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희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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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1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1) 3:1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 시기에 ‘말씀이 희귀’했던 이유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하며 백성들에게 그것을 전하는데 대가를 바랬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바랬고, 제사장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비싼 대가를 받으면서 호의호식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엘리와 그의 자녀들이다.
‘이상’은 하나님의 계시인데 이것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의 계시를 보이실 때 그 장소로 성막을 택하시고 그 스피커로 제사장을 세우셨지만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구하는데 애쓰지 않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하기를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흔히 보이지 못했다.
그 예로 2-3절에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구하기 위해 여호와의 전에 누워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잠을 잤다는 의미보다도 이 당시 고대 근동에서 개인적으로 문제를 가진 사람이 신전에서 잠을 자며 신으로부터 응답을 기다리는 풍습이 있었기에 사무엘도 그와 같이 신전에서 잠을 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나타낸 것이다. 반면 2절에서 엘리 제사장은 자기 처소에 누워있다. 눈이 점점 어두워 잘 보지 못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점점 무감각해지는 제사장의 모습을 묘사한다.
- 그러나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멘트가 의미심장하다. 지금도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2) 3:4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2) 3:4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응답이 없기에 엘리가 부른 것으로 알고 찾아가서 물었다.
세 번이나 반복된 이후에 엘리는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먼저 ‘가서 누웠다가’라고 알려주는데 이것은 잠을 자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라는 의미로 ‘동침하다’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엘리는 사무엘에게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답하라고 알려주었다.
이 후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니 그가 ‘주의 종이 듣겠다니다’라고 답했고, 비로소 하나님의 계시가 사무엘에게 임한다.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사무엘을 부르신 이후에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은 말씀과 이상이 희귀한 시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할텐데 그것은 결코 쉽지않은 여정이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경험과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고 밖에는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가서 누우라는 것은 ‘동침하다’와 같은 단어라고 했다. 그것은 오직 부부끼리만 허락된 은밀한 관계이며 부부끼리만 알 수 있는 은밀함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그렇게 친밀한 관계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전혀 남이었던 사람들이 부부가 되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그 여정이 얼마나 쉽지 않은가?? 그런 과정을 겪은 후에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속마음과 비밀을 상대방에게 털어놓게 된다.
3) 3:10 ‘하나님이 임하여 서서’
3) 3:10 ‘하나님이 임하여 서서’
이것은 신의 현현이다. 하나님께서 ‘전과 같이’ 사무엘 앞에 서계셨다. 이는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셨는데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을 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음성만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느끼고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말씀하신다.
암 3:7“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이것은 이 소식이 매우 충격점임을 암시한다.
가장 시대와 지역에서 존경받았던 엘리 제사장의 가정이 심판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사무엘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3절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않았다’ 죄로 인한 심판은 자청하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를 과하게 한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의사의 심판이 아니고 스스로 자청한 결과입니다. 바이러스로 인한 병은 환자가 자처한 것이고 그것을 금하라는 권유는 의사의 몫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인한 죽음은 성도가 자처하는 것이고 목회자는 그것을 금하라는 권유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왜 엘리는 제사장이면서 그것을 금하지 않았다. 그것은 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어두운 지도자는 성도들의 죄를 금하게 할 판단도 능력도 없다.
13절 저주받는 이유는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다. 우리가 금할 것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저울이 온전하다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전에 예물을 함부로 사용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간음하는 일은 모호하지 않다.
4) 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4) 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신다. 목회자가 타락하여 그 시대에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게되자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삶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그것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여전히 성막에서 예배를 드리고, 여전히 제사장은 존경을 받는 존재로 그의 아들들이 범하는 명백한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삶은 변함이 없다. 그렇게 알지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은 희귀해졌고, 이상은 흔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은 제사장을 심판하시고, 그의 말씀과 이상을 전할 새로운 지도자를 실로에 세우신다. 이 시대에도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우리 처음사랑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내가 엘리와 같은 제사장이 될까봐 두렵고 떨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