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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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갈망하는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을 갈망하는 새로운 피조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질문 하나를 물어보고자 한다. 사람에게 물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물을 마시지 않으면 큰일난다. 우리 몸의 물이 몇 퍼센트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가? 그렇다. 70%가 물(수분)로 구성되어 있을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물은 필수적이다. 여기서 10%로만 부족해져도 심근경색, 뇌부종, 혈액 순환 장애 등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사람은 물이 부족하면 느끼는 현상이 무엇인가? 그렇다. 갈증이다. 갈증을 느끼면 사람은 물을 찾는다. 그렇다면 갈망은 무엇인가? 함께 읽어보자.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거나 그리워하는 상태를 뜻하며, 목마를 때 물을 찾는 것과 같은 강한 열망을 의미”이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갈망하는 것이 있는가? 한창 두쫀쿠에 사람들이 유행해서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두쫀쿠를 향한 갈망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갈망이라는 단어는 욕망 또는 사랑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닌가?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거나 그리워하고 마치 목마른 것처럼 그 사람을 향한 강한 열망의 모습이다. 오늘 여러분과 ‘갈망’이라는 주제로 함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오늘 읽은 본문의 스토리를 간단하게 말하면 두 사람이 등장한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의 여정을 보여주는데, 중간 지점인 사마리아에서 통과하는 장면으로 4장이 시작된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혐오하고 부정하게 생각하기에 중간 길을 지나가지 않고 빙 둘러서 우회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예수님 또한 유대인이시지만, 사마리아를 지나가신다. 그러다가 야곱의 우물이 있었고, 예수님은 피곤하신 상태로 우물 곁에 앉아계셨다. 그때 시간은 중동에서 한창 햇볕이 뜨거울 12시 정오였다. 그때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는데, 예수님이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신다. 이 때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마을로 내려가고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 두 명이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 남자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나에게 마실 것을 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의 말에 이렇게 답을 하신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분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답한다. “주여 당신에게는 물 길을 도구도 없고 이 우물은 엄청 깊은데, 당신이 어디서 그 생수를 구한단 말입니까? 당신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큰 분이십니까? 야곱은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신 분입니다. 그분도 친히 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고, 그분의 아들들과 가축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마치 어린이 축구장에 메시가 왔는데, 거기 있는 어린 아이들이 “아저씨는 손흥민보다 축구 잘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메시의 드리블과 그의 업적과 그의 실력을 모르기에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무지한 반응이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은 인간 어느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신 그 자체이신데 사마리아 여자는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살짝 힌트를 주는 말씀을 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사마리아 여인이 비웃듯이 “주여 저에게 그런 물을 주셔서 다시는 목이 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인은 예수님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 몸이 목마를 때 마시는 물만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물은 어떤 물인가?
첫째로, 물은 갈증을 해소하며, 하나님의 은혜도 그러하다. 물을 마시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고, 육체적인 갈증을 해결해준다.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은, 사람 안에 본성이 결핍된 것을 얻는 것이기에 사람의 고통스러운 갈증이 해결된다. 인간은 본래 너무나 어리석기에 자신의 본성이 필요로 하는 것을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스스로 무언가 결핍되었음을 느끼기는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결핍과 공허함은 해결하지 못하고, 나 자신 속에서 찾아보려고 해도 속 시원한 답을 찾을 수도 없고, 친구들을 통해 찾아보려고 하더라도 사람 안에 있는 결핍과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이며 순간일 뿐이다. 만약 여러분도 이런 상태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여러분의 것이다. 복음 안에서 주님은 여러분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실 뿐 아니라, 그것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만약 그분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부어지면, 우리의 죄는 용서받고, 그분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용납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나는 내게 결핍된 것을 얻었습니다. 이제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잠잠히 앉아서 ‘내 갈망을 채우셨으니 하나님을 찬송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결코 채울 수 없었던 빈 공간이 이제는 넘치도록 채워졌습니다. 내 영혼이 갈망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얻었습니다. 나는 이제 온전히 만족하며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나는 만족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멋진 고백이다. 오직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참된 신자들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초조한 마음을 없애주시고, 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마음에 꼭 맞는 문이시기에, 그분이 우리 가까이 오실 때 그분은 세상의 추위와 더위를 차단해 주시며, 우리에게 달콤한 만족을 주신다.
두번째로 물은 또한 생명을 보존한다. 물이 없는 광야나 사막은 입술이 갈라진다. 피부는 건조해진다. 혀와 입은 점점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물을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그러한 곳에서는 아무리 수많은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있어도 물을 살 수가 없다. 생명을 살리는 한 모금의 물을 값으로 칠 수가 없다. 난파당한 뱃사람들 또한 주변에 바닷물이 넘쳐나더라도, 마실 만한 신선하고 깨끗한 몇 방울의 물이 없으면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안다. 어떤 배 한 척이라도 지나가서 자신들을 찾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영혼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닷물이 목마른 선원들에게 마실 물을 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여러 종교 의식들이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로 채우지 못하고 생명을 주지도 않는 것은, 광야의 뜨거운 모래가 지친 여행자들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지팡이로 맞은 저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생수의 강으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으며, 한밤의 절망이 영원한 우리의 운명이 될 것이다. 거기에서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끝없는 죽음 속에서 죽을 수 없는 그들의 목숨을 한탄하며 울부짖는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온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 곧 무덤에 저항하는 영원한 생명을 가질 것이며, 죽음의 턱 밑에서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은혜는, 목마름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보존한다.
셋째로 물은 더러움을 씻어준다. 사람이 더러워졌을 때 화장실로 가서 씻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여러분이 만약에 집에 물이 끊겨서 몇날 며칠을 씻지 못해서 온 몸에 냄새가 진동하고 머리엔 기름과 비듬도 가득해지고 몸이 점점 가려온다면 씻을 수 있는 물을 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이제 물이 나와 개운하고 뽀송하게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면 그 쾌감은 이로 말할 수 없이 기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본성상 그렇다. 죄인이 아무리 더러워졌다 하더라도, 영원한 은혜의 강에 자신을 담그고 씻기만 하면, 누구든지 깨끗해질 것이다. 이 흐르는 물은 다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오물을 지울 수 있다. 우리의 죄는 검은 염색약 같아서, 깨끗이 씻겨지기 전에는 태평양조차도 검게 물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생명의 물은 그것을 제거할 수 있고, 어떤 죄의 얼룩도 깨끗이 씻어낼 수 있다. 그것은 거짓과 살인의 오물도 제거한다. 십자가에 와서 예수님께 의지하는 사람의 모든 종류의 죄가 용서된다. 저 위대한 구속자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가 범한 모든 범죄가 완벽히 용서되었음을 발견할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 중 가장 검고 검은 죄인일지라도 그렇게 해보라! 여기 중 가장 크게 죄를 지은 누군가의 죄 많은 영혼을 이 샘에 담가보시라. 그리고 거기에 잠겼던 여러분의 영혼이 다시 일어날 때, 마치 어린아이의 깨끗이 씻은 몸처럼, 아무런 오점도 없이 얼마나 깨끗하고 순결해졌는지를 보라. 여러분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이 은혜의 시냇물은 십자가에서 흘러나온다. 거기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에 해당하는 진노를 우리를 대신하여 감당하셨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용서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피를 의지하겠는가?
넷째로 물은 부드럽게 하는 작용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 속에 담가두면, 곧 딱딱함이 풀어지고 부드럽게 유연하게 되는 것들이 더러 있다. 하나님의 이 은혜의 물에도 부드럽게 해주는 놀라운 힘이 있다. 단단한 맷돌, 아니 맷돌보다 단단한 강철이라 할지라도, 이 샘에 한 번 잠기면 녹아 버리고 만다. 가장 완고한 마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 앞에서 굴복하고 만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흘러든다면, 그 은혜가 돌 같은 마음을 단번에 말랑한 살처럼 부드럽게 바꾸실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기지 못할 단단함은 없다. 여러분이 이렇게 전도사님의 설교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있을지라도 그 친구가 말씀이 안에 들어가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깨닫게 되는지 모른다. 이것은 모세의 지팡이보다 더 큰 경이로움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복음으로 딱딱한 바위를 칠 때, 회개의 샘물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바위 같은 영혼이 죄를 의식하고서 저절로 녹아 버린다. 주님께서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마음이 굳어 있는 모든 자에게 그 물을 주시길 바란다. 나 역시 그 물에 새롭게 목욕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여러분이 그 물에 씻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다섯째로, 이 물은 불을 끄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좋은 것을 발명해도, 불을 끄기에 물보다 좋은 것은 없다. 불이 나면 급히 소방차가 달려가서 물을 뿌려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 타는 불도 있다. 깊은 화산 불 같은 것이 지옥의 깊은 곳까지 옮겨 붙는다. 그 불꽃은 인간의 내면에서 격렬하게 타오른다. 조만간 죄의 용암이 터져서 흐르고 인간의 모든 인생을 덮어 버릴 것이다. 그것은 마치 불이 나무 전체를 삼켜 버리듯 사람의 목숨을 삼켜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그 불이 얼마나 빨리 꺼지고 또 영원히 꺼져 버리는 것을 경험한다. 또 영혼 속에 타오르는 다른 불이 있다. 시기심과 악의의 불, 분노와 추한 욕망의 불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까지 는 이 불꽃들이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지 모른다. 시기심이나 악의나 분노와 추한 욕망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받을 때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만약 자신의 옛 자아와 마주치게 되면, 그 천박한 것을 너무나 혐오하여서 그것과 치열한 싸움을 할 것이다. 여러분이 사는 동안에는 자신의 죄된 옛 습관 옛 자아를 미워할 것이고, 그것을 죽이는 것이 여러분의 매일의 소원이 될 것이다. 자신의 옛 자아의 손과 발에 못을 박기를 시도할 것이며,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에 옛 자아를 매달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옛 자아를 날마다 죽이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기에 나의 죄악된 욕망과 탐욕을 막지 않고서는 평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는 그 죄의 불꽃들을 꺼뜨릴 수 있다. 지옥의 불꽃들은 하나님의 이 은혜에 의해 꺼진다. 이러한 샘에 씻은 영혼은 그 속에 하나님이 벌하실 지옥의 불꽃이 없다. 하나님은 주님께 용서받은 죄인을 벌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특징은 일반적인 물에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샘을 만드는 물이다. 이 생명의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그것은 새로운 샘을 만들어 내며, 그 샘은 곧바로 생명수를 솟구치며 흐르기 시작한다. 곧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마음속에 임하게 되면, 그것이 절대 없어지지 않는 불멸의 원천이 된다는 의미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고여있는 물에 씻으면 물이 더러워지지만, 흐르는 샘을 만나면 씻고 또 반복해서 씻을 수 있다. 그곳에 모래를 휘젓거나 흙을 뿌려도 씻겨져 내려가기에 물은 항상 깨끗하다. 왜냐하면 신선한 물이 계속해서 솟아나오기 때문이다. 성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결코 더러워지지 않는다. 흐리거나 죽은 물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날마다 발을 씻는다고 해도 오염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의 샘이기에, 날마다 “신선한 샘”이 그곳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여러분 속에 그 샘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하기란 아주 힘들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예배에 앉아있고,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 모르면서 이 자리에 있다면 너무나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저 기쁨도 없이 반복적으로 종교활동하는 안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샘이 되시면, 여러분은 고귀한 진리로 가득 채워질 것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한 쏟아낼 말들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이 생명의 물이 그리스도인 안에서 샘이 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깨닫길 소망한다. 여러분은 형식으로 예배 자리에 앉아있는 고여있는 악취가 가득한 연못에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 샘에 있는가 점검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열매를 맺게 하는 물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나무에 열매가 어떻게 생기고, 목초지에 어떻게 풀이 있으면서, 들판에 어떻게 곡식이 있을 수 있는가? 물이 없으면 모든 것이 메마를 것이다. 또한 적당량의 물이 주어지지 않으면, 물이 있다고 한들 얼마나 빈약한 열매가 되어버리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도 마찬가지다. 적은 은혜로는 적은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더 많은 은혜를 얻는다면, 열매가 얼마나 풍성해지겠는가? 우리가 이 열매를 맺게 하는 물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섬김이 얼마나 더 나아지고 온전해지겠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그분을 섬길 수 없다.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은혜의 비를 내리시지 않으면, 계속해서 은혜 위에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진정한 찬양을 드릴 수 없고, 참된 기도도 할 수 없으며, 참된 예배라든지, 주님이 받으실 만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은혜가 말라버린 저 무화과나무를 열매를 풍성히 맺는 좋은 나무로 바꾸어주시길 축복한다.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했다. 나는 여기에 있는 누군가가 이렇게 고백하길 바란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로 씻어지기를 원합니다! 그 물로 내 갈증이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내 영혼에 그 은혜의 물이 넘쳐나기를 갈망합니다! 그 은혜를 힘입어 하늘에까지 올라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여러분이 그 갈망을 갖게 된 것이 저에겐 기쁨이다. 그 갈망을 기도로 바꾸시라. 그리고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이 여러분의 기도가 되길 원한다. “그런 물을 내게 주소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나를 지옥에 던지신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분을 사랑하고 예배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갈망하십니까?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내 행복의 수단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목적이 되는 오직 하나님만 갈망하는 꿈사땅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