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주일오후예배(신앙생활-성경)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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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디모데후서 3:14-17(신약 346쪽)
설교제목: 성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기뻐하십니다.”
설교에 앞서 영상 하나를 보려 합니다. 개그우먼 조혜련 씨의 인터뷰 영상입니다. 조혜련 씨가 근래 기독교인이 되면서요. 성경에 부쩍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현재 기독교 방송을 통해 성경을 강의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또한 어떻게 성경에 남다른 관심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영상입니다. 같이 영상을 시청하고 계속해서 설교를 이어가겠습니다.
# 영상: 7분 39초
저는 작년에 이 시간을 통해 성경 인물에 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아담을 시작으로 해서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약 스무 명의 인물을 살펴보았습니다. 제 목적은 성경의 인물을 순차적으로 소개하면서 성경의 흐름과 성경 이야기가 친숙해지기를 바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설교를 성경 인물의 이야기식으로 구성하면서요. 인물에 관한 연구도 더 할 수 있었고요. 그 덕분에 성경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이 시간을 통해 신앙생활에 관계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이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신앙생활에 관한 그림을 이렇게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어 깊은 교제를 이루므로 마침내 하나 되어서 함께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성경도 종종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는 올해 이시간의 설교를 세 단계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설레는 마주함’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썸’의 단계입니다. 아직 연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두 사람이 서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처럼요. 하나님과 우리가 일종의 썸타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깊어지는 사귐’입니다. 이는 본격적인 ‘연애’의 단계입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을 기뻐하고 누리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다들 연애해 보셔서 잘 아시죠. 만나서 뭐 특별한 것을 해서라기 보다는요. 상대의 존재만으로 함께하는 시간으로도 좋지요.
마지막 단계는 ‘하나 되는 삶’입니다. 이는 이제 동행하기를 결심한 두 사람이 ‘결혼’에 이르는 단계입니다. 동화책은 보통 여기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하고 끝을 맺지만요. 실제 이 과정에 계신 분들은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경험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 마음을 합하여 산다는 것이 쉬울 리 없습니다. 때로는 다투고 갈등하며 서로에게 실망하기도 하지만요. 이 과정을 넘어서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각자의 삶에서 하나 된 삶으로 조정을 거칩니다. 이를 성숙이라고 할 수 있고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성화 곧 거룩해지는 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제가 좀 장황한 편이라서요. 오늘 설교의 시작부터 1년치 설교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바라기로는, 이 시간이 저에게도 그렇고 우리 성도님들께도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입니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그림을 그려서 보여드림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의미가 되고 가치가 있어지는 소중한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이와 같은 이유로 한동안 ‘설레는 마주함’ 곧 하나님과 썸 타는 단계에 따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성경과 기도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몇 주에 걸쳐서 나누려고 하는데요.
오늘은 첫 시간으로 ‘성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제가 이러한 제목을 짓게 된 것은요. 성경이 무엇인지를 나타내고자 함이었는데요. 쉽게 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소개라 할 수 있습니다. 설교 제목에서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것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 성경임을 말하려 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이 이로부터 시작이 되는데요. 본래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존재는 큰 존재를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령, 개미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쉬울까요? 인간이 개미를 이해하는 것이 쉬울까요? 당연히 인간이 개미를 이해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개미로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엄청난 거인이어서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테니까요.
이와 마찬가지로요.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아니 온 우주보다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를 만드신 분이니까요.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작은 점 혹은 감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입자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주는 광활하고 크니까요.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를 떠나서 멀리서 바라보니 지구가 ‘작은 푸른 점’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도 그렇게 작을 진대, 그 속에 있는 인간은 얼마나 작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머리카락 하나도 알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실 수 있을 만큼 우리를 훤히 알고 계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요.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요. 하나님을 믿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은 온 우주를 만드신 분입니다. 이는 우주 곳곳에 하나님의 흔적이 담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치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처럼요.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령, 저는 잠깐 호주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과 별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의 광경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요. 이제껏 보았던 별과는 확연히 다르게 쏟아질 듯이 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는 장면을 기억합니다.
또 저는 사계절 중에서 봄을 좋아하는데요. 겨울 동안 마치 죽은 것 같은 나무에서 싹이 움트는 것을 보면요. 마음이 절로 희망차 집니다. 또한 곧 보게 되겠지만요. 화려한 벚꽃이 거리를 메우고 바람에 꽃비가 날리는 광경을 보면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설레임 가득해집니다.
어떤 이는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높은 산을 오르면서, 또 어떤 이는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엄청난 폭포를 바라보며 경외감을 느낍니다. 마치 그곳에 신이 있는 것처럼 또는 이와 같은 것은 신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강한 확신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이니 이 세상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하나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이죠. 이를 전문용어로 자연계시 또는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는 구별되는 것을 특별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뜻하는데요. 이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서도 이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16절을 같이 읽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신약 346쪽)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 구절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이 감동은 원어에서 보면, ‘숨을 불어 넣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은 하나님의 의해 쓰여진 것임을 뜻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영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요. 성경이 세상에 있는 여타의 책들과는 다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출처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음에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해서 신학교에서는 좀 더 복잡한 논의로 이어집니다.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성경의 모든 내용이 하나님이 한자 한자 기록하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으니까 하나님의 인간에게 성경을 기록할 때 도움을 주셨는지에 관해서 이렇게 저렇게 논의합니다. 복잡한 얘기는 차지하고 아주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고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이 다른 책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유일하고 확실한 책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요. 이를 바탕으로 방금 읽은 성경 구절처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성경을 떠나서는 얘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덧셈과 뺄셈을 모르고 곱하기와 나누기를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요. 성경을 모르고서 하나님을 얘기할 수 없죠.
그런데, 성경을 꼼꼼하게 다 읽으면 하나님을 전부 알 수 있게 될까요? 아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죠.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 역시 그와 같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주 작은 부분에 그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담아 내기에 우리가 가진 한계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가령 바다를 담을 그릇이 있을까요? 바다를 말로 다 옮길 수는 있을까요? 아직도 심해의 영역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우리는 바다를 제대로 알기는 하는 것일까요?
하물며 바다보다 크시고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 작은 책과 협소한 공간에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담으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그러니 사실 성경을 수십번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을 읽어도 우리로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한계이고 하나님의 상상을 초월하는 크심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짜피 성경을 많이 읽어도 완전히 알아도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성경을 왜 읽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군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요. 단순히 하나님이 자기를 소개하기 위해 주신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과 17절을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디모데후서 3:15, 17(신약 346쪽)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또한, 성경은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선한 것입니다.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을 달리 말해보면요.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능력이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사망에 놓였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족쇄를 차고 있는 것과 같아서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불행히도 죄의 영향력 아래에서는 우리가 그 삶을 이루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는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요. 하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함입니다. 반복하지만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인해 우리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그에 따른 도우심이 간절히 필요한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성경은 지식의 책이 아니라 은혜의 책이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책이라고 말입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매우 작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미미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면서 살아가지만,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죠. 아니 도토리보다 모래알 혹은 그보다 작은 어떤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우주보다 크신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관심하신다는 사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 분인지를 바르게 알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도 크신 분께서 너무나도 작은 존재인 우리를 아신다는 것, 또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는 것이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이 관심의 이유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여기에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은 깊이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또 우리 손에 성경이 들려 있다는 것이 쉽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고요. 심지어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이로부터 비롯되었으면 합니다. 성경에 있는 글자를 열심히 읽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요. 그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 곧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깨닫고 경험해야 하는 것은요. 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히 여기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매번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기보다는요. 남은 장이 몇 장인지를 더 헤아리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것이 애초부터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또 그것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도 아니니까요. 성경을 빨리 읽는 일보다 깊이 읽는 일에 힘을 써보면 어떨까 합니다.
요사이 우리 청년들 사이에서도 성경을 꾸준히 읽는 친구들이 있는데요. 요즘에는 성경 읽기 앱이 잘 되어 있어서 혼자서 성경을 읽기보다 함께 성경 읽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들을 가진 성경 앱들이 많이 있어요. 또는 인터넷에서 타자를 치며 성경 쓰기를 하는 것도 있는데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헀던 성경읽기의 다양한 경험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바라기로는 이와 같은 성경 읽기가 올해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유행으로 번져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것은 단지 글자를 읽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그분과 더 깊이 사귐을 이루는 것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읽었냐에 집중하기보다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힘써보시길 강력히 권해드립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더욱더 깊은 관계를 이루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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