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15 “경쟁의 땅에서 자비의 주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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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2월 13일 금요일 본문인 요한복음 5:1-15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를 고치심) 말씀을 바탕으로 새벽기도회 설교문을 준비했습니다.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과 달리 무자비한 경쟁만이 가득했던 베데스다에서,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참된 안식'**을 중심으로 설교를 구성했습니다.
[2026년 2월 13일 금요일 새벽기도회: 경쟁의 땅에서 자비의 주님을 만나다]
[2026년 2월 13일 금요일 새벽기도회: 경쟁의 땅에서 자비의 주님을 만나다]
1. 시작 기도
1. 시작 기도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밤에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이 새벽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하며 남보다 먼저 가야 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38년 된 병자처럼 오래된 절망 속에 누워있는 마음이 있다면,
오늘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치유와 회복의 새벽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찬송
2. 찬송
찬송가 471장 (통 419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38년 된 병자의 고침을 묵상하며, 우리의 영육 간의 강건함을 구하는 찬송입니다.)
또는 찬송가 287장 (통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3. 설교 (Sermon)
3. 설교 (Sermon)
제목: 경쟁의 땅에서 자비의 주님을 만나다 (요한복음 5:1-15)
(도입: 이름뿐인 자비의 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입니다.
'베데스다'는 히브리 말로 **'자비의 집(House of Mercy)'**이라는 뜻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평화롭고 사랑이 넘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그곳은 '경쟁의 집'이요, '비참함의 집'이었습니다.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돕지 않았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First)' 들어가는 한 사람만 고침을 받는다는 전설 때문이었습니다(4절).
경쟁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가장 먼저가 아닌 사람은 비참함을 느끼는 자리였습니다.
결국 남을 밟고서라도 내가 먼저 들어가야 사는,
냉혹한 생존 경쟁의 현장이 바로 베데스다였습니다.
(대지 1: 나를 넣어 줄 사람이 없나이다)
그 경쟁의 한복판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경쟁에서 철저히 패배한 사람이었습니다.
3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는 절망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가와 이렇게 묻습니다.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라고 물으셨을 때, 그의 대답을 보십시오.
7절입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는 "네, 낫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비참함**와 **'원망**을 쏟아냅니다.
"나는 힘이 없는데 도와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그의 시선은 오직 '현실’과 '상황’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 아닙니까?
"돈이 없어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시기를 놓쳐서 안 된다"며 베데스다의 경쟁 논리에 갇혀 살아갑니다.
(대지 2: 경쟁을 뚫고 찾아오신 은혜)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경쟁에서 이겨야만(물에 먼저 들어가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그곳에,
진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조건을 걸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저 물까지 기어가 보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선포하십니다.
8절,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세상(베데스다)은 "네가 노력해서 1등이 되면 살려주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네가 할 수 없으니 내가 찾아왔다. 그냥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긋지긋한 현실과 비참함이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끊어졌습니다.
그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예수님을 만남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38년 동안 묶고 있던 멍에가 끊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해결책은 '환경의 변화(물이 동하는 것)'에 있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해결책은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 말씀으로 고침받았습니다.
(대지 3: 참된 안식을 주시는 주님)
이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9절).
유대인들은 병자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안식일에 짐을 들다니, 율법 위반이다"라며 정죄합니다(10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그들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보다 규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8년 동안 고통 속에 갇혀 한 번도 쉬지 못했던 이 사람에게 **'참된 안식'**을 선물하셨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그 사람을 다시 만납니다. 그 장소는 이제는 베데스다, 경쟁의 장소가 아닙니다.
바로 성전에서 만나게 됩니다.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4절)"**고 당부하십니다.
육체의 질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죄에서 떠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이끄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치유입니다.
(결론: 자리를 들고 일어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베데스다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요행이나 세상의 기회가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예수를 기억해야 합니다.
눈 앞에 오신 예수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의 모습을 봅니다.
경쟁의 시대, 비교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로 인한 상처와 비참함이 우리를 얽매일때가 있을 것입니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며 현실적 인지가 주님을 가리울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그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오늘 이 새벽, 절망이 있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우리를 찾아오신 자비의 주님을 붙들고,
패배감 대신 감사를,
원망 대신 찬송을 부르며 걸어가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합심 기도 제목
4. 합심 기도 제목
절망에서의 기상:
"주님, '나는 안 돼, 도와줄 사람이 없어'라고 주저앉아 있던 38년 된 병자의 마음이 내 안에 있었습니다. 이제 핑계를 멈추고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절망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게 하옵소서."
참된 은혜의 경험:
"노력과 경쟁으로 얻는 세상의 복이 아니라, 찾아오셔서 거저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소서. 나의 노력이 멈춘 곳에서 주님의 일하심이 시작됨을 믿게 하소서."
영적 회복:
"육신의 문제 해결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신 말씀처럼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5. 축도
5. 축도
"경쟁과 비교에 지친 인생들을 찾아오사 참된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38년의 긴 고통의 시간도 외면치 않으시고 마침내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신실하신 사랑과
우리의 굳어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시며 다시 걸어갈 새 힘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세상의 우물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나를 찾아오신 말씀의 주님을 붙들고 힘차게 일어서기를 결단하는
모든 성도들의 삶과 가정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