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중에 기도할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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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5:11-12(구약 807쪽)
설교제목: 환란 중에 기도할 수 있는 이유.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반갑습니다.
주님의 따스한 온기가 이곳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시편을 통해 설교 준비를 하면서요.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어떤 단어들은 그것을 자세히 이해하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분명하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가령,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 ‘방패’라는 표현이 나와요. 방패라는 말이 어려운 분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시인이 방패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이 방패에 관해 자료를 살펴보니까요. 왜 시인이 방패라는 표현을 썼는지 알겠더라고요. 그 이유는 있다가 말씀드릴 텐데요. 저랑 같이 차근차근 살펴보시죠.
우선 방패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칼이나 화살과 같은 공격의 위협을 방어하기 사용하는 전쟁용 방어구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방패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알 수 없지만요. 역사적 유물을 통해 매우 오래전부터 방패를 사용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방패라는 것이 막 획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됐다기 보다는요.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고 또 쉽게 만들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해서 방패의 등장은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고대 벽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종종 구석기나 신석기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최대 약 70만년 전부터 최소 약 1만년 전부터 방패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어요. 역사적으로 기록으로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 수메르의 ‘독수리 비석’에 나타납니다. 가장 오래된 전쟁의 기록을 담고 있는 이 비석에서 방패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대략 수메르 군대가 어깨부터 발목까지 가리는 거대한 사각형 방패를 앞세우고 밀집대형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패의 재질도 처음에는 나무나 가죽에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청동이나 철로 변화되었고요. 때로는 실용성보다는 보여주기용 다른 말로 의전용으로 방패에 금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성경에도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나무로 만든 방패에 금을 입힌 금방패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방패가 전쟁에서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면서 이에 따른 전쟁 기술이 발전하기도 했는데요. 고대 그리스는 ‘팔랑크스 대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요. 둥근 방패와 긴 창을 이용해서요. 마치 고슴도치처럼 창을 세우고 방패로 서로를 보호하면서 밀집대형을 유지하며 전진하는 방식의 전쟁기술을 만들었고요. 고대 로마는 ‘테스투도 대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요. 온몸을 가릴 수 있는 직사각형 방패를 이용해서요. 마치 딱딱한 등껍질에 숨은 거북이처럼 밀집대형으로 방패를 촘촘히 덮어 안전하게 전직을 돌파하는 기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기술이 발달하면서 무기가 강력해지니까요. 이전에 화살이나 칼을 막던 방패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요. 총과 같은 강력한 무기에 방패는 뚫려버리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고대처럼 전쟁에서 방패를 사용하진 않지만요. 방패의 기술도 올라가서 가볍고 단단한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방패를 통해 시위 진압과 같은 치안 유지에 주로 사용하고 있어요. 요즘에 그런 장면이 잘 나타나지 않아서 한편 다행인데요. 예전에 전경들이 투명한 방패를 들고 시위 현장에 쭉 둘러서 있던 장면일 뉴스 등으로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렇게 방패라는 것이 현대에는 크게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요, 고대에는 전쟁에서 필수적이면서 전투의 기술 중 하나로 사용될 만큼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성경에서도 강력한 보호막의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요. 성경에서 이 방패에 관한 단어를 크게 둘로 나눠서 쓰고 있어요.
하나는 히브리어 마겐(מָגֵן)인데 이는 작은 방패를 뜻합니다. 이는 주로 전쟁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보병들이 사용한 방패로 주로 상반신을 가리기 위한 방패인데요. 이에 반해 다른 하나는 친나(צִנָּה)이고요. 이는 큰 방패를 뜻합니다. 대략 길이가 120~150cm 정도로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크기의 방패를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에 사용된 ‘방패’라는 단어가 바로 이 ‘친나’ 곧 큰 방패를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릴게요. 오늘 성경이 방패를 이야기하는 것은요. 하나님께서 큰 방패와 같이 온전히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가 있어요.
오늘 시편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런 거예요. 시인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있어요. 원수들의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인은 어려움에 부닥쳐있고요. 이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어요. 그런데 시인이 이와 같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유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 나타나는 것인데요. 시편 5편 11~12절을 같이 읽습니다.
시편 5:11-12(구약 807쪽)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결국 시인은 하나님께로 가면 하나님께서 방패와 같이 우리를 지키실 것을 믿기 때문에 환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로부터 생각해보는 거예요. 시인이 오늘 하나님의 도움을 방패로 비유한 것이 어떤 느낌인지하고 말이지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방패라는 것이 강력한 보호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테지만요. 적어도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 방패는 전쟁에서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을 거예요. 특히나 여기서 말하는 방패는 전신을 감쌀 수 있는 큰 방패잖아요. 그러니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보호는 몸 전체를 보호할 수 있는 빈틈 없는 것이고 완전한 것임을 말하고 싶은 거예요.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해 볼 것은 이런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라고 해서요.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방패는 평화로울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사용하는 것이니까요. 다시 말해서, 방패가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가 전쟁에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죠. 이는 어쩌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 있어요. 왜 전쟁이 일어나나요? 서로 같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에 편에 설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대적자들과 맞서게 돼요. 그것은 때로 우리를 두렵게 할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죠.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 되시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데, 내 삶은 왜 힘들고 내게는 왜 문제가 생겨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기 때문에요. 그러니 우리가 신실하게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어쩌면 우리에게 시련이 닥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죠. 달리 말하면, 지금껏 내가 신앙생활 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내 신앙생활을 점검해 봐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 위협이나 문제 앞에서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신을 감싸는 방패처럼 지키고 보호해 주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여전히 화살이 날아들고 칼의 위협이 우리를 덮쳐 올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그것에 두려워 않을 수 있는 것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믿음에 있어요.
저는 이것이 오늘 이 시편을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이 아닌가 해요. 쉽게 말해, 하나님을 잘 믿어도 여전히 우리의 삶에는 고난이 찾아올 수 있지만요. 그것이 우리를 쓰러트리지 못한다는 것 말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우리가 그 고난 앞에 쓰러지지 않도록 우리를 온전히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바라건대, 오늘 우리가 이 믿음 안에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 삶에 방패가 되고 내 삶의 완전한 보호막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서요. 내게 주어지는 어떤 역경에도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