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6 새벽기도회(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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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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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에 영상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설 연휴 중에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참 귀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에서, 혹은 고향집에서 이 영상을 켜고 하나님을 찾으시는 그 마음을 주님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설 연휴 셋째 날입니다. 벌써 이틀 동안 가족과 친척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명절이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연락이 뜸했던 친척들, 멀리 사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부모님과 한자리에 모이는 때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가족이니까 더 상처를 주기도 하고, 가족이니까 더 쉽게 서운해지기도 합니다. '왜 우리 가족은 교회에 안 올까', '왜 남편은 신앙에 관심이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명절을 보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반대로 온 가족이 다 함께 교회에 다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우리 가족은 다 믿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 두 상황 모두에 해당됩니다. 가족 중에 아직 믿지 않는 분이 있든, 온 가족이 함께 믿든, 결국 가장 강력한 복음의 언어는 같습니다. 바로 '삶'입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말없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베드로전서 3:1-2 (개역개정)
1. 이 편지는 누가, 누구에게, 왜 썼을까?
1. 이 편지는 누가, 누구에게, 왜 썼을까?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이 글을 쓴 사람과 받은 사람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사도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랐던 제자, 베드로. 그가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곳, 지금의 터키 지역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면 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형편이었을까요? 베드로전서 1장 1절은 그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이 사람들은 사회에서 소수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이웃에게 의심을 받고,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당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잡아들이는 큰 박해는 아니었지만, 일상 속에서 '저 사람은 이상한 종교를 믿는다'는 눈총을 늘 받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라. 너희의 삶 그 자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서 이미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나쁜 사람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 본문 3장 1-2절은 이 원리를 가정 안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2. 본문이 말하는 것: '말없이' 전하는 복음
2. 본문이 말하는 것: '말없이' 전하는 복음
(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먼저 '이와 같이'라는 말에 주목해 봅시다. 이 말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원리로'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2장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쭉 이야기해 왔습니다. 사회에서 좋은 시민으로 살고,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이제 가정에서도 같은 원리로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순종하라'는 말의 원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 헬라어로 '자기 자신을 질서 안에 두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상대를 존중하면서 관계 안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라는 뜻입니다. 쉬운성경은 이 부분을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라고 번역하고, 우리말성경은 "아내 된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 사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시대에는 아내가 남편과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였습니다. 남편이 믿는 신을 아내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집안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뭐라고 했을까요? '남편과 싸워서 이겨라'? 아닙니다. '논쟁으로 설득해라'? 그것도 아닙니다.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2)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말없이"
(2)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말없이"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말없이'입니다. 원어로는 '아뉴 로구(ἄνευ λόγου)'인데, '말로 하지 않고'라는 뜻입니다. 즉, 입으로 설교하지 않아도 삶으로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합니다. 믿지 않는 남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아내가 매일 하는 잔소리가 아니라 아내의 달라진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실'이라는 말의 원래 뜻은 단순히 행동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삶 전체의 모습, 삶의 방향, 사는 태도를 말합니다.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쉽게 풀어줍니다. "남편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도, 당신의 경건한 생활을 보면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말 없는 전도'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삶이 따라가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말은 한마디도 안 해도 삶이 달라진 사람을 보면, 옆에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은 뭔가 다르다'고 느낍니다.
(3)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2절에서 베드로는 이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두려워하며'입니다. 이 말은 사람을 무서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는 마음,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며 사는 태도입니다.
두 번째는 '정결한'입니다. 이 말은 삶 전체가 진실하고 거짓이 없다는 뜻입니다. 겉과 속이 같은 삶, 교회에서와 집에서의 모습이 다르지 않은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봄이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의 원래 뜻은 '주의 깊게 관찰하다'입니다. 멀리서 대충 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자세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렇게 가까이서 지켜볼까요?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은 우리를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서, 가장 자세히 봅니다. 그래서 가족 앞에서의 삶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3. 오늘 우리에게: 명절, 가족 앞에 서는 우리의 삶
3. 오늘 우리에게: 명절, 가족 앞에 서는 우리의 삶
이제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삶에 가져와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쓴 대상은 '아내'였지만, 이 원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됩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부모든 자녀든, 형이든 동생이든, 가족 관계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설 연휴에 우리는 가족 앞에 섭니다. 지금 고향집에서 이 영상을 보고 계신 분도 있을 것이고, 가족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보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디에 계시든, 이번 명절 동안 가족을 만나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첫째, 믿지 않는 가족 앞에서 — 말로 이기려 하지 마십시오
첫째, 믿지 않는 가족 앞에서 — 말로 이기려 하지 마십시오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갑니다. 때로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너는 왜 매주 교회에 가니?', '새벽기도까지 갈 필요가 있어?', '종교는 다 똑같은 거 아니야?' 이런 말을 들으면 속에서 뭔가가 올라옵니다. 설명하고 싶고, 반박하고 싶고, 설득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말없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말로 이기려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논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밥상머리에서 종교 논쟁을 해서 이긴다고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복음을 전합니다. 설 명절에 부엌에서 기꺼이 함께 일하는 모습, 어른들께 진심으로 인사드리는 모습, 조카들을 웃으며 돌봐주는 모습, 뒷정리를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 이런 작은 것들이 말보다 훨씬 강한 언어가 됩니다. 밥 먹기 전에 감사하며 고개 숙이는 모습, 가족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먼저 한 발 물러서는 모습, 이것이 베드로가 말하는 '정결한 행실'입니다.
지금 마음에 떠오르는 가족이 있으십니까?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남편, 아내, 부모, 형제, 자녀가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말로 설교하려 하지 말고, 내 삶이 설교가 되게 하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 진실하게 살아가라. 그러면 그 사람이 '볼 것'이다.
둘째, 함께 믿는 가족 앞에서 — 오히려 삶의 언어가 더 필요합니다
둘째, 함께 믿는 가족 앞에서 — 오히려 삶의 언어가 더 필요합니다
영상 앞에 계신 분들 중에는 온 가족이 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 집은 다 믿으니까 이 말씀은 나한테는 해당이 안 되겠지' 하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함께 믿는 가족 사이에서 '삶의 언어'는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왜 그럴까요? 같이 믿으면서도 서로에게 쉽게 상처를 줍니다. '같이 믿는 사람이 왜 그래?'라는 말, 한 번쯤 해보셨거나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집에 오면 부부가 서로 말도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면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풀리지 않는 갈등이 있는 가정이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에 대한 기대가 더 크고, 그 기대가 어긋날 때 실망도 더 큽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강조하는 '행실', 즉 삶의 모습은 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함께 믿는 가족 앞에서도 똑같이, 아니 오히려 더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의 핵심은 단순히 '전도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삶의 태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믿든 안 믿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모습은 같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믿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에 너무 익숙해지면 위험합니다. '다 믿으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가족 앞에서 가장 쉽게 함부로 대하고, 가장 쉽게 감사를 잊어버립니다. 이번 명절에 함께 모인 가족이 모두 믿는 분들이라면, 이 연휴가 서로의 신앙을 힘이 되어주는 시간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함께 식탁에 앉아 감사기도를 드리고, 서로 안부를 나누며 '요즘 뭐 때문에 기도해?'라고 물어봐 주고,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것이 믿는 가족이기에 누릴 수 있는 명절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온 가족이 다 믿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웃이 봅니다. 동네 사람들이 봅니다. '저 집은 온 가족이 교회에 다닌다는데, 정말 다르더라.' 이런 이야기를 듣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다 교회 다닌다면서 왜 저래?' 하는 이야기를 듣는 가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는 가족끼리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 그 자체가 세상을 향한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셋째,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이 모든 관계를 바꿉니다
셋째,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이 모든 관계를 바꿉니다
본문에서 '두려워하며'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우리가 사람의 눈치를 보면, 사람 앞에서만 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면, 어디에서나 같은 사람이 됩니다. 명절에 친척들 앞에서든, 집에서 가족과 단둘이 있을 때든, 교회에서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같습니다. 이렇게 어디서나 한결같은 것, 이것이 바로 '정결한 행실'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우리 힘으로 살 수 있을까요?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가족 앞에서 항상 바르게, 항상 진실하게 사는 것은 의지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이 힘은 어디서 올까요? 베드로전서 2장 24절이 답을 줍니다. "예수님이 직접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자기 몸으로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를 버리고 바르게 살게 하려 하심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새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 삶의 바탕이 될 때, 믿지 않는 가족도 우리의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되고, 함께 믿는 가족과는 더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결론: 이번 명절, 말보다 삶으로
결론: 이번 명절, 말보다 삶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 연휴에도 이 새벽에 영상 앞에 앉아 하나님을 찾으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참 귀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영상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기억할 것은 하나입니다. 가족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복음의 언어는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입니다. 가족 중에 아직 안 믿는 분이 있다면, 말로 설교하려 하지 말고 삶으로 보여주십시오. 온 가족이 함께 믿는다면, 그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서로 힘이 되어주고 사랑하는 시간으로 채우십시오. 어느 쪽이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진실하게 살아가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이번 명절 동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가족을 대하는 것입니다. 먼저 섬기고, 먼저 양보하고, 먼저 감사하고, 먼저 용서하는 것. 이것이 말보다 강한 삶의 언어입니다.
우리의 삶이 가족 앞에서 설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직 믿지 않는 가족이 언젠가 이렇게 묻게 되기를 원합니다. '너는 왜 그렇게 달라졌어? 너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거야?' 그리고 함께 믿는 가족과는 이번 명절이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고, 함께 감사하고, 더 깊이 사랑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정이, 우리 가족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설 명절 연휴에도 새벽에 일어나 영상 앞에서 아버지를 찾는 우리를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강한 복음의 증거라는 것을. 주님, 이번 명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닮게 하소서. 아직 주님을 모르는 가족이 있는 성도에게는, 말이 아닌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지혜를 주시고, 온 가족이 함께 믿는 은혜를 누리는 성도에게는, 이 명절이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며 사랑을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진실한 삶으로, 어디에서든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가정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증거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