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기도

새벽기도회(시편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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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6:1-10(구약 807쪽)
설교제목: 참회의 기도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반갑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요. 몇 가지 눈여겨 볼만한 것이 있습니다. 우선 이 시편의 제목이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요. 이 시편이 다윗이 쓴 시라는 것이고요. 무거운 분위기를 가진 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악 여덟째 줄은 낮은 음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 합창할때 베이스 파트처럼 굵고 낮은 음성의 소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이해해 보시면 됩니다. 결혼식에서는 밝고 경쾌한 곡을 주로 연주하지요. 반면에 장례식은 보다 무겁고 장엄한 곡을 연주합니다. 제목에서 이 시는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라고 해서 무거운 분위기임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이 시는 ‘참회’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회는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친다’는 뜻인데요. 성경에서 말하는 참회는 ‘돌아선다’라는 뜻입니다. 더 정확히는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됩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잘 아시는 이른바 ‘탕자의 비유’가 나오지요.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이 방탕한 삶을 살다가 아버지께 돌아오는 이야기인데요. 아버지께 돌아오는 모습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참회 또는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시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참회의 시입니다. 이렇게 시인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것은요. 자신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요. 다윗의 시라는 것을 감안하면요. 다윗이 겪게된 어려움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어려움이 다윗의 죄로 인함은 아니지만요. 우리가 잘 아는 밧세바와 간통한 사건이 다윗이 범한 큰 죄 중에 하나였는데요. 그로 인해서 나라에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백성들이 죽게 됩니다. 아마도 다윗은 이와 유사한 종류의 고통에 놓여 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시인은 ‘나의 뼈가, 나의 영혼이 떨린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6절에서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뛰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인은 이와 같은 괴로움 속에서 철저하게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에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서 생각하는데요. 우리에게 때로 삶에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올 수 있는데요. 이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괴로운 순간에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재수가 없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고난이 죄의 결과는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봐야할 지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선 현재 내 삶이 이대로 계속 가서는 안 된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신앙의 사람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나의 죄와 무관하다고 할지라도요. 일단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에 삼켜지면 그 문제로 부터 헤어나오기도 어려울 뿐더러요. 하나님의 뜻을 헤어리지 못하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하여서요. 결국 죄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가인이 분노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 분노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은 가인은 결국 분노에 사로잡혀서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맙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을 보지 않는 인생은 죄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한편 신앙인에게 참회라는 과정은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것은 멀어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고도 그것으로부터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삶에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늘 익숙한 방식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반면에 문제가 생겼음을 생각하고 다시 돌이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워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화재경보기처럼요. 큰불로 번지기 전에 경보기가 불이 났음을 알려줄 때, 우리는 그로부터 피하거나 큰불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습니다.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데요. 이처럼 참회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요.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지는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주목할 것은요. 9절과 10절인데요. 한번 더 같이 읽습니다.
시편 6:9-10(구약 807쪽)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제가 이 구절을 새번역으로 읽어보니 차이가 있던데요.
제가 읽어드릴테니 잘 들어보세요.
(새번역) 시편 6:9-10
9 주님께서 내 탄원을 들어 주셨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받아 주셨다.
10 내 원수가 모두 수치를 당하고, 벌벌 떠는구나.
낙담하며, 황급히 물러가는구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물론 표현이 좀더 현대어에 맞게 부드러운 것이 하나 있을 것이고요. 가장 중요한 차이는요.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9절과 10절이 미래에 일어날 일로 얘기하고 있는데요. 새번역 성경에서는 9절과 10절이 현재에 일어난 일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거에요. 쉽게 말하면요.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서는 시인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고 얘기하고요.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미 응답 되었다고 이야기해요.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궁금해서 좀 찾아봤어요. 기본적으로 히브리어라는 고대의 언어는요. 오늘날처럼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방식의 시간을 담은 언어는 아니네요. 상태를 담은 언어인데요. 계속되냐 아니면 멈췄냐 하는 차이를 시간적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죠. 그는 나를 사랑했다. 이는 과거에 확정된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에 그는 나를 사랑한다. 또는 그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는요. 모두 계속되는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에서는 미래 시제로 새번역에서는 현재 시제로 표현하지만요. 이는 모두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계속되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제가 좀 복잡한 얘기를 했는데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에요. 시인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에 관해 기도했는데요. 상황은 전혀 바뀐 것이 없어요.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믿는 거예요. 그것이 방금 말한 히브리어 문법상에 나타나는 계속되는 상태를 담은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요. 시인은 눈에 보여지는 상황을 넘어서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한다는 거에요.
이는 그저 시인이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요. 확신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요. 첫째는 4절에 보면,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해 달라’는 표현이 나와요. 여기서 사랑은 인자하심이라는 말이기도 한데요.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기실 수 있는 인자하신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또한 8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말하는데요.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가 이로부터 참회의 기도를 어떻게 해야할지를 배울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참회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부터 시작되어야 해요. 내가 어리석고 나쁜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내가 진정으로 죄를 참회하면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믿음말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면 반드시 응답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 말이지요. 당장의 상황의 변화는 없을 수 있지만요. 이러한 신뢰 속에서 굳건해진 믿음으로 기도할때에요. 진정한 참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바라기로는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믿음 말이지요. 이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우리의 죄를 고할 수 있고요. 이로부터 온전한 참회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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