는 것은.. 세상의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게 아닙니다.
죄로인해 벌어진 결과를 보고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를 판단하는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런 죄악된 세상에 모두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뭐다? 공의 기준은.. 십자가이다.
삼위일체
3-1, 3-2, 3-3.. ) 질문에 답하기..
요한복음 10: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다.””
예수님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하나님과 하나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죠 그죠?
사도행전 5:3–4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떻게 네가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이고 땅값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네 것으로 몰래 숨겨 놓았느냐? 그 땅은 팔기 전에도 네 소유였고 또 팔고 난 뒤에도 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마음에 품었느냐? 너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성령을 속이는 일이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성령은 누가 보내십니까? 예수님 주님이 보내신 거죠 성령은 또 하나님을 속이는 거니까 성령은 또 하나님이 일하는 이야기고…
헷갈린다.
성경을 성령을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부르지요? 보혜사 보혜사를 정확하게 무슨 뜻입니까?
보혜사.. 보혜사(保惠師, Paracletos)는 기독교에서 성령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스어로 '곁으로 부름 받은 자'라는 뜻이며, 예수께서 승천 후 보낸 조력자, 위로자, 변호사, 상담자로서 믿는 자들과 항상 함께하며 가르치고 돕는 역할을 합니다.
양태론 → 역할에 따라 성부성자성령으로 구분된다. 한분인데 구별된역할..; 엄마 선생님 딸..
삼신론 → 세명이 다른..신이다.
삼신론은 삼신론은 세 분 신인데 다른 거예요. 다른 거예요.
신이 다른 신인 거예요. 능력도 다르고 영광도 다르고 종기도 다르고 다른 세 분의 신인 거예요.
그러니까 성부 하나님보다 성자 하나님은 조금 딸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 보내시는 거기 때문에 이것도 또 또 달라
그게 우리가 이제 이야기하는 잘못된 삼신론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에 보니까 제우스도 있고 헤라도 있고 그 아들도 있네 이런 개념이에요.
그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일신론 하나밖에 없냐 그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삼위일체를 이야기 할 때 중요한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
→ 있을 유가 아니라, 오직 유이다. 숫자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직 하나 그것뿐인.. 하나님 만이 신이다.
신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이다.
세분의 다른 하나님이 존재하는데 능력과 영광 권세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대장이고, 예수님은 그 밑에로 여태까지 저는 생각을 해 왔는데 아들을 보낸 게 그럼??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서열이 낮고 높고 가 아니다.
그 크고 작고 이런 개념 절대 차이가 없다. 없다 없다. 차이가 없다. 동일하다.
그래서 세 분이 하나이시다.
하나이시다라는 말이 그런 의미예요. 그런 의미 세분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같으냐 아니지 그렇게 안 나와 있잖아요.
성경에 그렇게 안 나와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나와 있잖아요.
독생자 이렇게 나와 있잖아요. 아들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잖아요.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한다. 근데 이 하나님 이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랑 똑같아.
그러니까 이제 이해가 안 되는 거지요. 인간의 한계…..
일신으론으로 개념으로 하나님을 이해했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님이 같다니까 신성 모독이다 이렇게 된 거지.
왜 그러냐??? 그전에는 성자 하나님이 안 등장을 했어.
성경은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해 모두 하나님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3분의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하고 있을까요?(3신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이 존재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유일신론).
삼위라는 말은 신적 본질과 영광을 가진 인격이 셋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이 세상에 하나님은 오직 한 분만이(일체)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1) "3분의 구별되는 인격을 가지신 2)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터툴리안이라는 사람은 "한 실체-세 인격(Una substantia-tres persona)이신 하나님"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에서 "3위일체"란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히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모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먼지.. 모래..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한 실체-세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관은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신관이며,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신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문제는 세상에 똑같은 모델이 없기 때문에 예를 들어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그
리고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을 모두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을 뵙게될 때에 완전히 해결될 수 잇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예배 때..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음으로 축도하고 예배를 마친다는것.. 이해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작)
우리는 어떤 형상으로 창조되었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의 속성을 이야기 할 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공유적인 성품이 있다. 비공유적인 성품도 존재한다.
68p 맨위에 비공유적 속성이 있고, 72p 비 공유적 속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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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공유적 속성 (Incommunicable Attributes)
1. 비공유적 속성 (Incommunicable Attributes)
**"오직 하나님께만 있고, 피조물인 인간과는 공유될 수 없는 성품"**을 말합니다.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적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자판성(자존성):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외부의 도움이나 원인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은 부모, 공기, 음식 등이 있어야 생존 가능합니다.)
불변성: 하나님은 그 본질과 목적, 약속에 있어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마음도 몸도 매순간 변하죠.)
무한성(영원성):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에 갇혀 있습니다.)
단일성: 하나님은 나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하나이십니다.
2. 공유적 속성 (Communicable Attributes)
2. 공유적 속성 (Communicable Attributes)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Imago Dei)대로 만드실 때, 인간에게도 부분적으로 나누어 주신 성품"**입니다. 물론 인간이 가진 것은 하나님의 완전함에 비하면 그림자 수준이지만, 그 흔적이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구분 하나님의 성품 (완전함) 인간의 성품 (유한함)
지혜/지식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함 배우고 경험하며 얻는 지식
선하심 선의 근원이시며 절대적인 선 타인을 돕고 배려하는 도덕적 선
사랑 아가페(Agape)적인 무한한 사랑 부모, 친구, 연인 간의 유한한 사랑
거룩함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한 깨끗함 죄를 멀리하고 구별되려는 노력
공의/정의 완벽하고 공평한 심판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
진실함 거짓이 없으신 신실함 정직하고자 하는 성품
비공유적 속성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Worship)**하게 만들고, 공유적 속성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게(Imitate) 만듭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야지" 혹은 "정의로워야지"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이 심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존재하거나(자존성)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것(영원성)은 비공유적 속성의 영역이기 때문이죠.
공유적인 성품도.. 사실 유한과 완전하심으로 나뉘게 된다.
하지만 공유적인 이 성품을 우리가 우리가 좀더 알기 위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