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신 하나님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9 views
Notes
Transcript
왕상 4:20-34
서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프로그램을 꼽는다면 아마 “흑백요리사”, 혹은 “냉장고를 부탁해”와 같은 프로그램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먹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마 현대 사회 사람들의 정서와 먹는 것에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예측을 할 수 있다. 그래서 GPT에게 물어보았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이 "냉장고를 부탁해", "흑백요리사"와 같은 먹거리와 연관된다.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정서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니? 전문가들의 의견을 얘기해줘.) 전문가들이 분석한 의견은 다음과 같다.
(1) 불안의 시대, 감각적 위안의 문화
즉 먹거리 예능은 힐링이 아닌 ‘마취’에 가깝다라는 것이다. 왜? 고통의 원인을 해결해 주진 않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불안을 잊게 해 주는 감각 자극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사람들은 왜? 라는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내 삶에 문제가 들이닥치면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에 훨씬 더 많이 집중한다. ‘왜’는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라면 ‘어떻게’는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야 할 부분은 어떻게 아닌 왜이다.
(2) 능력주의 사회의 축소판
미디어학자, 사회학자들이 흑백요리사 같은 포맷에서 주목하는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출발선은 다르지만
-규칙을 명확하고
-결과는 실력으로 판단됨
(3) 계급 갈등을 부드럽게 소비하는 방식
냉장고 속 재료, 흑수저/백수저 같은 설정을 계급과 격차를 은유화한 장치로 본다.
-갈등을 고발하지 않고
-음식이라는 중립적 매개로 완화한다는 점
(4) 관계가 사라진 시대의 공동체 환상
-공동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의 재현
(5) 한국 특유의 생활 밀착형 리얼리티
-요리가 집과 연결
-경쟁, 노동, 계급까지 끌어올 수 있는 소재
==> 먹거리 예능은 사람들이 먹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불안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가장 무해한 감정 통로다.
2. 본론
@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20-25)
- 20절: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오늘 우리는 먹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성경과 믹스 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의 인구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될 것이라 약속하셨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진 시기가 솔로몬의 시대였다. 이에 따라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누린다. 그것이 바로 음식에 관련된 것이었다. 전도서 5:18에서도 이와 같이 이른다. “또한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즉 하나님께서 백성의 수요를 많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많은 백성들을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특히 솔로몬 앞에 있는 하루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22-23절이 그것을 알려준다. 솔로몬이 누릴 수 있는 하루 음식량은 1,000명 학교 기준 30~40개 학교 전체를 하루에 먹이는 양과 동일하다. 구체적으로 명문고와 대입하면, 10만 명의 명문고 학생이 점심을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양이다.
.
아마 오늘날 현대 사회도 이와 같을 것 같다. 학교 급식이 조금이라도 부실한 것 같으면 부모님들이 학교에 민원을 넣는다. 학교별 다소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 급식이 잘 나오는 편인 것 같다. 음식을 남기는 경우가 허다할 만큼 우리는 풍요의 시대를 살아간다. 뷔페 역시 번영의 상징적 문화이다. 뷔페란 단어 “Buffet”는 원래 긴 테이블, 찬장, 음식을 올려두는 식탁 이름이었다. 그런데 중세 귀족 연화에서 오늘날의 뷔페 형태로 발전하고, 결정적으로 스웨덴의 문화로 인해 각자 원하는 만큼, 원하는 순서로 가게끔 된 것이다. 이 뷔페 문화는 가난한 나라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난한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일 것이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지, 영양결핍과 같은 현상은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 솔로몬이 누렸던 번영이었다. 20절을 새 번역에서는 “먹고 마시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잘 지냈다”라고 기록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모자람이 없는 이 번영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헐벗은 채로 하루 먹거리를 찾아 해매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긍휼히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주신 번영을 잘 관리해야 한다(26-28).
- 26절: “솔로몬의 병거의 말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만 이천 명이며”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번영을 우리는 잘 관리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마구간 40,000칸, 군마 12,000필을 소유했다고 기록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이기도 했지만 부의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과거에 왕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다(신17:16). 그 이유는 솔로몬이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진 전투력 혹은 번영을 더 의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 말하듯, 번영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자 축복이다. 그런데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문제이다.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하길 원하고, 더 높은 곳을 지향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진짜 실력이고 믿음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은 대부분 돈을 벌지 않는다. 대다수 부모님의 돈을 받아서 쓴다.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 달 용돈으로 받는 사람 혹은 필요할 때마다 받는 경우다. 두 가지 모두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 능력은 한편,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크게 비중 있는 능력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이유는 부족하면 부모님께서 더 채워주신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청소년들은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세대이다. 대다수 아이들이 휴대폰을 지니고 있다. 휴대폰 역시 결코 저가의 금액이 아니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즉 휴대폰 역시 현대 사회 부의 한 상징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 휴대폰 사용 시간을 제한받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는 아마도 사용자가 적절히 물건을 다루지 못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의 대응책으로 생겨난 것이다.
또 젊은 시기에 있는 청소년, 청년들은 얼마나 또 트렌드에 민감한가? 어릴 적, 서울에 유행하던 것이 부산까지 오는 데 2년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워낙 디지털이 발달해서 그런 것이 잘 없다. 오히려 금세 유행이 바뀐다. 최근까지 두쫀쿠가 유행했다. 그러나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두쫀쿠가 남는다고 한다. 유행, 트렌드에 민감한 청소년, 청년들은 거기에 뒤쫓기 위해 많은 돈을 들인다. 이런 문화 역시 부의 한 상징적 모습이리라 생각된다. 그럴 형편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외형에 치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자신의 형편을 보고 포기하기 보다 현재 누리고 있는 삷을 지속적으로 영위해 나가기 위해 더 돈을 벌려고 한다. 이것이 관리의 부재이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신명기를 통해 말씀하신다. 신명기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1,2월 담임 목사님 추천 도서인 “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가난한가요?”라는 책에서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재물을 얻을 능력에는 지혜와 지식 그리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까지 하나님의 경영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 주신 번영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솔로몬의 번영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자 축복이 사실이다. 그러나 군마를 많이 둠으로써 앞으로 이것으로 넘어질 위험 요소를 떠안고 살아가게 된다. 우리 역시 그러하다. 나는 얼마나 내 능력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인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용돈기입장, 휴대폰 사용 시간 조절
@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심(29-34)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심(29-34)
- 29,30절: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솔로몬의 개인적인 부귀 영화는 자기 스스로에게서 발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더하여진 것이다. 그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다스릴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했다.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때 솔로몬의 기도를 흡족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개인의 부귀, 영광도 허락하셨던 것이다. 3:13 “내가 또 네게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메시지는 우리에게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거신 약속이었다. 이 약속이 먼저 있기 전에 약속에 대한 내용이 없을뿐더러 그 효력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지만 그 결과가 솔로몬처럼 좋지 못한 경우는 어떠힐까? 우리는 성경을 한 면만 볼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입히시고, 먹이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틀렸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필요한 것을 채우신다는 의미지 언제나 우리가 기대하는 기댓값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련회 첫째날 저녁 집회 예레미야 말씀을 살펴볼 건데, 그의 사역은 바벨론 유배를 목전에 둔 남유다에게 심판과 회복을 선포한다. 그런데 사역의 성과도 거의 없고, 더 나아가 우리가 갈망하던 가시적 성공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틀렸냐? 그렇지 않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사역하는 동안 굶주려 죽지 않았다.
종합해서 말하면 생존과 사명의 갈림길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먼저 소망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뒷일은 부족함 없이, 모지람 없이 채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솔로몬믄은 부와 영광은 번영의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20절에서 나온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자람 없이 채우셨고, 그 결과 백성들은 잘 지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만나를 하루 먹을 수 있는 양만큼 내리셨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