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열심보다 하나님의 은혜 2026 0213 행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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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나의 열심을 넘어, 날마다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새벽을 깨워 주님 앞에 나오신 기도의 용사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제가 이스라엘에서 유학하며 살 때, 그곳의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종교적 열심'을 볼 때면, 때로는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절을 합니다. 유대인들도 정해진 시간, 하루 세 번씩 기도를 놓치지 않습니다. 성지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길을 가다가도, 차를 타고 가다가도, 심지어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도 기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기도합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종교요, 그들의 모임 자체가 신앙의 전수였습니다.
그들의 그 치열하고 철저한 열심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만약 구원이 종교적 열심의 분량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우리 개신교인들은 가장 낮은 수준이겠구나. 도저히 저들을 따라갈 수가 없겠구나."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 바로 그런 사람이 등장합니다. 24절에 나오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아볼로'입니다.
성경은 그를 아주 화려하게 소개합니다. 그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였습니다. 게다가 25절을 보면, 그는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여기서 '열심으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제온(ζέων)'**입니다. 이 말은 '물이 펄펄 끓는다', '비등하다'는 뜻입니다.
아볼로는 차가운 지식인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이 펄펄 끓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에서 보았던 그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완벽해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이런 분이 계신다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냉정하게, 그에게 결정적인 '빈 곳'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25절입니다. 행18:25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회개하라"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즉, 요한의 세례는 **'인간의 노력과 결단'**을 강조합니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내가 더 깨끗하게 살아야지", "내가 죄를 끊어야지."
아볼로의 신앙은 뜨거웠지만, 그 중심에는 '나의 열심', '나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귀한 것이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신앙은 무거운 짐이 됩니다. 내가 끓어오를 때는 괜찮지만, 식어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 아볼로를 눈여겨본 부부가 있었습니다.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그들은 아볼로의 설교를 듣고, 그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아볼로를 지적하거나 망신 주지 않았습니다. 26절을 보면 그를 '데려다가' 조용히 만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여기서 '더 정확하게(아크리베스테론)'라는 말은, 아볼로에게 신학 지식을 더 가르쳤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 설교 틀렸어"라고 지적한 것도 아닙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임재'를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아볼로 형제님, 당신의 뜨거움은 너무나 귀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당신의 열심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힘으로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그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노력하라'고 채찍을 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짐을 지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당신의 그 뜨거운 열정 속에, 이제는 당신의 노력이 아닌 예수님의 은혜를 채우십시오.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율법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은 내 얼굴에 묻은 더러움을 보여주지만, 거울 자체가 우리를 씻겨주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거울을 열심히 들여다봐도 죄는 씻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율법이 드러낸 우리의 죄와 한계를, 당신의 피로 씻어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열심으로 거울을 닦지 마시고, 은혜의 물가로 나오십시오.
우리가 왜 말씀을 계속 배워야 합니까? 우리가 왜 제자훈련을 받고, 성경 공부를 합니까? 지식을 쌓아서 남보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또 다른 종교적 의무를 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청년들도 이번에 4번째 제자훈련을 진행합니다. 처음 들었던 친구들에게 다시 들으라고 권면합니다. 그 때 배웠던 것 지금 못하고 있으니까 다시 배워서 지켜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또 그 훈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에 푹 잠기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는, 내 열심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의 '제온', 나의 끓어오르는 열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나는 오늘 주님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내 영혼의 빈 곳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 그것이 진짜 배움입니다.
아볼로는 당대의 석학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천막을 만드는 평신도였습니다. 하지만 아볼로는 겸손히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채워야 할 것이 지식이 아니라 '생명'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가르침을 받아들였을 때, 28절에 보면 그는 비로소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자'가 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힘입어 증언하는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새벽에 나오신 여러분은 이미 남다른 '열심'을 가진 분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여러분의 열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디, 그 열심이 '나의 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만큼 기도했다", "내가 이만큼 봉사했다"는 요한의 세례에 머물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때로는 교만하게 만듭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나의 열심을 드립니다. 그러나 내 열심보다 주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내 노력으로 채우려 했던 그 빈자리에,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채워 주시옵소서."
끊임없이 배우되, 그것이 짐이 아닌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새롭게 부어주시는 은혜를 경험함으로, 나의 열심을 넘어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이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아볼로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열심으로 신을 찾아가려 애씁니다. 때로는 우리도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하나님이 사랑하실 거야"라는 율법의 짐을 지고 신앙생활을 해왔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열심이 '요한의 세례'에 머물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뜨거움이 식으면 무너지는 신앙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위에 서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겸손히 은혜를 나누게 하시고, 아볼로처럼 겸손히 은혜를 구하게 하옵소서. 끊임없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지식이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더욱 풍성해지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내 힘으로 아등바등 살아가는 하루가 아니라, 주님이 공급하시는 넉넉한 은혜로 승리하는 복된 날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온전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