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5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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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청년부 설교문] 진짜를 알아보는 눈
[청년부 설교문] 진짜를 알아보는 눈
본문: 마태복음 13:44-58설교자: 서장원 목사
[서론: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
[서론: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반갑습니다. 요즘 여러분의 심장을 가장 뛰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합격 문자'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밤새 올라주길 바라는 '주식'이나 '코인' 차트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연애'나 '성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열광하고, 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이 내 인생을 걸 만한 **'가치(Value)'**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인생을 거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Kingdom of Heaven)'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얼마나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아주 짧지만 강력한 비유들을 던지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뒷부분을 보면, 아주 충격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천국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은 미친 듯이 기뻐하는데, 정작 그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고향에 가셨을 때는 처참하게 무시를 당합니다. 오늘 이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통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쫓고 있는지, 우리에게 진짜 '보화'는 무엇인지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희생인가, 횡재인가? (44-46절)]
[본론 1: 희생인가, 횡재인가? (44-46절)]
먼저 4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라고 하십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당시 팔레스타인의 시대적 상황을 좀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은행이 있거나 금고가 있는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은 피난을 가야 하는데, 금덩이나 보석을 들고뛰면 강도들의 표적이 되기 딱 좋습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아무도 모르는 땅속 깊이 묻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끝나면 다시 와서 찾아야지" 하고 묻어둡니다. 그런데 만약 그 주인이 전쟁터에서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보물은 주인 없는 상태로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땅속에 잠들어 있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소작농이 남의 밭을 갈고 있습니다. 쟁기질을 하는데 갑자기 '텅!' 하고 쇠 부딪히는 소리가 납니다. 돌인 줄 알고 파봤더니, 그 안에 엄청난 보물이 든 항아리가 있는 겁니다.
자, 여러분. 이 농부가 이 보물을 발견했을 때 표정이 어땠을까요? "아, 귀찮게 이게 뭐야..." 했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기뻐하며(in his joy)"**라고 기록합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쁨입니다. 이 보물 하나면 평생 남의 밭이나 갈던 소작농 생활을 청산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합니까? 집에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이 농부가 집에 가서 냉장고를 팔고, TV를 팔고, 집 보증금을 뺄 때, 억울해서 울면서 팔았을까요? "아, 하나님 믿으려면 이렇게까지 희생해야 하나?" 하면서 이를 악물고 팔았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팔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저 사람 미쳤나 봐, 왜 멀쩡한 집을 팔아?"라고 해도 그는 콧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왜죠? 계산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처분하는 내 전 재산이 1억인데, 저 밭에 묻힌 보화는 100억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희생(Sacrifice)'이 아닙니다. 이것은 '횡재'이자 최고의 '투자'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복음(Gospel)'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신앙생활을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일에 늦잠 자는 것을 포기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내 돈을 헌금으로 내야 하는 '손해 보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마지못해 교회에 나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 가치 전도(Value Shift)를 누구보다 잘 보여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청년 여러분, 바울의 스펙이 어느 정도였는지 아십니까? 요즘으로 치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미국 시민권(로마 시민권)자였고, 하버드 법대 수석 졸업생(가말리엘 문하생)이었으며, 사회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엘리트(바리새인)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에 완벽한 '엄친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이라는 보화를 발견하고 나서, 빌립보서 3장에서 뭐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길뿐더러...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여기서 '배설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스퀴발론'**인데, 아주 적나라하게 말하면 **'똥'**입니다. 음식물 쓰레기입니다. 여러분,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면서 "아, 아까워. 내 똥..." 하면서 우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시원하게 내립니다.
바울이 미쳐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이라는 다이아몬드가 너무 압도적으로 좋으니까, 내가 그토록 자랑하던 세상의 스펙들이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억지로 버린 게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잡기 위해 손에 쥔 것을 놓은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 억지로 참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얻은 기쁨 때문에 세상 것들이 시시해지셨습니까? 진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본론 2: 반드시 끝이 있다 (47-50절)]
[본론 2: 반드시 끝이 있다 (47-50절)]
예수님은 기쁨을 말씀하신 뒤에, 아주 엄중한 경고를 덧붙이십니다. 바로 **'그물 비유'**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쓰던 그물은 바닥까지 긁어서 끌어올리는 '저인망'입니다. 이 그물은 물고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일단 다 끌어올립니다.
중요한 건 그다음입니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교회 안에는 진짜 성도와 가짜 성도가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다 똑같은 크리스천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반드시 결산(Audit)의 때가 옵니다. 그때 기준은 딱 하나입니다. '네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보화가 있는가?' 그 보화를 품은 자는 의인으로 분류되어 천국 곳간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풀무 불에 던져져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본론 3: 익숙함이라는 함정 (53-58절)]
[본론 3: 익숙함이라는 함정 (53-58절)]
자,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아주 충격적인 반전으로 끝납니다. 이렇게 천국의 엄청난 가치를 설교하신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으로 가십니다. 금의환향입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54절을 보면 그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팩트는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움이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고, '배척'으로 이어집니다. 그 이유가 55절에 나옵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우리가 다 알지 않느냐?"
무슨 말입니까? "야, 쟤 예수잖아. 쟤 어릴 때 우리 집 의자 고쳐줬던 그 요셉 아들 아니야? 쟤 콧물 흘리고 다닐 때 내가 다 봤는데,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야?"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적인 눈으로 본 게 아니라, '동네 청년', **'목수의 아들'**이라는 인간적인 선입견(Prejudice)으로 판단했습니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 **'익숙함'**이 오히려 보화를 알아보는 눈을 멀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58절에 아주 가슴 아픈 기록이 나옵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여러분,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보통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안 믿으면 믿게 만들어야죠! 기적을 빵빵 터뜨려서, 하늘에서 불도 내리고, 죽은 사람도 살려내면 그들이 깜짝 놀라서 '와! 진짜네!' 하고 믿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한테 기적 한 번만 보여주세요. 로또 한 번만 당첨되게 해주시면 제가 평생 헌신할게요."
그런데 예수님은 믿지 않는 그들에게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안 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시는 엄청난 기적을 베푸셨을 때,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그들은 억지로 예수님을 붙잡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왕이 되면 평생 굶을 걱정 없지 않겠습니까? 경제 문제, 취업 문제, 먹고사는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환호할 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떠나가십니다(요 6:15).그리고 다음 날, 끈질기게 쫓아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아주 뼈 때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무슨 뜻입니까? "너희는 나(예수)라는 존재, 나라는 구원자에는 관심이 없다. 너희는 그저 내 손에서 나오는 떡, 내 능력이 주는 혜택이 탐나서 온 것뿐이다."
결국 예수님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떡을 구하지 말고 나를 먹어라"라고 말씀하시자, 성경은 충격적인 결말을 기록합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6)
여러분, 이게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배척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그저 자기 동네 출신인 '목수 아들'이 신기한 재주를 부려서, 우리 동네 이름 좀 알리고, 내 병이나 좀 고쳐주는 '도깨비 방망이' 역할을 해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기적을 행하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니라, "와! 대박! 우리 요셉 아들이 용하네! 한 번 더 해봐!" 하며 예수님을 **'구경거리'**로 소비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거룩한 능력이, 믿음 없는 자들의 심심풀이 땅콩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기적은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보여주는 '싸인(Sign)'인데, 사람들은 싸인만 쳐다보고 그 싸인이 가리키는 예수님은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 없는 곳에서는 능력을 멈추신 것입니다.
[결론: 당신은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결론: 당신은 무리입니까, 제자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 혹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떡만 먹고 떠나간 수많은 무리처럼, 예수님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취업만 시켜주시면 믿을게요." "이번 문제만 해결해주시면(기적) 헌신할게요."
기억하십시오. 기적을 본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적이 해석됩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진짜 기적은, 눈에 보이는 떡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밭에 감추인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모든 스펙을 배설물로 여길 만큼,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진짜 기적이고 진짜 믿음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저 익숙한 종교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진짜 보화를 발견했는가?" "나는 예수님을 얻기 위해 내 '배설물'들을 기쁨으로 버릴 준비가 되었는가?" 이 질문 앞에 진지하게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을 쫓고, 당장 내 손에 쥐어지는 이익에 울고 웃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를 우리에게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익숙함에 속아 주님을 홀대했던 나사렛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 안에 없게 하시고,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기적을 구하는 '무리'가 아니라,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진짜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보화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