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을 따라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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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신다고 믿고, 하나님이 자녀를 지키신다고 믿고, 하나님이 교회를 붙드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는 있는데, 정작 우리의 선택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까? 환경입니까? 형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언약입니까?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23장에서 26장까지의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을 통해 한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씨를 주시겠다고 하셨으며, 그들을 통해 복을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죽음도 있었고, 흉년도 있었고, 가정 안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언약은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언약은 사람이 붙들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어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땅의 언약과 씨의 언약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은 과연 언약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땅의 언약은 죽음과 흉년 속에서도 유지됩니다.
첫째, 땅의 언약은 죽음과 흉년 속에서도 유지됩니다.
23장의 말씀은 사라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23장 2절 말씀을 보시면,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라고 말합니다. 땅의 위치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사라가 죽은 곳은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은 아브라함이 약속으로 받은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주요 민족이었던 헷 족속에게로 가서 매장지를 구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행동을 잘 보면 단순히 사라를 묻을 매장지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땅을 사려고 했습니다. 23장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여기서 “소유지”라는 것은 상속할 수 있는 재산을 의미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기업”으로 번역되기도 한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이 요구한 것은 영원히 자신의 재산이 될 수 있는 소유지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요청에 헷 족속은 자신들의 묘실 중 좋은 것 하나를 골라 죽은 자를 장사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무덤 하나는 내어줄 수 있지만 땅은 팔지 못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묘지로 구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그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겠다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에브론은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밭을 무상으로 주기는 하겠는데, 땅을 팔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집니다. 그의 목적은 장례가 아닌 땅을 소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간청하는 아브라함에게 에브론은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지만 그곳을 빌려줄테니 사라를 장사지내라고 말합니다. 큰 금액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두 말 없이 그 돈을 지불했고, 그곳이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23장 18절의 “확정하다”는 단어는 “사다”는 의미입니다. 그 땅을 돈을 주고 사서 자기의 소유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왜 돈을 주고 사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믿음의 구체화였습니다. 창세기 15장 7절 말씀에 하나님이 이렇게 아브라함과 언약하십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이렇게 하나님은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이후의 말씀을 보면 그의 후손들이 애굽에 가서 400년동안 종살이 한 후에, 그 자손들을 이끌어 내어 이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은 땅을 주시기는 하실 것인데, 지금 즉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야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미래의 그 후손을 위해서 땅을 구입했습니다. 후손들이 애굽에 가서 400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멀리 떠난 그 후손들이 약속의 땅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가나안 땅에 근거지를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그 근거지는 농사지를 마련한다거나, 집을 짓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부모나 조상의 뼈가 묻혔다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도장을 찍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내 조상의 뼈가 묻힌 곳, 그곳은 잊을 수 없는 나의 고향이 되어, 내가 돌아가야 할 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막벨라 굴이 있는 밭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의 소유지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야곱과 그 가족이 애굽에 내려가서 살 때에 이 막벨라 굴의 밭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후손들 마음의 지지대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소유로 삼고 매장지로 삼은 곳이 있는데, 자신도 그곳에 장사해 달라고 유언합니다. 이후 요셉도 출애굽할 때에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그 땅에 묻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바람대로 그의 후손들은 애굽은 잠시 사는 곳이며, 자신들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갔습니다. 후손들이 약속의 땅을 잊지 않고 살 수 있었던 버팀목이 바로 막벨라 굴이었습니다. 언약의 기억 장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후손들이 이런 믿음을 지키게 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하면서도 작은 땅을 소유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이 왔지만, 상실이 왔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언약은 끊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24장이 이삭과 리브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씨의 언약 이야기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땅의 언약을 지키려는 결단이 들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종에게 맹세시키는 장면 다음에 종이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24장 5절 말씀입니다.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 땅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버리셨던 곳이고, 지금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종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결코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집과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셨고, 이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아들을 그곳으로 데려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 말은 언약의 땅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자 한 그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땅의 언약에 대한 말씀을 잊지 않고 그 믿음을 지켜 나갔던 것입니다.
이어서 26장에 다시 이삭 이야기가 나오는데, 큰 흉년이 들어 그랄로 피신했다고 말합니다. 그랄은 여차하면 애굽으로도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고 이 땅에 거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그 땅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이었고, 애굽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약속의 땅에 있기만 하면 복을 주고, 땅을 주며, 자손을 번성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삭은 말씀을 따라 약속의 땅에 거류했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땅에 대한 언약의 말씀을 지킴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까지 함께 누린 것입니다. 유목민인 이삭은 농사에 서툴렀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지어 100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을 많이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그가 거부가 되었는지, 블레셋 사람이 이를 시기해서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습니다. 이 분쟁을 본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네가 너무 강성하니 우리를 떠나가라고 말합니다. 이에 이삭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거류했는데, 이곳에서도 우물 쟁탈전은 계속 되었습니다.
우물을 파면 그랄 목자들이 와서 그 우물을 자기 것이라고 하고, 또 파면 또 와서 다투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그때마다 싸우지 않고 양보하며 옮겨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싸움으로 땅을 쟁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물은 생명줄이었습니다. 어렵게 판 우물을 내어주고 다른 곳에 또 우물을 판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계속 양보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때마다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마침내 다툼 없는 우물을 얻었고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을 따라 사는 태도입니다. 언약 백성은 세상 방식으로 모든 것을 움켜쥐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러설 때도 있고, 양보할 때도 있고, 손해 보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조차 믿음으로 나아가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넓게 하신다”, “하나님이 결국 주신다”는 그 고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이 거기로부터 브엘세바로 옮겨갔습니다. 브엘세바는 21장에서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고 예배한 장소였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다시 한 번 언약의 말씀을 주십니다. 26장 24절 말씀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그랄에서 이삭은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랄을 떠나 여기까지 오는 중에도 그랄 사람들로부터 계속적인 위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있어 그를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랄에서부터 복을 주신 하나님이신데,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복을 약속하십니다. 또 자손이 번성하게 할 것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한 번 이삭에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에 이삭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이어져 온 예배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약의 최종 표지는 우물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언약 백성의 중심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제단이라는 것입니다. 이삭은 그것을 잘 알았고,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외부의 어려운 환경이나 상황이 믿음의 장소를 떠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믿음을 잃게 하는 장소로 옮겨가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렇게 그 믿음을 지켜 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운 환경이나 상황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여 늘 하나님의 언약의 장소 가운데서 믿음 지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땅의 언약이 지켜졌다면, 그 언약은 어떻게 이어지는 것입니까?
둘째, 씨의 언약은 다음 세대를 통해 이어집니다.
둘째, 씨의 언약은 다음 세대를 통해 이어집니다.
24장의 이삭의 결혼 이야기는 길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언약은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어가시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언약 백성에게 책임 있는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늙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마지막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이야기, 그의 인생에서 정리해야 할 것은 바로 이삭의 결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 종에게 자기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하게 합니다. 이렇게 맹세하는 것은 그와 그의 후손의 생명을 걸고 하는 맹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종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고 말합니다. 그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민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이방 민족의 침투를 막기 위함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과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었기에, 하나님을 믿는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가나안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족속”은 아주 가까운 친족을 의미합니다. 아버지 데라의 자손이라면 같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후손에게 민족의 순수성과 신앙의 순수성을 물려주기 위해, 즉 언약을 위해 늙은 종에게 맹세시켜 이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의 종은 낙타 열 필을 이끌고 떠나 밧단 아람 지역의 나홀의 성에 도착했습니다. 고대 성들 주변에는 주변에 유목민들이 있으면 성문 밖에 사람과 짐승이 마실 수 있게 우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종과 짐승은 오랜 여정에 지쳐 그 우물 곁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종은 직접 우물에서 물을 길어 목을 축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돌보기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주인의 아들의 배필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합니다. 주인이 섬기는 그 여호와께서 주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구합니다. 그는 기도 중에 “만나게 하사”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만나게 한다는 원어의 의미는 “생기게 하다”라는 것입니다. 이 일의 성사여부는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물 물을 자신에게 줄 뿐 아니라 낙타가 마실 물까지 길어주는 여인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자라고 믿겠다고 기도합니다. 그 때 리브가가 우물로 와서 물을 길어 올라왔는데, 종이 달려가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합니다. 리브가는 즉시 물동이를 내려 종에게 주었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낙타에게도 배불리 마시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친족 여자를 원했는데 더할나위 없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여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종은 그녀가 이삭의 신붓감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예상치 못한 큰 선물에 리브가는 놀랐습니다. 게다가 선물들이 보통 신랑 측에서 신부에게 주는 예물이었기에 더 놀랐을 것입니다.
리브가가 집으로 돌아가 오라비 라반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라반이 달려와 종을 집으로 초청합니다. 라반은 관습에 따라 집으로 온 종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하지만 종은 자신이 온 목적을 먼저 해결하기 원했습니다. 자신이 아브라함의 종이라는 신분을 밝힙니다. 그리고 있었던 일을 쭉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는데, 이제 리브가의 가족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종의 말에는 뼈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그들이 거절하면 그것은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종의 말을 들은 라반과 브두엘에게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는 것을 허락합니다.
리브가의 가족은 리브가가 당연히 결혼 준비를 위해 며칠 더 머무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종의 요청에 리브가는 곧장 함께 가겠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 앞에서 떠났던 것처럼, 리브가도 언약의 길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을 만나 결혼했고, 이삭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를 이은 것처럼, 리브가가 사라의 대를 이어 족장 집안의 안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다음 세대를 위해 언약을 준비하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요점은 이것입니다. 언약은 “우리 세대의 감동”으로 끝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언약은 반드시 다음 세대의 믿음과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이어 가시지만, 우리도 그 언약을 이루어가기 위해 함께 준비하고 다음 세대로 그 언약을 잘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만 말씀을 잘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다음 세대를 위해 잘 준비하고,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믿음을, 말씀을 잘 전수하는 그런 세대가 되기를, 또한 믿음을 잘 이어받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배필을 찾아줌으로 그의 사명을 다했고, 25장은 그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기 전에 아들들을 잘 정리했습니다. 이삭에게 모든 소유를 주고, 다른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실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재산은 원어로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재산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적은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선물을 준 것은 적지만 섭섭지 않게 대우해 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자들이 이삭을 떠나 동방으로 가게 했습니다. 이삭과 유업을 나눌 수 없기에 약속의 땅에서 서자들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이후에 혹시나 있을 분쟁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그들을 동쪽으로 멀리 떠나 보냈습니다. 동쪽이라는 것은 쫓겨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동쪽으로 쫓아 보내셨습니다. 가인이 범죄했을 때도 그는 동쪽으로 쫓겨나 살았습니다. 즉 동방으로 쫓겨나는 것은 언약백성의 대열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식들에 관해 주변을 깨끗이 한 후에 이삭에게 유업을 물려주고 죽었습니다. 자기가 죽은 후에 생길 수 있는 자식들의 분쟁요소를 완전히 제거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내렸던 복이 이제 그의 아들 이삭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받은 모든 언약을 전수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언약의 대는 이어졌지만, 씨의 언약은 여전히 위기 앞에 있었습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삼았지만, 리브가가 임신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브라함 가문의 아내들은 불임을 많이 겪었습니다. 사라가 불임으로 고생했고, 며느리 리브가도 불임으로 곤란을 겪었고, 또 손자 며느리 라헬도 불임으로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불임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복된 자식을 낳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불임으로 힘들어하는 리브가를 위해 이삭이 기도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처럼 첩을 취해 아들을 낳으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듣고 리브가를 임신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리브가가 임신 중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녀가 쌍둥이를 잉태했는데, 아들들이 태중에서 서로 싸웠기 때문입니다. “싸우다”라는 말은 “으깨다, 짓누르다”는 의미입니다. 두 형제가 그렇게 서로 짓누르며 싸우니 리브가의 고통이 심했을 것입니다. 리브가의 입장에서는 이 아들들이 쌍둥이인 것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20년을 기다려 아이를 임신했는데, 그 결과가 이러니 절망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하나님께 “내가 어찌할꼬”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렇게 답하십니다. 25장 2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먼저 배속의 아이가 쌍둥이인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이 두 아이가 서로 양립할 수 없이 나누일 것이라고, 분리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은 두 아이가 각 족속을 이룰 것인데, 장자가 아닌 어린 자가 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자권이 형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고대의 관습은 장자가 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사람의 관습 위에 두신 것입니다.
뱃속에서부터 싸웠던 그들의 갈등은 부모의 편애로 더 증폭되었습니다.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해서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장막에 머물며 자신을 도와주는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아마도 리브가는 임신 중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서 야곱에게 더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볼 때 모든 면에서 에서가 유리했습니다. 그는 장자권을 가지고 었었고,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상속권은 당연히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태중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장자권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아서 이 당연한 이치가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들에서 돌아와 심히 피곤한 에서에게 야곱이 팥죽을 주면서 장자권을 팔라고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집에 하인들이 있었기에 에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장자권을 가볍게 여겨서 팔아버렸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준 떡과 팥죽을 먹고 마시고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이게 보통의 유산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을 이어받는 권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어떻게든지 얻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에서가 몰랐을리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두고 성경은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훔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고 말합니다.
이 일 뿐 아니라 이후에 나타나는 에서의 삶에서도 그가 무엇을 붙잡고 살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26장 마지막에 에서의 결혼 이야기가 있는데, 에서의 결혼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가나안 사람인 헷 족속과 결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위해 가나안 여인을 취하지 말라고 당부한 모습과 대조됩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언약 안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고, 약속의 후손을 얻으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났습니다.
둘째로 에서는 두 아내를 취했습니다. 언약 가정의 경영자로서 의식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에서는 약속의 반열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장자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가 더 강했고, 더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약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야곱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계산적이고, 욕심도 있고, 부족함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연약함 속에서도 언약을 이어가셨습니다.
이것이 씨의 언약입니다. 언약은 완벽한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붙드시는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결혼을 준비했듯이, 우리는 믿음의 통로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물론 선택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언약을 실제로 이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자녀의 믿음도, 교회의 다음 세대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계산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과 신실하심으로 이어짐을 신뢰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잘 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창세기 23장에서 26장까지의 말씀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언약은 인간의 형편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음 앞에서도 땅의 언약을 붙들었습니다. 이삭은 흉년과 분쟁 속에서도 그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리브가는 믿음으로 가족을 떠났고, 야곱은 선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졌습니다.
환경은 흔들렸습니다. 가정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분쟁도 있었고, 실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약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언약은 인간의 능력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이어 가시며, 하나님이 완성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참된 기업이 되시고, 참된 복이 되시고, 참된 구원이 되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환경입니까? 손익 계산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언약입니까?
언약을 따라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믿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언약 백성인 우리를 붙드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 언약을 붙들고 오늘도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