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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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립보서 4:6-7(신약 322쪽)
설교제목 :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이유가 있습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반갑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서로를 축복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주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길 소망합니다.
보통 새해에 사람들은 다짐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새해 다짐을 하셨습니까? 저는 작년부터 다짐한 것이 있는데요. 자세한 것은 설교 마지막쯤에 이야기하겠습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요. 금주나 금연 또는 다이어트입니다. 그 외에도 독서나 외국어 공부 또는 경제나 투자 공부가 있을 것입니다. 혹은 어떤 이들에겐 연애와 결혼에 관한 것도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과거보다 우리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새해 다짐을 하는 목적이라면요. 저는 신앙생활 또한 그 목표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이 우리의 삶을 향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에 관한 자료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신앙생활이 우리의 건강과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자주 새해 다짐을 하면서 금주, 금연과 다이어트를 비롯한 건강에 관한 것을 중요한 목표로 둡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발견한 자료들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말해줍니다.
[ 자막 ]
JAMA네트워크라는 권위 있는 미국의학협회의 인터넷 사이트가 있습니다. 그곳에 2016년에 올라온 연구논문입니다. 물론 제 실력으로는 이러한 연구논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영어라서 읽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화제가 되는 AI의 도움을 받아 이 연구논문에 관해 알 수 있었고요. 구글의 한글 번역기능을 통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자막 ]
그 내용을 짧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992년부터 2012년 6월까지 74,534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했습니다. ‘종교활동 참여가 여성들의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말입니다. 이는 주요 생활습관과 사망 위험 요인을 두루 포함해서 장기간 추적 조사한 연구입니다.
[ 자막 ]
결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종교활동 또는 예배에 참석한 여성은요. 전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사망률이 무려 33%가 낮았습니다.
[ 자막 ]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연구가 있습니다. 다행히 이것은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굿뉴스’에 2023년 실린 내용이라서 더 쉽게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라키브 에산 박사는 2023년 9월 28일부터 10월 4일까지 영국인 2,004명을 대상으로 영국인들의 삶에 종교 및 신앙활동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를 가진 영국인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를 포함합니다.
[ 자막 ]
이러한 종교인의 경우에 73%가 ‘심리적으로 행복하다’라고 답변하였고 무신론자들은 그보다 적은 49%가 심리적으로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삶에 만족한다’는 답변도 종교인은 76%를 차지했고, 무신론자는 53%를 차지했습니다.
[ 자막 ]
이를 바탕으로 라키브 에산 박사는 이러한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믿음을 유지하라: 영국의 정신 건강(Keep the Faith: Mental Health in the UK)”
마지막으로 하나만 얘기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지 말까 고민했는데요. 이 이야기로 더 분명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 자막 ]
2025년 6월에 나온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제목을 보면 제가 왜 얘기하지 말까 고민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 자막 ]
“종교 예배 참석, 정신 건강 개선 증거 없다…18년 추적 조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교 연구자들은 기존에 행해진 예배 참석과 정신 건강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다시 분석하여 연구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1991년부터 2009년까지 18번에 걸쳐서 영국인 2만 929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얻게 된 결론이 이러합니다.
[ 자막 ]
예배 참석 빈도가 높다고 정신 건강이 개선되지 않는다. 또한, 몇몇 경우에는 예배 참석으로 인해 정신 건강이 악화하였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종교 행사 참석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기존 연구에 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에 소개한 내용은 빼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를 통해 오히려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예배를 포함한 신앙생활이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되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분명 신앙생활을 통해 어떤 이는 변화를 경험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와 같은 상황을 교회에서 경험합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나오고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또한, 모두가 신앙생활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참 무섭고도 서글픈 말이지만요. 예수님께서도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 자막 ]
‘추수 때가 오기까지 둘 다 그대로 두라’고요. 이는 교회에 속하였다고 모두가 알곡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 자막 ]
더 무서운 경고는 그 뒤에 이어집니다. ‘추수 때에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서 불사르게 묶으라’라고 말입니다.
[ 자막 ]
또한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나 우리 신앙의 모습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이에 관해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김학철 교수님의 이야기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2025년 12월에 있었던 본인의 북콘서트에서 김학철 교수님은 10명의 대학생과 함께 신앙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자막 ]
그것이 국민일보에 2025년 12월 12일에 인터넷 기사로 실렸습니다. 김학철 교수님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서 한 첫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 자막 ]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세계적 종교의 출발에는 비판 정신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판 정신을 잃은 종교는 그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자신의 믿음과 이해를 메타인지 과정이 없는 종교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이런 뜻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종교라는 것이 출발점에서부터 비판 또는 메타인지라 불리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가령, 사람들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등에 관해 답하면서 종교가 발생한 것이지요. 그리고 세계적인 종교라 할 수 있는 기독교는요. 이와 같은 질문과 고민을 매우 깊고 진지하게 해온 결과로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수많은 형태의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긴 세월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사라졌고요. 남은 것에서 일부만이 세계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결국, 생각하지 않는 종교 생각 없는 종교는 그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또한, 그것은 건강하지 않은 종교입니다.
이를 통해 생각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신앙생활이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은요. 어떻게 신앙생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신앙생활 또는 종교활동을 한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예전에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귀신 이른바 드라큘라에 관한 영화를 보았는데요. 드라큘라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들이대고 마늘을 던지는 등의 행위를 합니다. 또는 주기도문을 외기도 하고요. 이것이 마치 생각 없이 행하는 신앙생활과 같습니다. 신앙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어떤 주술적인 효력을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배를 많이 하고 기도를 오래 하며 주기도문을 여러 번 외우는 식의 행위를 통해서요. 특별한 일이 일어나거나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도 옛날얘기일 수 있습니다. 이제 드라큘라 영화에서 드라큘라에게 더는 십자가 마늘 따위가 통하지 않습니다. 어떤 영화에서는 주기도문을 외우니깐 귀신이 주기도문을 거꾸로 외워버리는 모습까지 나옵니다. 새로운 시도를 위한 영화 연출이겠지만요. 우리 또한 그와 같은 변화를 이루어가곤 합니다.
우리도 이제 잘 압니다. 주기도문 100번 외는 것 또는 성경 100번 읽는 것으로 어떤 능력이 나가지 않음을 말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 없습니다. 다소 냉담해진 방식으로 신앙생활합니다. 그냥 교회 안 다니는 것보다 교회 다니는 것이 좀 나은 것 같다고 여기고요. 열심히 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의무는 해야 한다고 여겨서요. 일주일에 한 번 예배하는 것으로 또 교회에서 하는 이런저런 행사들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깁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정말 이러한 정도 머무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신앙생활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선 연구에서 어떤 이들은 신앙생활을 통해 오히려 정신 건강이 악화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차라리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봅니다. 그러니 생각하며 신앙생활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말씀을 통해 이에 관해 살펴보려 합니다. 다시금 빌립보서 4장 6~7절을 같이 읽습니다.
빌립보서 4:6-7(신약 322쪽)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 지역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안케 하실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지금 어떤 걱정거리 또는 문제가 있음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빌립보 교인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함을 말입니다.
이는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하는 상황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는 때에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기근이 들어서요. 바울이 선교지에서 받아온 구제헌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방인과 함께 있던 것을 목격한 어떤 이들이요. 바울이 그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을 드나들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립니다. 성전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곳이었기에 이방인이 함부로 드나들어선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 바울에게 안 좋은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가 율법을 무시한다는 얘기 말입니다. 그리하여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지도 않도 유대인들이 들끓어서 바울을 죽이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예루살렘성전을 경비하던 로마의 군대에 의해 바울은 체포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바울은 로마의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합니다. 바울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유대 땅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위험했습니다. 다행히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유대 땅에서 로마에 이송되어서 가택연금을 당한 채로 집에 갇혀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 그림 - 가택연금 연출 AI 이미지 ]
이러한 바울의 상황이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돕기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헌금을 전달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에바브로디도가 죽을병에 걸립니다. 이 일이 또 빌립보 교인들에게 큰 근심거리가 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도 걱정인데 그를 돕기 위해 보낸 에바브로디도가 죽을 위기에 있으니 빌립보 교인들은 염려되었습니다. 다행히 에바브로디도는 극적으로 몸을 회복했습니다. 바울은 이 기쁜 소식을 속히 알리고자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도 안과 밖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안에서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지도자들이 갈등을 빚어서 교회가 분열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밖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로마 사회에서 여러 불이익과 어려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당시는 로마의 황제를 주님으로 고백해야 했던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들을 세상은 결코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역자들로 취급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짓 교사들이 교회로 들어와서 바울의 가르침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여러 문제에 관한 조언과 더불어서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처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요.’ 언뜻 이 말은 바울이 신앙에 너무 치우쳐져 있어서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얘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처한 상황을 매우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구절이 그 증거입니다.
바울은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의 원어적 의미는 ‘마음이 나눠지다’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상태를 바울이 이 단어로 표현함으로요. 빌립보 교회가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여러 문제로 인해서 그들 안에 갈등 상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바울은 기도를 제시합니다. 이는 염려라는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조치이면서요. 또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 내어 맡김으로 해결에 다가서는 과정입니다.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때로 우리 삶에서 어떤 고민과 문제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 올 때는 그 문제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문제에 갇혀서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옆에 훈수를 두는 사람이 상황을 더 정확하게 보곤 합니다. 경기하는 사람들은 시선이 좁아져서 생각이 갇힐 수 있습니다. 반면 훈수를 두는 사람은 양쪽의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봄으로 넓게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문제에 갇혀 있으면 해결의 실마리는 더욱더 찾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조언은 그냥 믿음 좋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정확한 통찰과 권면입니다. 눈앞에 문제에만 전전긍긍하지 말고 시선을 돌려 새롭게 문제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하라는 이유입니다.
이는 또한 믿음의 조언입니다. 바울은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외면치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셔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할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의 권면은 묻지도 따지지 말고 그냥 기도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거기에 머무르려고 합니까? 시선을 돌려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요. 그의 경험에 따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는 중에 여러 차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사실 빌립보서를 쓰는 상황도 어려움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위기 때마다 기도함으로써 그 위기를 넘어섰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전도를 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바울은 자신을 평생 괴롭히는 질병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이를 ‘가시’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이를 없애달라고 여러 차례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가시를 없애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이 문제 또한 넘어섭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7장에 바울이 로마에 오기까지 죽을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서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에도 바울은 기도했고 그 위기를 벗어나 로마로 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위기 때마다 기도하며 그 위기의 순간들을 지날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그저 위기의 순간을 벗어난 것에서 그치지 않고요. 그 순간에도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지금 처한 상황은 여러모로 화가 나고 억울할 수 있습니다. 대체 바울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해서 지금 가택연금을 당해야 하며, 로마 황제에게까지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할까요? 아마 예루살렘에서 그 소동만 없었다면 바울은 결코 지금과 같은 상태에 놓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실상 바울이 당한 일은 누명을 쓴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이 하지도 않은 일로 체포되고 감옥에 갇힌 것이니 말입니다. 보통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은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울이 애쓴 일들은 모두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더욱더 자신을 보호해 줘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바울이 처한 상황만 보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 놀라운 얘기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에도 나오는데요. ‘감사’라는 표현을 씁니다. 대체 무엇이 감사한 일입니까? 제가 바울의 입장이라면 억울하고 화가 나고 고통스럽기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얘기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바울이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바울의 상황은 당연히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웃으면 복이 와요’처럼 ‘억지로라도 감사하라는 말이냐’라고 했을 때요. 그건 아닙니다. 바울이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복음의 진보를 이루십니다. 바울은 가택연금상태에서도 그를 감시하는 로마 군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청하였기 때문에요. 그는 가고 싶었던 로마로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바울이 로마에게 오기 전부터 로마에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처지에서 보면 지금 바울은 처음으로 로마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가 원했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갇혀 있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현재에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황 너머의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감사로 나아갈 수 있고요. 또 그로 말미암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 속에서 그분의 뜻을 이뤄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시선을 가진다면요. 우리 삶에 주어진 모든 상황 속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위기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이 우리의 삶을 도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지 않고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느냐에 있습니다.
저는 올해 특별히 기도하는 일에 힘을 쏟으려 합니다. 이는 언젠가 담임목사님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과거 담임목사님이 청년이던 시절에 자신의 신앙생활에 관해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신실한 청년으로 보일수 있는데요. 실상 마음 한쪽에 계속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진짜로 살아계시면 더욱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고요.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여기에 시간을 쏟는 일을 이제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고 기도하는 것에 힘을 쏟았는데요.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 인생이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와 같지는 않지만 이런 고민을 합니다. 제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분명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제게 일어난 기적이 그것을 확실히 말해줍니다. 가령, 이렇게 내향적인 제가 목사가 되었다는 것도 그렇고요. 꽤 나이 먹어서 결혼하고 자식이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 고민은요. 과연 하나님은 나를 진정 목사로 부르셨는가? 더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살기를 원하시는 가에 관해 고민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 삶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이 확실히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놓고 올 한해 진지하게 기도하려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는 것이라면요. 하나님께서 제게 이에 대한 확신을 주셨으면 하고요. 혹 다른 뜻이 있다면, 그것에 관해서도 알려달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와 같은 고민에 충분한 답을 얻기 위해서 올해 더욱더 최선을 다해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어보려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사역하고 신앙생활하며 살게 될 텐데요. 그 과정에서 저는 소중한 제 인생을 얼마나 잃어버리게 될까요?
바라기로는 우리 성도님들께서도 한번 깊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대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도 괜찮을지하고 말입니다. 그냥 평소처럼 신앙생활 해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면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을까요? 저는 그것이 후회로 남고 오히려 신앙생활이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2026년 새해에는 이렇게 신앙생활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더는 습관을 따라 신앙생활 하지 않고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요.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관심하며 신앙생활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이를 위해 힘을 쏟을 때, 올해 신앙생활을 통해 큰 유익을 얻으리라 기대합니다. 이처럼 올해는 힘써 신앙생활 해보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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