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은혜의 지배_5장
죄와 은혜의 지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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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은혜의 지배 5장_지의 지배의 성질 : 거역과 악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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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제 5장 죄의 지배의 성질 거역과 악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우리는 거듭난 신자라 할지라도 죄의 상대적인 집배 아래에 놓여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에게 있어서 죄의 지배의 성질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하여 두 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자에게 있어서 죄의 집배는 부당한 거역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신자에 있어서 죄의 지배는 곧 악이라는 것입니다. 1. 죄의 집에는 부당한 거역 첫째로 신자에 있어서 죄의 집배는 부당한 거역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죄의 집배는 정당한 것입니다. 그들은 죄 가운데 태어났고 불순정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00:58) 스스로 죄를 택하고 그 지배 아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광체는 그들에게 가려져 있으며 하나님께 진노의 자식입니다. 그들에 대한 죄의 지배는 정당합니다. 마르틴 누의 지적과 같이 그들의 의지는 노예의 상태이며 결박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르스토텔레스의 인간 해석에 따르면 토마스 아키나스의 인간의 선행을 연습함으로써 완전히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치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그러진된 말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표현을 위하면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존재와 행위 모든 것에 있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며 그의 필연성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에도 막을 수 없습니다.
(01:52) 마리틴 뉴턴을 비롯한 개혁자들이 중생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은 어떠한 영적인 선에 도할 수 없다는 신약의 가르침에 재발결한 것도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하나님의 의에 그러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이미 해방된 사람입니다. 단지 아 지난 죄를 용서받을뿐만 아니라 생명 원리가 그 영혼 안에 신겨져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는 새로운 피저물입니다. 그는 신분상 어 이제 죄인일 수 없고 또 죄의 지배를 받을 수 어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할 운명이 놀릴 수 없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02:51) 이제 그는 언약 안에서 자신 안에인 이미 신겨진 은혜의 원리를 따라 순종과 믿음의 삶을 살면 영적 생명의 충만하는 역사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가고 창조의 목적에 따라 성결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자에게는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거듭난 본성에 부합한 부업하는 자연스러운 삶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자신 안에 있는 이러한 은혜의 원리를 거역하고 정역을 따라 불순종하게 되면 잔존하는 죄는 번성하여 신자의 영혼 안에 부당하게 지배를 갖게 됩니다. 신자의 내면 세계 속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지배적으로 역사하는 합법적인 은혜의 나라가 설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잔한 죄의 번성함이 어 실제적으로 죄의 불법 지배를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03:52) 그것은 신자의 영혼의 원리를 거스리는 불법 한 것입니다. 불순종과 범죄 아 불순종과 범죄 그리고 죄 죽음이 없는 삶으로 말미암아 죄가 실질적으로 신자의 영혼 안에서 지배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의 지배는 결코 불신자들 안에서처럼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지배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지배가고해 보이지만 그것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신자 안에 숨겨진 우세한 영적 원리를 거스리는 부당한 지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진실하게 참하고 다시 은혜를 받음으로써 죄를 죽이고 제 부당한 지배를 벗어나 은혜의 지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불신자의 영혼 속에서 이루어지는 죄의 지배와 신자의 영혼 속에서 이루어지는 죄의 지배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04:54) 불신자에 대한 죄의 지배는 신자에 대한 죄의 지배보다 더 경고합니다. 우리가 불신자에 대한 죄의 지배를 절대적인 지배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미혹을 순종과 범죄함으로 인하여 죄의 지배 아래 있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비정성적인 삶이야. 내가 죄의 주배를 받다니이는 부당한 것이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음으로써 나를 죽음에서 해방하셨다. 내가 이렇게 죄에 매어 허약하게 죄와 타협하면서 사는 것은 마치 왕과에 태한 왕의 자손들이 자신들의 신분에 맞지 않게 부당한 노예처럼 살아는 것과 같다. 내 자는 기가 아니다.
(05:44) 이것은 결코 내가 살아야 할 삶이 아니다. 이것은 죄가 부당하게 내 마음과 영혼에서 지배권을 강탈한 것이다. 내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이 부당한 지배는 반드시 형식될 것이다. 신매매 존식에 의해 잡혀온 사람들에게 그 악한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하게 만든 일이라고 합니다. 서 그들에게 비인간적인 학대와 폭력을 일삼아 자존감을 완전히 버리게 하고 생의 희망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 대한 소망을 철저하게 포기하게 하고 나면 그들은 자기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강요된 생활에 자신도 모르게 길들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06:36) 신자 안에 잔하는 죄가 신자를 지배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철저하게 신자를 속이고 강합하여 그로 하여금 신령한 기쁨이 넘치는 은혜의 삶을 꿈 꿈꾸지 못하게 만듭니다. 죄는 신 죄는 신자에게 한번 대뇌에서 미끄러져 죄의 지배 아래 들어온 실패가 다시는 만해될 수 없는 패배인 것처럼 설득하면서 다시 은혜 아래 살아가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엄놓습니다. 그런데 죄는 신자를 다시 폭력과 강함으로만 다스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죄의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죄의 지배에 길들려지게 만듭니다. 인심 매매 조직이 끌고 온 분여자들을 자치뿐만 아니라 마약으로 길드린 말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지적과 같이 양심의 두 기능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송사하는 것과 정죄하는 것입니다.
(07:38) 죄의 지배 아래 신자의 영혼은 스스로 죄를 스스로 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 양심으로부터 끊임없이 송사와 정제를 받게 되면 영혼은 커다란 고통과 함께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신자는 역설적으로 예전보다 쉽게 죄의 욕구에 불굴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청교도 신자 앤드리 폴러는 모든 죄는 그 사람 안에 있는 죄에 대항하는 원리를 파괴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이는 신자 안에서 죽이지 못하고 남겨둔 죄를 가진 채 죄에 대항하려고 할 때 죄를 범지 않으려는 의지가 얼마나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인지를 염두해 둔 지역입니다. 그러나 죄의 이러한 강교함에도 불구하고이 모든 지배는 부당한 것입니다.
(08:36)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살 수 없도록 다시 창조된 사람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그들이 경험하는 죄의 지배가 아무리 강력해 보일지라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아주 신속히 충분히 그 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다시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죄의 지배를 벗어나 은혜의 통치 아래 들어가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혜를 주심으로써 우리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던 죄의 지배를 순식간에 박살해 버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생명의 성령의 법에 충만하고도 치료적인 역사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이 >> 죄의 지배는 악임, 둘째로 죄의 지배는 악입니다.
(09:28) 여기서 죄의 지배의 성질상 그것이 악이라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죄의 결과로서의 악입니다. 악은 죄라는 뿌리에서 자한 줄기나 가지 혹은 열매입니다. 따라서 죄와 악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죄는 악을 지향하고 악은 죄를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바로 이러한 죄가 가져온 죽음이라는 질병에 걸린 상태에서 악과 고통이라는 증상들을 경험합니다. 이처럼 죄의 집에는 악을 산출하고 그 결과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떠나 고통과 비참 가운데 살게 합니다. 다음으로 덕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의 악입니다.
(10:20) 성경적으로 볼 때 선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가지셨던 궁극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조건이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죄는 단지 불법한 일을 저지르거나 부독한 것을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총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과 온 우주를 창조하신 선한 계획과 목적에 배치되는 생각과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선의 시련과 유지에 기여하는 인간의 존재와 행동은 덕 혹은 미덕이며 이것을 거스르거나 대항하는 인간의 존재와 행동은 악 혹은 사악입니다. 전자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움과 탁함이고 후자는 추함과 비천함입니다. 죄의 지배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목적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삶을 살도록 만듭니다. 그런 점에서 죄의 지배는
(11:24) 그 자체가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전적으로 거스르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의 지배는 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자 안에 내지하는 죄는 바로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신자 안에서 지력을 확보하려고 치열하게 먼미칩니다. 단지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맹렬하게 역사하며 자신의 계획을 이루고자 예를 씁니다. 그리고 죄의 계획은 바로 창조의 목적과 구속의 계획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좋은 것만을 사용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듯 죄도 고통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는 고통을 타고 오고 죄악은 달콤한 유혹과 함께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12:19) 신자가 죄의 계획에 대하여 알면서도 유혹에 순종하고 악을 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죄가 주는 기쁨과 즐거움의 믿기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곧 죄의 막 때문입니다. 죄가 신자 안에서 이처럼 불법한 지배력을 부당하게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지배를 통하여 자기의 계획을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계획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게 하고 영혼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입니다. A 하나님을 대적함. 첫째로 신자에 대한 죄의 지배가 악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죄 자체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적이고 그 구체적인 활동이 방감과 대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죄의 지배가
(13:24) 궁극적으로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게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질에 있어서 변화되지 변화하지 않습니다. 죄인은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인간 안에 있는 죄는 그것이 불신자 안에 있을 때이든 신자 안에 잔존하고 있는 때이든 본질상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죄는 변화시켜 새 사람을 만드시지만 죄는 본질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기에 파멸시켜 버리시는 것입니다. 신자가 죄의 지배를 받는 상태에 있게 되면 자신의 영혼 안에 심겨진 올리아는 완전히 다르게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가 일시적으로는 죄가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서 영혼의 참다운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14:29)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면 살수록 영혼의 힘든 고통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제창조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함으로써 거듭난 본성을 거스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는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것을 대적하며 살아게 하는 것이 제가 그토록 신자 안에서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확보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이란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방귀를든 삶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 살아가는 삶 자신의 행복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기 중심적인 삶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입니다.
(15:28) 신자가 이러한 삶을 살게 되면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게 되며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죄가 신자 안에서 불법하게라도 지배력을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신자로 하여금 이러한 삶을 살게 하기 하기 위함입니다. 영혼을 파괴함. 둘째로 저희 집배의 또한 목적은 신자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파괴시킨다는 것은 영혼의 죽음을 가져온다 하거나 하나님께서 이미 심신 생명의 성령의 법을 발멸시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신자 안에서는 죄가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죄가 신자와 영혼을
(16:31) 파괴시킨다는 것은 새롭게 신겨진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있는 질서를 무너뜨리고 신자의 영혼에 있는 생명과 활기를 빼앗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중생은 곧 성령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과 질서가 그 사람 안에 신겨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영혼과 마음 안에서 하나의 틀을 행성하며 그의 전 인격을 인격의 영향을 미칩니다. 지성과 정서와 의지의 모두 영향을 미친 미쳐 가지라는 은혜의 질서를 갖추게 합니다. 지성은 하나님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정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의지는 하나님의 뜻을 뜻에 잘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된 질서는 마음의 틀에 잘 방향됩니다.
(17:30) 그러나 처음 해신과 함께 신겨지는 그러한 영혼의 상태는 항상 같은 정도로 은혜의 제수를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의 영혼이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죄의 지배를 받게 되면이 질서 정의한 틀이 파괴됩니다.이 은혜의 질서의 붕괴는 자기 안에 있는 죄에 대한 지성의 인식을 흐리게 합니다. 죄와 유혹에 대하여 정서로부터 친해적이 되어 되게 하고 자기의 즐거움을 위하여 의지로서 하나님을 거스리게 합니다.이 이 모든 일은 신자 안에 있는 은혜의 질사가 무너짐으로써 일어납니다. 그리고 죄의 이러한 작용을 영혼에 대한 파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진전 안에 내지 않은 죄는 바로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지배을 얻고자 합니다.
(18:24) 영혼을 파괴함으로써 자신 안에 불법을 이루어지 어 죄의 지배력을 한구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의무는 죄의 지배의 궁극적인 계획을 미리 알고 끊임없이 은혜 안에 살아감으로써 죄를 이길 은혜의 힘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
한눈에 보는 5장
죄의 지배의 성질: 거역과 악
I.죄의 지배는 부당한 거역이다
-불신자에게 죄의 지배는 정당한 것이나 신자에게 있어서 죄의 지배는 부당한 거역임
-신자는 하나님에 의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이미 해방되었기 때문임
-신자는 신분상 죄인일 수 없고 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할 숙명에 놓일 수 없음
-그런데 신자가 은혜의 원리를 거역하고 정욕을 따라 불순종하게 되면 죄는 그의 영혼 안에서 번성하게 되고 지배력을 갖게 됨
-신자들에 대한 죄의 지배는 상대적인 것으로, 견고해 보이나영원할 수 없음
-신자 안에 심겨진 우세한 영적 원리를 거스른 부당한 것이기 때문임
-죄의 지배가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신속히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음
II. 죄의 지배는 악이다
A.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게 함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향한 적의이며, 그 구체적인 행동은 반감과 대적으로 나타남
-따라서 죄의 지배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목적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삶을 살게 만듦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면 살수록 신자의 영혼에는 고통이 찾아옴
-하나님을 섬기도록 재창조된 사람이 거듭난 본성을 거스르는 삶을 살기 때문임
-죄가 불법하게라도 지배력을 얻고자 하는 것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게 하기 위함 임
B.영혼을 파괴함
-죄의 지배의 두 번째 목적은 신자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임
-영혼을 파괴한다는 것은 새롭게 심겨진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있는 질서를 무너뜨리고 영혼의 생명력과 활기를 앗아가 버리는 것임
-죄가 지배하게 되면 신자 안에 심겨진 은혜의 질서와 변화된 질서가 반영된 마음의 틀이 무너짐
-신자는 죄에 속지 않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은혜 안에 살아감으로써 죄를 이길 은혜의 힘을 유지하고 강화해야 함
스터디
제5장
죄의 지배의 성질 : 거역과 악
1.신자에게 있어서 죄의 지배가 부당한 거역인 이유는 무엇입니까?(87-88)
2.신자가 받는 죄의 지배와 불신자가 받는 죄의 지배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83)
3. 죄의 지배가 악하다고 할 때, 악의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보십시오 (90-91)
4. 죄는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게 하기 위해 지배력을 확보하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90-91)
5. 죄의 지배의 또 하나의 목적은 신자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파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