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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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는

디모데후서 3:10–14 NKRV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그러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디모데후서 3:10-14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디모데후서 3:8 NKRV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10–11에서 다음 세대의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 디모데를 향하여 이와 같이 권고합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바울은 ‘그러나 너는’이라는 문구를 앞세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나의 교훈과 …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보고 알았거니와…
바울의 당시에도 여러 사람들이 과거 모세 시대의 얀네와 얌브레처럼 복음 진리의 대적자로 행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너와 나, 우리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그러나 너는 나의 교훈과 행실 등을 알고 따랐다’는 데에 있습니다.
‘알았다’고 번역된 파라콜루데오(parakoloutheō) 동사는 단순하게 인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과 이해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 따른다’(BDAG)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든지 간에 적어도 디모데 한 사람은 바울의 길을 자신의 길로 삼아 그 길을 선택하고 따라왔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디모데는 이 서신에 등장하는 거짓 교사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사람입니다. 이 거짓 교사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며, ‘죄를 중히 진 여자들’(문자적으로는 ‘죄들로 층이 져 있는 상태의 약한 여자들’)을 구원의 길로 바르게 인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유인하는 자들’(‘포로로 사로잡는다’는 전쟁 용어)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믿음과 관련해서는 ‘버림받은 자들’(adokimoi, 실패자들)이라고 부릅니다(딤후 3:8).
바울은 ‘그러나 너는’으로 시작하면서 이런 자들과 디모데를 구별합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악한 욕망을 따라 어리석은 실패자의 길로 나아갔지만, ‘그러나 너는 나를 따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디모데가 따랐던 바울의 삶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항목들은 모두 복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의 교훈’이란 바울이 가르친 복음을 말합니다. ‘나의 행실’은 복음에 근거한 ‘삶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에 가서 바울은 ‘박해를 받음과 고난’을 언급합니다. 앞에서는 다 단수를 사용하지만, 여기 이 두 단어는 복수를 사용합니다. 그만큼 복음 사역을 감당할 때 박해와 고난이 다반사로 그를 따랐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런 복음 사역자의 길을 잘 따랐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감격의 눈물이 엿보이지 않습니까? 어느 누가 자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궂은 것들을 안겨주고 싶어 할까요? 어느 누가 이런 궂은 길을 따라오는 젊은이를 보고 잘한다고 칭찬하고 싶어 할까요? 바울은 지금 디모데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복음의 영광을 보면서 그 앞에 놓인 고난에도 굴하지 아니 하고 그 길을 따르고 있음을 보고 감격해하고 있습니다. 이 선택이 진정 복되고 영광스러운 선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세의 때의 특징인 자기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복음과 경건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타락한 교사들도 설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디모데처럼 고난 뒤에 가리어진 복음의 영광을 보고 그것을 위해 두려움 없이 헌신하는 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14절에서도 다시 한 번 ‘그러나 너는’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디모데를 구별된 위치에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여기서도 디모데는 그 당시의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13절)과 대조를 이룹니다. ‘속이는 자들’이라고 할 때 사용하는 고에테스(goētes)라는 단어는 원래 마술사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그 구체적인 예들이 앞서 언급된 얀네와 얌브레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얀네와 얌브레”는 누구이며, 그들은 언제 모세에게 반대했는가? 고대 유대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출애굽기 7:11과 7:22에 나오는 이집트의 중요한 마술사였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파라오를 설득하기 위해 하나님이 명하신 이적을 행할 때, 이집트의 마술사들은 파라오가 모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그 표적을 흉내 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바울의 요점은, 해방과 치유를 가져오는 *복음이 능력으로 나아갈 때, 어떤 수단이나 속임수를 써서든 그에 맞서는 사람이 항상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의 위로의 말(“그들은 그렇게 멀리 나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은 우리에게 희망이 된다.
출애굽기 7:12에서 마술사들이 모세가 했듯이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켰을 때, 모세의 뱀이 그들의 뱀을 먹어 치웠다.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와 세상에서 그에 상응하는 것들을 지켜보며 기도해야 한다
얀네와 얌브레는 랍비 전승에서 출애굽 당시 바로 앞에서 모세와 아론을 대항했던 애굽의 마술사들로 알려져 있습니다.1 이들의 이름은 히브리어 어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얀네”는 “요한나”의 그리스식 표기이고 “얌브레”는 “대적자” 또는 “배교자”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1
사해 사본의 ‘사독 문서’에는 얀네와 그 형제들이 사탄에게 지시를 받아 모세와 아론을 대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약에서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사도 바울의 사용에 있습니다. 유대 전승에 익숙했던 바울은 말세에 진리에 맞서는 배교자들과 거짓 교사들의 실상을 지적하기 위해 얀네와 얌브레를 언급했습니다.
바울은 수십 세기 전 모세를 대항한 얀네와 얌브레, 그리고 당시의 거짓 교사들을 역사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3 진리를 훼손하려는 세력에 대한 경고를 전달했습니다. 바울의 핵심 메시지는 해방과 치유를 가져오는 복음이 능력으로 나아갈 때, 어떤 수단이나 속임수를 써서든 그에 맞서는 자들이 항상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2
이런 자들과 달리 디모데는 살아 있는 신앙의 인격자들로부터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을 잘 배운 사람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복음의 참 진리 속에 계속 거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이와 같은 ‘그러나 너는’의 정신이 꼭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복음으로 추구하지 않고, 타락한 자신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한 교회만이라도 개혁주의의 본질인 복음을 붙들고 바르게 깨어 있으면 이 말세의 고통의 때에도 희망의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빛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두 번째 선교여행 중 루스드라에서 동역을 시작했을 때 아마도 10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디모데는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겪은 박해의 현장에 함께했습니다. 이 세 도시에서의 사건들은 바울의 선교 여행 중 신앙의 대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들입니다.
디모데는 남부 갈라디아의 루스드라에서 태어났으며 제2차 선교 여행 초기에 바울의 선교 팀에 합류했습니다. 이는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받아 선교를 떠난 제1차 여행 이후의 일입니다. 제1차 선교 여행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터키 중남부 지역의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를 선교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가르침, 삶의 방식, 의향, 믿음, 오래 참음, 사랑, 인내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따랐으며, 안디옥과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당했던 구체적인 박해들과 고난들을 바울과 함께 겪었습니다. 이는 디모데가 제2차 선교 여행에서 바울을 따르며 이전 선교지들을 재방문할 때 동역자로서 동일한 시련을 경험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디모데는 제1차 안디옥 선교 당시에는 아직 바울의 팀에 속하지 않았지만, 이후 루스드라에서 합류하여 그 지역의 선교 결과물들을 돌보고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사도행전 13:43 NKRV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루스드라는 사도행전 내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회당이 없는 도시에 들어선 곳이었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기적을 목격한 후 선교사들을 신으로 여겼으나, 선교사들의 설교를 통해 참된 하나님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나타나 선교사들을 돌로 치려는 계획을 실행했고, 바울을 죽은 줄 알고 방치했습니다.2
바울이 이 세 도시에서 당한 고난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니며 바울의 공적 사역과 사적 행실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3 바울은 선교 여행 중 복음을 위해 많은 고난을 당했으며,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3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러한 경험들을 언급한 이유는 교훈적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실제로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진리를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1 바울의 요점은 아무리 심한 고난도 충실한 믿음의 길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이 없는 개혁주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시대에 인간중심적 풍조를 따라 개혁주의 교회 안에도 복음이 상실되고 있습니다. 복음의 복음 됨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고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나의 길로 삼아 영광과 즐거움의 대상으로 선택하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 들리는 소식도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요즘 신학생들이 전도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신자들 만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랍니다. 그런 신학생들도 찬양 인도나 기도회 인도하라면 기가 막히게 잘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역할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왜 그 놀라운 복음을 정말로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이 말세 고통의 때에 정작 갖가지 모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외면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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