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양식, 주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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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양식은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 사마리아인의 메시아(타헤브) 요약구분내용 요약
명칭
타헤브 (Taheb): '회복시키는 자', '돌아오는 자'라는 뜻
모델 제2의 모세: 기적을 행하는 왕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
핵심 임무진리 전수: 율법의 참뜻을 가르치고 잘못된 예배 방식을 바로잡음영적 회복예배
회복: 그리심 산의 성소 권위를 되찾고 하나님과 백성을 화해시킴
차이점 : 정치적 독립(유대인 기대)보다는 종교적 정통성 확립에 집중.
사마리아인들은 이처럼 '가르침'과 '회복'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예수님이 그들의 과거를 꿰뚫어 보시고 영적인 진리를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보다 더 빨리 그분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 인들의 특징 4가지: 민족적, 종교적, 관계적(유대인과 갈등), 사회적(소외된 자)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한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종교적 비극으로 인해 매우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의 특징을 4가지 핵심 포인트로 정리해 드립니다.
1. "혼혈 민족"이라는 혈통적 아픔
사마리아인들의 비극은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강제 혼혈 정책: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고, 그 자리에 이방인들을 이주시켜 강제로 혼혈 정책을 폈습니다.
유대인의 멸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남유다 사람들은 혈통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2. "그리심 산" 중심의 독자적 신앙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고집할 때,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을 하나님의 처소라고 믿었습니다.
사마리아 오경: 이들은 구약 성경 중 오직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배 장소 갈등: 유대인들이 그리심 산의 성전을 파괴(BC 128년)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양측의 감정은 "원수" 수준으로 깊어졌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 장소를 묻는 이유가 이 뿌리 깊은 갈등 때문입니다.
3. 유대인과의 "상종 불가" (사회적 고립)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습니다.
접촉 금지: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이 사용하는 그릇만 닿아도 부정해진다고 믿었습니다.
우회로 이용: 유대인들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 직선코스인 사마리아 지역을 피하기 위해 요단강 건너편으로 멀리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관통하신 것은 당시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4. 소외된 자들을 향한 "간절한 기다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종교적으로 이단 취급을 받았기에, 그들은 오히려 **'회복시키는 분(타헤브)'**에 대한 열망이 매우 컸습니다.
정치적 승리보다는 진리의 회복과 자신들을 인정해 줄 선지자를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간절함 덕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을 때 유대인들보다 더 개방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이때는, 사마리아 여인이 앞에 계신 예수님이 메사아,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은후에 입니다.
무엇을 믿었는지, 믿은 자의 반응이 어떠한지, 28절, 29절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29절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사마리안 이들의 특징과 사마리안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그리스도 사상은 유대인들과 달랐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오직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보았기 때문에, 모든 근거는 신명기와 출애굽기 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의 메시아, 그리스도 사상은 다윗 왕이 아니라, 모세와 같은 선지자, 교사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히브리어로 **'타헤브(Taheb)'**라고 불렀는데, 이는 "회복시키는 자" 또는 **"돌아오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의 메시아 특징 3가지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 "모세와 같은 선지자" (가장 중요한 근거)신명기 18: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의미: 사마리아인들은 이 구절을 메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메시아는 다윗 같은 '왕'이 아니라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습니다. 왕이 아니라, 선지자였습니다.
2.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교사"요한복음 4:25 (사마리아 여인의 고백)"여자가 이르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의미: 성경에 기록된 사마리아인의 실제 목소리입니다.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종교적 난제와 진리를 명쾌하게 가르쳐 줄 '지혜의 교사'임을 보여줍니다.
3. "예배 장소의 회복"신명기 11:29"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의미: 사마리아인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그리심 산이 유일한 성소라고 믿었습니다. 타헤브가 오면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그리심 산의 정통성을 완전히 회복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감추고 싶은 과거와 현재 까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기다리던 모든 것을 다 알고, 가르쳐 주는 선지자, 예언자 같은 인물이 등장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 들이기가 수월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다렸던 여인은 28절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이 기다렸던 문제의 해결자로 제대로 믿게 되면, 현실의 문제가 그대로 있어도, 주님을 만난 그 기쁨이 문제를 극복해 버리는 것을 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기쁨은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자, 예수님의 기쁨이었고, 성령님의 기쁨이자, 하늘의 천사들의 기쁨이었고, 아벨, 노아, 아브라함, 다윗등 믿음의 조상들의 기쁨이었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보여주신, 새로운 안식일의 개념, 한 신랑 그리스도를 모신 , 신부들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버지를 모신,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잃어 버린 자녀, 죽었던 탕자가 살아서 집에 온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까?
그 기쁨이 사역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4: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예수님을 그리스도의 믿은 한 사람의 기쁨이, 나를 넘어 동네로 퍼져갔습니다.
사역의 확산은 기쁨입니다.
사역의 힘은 기쁨입니다.
물론 고통과 인내도 있습니다만은 사도행전 이후로, 서신서에 나타난 사도들과 믿음의 선배들의 얼굴에는 고통중에도 기쁨이 넘쳤던 것을 봅니다.
요한복음 4: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41절 그 사이에 . 사마리아 여인이 전도하여,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걸어 오는 그 사이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누가 그 여인을 변화 시켰을까?
우울증에 빠져 있던, 싫어증에 걸린 여인을 누가 이렇게도 밝게 만들었는가?
누가 이런 환한 얼굴, 기쁨이 넘치게 만들었는가?
궁금해서, 예수님께로 몰려 오고 있었습니다.
혹은 정말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진리의 선지자가 나타난것 아닐까? 기대감에 몰려 오고 있었을 것입니다.
식사도 하지 못한 예수님께 제자들은 마을에서 구해온 음식을 드렸습니다.
요한복음 4: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그러자 예수님은 다른 음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우리가 음식을 구하러 간사이에, 다른 사람이 음식을 갖다 드렸구나 결론을 내리려고 하고있을때,
제자들이 엉뚱하게 추측하지 못하도록,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육적인 양식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이 있다.
예수님의 양식은 “임무를 완수할때 얻는 기쁨 “ 이었습니다.
영적 포만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 이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잃어 버린 자를 찾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가실때부터 하나님의 잃어 버린 자녀, 사랑하는 영혼을 살리실 기대로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만나, 그 여인이 믿음을 갖게 되므로 , 여인이 살아나는 것을 목격 하셨습니다. 임무를 온전히 이루신것입니다.
자신을 통해 죄인이 모든 용서를 받고, 의인이 되는것, 고아와 같이 살던 자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것, 하늘의 모든 것을 나눌 상속자가 되는것, 지옥 갈 사람이 천국에 가게 만드시는 임무를 이루셨습니다.
물론 이 일은 십자가에서 대속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후에, 성령을 보내셔야 땅에서 완성됩니다.
그리고 다시 오셔서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의 몸을 영적이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 시키켜야 최종 임무 완성이 됩니다만은, 적어도 땅에서 할일은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기쁜 선물을 받거나, 곧 포장을 뜯게 되거나 하면 밥을 뒤로 합니다. 평소에는 많이 먹는데, 그 기쁨때문에 빨리 먹고, 선물로 달려 갑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밥을 대충 먹고, 그 사람에게로 달려 갑니다. 어린 아이들을 통해서 볼수 있습니다.
밥먹고 TV 보여 줄께, 밥먹고, 밖에 나가 놀수 있게 해줄게. 하면 대충 먹고 다 먹었어요~~ 배불러요 그럽니다.
또한 사촌 동생, 언니, 오빠가 찾아왔을때, 서로 놀고 싶어가지고, 밥을 조금 먹고, 자기 들끼리 놀러 가버립니다.
기쁨이 넘치면 육신의 한끼 허기 정도는 거뜬하게 이겨버리는 것을 봅니다.
우리도 새차 사거나, 새 노트북, 새 악기, 혹은, 씽크대를 바꾸거나, 밥솥을 새로 사거나하면, 얼른 테스트 해보고 싶어서, 밥도 조금 먹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없다면, 밥에 몰두 하게 됩니다.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현실적인 문제 해결과 상황을 처리하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입니다.
그것은 추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4: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추수는 태양력 기준으로 보통 4-5월에 보리 추수가 있습니다 . 4월에 보리, 5,6월에 밀추수가 있습니다. 9,10월에는 올리브와 포도추수가 있습니다.
35절에 넉달이 지나야 추수를 하게 되므로, 학자들은 지금은 12월에서 1월경으로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2월에 이스라엘을 갔는데, 우기였고, 정오에 뜨겁지 않았습니다. 얇은 패딩을 입고 다녀야 했습니다. 공기는 시원하지만 정오의 햇볕은 강해서, 썬글라스를 쓰고 다니기는 했습니다.
12-1월이 그렇게 더웠을까? 싶은데, 2000년 전에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것은 시간과 날짜보다는, 영적인 추수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영적인 추수가 지금이라고 알려주시는것이 핵심입니다.
요한복음 4: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은 밭이 희여져 추수할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희여졌다는것은 밀과 보리가 다 완숙해져서, 낫으로 베어야할때를 말합니다. 희여졌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자기에게 몰려 오는 모습을 보시고, 지금이 “마음이 열려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음을 갖게될 때 “라는 의미도 될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십니다. 눈을 들어 사람들을 보라고 하십니다. 마음이 열려 예수님을 믿을 사람이 많아 보입니까?
38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노력하지 않은 것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추수의 사명입니다.
여기서 거두다는 것은 익은 곡식을 낫으로 베어서 창고에 들여놓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하는 영적 추수를 말합니다.
3장에서 니고데모를 통해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 오직 예수님의 대속! 오직 성령님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될수 없고,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수도 없습니다.
영적 추수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노동” 입니다.
그런데 추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먼저, 이미 삯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거두는 자는 복음을 전하여 ,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자, 영접하게 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이미” 받았다는 것은 추수의 보상이 ‘미래의 상급’으로만 미뤄진 게 아니라, 사역하는 자리에서 지금도 주어진다는 뜻이 강합니다.
어떤 보상일까요? 영적인 기쁨인데, 36절에는 사역의 기쁨을 말씀합니다.
두 가지만 기쁨을 더 나누자면,
첫째, 죄 사함의 기쁨 (요일 1:9) 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모든 죄가 사하여 집니다.
사도행전 10: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둘째, 사귐의 기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 누리는 기쁨 입니다.
요한1서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의 본질은 아버지와 아들을 경험적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고, 일을 통해, 환경을 통해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도와 함께 교제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셋째, 36절에 사역의 기쁨 입니다.
농부는 보통 추수가 끝나야 품삯을 받지만, 복음의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모습 그 자체가 사역자에게 주어지는 즉각적인 보상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큰 수고를 하기도 전에 영혼들이 회복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은혜의 삯'을 이미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누릴수 있는 기쁨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누구나 누리지 못하는 기쁨이 몇가지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만 누릴수 있는 부부의 기쁨이 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자녀를 낳지 않았다면, 자녀를 통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결혼하고서 자녀를 낳은 부모만 누릴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음 전도를 통해, 복음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통해 영적인 부모가 되어서, 새생명을 낳고, 새생명이 자라나, 성숙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기쁨은 아무나 누릴수 없는 영적인 기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고, 아들 예수님과 성령님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전도자와 양육자만 누릴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잃어 버린 백성을, 자녀를 찾고 싶은 열망, 영적인 아이를 낳고자하는 열망, 지옥갈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 나라로 옮겨놓고 싶은 열망이 없다면, 누릴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남의 기쁨에 쉽게 참여하지 못합니다.
다른 이들의 승진과 결혼과 자녀탄생에 그렇게 기쁨으로 참여하지 못합니다.
처음엔 우리의 변화된 모습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관심을 갖는데,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는 예수님이 직접하시는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믿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요한복음 4: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요한복음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우리는 기쁨이 회복되어야합니다.
죄사함의 기쁨, 주님과 사귀는 기쁨, 성도와 사귀는 기쁨, 사역의 기쁨이 회복되어야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자하는 열망, 그들이 살아났을때 기쁨,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통해 얻는 기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기도.
주님 로마의 압제 아래, 유대인의 멸시 아래, 경제적, 관계적 고통속에 사는 자들이 주님께서 마음을 열어 놓으신 사람인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가면 되는데,,,, 그들이 어디 있는지요…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목적이 성취되고 있다. 이 목적대로 읽을수 있기를.
예수님은 땅에 계실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