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휘둘리면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회(시편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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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4:1-5(구약 806쪽)
설교제목 : 감정에 휘둘리면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반갑습니다.
주님의 따스한 온기가 이곳에 가득 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언젠가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인데요.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것이 없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령, 우리는 기쁨, 감사, 행복 등의 긍정적인 감정은 좋은 것이고 필요하다 여길 수 있지만요. 반면에 슬픔, 분노, 고통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불필요하다고 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의 감정 역시도 인간에 꼭 필요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이런 겁니다. 우리가 ‘혐오’라는 감정은 부정적이면서도 차별적인 감정이라서 결코 좋은 감정이라 여길 수 없을텐데요. 인간이 오래 전부터 생존해 올 수 있던 것에는 이 혐오라는 감정이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음식을 먹는데, 곰팡이가 피고, 썩어져 가는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었다면 인류는 오래도록 살아남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음식에 혐오를 느끼는 감정은 인간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고요. 한편 그와 같은 감정을 가졌던 인류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감정은 각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우면서 당연한 일인데요. 어떤 학자에 따르면, 우리가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이성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스레 이성과 감성을 모두 지닌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데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예가 ‘가인’으로 소개가 됩니다. 아시다시피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에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을 얻게 됩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을 쳤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산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분노한 가인은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여 동생을 죽음입니다. 이 때문에 가인은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살인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다스려지지 않은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합니다. 이에 관해 오늘 성경도 우리게 이야기하는데요. 오늘 시편 말씀 4절을 같이 읽습니다.
시편 4:4(구약 806쪽)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여기서 ‘떨며’라는 말은 분노하다는 뜻입니다. 원어에서 보면 분노로 몸이 떨리는 상태를 일컸는 말인데요. 방금 읽은 성경구절에서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분노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죄를 범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분노라는 것이요. 대체로 상대가 나에게 불의를 행함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도 사실 시인이 정당한 분노를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어제 우리가 살펴본 시편 3편과 시편 4편은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 시편 3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피해서 도망자로 지낼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시편 4편 역시 다윗의 시로 다윗이 그와 같은 곤경에 처했을 지은 시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분노가 치밀 수 있습니다. 아들에게 배신을 당하였고 백성들의 마음을 잃고 자신 가까이 있던 신하들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이 아들 압살롬에 관한 분노로 몸이 떨려 주체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참 놀라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떨며, 범죄하지 말라’라고 스스로를 절제하며 감정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억울하고 화가 나고 하는 것은 인간인지라 상황에 따라 지금 다윗과 같은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감정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우리는 하나님께 토로할 수 있지만요. 이를 다른 사람을 저주하거나 복수하는 것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감정에 사로잡혀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왜, 정당하다고 느껴지는 일이고 심지어 감정을 느낄 수 있음에도 그것을 절제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감정은 즉각적인 행동을 일으켜서 잘못된 결정을 일으킬 수 있지만요. 이성을 통과하면서 보다 좋은 결과를 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떤 책에서 보았던 이야기인데요. 책을 쓴 저자가 길이 좁아지는 도로에서 차를 조심히 몰고가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반대편에서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질주하는 차량을 보며 이대 죽나 싶었답니다. 가까스로 상대편의 차가 자신의 차 앞에서 멈춰섰고요. 사고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화가 나서 ‘대체 운전을 왜 그렇게 하느냐’라고 쏘아붙이려던 찰라였습니다.
자신의 머리에 헤어롤이 달려 있다는 것이 생각이 나서요. 일단 헤어롤를 제거하고 얘기해야겠다고 싶어서 헤어롤를 빼는데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도 사고가 안 것이 얼마나 다행이야, 그렇게 생각을 하고나니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더라고 해요. 그러면서 상대편 운전자에게 가서 친절하게 이렇게 말했데요. ‘괜찮냐고, 여기가 길이 좁아서 놀라셨을것 같다고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빨리 차를 빼달라는 식’으로 반응을 하니 가라앉았던 분노가 다시 올라오려고 했는데요.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잘 다스려서 알았다고 하고 서로 조금 양보하면 여기를 지날 수 있겠다고 얘기하고서요. 조금 차를 움직여서 그곳을 빠질 수 있게 되었데요. 그리고 상대편 차가 완전히 빠질 수 있게 되니까요. 상대가 창문을 열고서는 ‘아까는 죄송했다’라고 이야기하면 갔다고 해요.
만약에 감정에만 휘둘렸다면, 이 일은 싸움으로 번졌을 것이고요. 서로에게 결코 좋지 않은 상황과 기억으로 남았을 수 있을 거에요. 그러나 감정을 잘 다스린 덕분에 이 일은 좋게 마무리가 될 수 있었죠.
제가 언젠가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배웠던 것인데요. 사람은 질책하고 문제를 지적한다고 바뀌지 않는다는 거에요. 사람이 바뀌는 것은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더 나아가서 사랑을 받을 때 변화한다는 거에요. 간혹 아니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의 문제를 지적함을 통해 상대가 바뀔 것을 기대하고 그에 따라 ‘너를 위해서 이런 말을 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대부분은 쓸데 없는 말일 경우가 많죠. 왜냐하면, 그렇게 비판하고 질책하는 것으로 상대가 바뀌는 경우가 드무니까요. 자녀들을 키워보셔서 아시잖아요.
저는 어쩌면, 감정에 들끓어서 행하는 어떤 말과 행동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생각하는데요. ‘내가 기분이 나쁘고 상대가 잘못했다는 것을 명확히 얘기하면 상대도 이에 따라 변화할 것을 기대하면서요.’ 그런데 실상 그렇습니까? 대부분은 싸움으로 변질되지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이 대체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잖아요.
끝으로 얘기하나만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삼국지라는 책 아시죠. 중국의 유명한 고전 소설이죠. 저는 이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요. 최근에도 최태성이라는 역사학자가 쓴 ‘최소한의 삼국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대체로 삼국지의 스토리는 잘 아는 내용이라 크게 색다른 것은 없었는데요. 딱 한 가지 새롭게 다가온 것이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하길 삼국지를 관통하는 주제는 ‘절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절제를 이룬 자가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지의 주인공 주로 유비, 관우, 장비라고 보지만요. 실제 삼국지의 역사는 조조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물론 유비도 맨손에서 시작하여서 제갈량이라는 천재적인 지략가를 얻어서 큰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는데요. 그 역시 마지막에 관우와 장비 아우들의 죽음에 감정을 절제하지 못함으로 결국은 목표했던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합니다. 반면에 기회주의자 같이 살아남은 조조는 때로는 비굴해 보이고 때로는 간교해 보이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을 절제함으로 그의 후대에 천하통일의 과업을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또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 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기도 한데요. 왜냐하면, 우리가 감정에 휘둘릴 때, 하나님보다 감정을 앞세우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자리에 감정을 가져다 놓는 어리석은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삶에서 감정을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무조건 인내하고 참으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께 토로하되, 그 감정으로 인해 섣부르거나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깐의 틈을 주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만으로 감정을 조금 누그러트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요. 감정을 잘 다스림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이루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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