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되지 않는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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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에 반응하는 자
부르심에 반응하는 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전도사님이 SNS를 보다가 재밌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다음 중 어떤 사람이 부르면 설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1번이 카리나가 데이트하자고 부른다. 2번 장원영이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부른다. 3번 윈터가 보고싶었다고 칭얼거린다. 4번 삼성 이재용 회장이 잠깐 할 말이 있다고 부른다. 여기서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4번 이재용 회장을 지목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엄청나게 미모가 아름다운 여자 가수가 부르는 것보다 이재용 회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능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1등 부자인 것을 알고, 그의 한 마디가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에 이재용 회장의 부르심이 너무나 설레는 일이 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찾아와서 내가 시키는 것만 잘하면 좋은 일이 있을거라며 제안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그렇다. 바로 의심부터 해야 한다. 특히 공항에서 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다가 그곳에 위험한 것들이 들어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에 함부로 제안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외국인이 일론 머스크였다면 의심하지 않고 그의 말에 열심히 따라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누가 불렀는지 그 사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삼성 이재용 회장보다 일론 머스크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아니,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우주보다 크신 아니,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오늘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당시 사람들은 우상을 하나씩 명품백처럼 들고 다녔다. 우상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쓸데있는가? 쓸 곳이 없다. 하나의 장식품 같은 것이다. 명품백도 보면 유용해보이는가? 아니다. 보통 명품백은 되게 작고 에코백이나 백팩처럼 용량이 큰 것도 아니고, 기능이 다양하거나 유용한 제품이 아니다. 당시 고대의 사람들도 각 가정마다 어떤 우상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집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생각했고, 당시 그러면서 여러 신들 중에서 서열이 있었다. 그때 아브람에게 여호와라는 신이 나타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브람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명령했던 그곳 하란을 떠나 출발하게 된다. 하나님이 주실 땅이 어디인지 아직 알지는 못하지만 순종하여 그 땅으로 출발을 하였다. 이것을 보게 되면 첫 번째로 하나님은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땅을 주실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에 첫 번째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이다. 이 때 당시 아브라함에게 자녀가 있었는가? 75세 노인이 되었어도 자식 하나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의 사라가 불임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여성이 임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저주받은 사람으로 한국에서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많은 후손을 주실 계획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아담에게, 홍수 사건 후에 노아에게 하셨던 약속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이다. 이 약속을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12장 바로 전에 11장에서 바벨탑 사건에서 사람들이 인간의 방법으로 이름을 높이려고 하다가 결국 언어가 혼잡해지고 흩어짐을 당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보잘 것 없어보이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두 번째로 복이 되고, 모든 열방과 족속, 세상에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무엇인가?
창세기 1:22 (NKRV)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NKRV)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복을 주실 때 명령은 다섯째 날 동물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신다. 여섯 째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신다.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복을 주실 때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으니 복이란 생명력이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 땅에 충만, 땅을 정복, 다스리라는 것은 복은 왕권과 통치권의 이야기를 나타낸다. 여기서 복의 개념이 끝나지 않는다.
창세기 2:3 (NKRV)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단순히 후손을 낳고 생명력이 충만이라는 의미로만 이해할 수 없다. 생명의 번성보다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복의 진정한 의미는 ‘안식’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안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쉼으로만 생각하면 유대인처럼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안식이란 하나님 자신의 Masterpiece를 보면서 큰 만족을 가지는 것이 안식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된 상태이다. 우리와 같은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세계를 보며 위대한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배이고, 안식의 참 의미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간이 대리 통치하는 모습,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 그대로 세상의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인간으로 인해 복의 상태가 깨지게 되었고, 더 나아가 노아 홍수,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복의 모습이 상실되었다. 이러한 인간들 속에서 이것들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너는 복이 될지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복’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된 상태가 되도록 하시겠다는 의미다. 즉 아브라함을 통해 창세기 2장 3절의 모습, 복의 모습, 안식의 모습을 회복시키겠다는 선포인 것이다.
그러면서 창세기 12장 4절에 아브람은 무엇을 따라가는가? 그가 자신이 현재 처한 현실이나 세상의 소리에 따라간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간다. 그렇게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그의 가족도 따라가고 여러 종들도 포함한다. 그렇게 작은 대가족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된다. 그의 나이는 75살이었다. 또 하나님은 구체적인 장소를 말씀하지 않고,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신다. 아브람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채로 하란을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어딘가? 가나안 땅이었다. 더 들어가 세겜이라는 땅에 도착하게 된다. 더 정확한 위치는 모레의 상수리나무이다. 보통 가나안 땅에 사람들은 높은 산 위에서, 작은 산 위에서, 어떤 푸른 나무 아래서 등 눈에 잘 띄고 예뻐보이는 장소를 택해서 자신들의 신을 예배했다. 그러나 모레의 상수리나무의 뜻은 평지 또는 골짜기라는 것이다. 이후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이곳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방 신들을 묻어버린 장소이다. 여호수아는 이 나무에 큰 돌을 세웠다. 가나안 사람들이 하던 방식을 완전히 거부하고 하나님이 명령한대로 후손들이 살아간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전에는 음성으로 아브람에게 명령하시다가 7절에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아브람에게 약속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것은 점점 극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켜서 말씀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꾸만 현실을 생각하고 있는 아브람에게 확신을 주시는 메시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게 자녀가 없는 아브람에게 자손들에게 땅을 준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은 아브람 자신이 아니라 아브람의 후손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사는 동안에는 이뤄질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후손을 통해 완성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브람은 벧엘에서 어떤 탑이나 도시를 건설하지 않았다. 제단을 쌓았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아브람과 사라는 나이가 들어 대를 이어갈 수 없는 소망이 없는 삶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한줄기의 희망이 되어주신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약속을 붙잡고 믿으니 감사하며 예배하지 않겠는가?
아브람의 삶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들을 지키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그의 신앙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 후손을 많게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사라의 불임 사이에 긴장감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 사이에 간격 속에서 아브람은 믿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겜에서 벧엘 그리고 점점 남방으로 내려간다고 말씀하는 남방은 남쪽이라는 뜻을 가진 네게브라는 도시를 뜻한다. 이 코스는 야곱이 걸어갔던 여정,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할 때 갔던 길이었다.
갈라디아서 3:8–9 (NKRV)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도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경은 앞으로 일어날 일, 유대인들에게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브라함에게 모든 족속, 모든 열방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의롭게 하여 줄 것을 미리 이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복음의 메시지를 최초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전하신 것이다. 그 말씀은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성경 말씀과 같은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복을 받았던 것이다.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는 아브라함과 똑같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 복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믿음으로 인해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아브라함에게 보이는 모든 땅을 주겠다는 약속은 곧 하나님이 온 땅의 주인이기에 자녀된 우리도 지으신 모든 땅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또 여러분을 통하여서 여러분도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복을 누리고, 여러분의 주변도 복을 누리기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 구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예정하심이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을 세상을 지으시기 전에 택하셨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누구의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평생토록 누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가?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나 세상에서 지금 당장에 믿음이 없어보인다고 “너 지옥간다”는 말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도 그 믿음을 누가 주신 것인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주신 것이 아닌 거저주신 은혜라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예수 믿고 구원받은게 내가 뭔가 잘나서 받았다고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구원백성인지 모르기에 계속해서 복음을 선포해야하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택해주셨고,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아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지하시다”라고 고백하지 않은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예정하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어떤 수많은 사람들이 악한 일이든, 선한 일이든 각자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누구의 뜻대로 사용하시는 것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능하시다”라고 고백한다. 결국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팩트는, 예수님 다시 오시면 최종심판과 구원이 있다. 마치 노아의 방주사건처럼 말이다.
파라오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받지 못하게 막아도 결국 하나님은 파라오를 심판하시면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고, 노예였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온 세계가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 아무리 로마가 교회를 핍박하더라도 교회가 흩어지면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로 복음이 확산되었고, 결국 로마도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악인들이 힘 없어보이는 교회를 없애려고 노력을 해도 오히려 그들이 멸망하기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 답이 정말 없어보이는 상황에서 우리가 보통 신의 한수라고 말하는 그 수가 하나님에게는 무한대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는 분이다. 그 하나님은 택한 백성은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다. 그것 또한 어마어마한 은혜이다. 그리고 그 택한 백성을 몇 대까지 책임지시는가? 무려 1,000대까지 책임지신다. 국가나 세상에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몇 대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한 두명이 아닐텐데 여러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예수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의 1,000대를 책임지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정말 위대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정과 택함을 따라 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는가? 성령이 거룩하게 하신다. 성령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기 위하여 주님을 닮아가게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계획이 용서 받지 못한 죄악에 의해 손상된 순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에 의해 용서받고 정화가 된 사람들의 순종을 통해 아름답게 사용하시고 일하신다. 그렇기에 베드로 사도는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방식에 일치되게 살아가는 삶,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회복시키시는 피를 구하며 날마다 회개를 통해 죄의 오염으로부터 매일 계속 정화되는 삶을 말하고 있다. 베드로는 한 마디로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계속적인 매일의 순종과 용서를 위하여 택함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선포하는 메세지로 베드로전서의 편지를 시작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여기에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어떤 친구는 불안한 상황과 미래에 대한 답답함을 가진 친구도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친구들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여정의 시작도 분명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게 맞을까? 과연 이렇게 따라간다고 해서 내 삶이 뭐가 달라질까?”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이 아닌 현실에 대한 생각과 걱정으로 더 가득했다면 그의 이야기는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했다. 여러분을 이곳에 부르신 하나님은 실수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기억하라. 오늘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이 시간 걱정, 근심, 두려움 모두 다 맡겨드리고 말씀 속에서 신실하게 이끌어가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하시라. 우리가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따라오라고 해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안다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따라갈 수 없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분은 여러 번 설교를 듣지 않았는가? 하나님에 대해 모른다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얼마나 전지전능한지 알 수 있다.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성경책을 펴고 읽고 생각해보라. 그리하여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여정을 걸어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여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 중세시대 신학자 안셀무스가 고백한 것처럼 믿기 위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믿기 원하는 인생되길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