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아픈 만큼 성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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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히브리서 4:12-13(신약 356쪽)
설교제목: 성경: 아픈 만큼 성숙한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기뻐하십니다.”
저는 성경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그렇게 믿으시죠. 그런데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성경이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 160절입니다.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시편 119:160
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달리 보자면, 비기독교인에게는 이 말씀은 성경이 진리라는 증거가 될 수 없죠.
그래서 성경이 진리라는 것이 모두에게 설득력 있으려면요. 성경 밖에서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저는 오늘 그에 관한 한 영상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영상의 내용은 ‘성경은 진리입니다’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영상에 나오는 이야기는 성경이 진리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 이유는 뒤에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보여드릴 영상의 실제 내용은요. 뇌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님의 강의 영상입니다. 전체 영상의 약 3분의 1을 잘라 온 것입니다. 약 4분 정도의 영상입니다. 대략적인 내용은 고통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체 장동선 박사님은 고통을 왜 유익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이에 관해서 영상을 통해 살펴보고요. 있다가 제가 왜 이 영상을 통해 성경이 진리임을 이야기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 영상: 4분 28초
제가 깊이 있게는 모르지만요. ‘뇌과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최신의 연구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뇌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최근의 연구 방법입니다. 저는 종종 뇌과학 관련 책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뇌라는 것이 인간 행동에 얼마나 놀라운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고요. 또 이를 바탕으로 연구한 내용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방금 본 영상도 이와 관련해서 제가 흥미롭게 본 것인데요. 어쩌면 대부분 사람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거나 그것이 행복과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러나 인간에 관한 최신의 연구는 오히려 고통이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게 한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고통을 피하는 선택이 도리어 행복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강의 전체 영상의 끝부분에 가면 이런 얘기를 해요. 고통이라는 것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있지만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선택되기도 하죠. 가령,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장애가 생기거나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경험할 수 있죠. 이런 고통도 과연 도움이 되냐는 얘기가 영상 끝부분에 나오는데요. 엄밀하게 말하면,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통만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비자발적으로 이뤄진 고통이라고 할지라도요. 많은 경우에 그 고통이 삶에 큰 문제로 여기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 그림 ]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 저에게는 새롭지는 않습니다. 일전에 소개한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행복과 건강의 비결은 불편함을 택하는 것에 있음을 말입니다. 다만, 저는 이를 바탕으로 저는 성경의 이야기가 참임을 생각합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도 시련과 고통을 겪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요. 하나뿐인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받습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평가받은 다윗도 오랜 기간 사울을 피해 도망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마저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고난이 결국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이유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주신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련을 겪었던 인물들이 긴 역사를 지나고 우리에게 여전히 기억되고 본보기가 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사진 ]
이는 단지 성경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른바 위인이라고 불렸던 인물의 삶은 언제나 고통을 통과하는 삶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아시죠.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상입니다. 잘 아시지만, 이순신 장군은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그러나 그의 인기를 시기한 당시 임금인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명령 불복종의 혐의를 씌워 거의 죽기 직전까지 고문을 했습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구하느라 가족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전장을 향해야 했고, 막내 아들은 왜적과 싸우다 세상을 떠납니다. 이순신이 이때의 심정을 난중일기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늘의 해조차 깜깜하다,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이 사진은 흑인 최초의 대통령 넬슨 만델라입니다. 그는 인생의 3분의 1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매일 돌을 깨는 중노동을 해야 했고요. 감옥에서도 인종차별로 가장 적은 양의 식사와 질 나쁜 의복을 배급받았습니다. 오랜 기간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으며 아내와 자녀들은 계속되는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더욱이 감옥의 불결한 환경은 그의 건강을 갈아 먹었고 폐결핵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분만 더 소개합니다. 오전에 담임목사님 설교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었는데요. 김대중 대통령 또한 많은 고초를 겪은 인물입니다. 오전에 들으신 것처럼, 그는 일본에서 납치되어 바다에 수장될 뻔하였는데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살면서 6년여의 옥살이와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더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요. 이와 같이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에서 고난은 그 인물을 성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어쩌면,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위대한 삶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옛말에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은 진리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는 성경에서도 세상에서도 모두 증명되는 말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만든 어떤 것도 불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고난이나 고통이라 할지라도 앞서 말씀드렸듯이요. 이 역시 우리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이는 성경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깨닫게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고통을 예고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우리를 변화로 이끌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이를 분명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13절의 말씀을 다시금 같이 읽습니다.
히브리서 4:12-13(신약 356쪽)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라고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성경을 검에 비유하고 있는데요. 이 검은 짧은 단검으로 주로 제사에서 동물을 정교하게 분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마치 이 검과 같이 우리의 깊은 곳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13절의 벌거벗은이라는 말은요. 기본적인 의미는 옷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요. 원어 의미에서 보면요. 이 말은 목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요. 급소가 완전히 노출되어 거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마치 제사를 드릴 때, 동물의 목을 뒤로 젖혀서 꼼짝할 수 없게 된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구절은 이와 같은 이미지로 이해해 보면 좋습니다. 우리가 발가벗겨져 수술대에 누워 있습니다. 예리하게 다듬어진 메스는 날카로워 보이고요. 주변에 있는 수술용 도구들은 이의 몸을 세밀하게 구석구석 헤집을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또는 성경이 마치 이처럼 우리를 깊고 세밀하게 헤집을 수 있습니다.
유명한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 청년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청년은 자신 있게 그것은 자신이 일찍부터 지켜왔던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직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에 그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껍데기를 넘어 우리의 영혼에까지 도달합니다. 부자 청년은 남들이 보기에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을 갖춰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율법을 따라 살아왔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사실은 그가 가진 소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내면을 통찰하시면서 그에게 그것을 내버리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청년에게 근심으로 또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고통을 줄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성경을 읽는 과정은 말씀의 검이 우리의 내면을 속속들이 헤집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의 수치를 드러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찔림이 없다면, 아마도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읽고 있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고통을 외면하고 상처를 내버려 두면, 그것은 곪아서 썩어지게 됩니다. 치료하기 위해서는 때로 고통을 감내하고 그것과 마주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에 다가서고 통증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전과 다른 변화로 나아갑니다.
저는 어제 청년들과 단체 영화관람을 하러 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관람이라는 것 자체도 저에겐 특별했습니다. 아이가 생긴 후로 영화관 출입을 편하게 할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청년들과 함께 영화관람을 하려 했던 것은 영화관에 가고 싶은 저의 소원풀이는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교육활동 하나로요. 함께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사진 ]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신의악단’이라는 영화인데요. 작년 말쯤에 개봉해서 현재까지 누적관객이 81만을 기록했습니다. 어제 저희도 영화를 보러 갔으니, 81만 10명이 넘었을 겁니다. 보통 기독교 영화는 흥행이 잘되지 않아서 상영관을 찾기도 어렵고 화제성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의리로 영화를 보러 가긴 하지만, 대체로 아쉬움을 가득 안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본 ‘신의악단’은 기독교영화 치고는 흥행돌풍을 일으키면서요. 여러 상영관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요. 현재까지 꽤 유의미한 누적 관객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제 함께 간 청년들도 제가 옆에서 지켜보진 못했지만, 영화를 보고 눈물을 훔쳤다는 간증이 암암리에 들려옵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영화를 보러 가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영화를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니까요. 어떤 내용인지 정도만 얘기하겠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1990년대 북한을 배경으로요. 북한에서 ‘가짜 찬양단’을 만들어 부흥회를 준비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습니다. 유일한 종교가 있다면, 북한의 지도자를 숭배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정치적인 이유로 교회가 세워지고 찬양단이 만들어지며 부흥회를 한다는 것이 꽤 신선한 이야기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중심에서 진두지휘하는 이들은 기독교 탄압에 앞장서는 이들입니다. 이른바 보위부라고 해서, 북한의 지하교회 조직을 조사하고 말살하려는 자들입니다. 가짜 기독교인 행세를 하면서, 진짜처럼 보이려는 이들의 노력은 우습기도 하고 마치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을 향한 비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이렇게 가짜였던 사람들이 진짜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해 읽었던 성경과 함께 부른 찬양이 이들의 마음을 조금씩 변화시켜갑니다. 그러면서 가짜가 진짜로 바뀌어 가는 상황은 참 놀랍게 다가옵니다. 혹시 이게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더 명장면과 또 영화의 반전은 다른 것에 있습니다.
영화 얘기를 길게 했는데요. 이것만 이야기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진짜는 가짜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진리인 것은요.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온 글자가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성경이 마술적인 책이라서도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를 벌거벗겨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게 함으로써 변화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을 봅니다. 제 모습이 어떤지를 살피고 돌아보는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그러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듬어 갑니다. 흐트러지고 헝클어진 것을 정돈하고 자신을 바로 세워 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착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