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6장 13-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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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이 머무는 자리
제목: 성령이 머무는 자리
본문: 사무엘상 16장 13-23절
본문: 사무엘상 16장 13-23절
찬송: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찬송: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오늘은 사무엘상 16장 13-23절 말씀을 가지고 성령이 머무는 자리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임함과 동시에 사울에게서는 떠나가는 영적 권위의 교차로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와 동행하시며 그 동행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목도하게 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심령이 단순히 고통을 잊는 자리가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 머무는 거룩한 처소가 되기를 소망한다.
13절은 '한시적 은사를 넘어선 성령과의 지속적인 동행'을 말한다.
13절은 '한시적 은사를 넘어선 성령과의 지속적인 동행'을 말한다.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다윗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은 사사기 시대의 사사들이나 사울의 경우처럼 위기 때만 찾아오는 한시적 강림이 아니었다. 사사기 6장의 기드온이나 11장의 입다에게 임했던 성령은 특정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일시적으로 '옷 입히듯(라바쉬)' 임했던 사역적 은사였다. 특히 삼손의 경우, 사자가 달려들거나 블레셋과 싸울 때만 여호와의 영이 '갑자기(찰라흐)' 임했으나, 사명을 망각했을 때 성령은 그를 떠나갔다. 하지만 다윗의 경우 성경은 '이날 이후로 계속(바마을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했다고 기록한다. 이는 다윗의 왕권이 개인의 탁월함이 아니라 이 '떠나지 않는 임재'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일시적인 감정의 뜨거움이나 필요할 때만 구하는 은사를 넘어 주님과 지속적으로 동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다시 들판으로 나가 양을 쳤으나, 그의 내면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내 눈앞에 화려한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이날 이후로"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인치심을 신뢰하며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는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14-22절은 '회개 없는 도피와 은혜의 철회가 가져온 비극'을 말한다.
14-22절은 '회개 없는 도피와 은혜의 철회가 가져온 비극'을 말한다.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을 괴롭힌 악령은 하나님과 대등한 악의 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철회된 자리에 남겨진 '하나님이 긍정하지 않으시는 영역(Das Nichtige)'의 습격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때 찾아오는 가장 비참한 현실은 세상의 결핍이 아니라 바로 '은혜의 부재'이다. 사울과 신하들은 이 고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심판임을 알고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수금을 타는 자를 통해 고통을 잠시 잊으려는 한시적 도피를 선택한다. 영적인 문제를 세상의 위로나 예술로 해결하려 할 때, 인간은 더 깊은 번뇌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삶의 고난이 닥칠 때 그 원인을 살피며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사울처럼 수금 소리라는 임시방편 뒤로 숨는 것은 하나님을 외면하는 행위이다. 내 영혼이 번뇌할 때 세상의 즐거움을 찾기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러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단순히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을 통해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긍정 안에 거하게 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23절은 '성령의 사람을 통한 영적 영역의 수복'을 말한다.
23절은 '성령의 사람을 통한 영적 영역의 수복'을 말한다.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성령의 사람 다윗이 사울의 궁정에 진입하여 수금을 탈 때, 악령에 짓눌려 숨 막히던 사울이 '상쾌하여(라와)' 낫는 역사가 일어난다. '라와'는 영적인 호흡이 회복되어 공간이 넓어짐을 의미한다. 다윗은 아직 왕좌에 앉지 않았으나, 그의 현존과 찬양만으로 어둠이 지배하던 사울의 영역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는다. 성령 충만한 한 사람이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수복(Reclamation)되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영적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으로 일터와 가정에 머물 때, 그곳의 어두운 기운은 물러가고 하늘의 평강이 임하게 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그 공간을 수복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사울처럼 위로를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다윗처럼 주님의 평강을 운반하여 세상을 상쾌하게 만드는 회복의 통로로 살아가야 한다.
사울은 고통을 잊으려 했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기억하게 했다. 인간의 얕은 꾀는 일시적 안식을 주지만, 성령의 동행은 근본적인 회복을 가져온다. 오늘 하루, 세상의 수금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임재 앞에 머무르자. 우리 인생의 모든 좁아진 영역들이 주님의 생기로 말미암아 상쾌하게 회복되는 승리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설명절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주님의 전에 나와 기도로 한 주를 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사울과 같이 성령이 떠난 자의 번뇌가 아니라, 다윗과 같이 "이날 이후로" 영원히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사모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명절의 분주함 속에서도 우리의 심령이 세상의 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거룩하고 복된 명절을 지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세상의 거친 풍파 속에서도 그들의 삶이 오늘 본문의 다윗과 같이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어디에 있든지 성령에 크게 감동된 사람으로 살아가며, 그들이 머무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고 영적인 상쾌함이 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가족들과 오고 가는 모든 발걸음을 지켜주시옵소서. 안전사고 없이 주님의 날개 아래 보호하여 주시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이전보다 더 깊은 화목과 형제 우애를 나누는 따뜻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새벽을 깨워 주님 앞에 나온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 부르짖음에 속 시원히 응답하여 주시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