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들고 걸으라
Notes
Transcript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찬송가: 32장 만유의 주재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전형상화 (말씀) / 본문
오늘은 두단락 중 한 단락만 다루고 내일 두번째 단락의 안식일에 대한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유월절,오순절,초막절) 모름(시간)- 예루살렘 (장소)
양문 곁 (성전 북쪽) 베데스다 (뜻은 ‘자비의 집’ 북동쪽) 못,저수지 ,행각이 5개이므로 규모가 있다.
그곳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 사회적 낙오자,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자,
미신을 믿는 자들 / 38년된 병자 (한사람에 포커스 된다) , 예수님이 보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십니다.
예수님의 질문? “네가 낫고자 하느냐?”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은혜가 주권적으로 임한다.
38년된 병자의 대답: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경쟁에서 이길 힘이 없다. =세상의 모습이다. (스스로는 구원할수 없는 무능력한 자들의 모습- 우상과 ,경쟁사회)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됨 ( 일어나라/ 자리를 들어라/ 걸어가라), 38년된 병자의 믿음조차 필요없다. 주권적인 은혜, 세상 가운데(베데스다) 서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 일어나라/자리를 들어라/ 걸어가라
곧 나아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간다. 그 날은 안식일이다. ( 안식= 안식일이지만 38년동안 안식이 없던 병자에게 안식을 선포하신 주님, 안식일에 안식이 없다. 앙꼬가 없는 찐빵과 같다)
유대인들의 지적 (안식일에 들면 안되고 이동하면 안되는 39가지 계명을 적용함/ 병이 나은것, 안식이 없는38년은 안중에도 없다, 자비와 사랑을 잃은 종교의 실체이다)
군중을 피하시고 의탁하지 않으신 주님! ( 성전에서 다시 만남, 병자에게 당부하심은 죄를 범하지 말라~~, 병의 원인이 죄 때문 이라고 하는 것은 아님, 육체적 질병만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죄도 해결하심)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자기를 고친이는 예수라고 고변함 (황당한 행동, 이후 안식일 논쟁의 촉발되고 이것은 성부와 성자 논쟁으로 이어짐, 아버지와 아들)
형상화 ( 현실과 만남) / 연관성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누가 있었습니까? 요한복음 5:3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그들의 모습속에는 자비가 있지 않았습니다. 물이 움직이면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낫는 경쟁 구도 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과학은 발달되고 ai로 편리해지고, 교통과 시설 그리고 모든 편의 시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점점 세련되어지고 나아집니다. 가난은 극복되고 암도 곧 정복할 것 처럼 신약이 개발됩니다. 그렇지만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데스다 처럼 이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삶이 멈춰버릴 정도로 취약하고, 3절의 표현 처럼 몸은 건강하고 더 오래사는 지 몰라도 영혼은 맹인과 저는 사람과 매말라 버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인간은 질병을 피할수 없는 비참한 상황입니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우상과 거짓된 믿음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점에서 오늘날의 세상 모습과 너무도 비슷 합니다. 교역자 수련회때 양평 용문사에 간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은행 나무 1200년 된 나무가 있는 곳인데 의상 대상가 망국의 한을 품고 유학을 떠나면서 지팡이를 심었더니 그게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곳에 온갖 자신의 소원을 적은 종이들이 붙어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내용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시험에 합격하는 것입니다. 빛이 없는 어둠에 주님이 오셔서 묻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낫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도 아니고 조건을 걸지도 않으십니다. 당연한 질문,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4절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 남편이 어디 있느냐? 라는 질문처럼 하나님의 부재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공급의 부족= 결핌과 갈급함을 알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냐는 질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아니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구원을 베푸십니다. 주님 제가 남편이 없어서 이 모양입니다. 주님 저를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 모양 입니다. 주님 제가 경쟁에서 이길 만한 스펙과 인맥과 돈과 부모와 이런 것이 없어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이러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이 오셔서 말씀 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리고 일어나라!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떤 절망 가운데 주저 않아 계십니까? 38년된 병자처럼 도저히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생각해서 아무런 기대도 도전도 없이 주저 앉아 있는 곳이 어는 곳입니까? 가족의 구원입니까? 자녀 문제 입니까? 누구도 모르는 오래된 여러분의 질병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죄로 인하여 비틀어진 현상입니다.
여러분의 베데스다는 어디인가요? 그곳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일어나라!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38년된 병자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들고 걸어 갔습니다. 그동안은 자리가 병자를 주관 했다면 이제는 병자가 일어나 자리를 주관합니다. 병자의 회복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선언 즉시 이루어 졌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즉각적인 실현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은혜 입니다. 이 은혜는 조건이 없습니다. 38년된 병자를 치료 하시면서 예수님은 믿음 조차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 은혜는 보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범죄하지 말라고 권면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실패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은혜 이십니다.
재형상화 (적용)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보십시오! 여러분의 베데스다, 자비의 집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일그러진 삶의 현장은 어디인지요? 그곳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시길 소망 하십시오! 오직 주님만이 여러분과 저를 그 베데스다에서 일으켜 의지하던 자리를 오히려 지렛대 삼아 앞으로 걸어가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이시고 은혜 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38년된 병자가 일어 났듯이 우리도 “아! 이것은 안되~, 하고 드러누워 있는 곳에서 다시 한번 힘을 내고 일어 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누구에게는 오랫동안 싸우고 연락을 끓고 지내던 형제 자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오랫동안 빚지고 살았던 누군가의 빚을 갚는 것일수도 있고, 용기를 내서 해보지 못했던 남편과 아내에게 자녀에게 따듯한 말한마디 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들고 좌지우지 했던 것이 열등감, 비교의식, 두려움이 있다면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여러분을 붙들지 못하도록 여러분이 자리를 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 가십니다. 한 걸음이라도 어제와 다른 오늘 , 하나님 말씀을 한절 이라도 더 읽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 한번 더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더 낮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마음을 내려놓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루 되시기를 축복 드립니다.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 가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