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이 일하게 하십시오!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2:1-7(신약 399쪽)
설교제목: 다시, 사랑이 일하게 하십시오!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기뻐하십니다.”
오늘은 총회가 정한 ‘여신도회주일’입니다. 이 시간은 여신도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설교를 맡은 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했습니다. 우선, 총회에서 제공된 자료를 살펴보고서요. 올해 교단이 정한 주제성구 4개 중에서 하나를 정했습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2장의 말씀입니다. 있다가 자세히 살필 테지만요. 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이 참으로 중요한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좋은 관계 맺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또는 이웃과 나와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되는 영상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너무 익숙하고 잘 아시는 분일 겁니다. 한때 아침마당의 안주인으로 활동했던 이금희 아나운서의 영상입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 대화의 기술에 관해 강연한 내용입니다. 제가 본 전체 영상은 18분이 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내용이 참 좋아서 끝나지 보여드리고 싶은데요. 설교시간이니깐 약 3분 1에 해당하는 분량만 보려고 합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은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으니 찾아 보시길 강력히 권해 드립니다. 그럼, 영상을 시청하고 설교를 이어가겠습니다.
# 영상: 6분 18초
어떠셨나요? 대화를 잘하기 위한 좋은 팁을 얻으셨나요? 영상의 시작에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질문을 해요. 기억나시나요? 행복이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인데요. 이금희 아나운서가 생각할 때 행복의 기준은 ‘대화’에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대화를 하고 또 얼마나 잘 대화하는 지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저도 이것에 어느 정도 동의가 되었는데요. 왜냐하면,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살펴본 자료들이 이에 관해 이야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행복은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 사진 ]
이 사진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로버트 월딩거라는 교수님입니다. 이 분이 앞서 말한 행복이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연구를 하고 있는 분인데요. 이 연구는 하버드 대학에서 1938년부터 현재까지 약 80년 넘게 진행된 연구입니다. 그 사이에 연구 책임자가 4번이 바뀌었습니다. 긴 시간 연구를 하니깐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분으로 교체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현재 이 연구를 이끌고 있는 분이 바로 이 사진에 나온 로버트 윌딩거라는 교수님입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집단을 오랜 기간 추적하여 연구합니다. 첫 번째 집단은 1938년 당시 하버드 대학교 2학년 생이던 학생 268명이고요. 두 번째 집단은 보스턴의 가장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청년들 456명입니다. 현재는 이들의 손자 손녀를 포함한 연구가 계속되어서요. 약 2000명이 넘는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눠서 연구하는 것은요. 환경이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부자이고 똑똑한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사는지, 아니면 그것과 관계없이도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확인된 것은요. 환경과 관계없이 좋은 관계를 이루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는 친구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요. 깊이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뇌 기능 저하를 비롯해 건강이 더 빨리 나빠지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게 된 것은요. 인간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좋은 관계 맺음에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보통 사람들이 행복에 관계된다고 생각하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 따위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요. 사랑하는 사람과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하느냐에 있습니다.
[ 사진 ]
마지막으로 또 다른 연구 하나만 소개합니다. 이 사진은 미국의 심리학자 줄리안 홀트 룬스타드(Julianne Holt-Lunstad)라는 교수님입니다. 이분은 기존에 연구된 학술 논문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하였습니다. 1900~2007년까지 발표된 학술 논문들 통해서 약 30만명의 연구 대상을 확정했고요. 약 7년 넘는 시간 동안 추적연구를 했습니다.
이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이러합니다. 사회적 고립은 우리의 몸에 악영향을 줍니다. 하루에 담배 15개피를 피우는 것과 같은 영향을 주고요. 알코올 의존증과 유사하다고까지 말합니다. 또한, 운동부족보다 2배 더 해롭고 비만보다 2배 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단절이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영향을 미치는데요. 염증 수치가 증가하고 면역력이 저하되며 혈압을 높여서 심장병이나 뇌졸중의 위험을 높입니다.
결론적으로 사회적 관계가 튼튼한 사람은요.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생존확률이 무려 50%가 더 높습니다. 다시 말해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신체적 질병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은요.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중요하고 꼭 필요합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결국 우리가 대화를 잘 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말 속담에도 있잖아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등의 이야기 말입니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좋은 관계를 이룰 수도 있지만, 관계를 파괴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남은 삶의 시간 속에서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요. 지금부터라도 대화를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한편 저는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인 요한계시록은요. 핍박을 받는 초대 교회 성도를 향하여 쓰인 책입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셨던 모습으로의 회복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뤄지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쉽게 말해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고난은 끝이 나고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은 초대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 사는 우리 신앙인에게도 해당합니다. 그리하여 당시와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끝까지 기다림으로 신앙 안에 굳게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는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로마 제국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요한계시록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징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시 로마 제국의 감시를 피해 일종의 암호 형태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암호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를 통해 오늘 성경 본문인 요한계시록 2장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것에 무엇이 필요한지 말입니다.
[ 지도 ]
화면에 보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은요. 소아시아, 오늘날 튀르키예에 있는 7개 교회를 향한 이야기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베소 교회를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이어집니다. 가령,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두아디라 이런 식으로요.
그러나 여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뜻합니다. 곧 7개의 교회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교회를 상징합니다. 또한, 7개의 교회를 평가하는 내용은 교회의 여러 영적인 유형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이야기의 시작이 교회로부터 비롯되는 것은요.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로부터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 본문인 요한계시록 2장 1-7절은 에베소 교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일찍이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중에 세워졌습니다.
[ 사진 ]
이 사진은 두란노 서원입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에서 이곳에 3년간 머물렀는데요. 특별히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곳엔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라 불렸고 바울의 동역자였던 디모데가 목회를 했던 곳입니다. 또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말년에 이곳에서 머물며 사역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에베소는 이른바 신앙의 거장들이 거쳐 간 곳이었습니다.
그에 따른 영향일까요.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 에베소 교회는 이렇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2~3절 그리고 6절을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요한계시록 2:2-3(신약 399쪽)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이 말해주는 것은 이렇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진리를 수호하는 것에 열심을 내었고 이에 헌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거짓된 것을 가려내고 교리적으로 매우 건강하고 단단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니골라 당’에 관해 언급하는데요. 이는 요즘으로 치면 구원파와 같은 이단입니다. 쉽게 말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를 폈습니다. 영혼이 구원받으면 육체가 방탕하게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러한 사상을 거부함으로써 진리를 수호한 것에 칭찬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가 책망받는 것 또한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4~5절을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요한계시록 2:4-5(신약 399쪽)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진리를 수호하는 것에는 훌륭했지만요. 그와 같은 날카로움이 한편으로 따뜻함을 잃게 했습니다. 이런 거예요. 담임목사님께서도 몇 차례 얘기하신 바가 있는데요. 옳음을 주장하다 보면요.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생겨요. 서로 옳다고 생각하니깐 타협이나 양보가 없고요. 팽팽하게 맞서는 과정에서 대결 구도가 생겨요. 결국, 논리가 센 사람이 승리하는 듯 보이지만요. 그렇게 얻은 승리가 누군가를 상처 내고 피를 흘리게 한 것이라서요.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공동체를 상하게 하고 관계를 파괴합니다.
저는 이를 통해 생각해요. 결국,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에 있지 않아요. 오히려 그것을 넘어선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에 있어요. 왜냐하면, 에베소 교회가 책망을 받는 것이 ‘첫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는 데요. 이는 단순히 감정이 식은 문제가 아니라요. 관계에 문제가 생겼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과의 관계도 또 이웃 혹은 성도와의 관계도 삐꺽거림이 발생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요.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라고요. 이는 하나님과 이웃 사이에 좋은 관계를 이룸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 제가 얼마 전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묵상했던 시편 1편에서도 같은 얘기를 반복합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는 맺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이유가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기 위함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이웃과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 합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어떤가요? 서로 좋은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까? 답하기 곤란한 질문일 것을 압니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저조차도 쉽게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뜻하진 않습니다. 이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상대를 선하게 대할지라도 상대는 나를 선하게 대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요.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에 사랑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원어로 우리가 잘 아는 ‘아가페’입니다. 이는 남녀 간의 사랑과 다릅니다. 또는 친구와의 우정과도 다릅니다. 자기희생을 통한 헌신적이고 숭고한 사랑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나보다 더 존중하는 것에 있습니다. 마치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요. 내가 상대보다 낮은 위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기꺼이 상대를 용납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대체로 여신도회가 이것을 잘 행하고 있음을 압니다. 제가 거쳐온 거의 모든 교회에서 여신도회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교회 일에 시간과 물질을 드렸으며 몸으로 봉사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헌신이 모여 오늘의 교회를 이루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교회도 여신도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봅니다. 매 주일 예배 마치고 우리가 식사하는 것에서부터 비롯해서요. 교회에 크고 작은 행사에 여신도회는 여러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신도회 없이 이뤄진 교회의 사업이나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것은요. 이렇게 열심히 섬기다가 일에 치여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또는 일을 잘했니, 못했니 하는 이야기가 가시가 되어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는 중심에 서서 일하는 도맡은 이들을 향한 공격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요. 때로는 내부에서 일에 관한 입장 차이로 이른바 내부 총질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 결과로 총회가 오고 선거 때가 되면, 임원을 맡거나 남들 앞에 서는 것에 다들 주저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에 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쳐 쓰려지는 우리의 모습이 이대로 괜찮나 하는 걱정도 듭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는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사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어떤 이득 을 취함에 있지 않습니다. 적어도 맨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던 이들의 마음은요. 이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에 관한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바람이었을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의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첫 사랑의 회복’ 곧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임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과 이웃 간에 사랑의 관계를 이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은 이러한 목적을 따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서로를 또 신앙생활을 일로써 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진정 사랑의 관계를 이룬다면, 우리는 기꺼이 봉사하고 헌신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 잘 대화하는 것에 힘써보면 어떨까요? 제가 맨 처음에 보여드린 영상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긴 영상 중에 특별히 3분의 1지점까지를 보여드린 것은요. 그 영상을 통해 좋은 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서입니다. 물론 그 후에 이어지는 내용도 좋은 대화를 위해 습득할 기술이 많이 있지만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대화에서 신경 쓸 것은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경청하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좋은 대화를 이어가고 좋은 관계를 이루는 소중한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바라건대, 오늘 말씀을 되새기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에 힘을 쏟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사랑으로 우리의 관계를 다지고 그로부터 서로를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