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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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2:7
본문 창세기 2:7
우리말 성경 2장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서 취하신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됐습니다.
도입: 우리가 사는 시대, 생명이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슬픔 속 어두운 사진)
도입: 우리가 사는 시대, 생명이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슬픔 속 어두운 사진)
여러분, 오늘은 조금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말씀은 우리 인간의 처음에 대한 이야기였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흙으로 만드신 이야기죠.
너무나도 감사하게 주신 우리의 생명이죠.
그런데 우리는 요즘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자살에 관한 소식을 너무 쉽게 접하는 사회에 살고 있어요.
뉴스를 보면 어떤 사람은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어떤 사람은 더 이상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굶고 있는 생활고 때문에,
어떤 사람은 순간적인 충동 때문에 자기 생명을 놓아버리기도 합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청소년들도 성적이나 관계,
괴롭힘을 당해서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마음.. 등
여러 이유로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있다는 점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도 자료를 보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14,000 명이 넘고,
최고치를 찍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잘 이해도, 별 생각도 안 들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한 번뿐인 삶이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예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우리나라는 예전보다 훨씬 발전했고 풍성해졌습니다.
교통도 편해지고, 인터넷도 있고, SNS도 있고, 휴대폰으로 언제든 연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히려 마음은 더 쉽게 무너지고, 왜 이런 일들이 멈추지 않을까요?
여기서 질문 하나 드려 보겠습니다.
우리 마음 한쪽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에게 직접 피해만 안 주면 상관없다.”
“자기 생명은 자기 것이니까, 자기가 결정하는 거다.”
하며 마치 자살을 우리는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쉬쉬하면서 모르는 척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성경은 오늘 한 구절로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7절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본문: 창세기 2:7 읽기 (창세기 2:7 글)
본문: 창세기 2:7 읽기 (창세기 2:7 글)
우리말 성경 2장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서 취하신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됐습니다.
이 한 절에는 세 가지의 움직임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빚으셨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고
사람이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따라가면 오늘 주제가 정리됩니다.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이 ‘빚으셨다’ — 우리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흙으로 우릴 빚으시는 손길)
본론 1: 하나님이 ‘빚으셨다’ — 우리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흙으로 우릴 빚으시는 손길)
먼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빚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당장 밖에 바닥에 있는 흙으로
뭔가 바로 만들 수 있나요? 모래성?
열심히 뭉치고 붙들어도,
흙은 약합니다. 쉽게 더러워지고, 쉽게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이 말씀은 우리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저 낮게 표현하는 부분이 아니에요.
너는 별거 없는 흙으로 만든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사람은 원래 연약할 수 있다.”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지칠 수 있다.”
중학생 때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성적 때문에, 친구 관계 때문에, 가족 분위기 때문에,
남들이 보는 내 모습 때문에, 혹은 미래가 막막해서…
마음이 갑자기 푹! 차가워지고 내려갈 때도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만 끝난다면,
“제가 왜 이러는 거죠?” “나는 왜이렇게 연약하고 못난 사람이죠?”
라고 자책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은 원래 흙처럼 연약할 수 있다고 말이죠.
중요한 건, 하나님은 흙을 그냥 방치하신 게 아니라,
흙으로 우리를 빚으셨다는 거죠.
빚는다는 건 “의도”가 있다는 뜻이야.
“정성”이 있다는 뜻이야.
“하나님 손길이 들어갔다”는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이에요.
여러분은 누군가의 말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죠.
여러분은 댓글이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비교가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빚으신 사람입니다.
본론 2: 하나님이 ‘불어넣으셨다’ —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고, 주권도 하나님께 있다
본론 2: 하나님이 ‘불어넣으셨다’ —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고, 주권도 하나님께 있다
(게임이나 SNS 계정 삭제 고민하는 사진)
두 번째, 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생명의 숨(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이게 오늘 말씀 중 가장 중요한 문장이예요.
게임이나 인스타 같은 SNS하는 친구들은
이 비유가 더 잘 와닿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게임 계정이나 SNS 계정 만들어본 적 있죠?
게임 계정은 누구 것입니까? 내 것이지요.
내가 만들었고, 비밀번호도 내가 알고,
내가 관리하고 하니까?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로그아웃도 하고,
삭제도 하고, 새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늘 딱 잘라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내 생명’이 ‘내 계정’과 같을까요?
여러분, 내 생명은 ‘내 계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 생명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내가 소유해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으시고
숨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생명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생명은 자연적으로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생명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생명은 내가 소유해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소유야.
그래서 우리는 자살을 “개인의 선택”이라고만 말할 수 없어요.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가치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세상에서 얻는 어떤 것보다 생명이 더 귀하다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생명의 주권”이예요.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세상 속 마귀들은 자꾸 이렇게 말할 거예요.
“네 삶은 네 거야. 네가 결정해.”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로 말해.
“너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 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살을 단지 “개인의 선택”이라고만 말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예요.
예수님도 생명의 가치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냐?”
즉, 세상에서 제일 비싼 것도 가장 귀한 것도
우리의 생명과는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
본론 3: 기독교는 자살을 미화하지 않지만, 정죄로 끝내지도 않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바라보는 하나님 사진)
본론 3: 기독교는 자살을 미화하지 않지만, 정죄로 끝내지도 않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바라보는 하나님 사진)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죄로 여겨왔습니다.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가 있고,
자살을 자기 자신을 죽이는 행위로 보았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죄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막 나쁘게 말하지 않죠.
그 아픔에 공감해주면서,
함께 슬퍼하고 안타까워 해주는 경향이 더 많아졌어요.
물론, 그렇게 바라보는 관점에
절대 안된다! 자살은 엄청난 죄야!!!!!! 라고
막 다그치고 혼내고 싶진 않아요.
그렇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기독교는 자살을 인정하거나 미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은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하지 마”로만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살아라”라고 말하고,
“살 수 있다”라고 말하고, “살게 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휴대폰 쓰다가 제일 무서운 순간이 언제입니까?
사진이든 카톡이든 자료든 날아갈까 봐 무서울 때이지요.
그래서 백업합니다. 자동 저장 켜고, 클라우드에 올리고,
‘혹시 모르니까’ 저장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말하는 생명은,
데이터처럼 “백업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핸드폰처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죠.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살려두는 수준’이 아니라,
살아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 11:25-26)
예수님은 우리 삶이 무너질 때 “복구해 줄게” 정도가 아니라,
생명 자체를 다시 붙들어 주시고,
다시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울 때
다시 우리의 삶을 붙들고 일어설 수 있게 하시는 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올 수 있게 하시는 분이예요.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결코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붙드시는 생명입니다.
마무리 원고(선포 + 거짓말/진실)
마무리 원고(선포 + 거짓말/진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할게요.
오늘 창세기 2장 7절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말해줍니다.
우리는 우연히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흙으로 의도를 갖고 빚으셨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선포해 보겠습니다.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입니다.” (글)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입니다.” (글)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성경과 하나님이 아닌 세상이 말하는 거짓들이 있어요.
여러분 마음에 어려울 때, 세상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말들이에요.
그 거짓말과, 하나님이 주시는 진실을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첫 번째, 세상은
“네 생명은 네 거야. 네가 알아서 해.”
라고 거짓말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가 주인인 것마냥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말했듯이
“내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 속한 생명입니다.”
두 번째, 세상은 우리의 삶이 힘겨울 때,
도저히 버티기가 어려울 때,
“말해도 소용없어. 말하면 민폐야. 그냥 참아.”
“절대, 아닙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힘들 때 도와줄 사람들을 주변에 두셨습니다.
세 번째, 세상 속 마귀들은
“너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없어져도 괜찮아.” 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셨고,
예수님은 생명을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진실을 붙잡으며 나아갑시다.
힘든 순간이 올 때, 여러분 마음속에서 거짓말이 커지기 시작하면,
오늘 우리가 선포한 한 문장을 다시 붙잡으시면 됩니다.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입니다.”
이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명을 다시 붙들고,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선택하겠다고 고백하며 기도하겠습니다.
1) 설교 후 기도 인도문
1) 설교 후 기도 인도문
다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흙으로 빚으시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신 분이심을 들었습니다.
지금 잠깐, 각자 마음으로 이렇게 선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입니다.”
이 선포를 붙들고,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합시다.
요즘 마음이 무겁고 지친 부분, 스트레스와 불안,
비교와 상처를 주님께 솔직히 올려드리며 기도하겠습니다.
(잠시 기도)
이어서, 우리 주변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힘든데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버티는 친구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도움을 요청할 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잠시 기도)
마지막으로, 우리 중등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함께 울고 함께 지키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잠시 기도)
2) 마무리 기도문(설교 후)
2) 마무리 기도문(설교 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흙으로 빚으시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신 주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우연히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과 숨이 담긴 소중한 생명임을 믿습니다.
주님, 이 시대가 생명을 가볍게 말하고 쉽게 포기하도록 유혹할 때,
그 거짓말에 속지 않게 하옵소서.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생명입니다”라는
진실을 마음에 새기게 하시고,
어떤 순간에도 생명을 붙드는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마음이 무겁고 지친 친구들을 주님께서 붙들어 주옵소서.
혼자 결론 내리지 않게 하시고,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주시며,
믿을 만한 어른과 공동체의 손길을 통해 살 길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 교사들과 리더들에게 지혜와 사랑을 주셔서,
아이들의 신호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정죄가 아니라 동행으로 품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중등부가 서로의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조롱과 비교가 아니라 격려와 기도로 세워 주게 하시고,
예배와 말씀과 기도 가운데 생명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가 드린 선포가 삶이 되게 하시고,
예배가 끝난 후에도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봉헌기도 (일어서서 봉헌찬양)
3) 봉헌기도 (일어서서 봉헌찬양)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오늘도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예물을 드립니다.
이 봉헌이 단지 물질을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명과 시간과 재정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용되게 하옵소서.
드려진 예물이 교회와 다음 세대 사역을 세우는 데 쓰이게 하시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 사용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상한 마음들이 회복되고,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이 도움을 받으며,
우리 중등부가 주님의 생명 안에서 자라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축도문
4) 축도문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흙으로 빚으시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신 하나님께
생명의 주권이 있음을 믿고,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붙잡아 혼자 결론 내리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며
생명을 살리는 선택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중등부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과 가정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