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예수님으로 완성된다.

주일오후예배(신앙생활-성경)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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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 5:39(신약 151쪽)
설교제목: 성경: 예수님으로 완성된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기뻐하십니다.”
음악 즐겨 들으십니까? 저는 사실 음악을 거의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오디오북과 같은 책을 음악처럼 듣습니다. 일전에 제가 자랑했죠.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200권이 넘는 책을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펼쳐보았다고요. 또 약간의 자랑질을 더 하면요. 지난 1월에 46권의 책을 보았습니다. 아마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책을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요. 평소에 음악 대신에 오디오북을 즐겨 듣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평소에 거의 음악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음악성이 좀 떨어집니다. 이를 여러 번 들켰잖아요. 찬양 인도를 맡으면서요. 자주 실수를 해서, 이제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 주고 계시잖아요. 그 점에 관해서는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음악과는 거리가 먼 저이지만요. 저도 종종 감동하는 음악 있곤 합니다. 대체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곡이지만,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곡입니다. 왜냐하면, 음악을 모르는 저조차도 감동한 곡이니 얼마나 훌륭한 곡이겠습니까? 이제 그 훌륭한 곡을 같이 감상해 보려고 합니다. 한번 같이 들어보시죠.
# 영상: 3분 45초(박기영 - Nella Fantasia)
너무 익숙하고 잘 아시는 곡이죠. 제 취향이 이렇게 대중적입니다. 제가 이 음악에 감동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처음에 이 음악을 듣게 된 것은요. 다들 보셨을 텐데요. 한때 흥행했던 ‘남자의 자격’이라는 tv예능 프로그램에서 합창곡으로 나왔을 때입니다. 중년의 남자들이 합창대회에 참가하는 프로젝트도 흥미로웠는데요. 그 합창대회 곡으로 소개된 것이 바로 이 넬라 판타지아였습니다. 이 곡은 영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전혀 알아 먹을 수 없는 곡이었지만요. 처음 이 곡을 듣는 순간에 소리가 참 예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서 또 좋다고 느꼈는데요. 그 이유는 보다 뒤에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사를 살펴보게 되었고요. 가사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혹시 아까 가사를 주목하지 않으셨어도 괜찮습니다. 제가 나중에 이 곡의 가사를 다시 보여드릴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이 곡의 가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은 오래된 책이지만, 오늘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더 정확히는 오늘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있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성경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을 다시금 같이 읽습니다.
요한복음 5:39(신약 151쪽)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성경이 곧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의 제목을 “성경: 예수님으로 완성된다”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결국 예수님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여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랜 병에 시달린 환자 더 정확히는 38년 동안 병을 앓은 환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서 비롯됩니다.
이 환자는 당시에 기적적인 치료가 일어난다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천사가 내려와 물이 출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나 낳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38년간 병을 앓아온 그도 이 이야기듣고 그곳에 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병은 깊어졌고 오랜 기간 병에 육신이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38년 동안 병을 앓아온 그는 곧장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걷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때 종교지도자들이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문제는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리고 38년 동안 병을 앓아온 그의 행동은 안식일의 법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물건을 옮기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노동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물건을 옮기는 것은 노동으로 여겨졌기에 38년 동안 병을 알아온 그는 죄를 범한 것이 되었습니다.
한편 이것이 율법주의가 불러오는 비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율법의 잣대로만 사람을 보니까요. 오랜 병에 시달리다가 병을 낳은 사람에게 축하의 말을 하지 못하고요. 오히려 율법을 어겼으니 잘못했다고 따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결과적으로 서로서로 사랑하고 살라는 것에 있었는데요. 오히려 그 율법은 사람을 옭아매는 사슬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종종 교회에서 이러한 우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그런 경우가 드물지만요. 예전에는 이 자리 곧 강대상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는 것을 문제 삼기도 하고요. 또 아이들이 강대상에 올라다니 못하게 제지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요. 이 공간은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이고요. 또한, 아이들이 교회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안식일 법을 어긴 것에 관해 종교지도자들은 문제 제기를 했고요. 38년 동안 병을 앓았던 그에게 안식일에 왜 물건을 옮기는 일을 했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예수님에게서 비롯된 일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이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여러 증거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가령, 당시 영향력 있었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한 것에 관해 또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당시 하늘의 음성이 들렸던 것에 관해 그리고 특히나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성경이 증언하는 분임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예수님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인 성경에 따른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경을 연구한다는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종교지도자들의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교지도자들이 성경을 연구하는데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연구한다는 말의 원어적인 의미는 ‘샅샅이 뒤지다, 추적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사냥개가 냄새를 따라 먹잇감을 끝까지 추적하는 집요한 모습이며, 잃어버린 보물을 찾기 위해 온 방안을 뒤집어 놓는 상태와 같습니다. 이만큼 철두철미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자들이 종교지도자들임에도 불구하고요. 그들은 눈앞에 있는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정작 성경이 가르키고 나타내는 분은 예수님인데 말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성경을 그렇게도 열심히 연구했던 것은요. 영생을 얻기 위함이라고 예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무엇입니까? 그냥 오래 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영원히 사귐을 이루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눈앞에 나타나 있음에도 종교지도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영생을 오해했거나 성경의 목적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요. 성경이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요. 이 책을 통해 지식을 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식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성경이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이유는 예수님을 아는 것 또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성경을 잘못 읽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거죠. 지도 또는 요즘엔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이유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지도 자체가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요. 그 지도가 가리키는 곳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를 보고 목적지에 닿지 못한다면요. 지도를 잘못 보고있거나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라고요.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만나는 목적지를 향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안다는 것 또는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이렇게 이해 볼 수 있는데요. 마치 부부가 서로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서로의 생일을 알고 결혼기념일을 아는 차원의 앎을 넘어섭니다. 경험적인 차원에서 그 사람이 언제 기뻐하고 언제 슬퍼하는지를 아는 것이고요. 보이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깊이 알아채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래된 부부는 눈빛만 봐도 안다는 얘기를 하곤 하잖아요.
이처럼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요. 결국, 예수님을 경험하는 일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시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눈으로 보시거나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거나 예수님과 악수나 포옹과 같은 경험을 하신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는 분들도 간혹 있지만요. 보통의 경우에 우리는 실질적으로 예수님을 눈으로 보거나 소리를 듣거나 만질 수 없죠. 이미 예수님은 오래전에 하늘로 올라가셨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도 말씀하셨지만,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지만,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람이 부는 곳에는 나뭇가지와 같은 것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바람이 있다고 말하고 바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요. 예수님을 통해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 변화는 많이 들어본 간증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과 달라진 나를 사람들은 간증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그 변화가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주로 어떤 변화일까요?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배경이 되는 38년 동안 병을 앓던 사람은 나음을 입었습니다. 또 삭개오라는 인물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서는 이전의 삶과 달라지는 지점이 생기는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제 우리의 고민은 나는 예수를 만났나? 그렇다면 나는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나? 하는 것일 겁니다. 만약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요. 지금 하는 이야기를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변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쉽지는 않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성경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 시작했을 때, 그의 삶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는 것처럼 결코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의심이 들기도 했고, 때로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따랐을 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그는 분명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자주 저보다 아내가 더 훌륭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목회자의 자질로써는 아내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밝혔지만 저는 사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 때로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제가 본바탕이 내향적이고요. 감정을 다루는 것이 서툴고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반면에 저의 아내는 저와는 정반대라서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이른바 무대체질입니다. 더욱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요. 저는 목회 또는 신앙생활이 결국 관계 맺음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점에서 목회적 자질은 아내가 더 나아 보입니다. 언젠가 아내에게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목회에 전념하겠다고 하면, 내가 사모 아니 사부 할게. 당신은 나보다 더 잘 할 테니까.’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인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는가? 내가 신앙인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옳다고 믿는데,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내 생각으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지 않나? 또 그것은 신앙적이지 않는 삶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지금 내가 걷는 길이 내게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제가 믿는 것은 이렇습니다. 어째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면, 그 분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것이 여러분께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나가는 길이 저로서는 아무런 고민과 걱정이 없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현실에서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은요.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이고요. 그분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심했기에 내 생각을 따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요. 예수님을 만난 인생은 결국 기적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를 들면 이렇습니다. 들 포도인 우리가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접 붙으면 우리는 참 포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들포도가 참포도가 되는 것은요. 하지만 예수님께 꼭 붙어 있으면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여서 살아간다면요. 우리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깊이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이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좋은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더 정확히는 예수님이 여전히 이 세상에서 필요한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독교인의 입장 말고 비기독교의 입장에서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대체로 기독교인으로서는 예수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공통적인 생각이니까요. 반면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말할 이유가 있다면, 참으로 세상은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가능성을 설교의 처음에 들려드린 노래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가 완전히 기독교와 무관하게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 영화인 ‘미션’의 배경음악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 노래가 찬양이나 찬송가에 속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대중가요에 가깝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요. 이 노래의 가사를 통해 결국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를 수 있습니다.
먼저 가사를 천천히 읽어 드리겠습니다.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환상 속에서 나는 정의로운 세상을 봅니다)
Li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à
(그곳에선 모두가 평화롭고 정직하게 살아가죠)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들을 꿈꿉니다)
Come nuvole che volano
(마치 높이 날아다니는 구름처럼)
Pien d'umanità in fondo all'anima
(영혼 깊은 곳까지 인간애로 가득 찬)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환상 속에서 나는 정의로운 세상을 봅니다)
Li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à
(그곳에선 모두가 평화롭고 정직하게 살아가죠)
Nella fantasia io sogno un mondo libero
(환상 속에서 나는 자유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Che sempre libera io sogno d'anime
(항상 자유로운 영혼들을 꿈꿉니다)
Che volano come nuvole
(구름처럼 날아다니는)
Che volano in libertà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Spiriti pieni d'umanità
(인간애로 가득 찬 영혼들이)
Che volano come nuvole
(구름처럼 날아다니는)
Che volano in libertà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Spiriti pieni d'umanità
(인간애로 가득 찬 영혼들이)
Che volano in libertà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가사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 그리고 자유가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제목이 ‘넬라 판타지아’라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목의 뜻은 ‘나의 환상 속에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에 없는 것들에 관해 혹은 완전하지 않은 것에 관해 이와 같은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은 현재 정의, 평화, 자유가 완전해지길 꿈꾼다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바로 우리에게 이것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습니다. 인간의 힘과 제도만으로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넬라 판타지아’ 곧 이 제목처럼 꿈꾸는 일들은 현실과 먼 환상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그 환상을 현실로 바꾸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만날 수 있음을 오늘 이야기했는데요. 이러한 이유로 이 노래는 제게 이 세상에 여전히 성경이 또는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예수님을 통해 정의, 평화, 자유가 임할 것을 기대하십니까? 그렇다면, 성경을 가까이하십시오. 그리고 그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분이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에게 기적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라건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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