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읍시다.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 누가복음 3:22-23(신약 92쪽)
설교제목 : 주현절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읍시다.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따스한 온기가 시린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가득 차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주현절 첫째 주일입니다. 주현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에피파네이아(ἐπιφάνεια)’에서 온 말입니다. 이는 ‘드러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본래 이 말은 고대 로마 황제의 공식적인 방문을 뜻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로마 황제는 신과 같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신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매우 영광스럽고 황홀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만 나타나도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찍으려는 등의 소란이 일잖아요. 하물며 신이라 여겨지는 존재가 나타나면 얼마나 야단법썩이겠습니까?
교회는 이 에피파네이아를 예수님께 적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주현 곧 주께서 나타나신 사건을 기념하는 주현절을 전통으로 지켜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현절을 큰 절기로 여기지 않지만요. 특별히 기독교의 한 분파인 동방정교회가 있는 러시아, 스페인을 비롯한 나라들은 이때 꽤 큰 행사를 벌입니다. 마치 우리가 성탄절에 축제를 벌이는 것처럼요. 주현절을 크게 기념하는 나라들은 이 때 퍼레이드도 하고요. 얼음물에 들어가는 행사 등을 벌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이날을 1월 6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날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세례 날짜가 기록되어지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다만, 여러 이유로 교회는 이날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날로 또는 주현일로 지켜왔습니다. 그리하여 1월 6일이 지난 첫 번째 주일을 주현절 첫째 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이번 주가 주현절 첫째 주일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현절을 특별히 기념하는 것은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약 서른 살 무렵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행보로 예수님은 당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을 찾아가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이때 하늘로부터 이러한 소리가 났다고 말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공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은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차원과 격이 다른 분이어서요. 우리가 감히 볼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분이었습니다. 이른바 ‘풍문’으로만 들을 수 있었던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면하는 우리는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태양 앞에 선 우리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태양의 강렬한 빛 때문에 태양을 온전히 쳐다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조금만이라도 길게 태양을 쳐다보았다가는 눈이 멀어버릴 테니까요. 또한 태양은 엄청난 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면 온도만 6000도에 해당하고요. 내부 온도는 1500만도에 해당합니다. 물이 끓는 것은 100도이고요. 철이 녹는 것은 1500도입니다. 그것에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100만배 높은 온도입니다. 도무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열인셈이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이와 같이 약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요. 그런데 이렇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존재를 눈 앞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로운 일이겠습니까? 앞서 말했듯 인간의 유명인사에게도 환호하는 우리들인데요. 그것을 아득히 넘어선 존재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이겠습니까? 주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사건 곧 주현절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특별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감히 대면할 수 없는 존재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것도 너무 놀라운데요.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오심은 거기에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큰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그것도 생명을 담보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니 말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닌 것입니다.
좀 극단적으로 얘기해 보자면요. 이렇게 비유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개미를 위해서 내 목숨을 내어준다고 생각해 봅시다. 개미에 관해 특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러한 결정을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개미에 관한 애정이 있다고 할지라도요. 개미를 위해서 인간이 희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쉽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비할바 없이 소중한 생명을 보잘것 없는 또는 낮고 천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것입니다.
제가 보다 선명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를 상대적으로 비하하는 비유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그것을 훨씬 더 넘어선 존재입니다. 인간과 개미의 차이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와 훨씬 더 큰 격차를 가진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는 것은요. 어쩌면 개미에도 비할바 못되는 존재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목숨을 내거는 선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극진하신 사랑입니다.
그러니 이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 사랑받는 이들입니다. 그 사랑은 온 우주보다 크신 존재로부터 전폭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 중 누구하나 별볼일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우리는 가장 특별한 존재에게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저와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는 것은요. 그저 머리로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내 생각과 삶이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저 지식으로 또는 관념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은 그저 좋은 분에 그칠지 모르지만요. 정말로 예수님이 내 삶에 영향을 줄 때, 예수님은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분 구원자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었던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책을 쓴 분은 본래 대학의 교수였고요.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는 분이었는데요. 언젠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제껐 읽었던 책에서 가르쳐주었던 삶의 성공 비결이 참 많았었느데요. 자신이 그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실제로 실천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반신반의하면서 책에서 말한 것을 따라 해보았는데요. 놀랍게도 그것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현재 자신은 교수직을 내려놓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남은 삶을 글을 쓰고 자신이 좋아하는 독서를 즐기는데요. 자신이 이러한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요. 사람들이 같은 책을 읽고서도 그것을 따라 살아내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깐 이런 거예요. 우리가 오랫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을 읽고 예수님에 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것이 우리에게 축적된 예수님에 관한 지식이고 앎이죠.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요. 그것이 그저 좋은 이야기에서 그쳐 버렸기 때문이지요. 진정으로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삶이 필요한데, 불행하게도 많은 이들은 듣고도 행하지 않음으로 사실상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도 또한 믿지도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죠.
오늘 성경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위대한 분임을 증거하고 있어요. 저는 그분이 우리를 매우 특별하게 여기고 게시고 우리가 그분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들임을 이야기했어요. 이미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나요?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의 사랑을 받는 자들로 우리의 삶을 살아내고 있나요?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만족스럽고 기쁨에 차 있을 겁니다. 그러지 못하다면, 우리의 믿음과 예수님에 관한 앎을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믿음이 여기에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세상 무엇보다 존귀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큰 사랑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 믿음을 따라 살아내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