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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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는 우리 삶과는 거리가 먼 단어였습니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영화 속 로봇이나 먼 미래의 기술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AI는 실생활을 넘어 우리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찾아주는 수준이 아니라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조적인 일까지 해 냅니다.
AI는 빠르고, 편리하고, 효율적입니다. 이전에는 AI를 실무에 도입하는 것이 좋지 않게 받아들여졌다면 불과 1,2년 만에 기업의 인사평가 항목에 ‘AI 활용 능력’이 포함될 정도로 AI가 중요한 시대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시대를 살다 보니 우리 마음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내가 설 자리가 있기는 할까?”
설마 이건 안 되겠지 싶었던 영역들마저 AI가 빠르게 가능의 영역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감이 필요한 상담 영역은 사람의 고유 영역이라 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AI에게 감정을 쏟아놓습니다. 전문적인 상담은 아니라지만 AI는 일상 속에서는 만족할 만 한 상담사입니다. 의술 또한 최종 ‘결정’만 내려진다면 진단과 수술, 치료의 정확성은 AI가 더 신뢰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교회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AI로 찬양을 만들고, AI로 신앙상담을 하고, 성경에 관련된 모르는 것이 있다면 AI에게 질문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크리스찬 AI플랫폼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명설교자들의 설교를 학습시킨다면 제 설교보다 훨씬 더 구조적이고 매끄러운 설교문을 AI가 만들어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언젠가는 교회도 AI의 위협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저는 오늘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AI는 사람의 영역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영역만큼은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는 질문에 답할 수는 있지만 우리 인생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정보를 줄 수는 있지만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감정에 공감해줄 수는 있으나 우리를 살리고 세워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질문과 또 수많은 답들의 홍수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불안하고 공허해합니다. 왜 그럴까요? 영혼의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관하여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함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어디를 향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지 살펴보길 소망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방법보다 먼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가르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말씀은 더 좋은 방법을 찾으라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 나아오라는 초대입니다.
기도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버튼이 아니라, 아버지를 신뢰하는 자녀의 행동입니다.
AI와 하나님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AI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AI는 즉시 답합니다. 우리가 질문하면 바로 응답이 돌아옵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질문에과 고민에,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AI와 하나님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응답의 본질은 전혀 다릅니다.
1) 기준의 차이
  AI는 사용자의 만족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답이 자꾸 바뀝니다.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하는데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그에 맞춰 태세를 전환합니다. 왜입니까? 사용자의 만족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분과 질문에 따라 답을 바꾸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를 그분의 성품에 기초하여 응답하십니다. 그분의 응답의 기준은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그분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이루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에게 때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고, 침묵하심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2) 방식의 차이
  AI는 정보와 학습에 기반합니다. 충분한 데이터가 없다면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AI의 답변은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틀릴 수도 있고, 실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학습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무한하시고 무궁하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르는 정보가 없고, 예상하지 못하는 변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는 행하심에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가 답을 찾지 못해도 하나님은 이미 답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길이 없다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이미 길을 예비해 두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3) 대가의 차이
  또 다른 차이는 ‘대가’입니다. AI는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더 좋은 기능을 쓰려면 더 빠른 응답을 받으려면 결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응답 서비스에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은혜로 주십니다. 이미 좋은 것을 주셨는데도,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고, 지금도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왜입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는 이미 결제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 결제는 우리의 행위나 통장에서 출금되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구할 자격이 없고, 받을 수 있는 응답도 하나 뿐이었습니다. 사망입니다.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함과 공허함 속에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이 땅에 보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단번에 내어주심으로 죄의 문제,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혼돈과 공허 가운데 생명과 성령의 법이라는 질서를 세워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프리미엄 케어 서비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자녀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명절 부모님 댁에서 우리는 이 경험을 합니다. 이미 충분히 먹었는데 돌아서면 또 맛있는 음식들이 나옵니다. 밥을 먹고 숨을 돌리면 떡이 나오고, 떡을 먹고 숨을 돌리면 커피와 과자들이 나오고, 그렇게 또 먹으면 절대 간식이 아닌 간식들이 나옵니다. 그렇게 한 숨 돌리면 또 밥이 나옵니다.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좋은 것을 주고싶은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이 사랑에는 대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결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딸, 내 아들이 고생하는 것이 싫어 설거지라도 도와드리려 치면 됐다 아서라, 쉬어라 하십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하늘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는 그 자녀에게 수고의 값을 쳐서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녀이기에 좋은 것을 주고도 더 좋은 것을 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자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마지막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은 정보가 아닌 생명이라는 점입니다.
AI는 탁월한 통찰과 교재들을 줄 수는 있어도 구원을 줄 수는 없습니다.
AI는 문장과 노래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소망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구하라고 하십니다. 정보가 아닌 더 좋은 것, ‘성령’을 구하라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응답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적용
  하나님의 응답은 정보가 아닙니다. 그래서 엔터를 치면 주르륵 쏟아지듯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의 물음에 답하신 뒤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으니 떡 세 덩이를 좀 빌려달라. 이미 문은 닫혔고, 모두가 함께 침실에 누워 잘 시간이지만 친구는 일어나 간청을 들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로서는 줄 수 없을지 몰라도 그 간청함으로 말미암아 들어주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구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을 리가 있겠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하는 자녀의 태도입니다. 
  AI시대에 우리는 입력하면 즉각 출력이 되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도 이러한 태도가 녹아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제게도 들이대면 저부터 이렇게 말합니다. 벌써 해 봤어요! 구하고 찾고 두드렸는데 응답이 없구요, 못참겠어요! 저 포기했습니다. 혹은 제 마음에 드는 방법대로 할래요. 계속 하나님께만 매달리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아요.
  우리가 살펴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AI처럼 ‘처리’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시스템이 아니라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뼈아픈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되는 것은 나의 결론은 틀렸고 하나님은 그 상황 가운데 항상 응답하시고 계셨으며, 그 분의 길은 옳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주겠느냐…”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할 때에 우리는 종종 생선이라 생각하며 기도하고 행동하지만 실은 뱀을 붙들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좋아 보이고,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는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원하지 않는 그것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일 때도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 사실을 더욱 깨달아갑니다. 거절은 곧 보호입니다. 침묵은 무관심이 아닌 성장을 위한 인격적인 기다림입니다. 육아는 효율과 합리성이 배제되어야 하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응답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시기도 하고 거두어 가시기도 하고 또 침묵하시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구하던 것이 내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성장하고 정말 내게 필요한 것들을 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이 말씀하신 ‘좋은 것’은 형통이 아닙니다. 즉각적인 문제 해결도 아닙니다. 성령입니다. 성령을 구하게 되면 기도의 방향이 바뀝니다. 나의 만족을 구하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게 되고, 상황의 변화를 요구하던 자리에서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효율과 속도를 구하던 자리에서 영혼을 살리는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에 우리는 반드시 응답을 받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는 내가 바라는 응답이 아닌 우리 안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응답입니다. 
<결론&결단>
  우리의 삶에서 정보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생산성과 효율이 필요한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영역이 정보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모든 문제가 검색으로 풀리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찾고, 구하고, 두드릴 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검색창을 열 것인가, 무릎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인가.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문제, 크고 작은 선택의 갈림길, 가정과 교회, 이 나라와 열방을 세우는 일은 정보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정보가 아니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효율이 아니라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말씀은 열심히 방법을 찾으라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 나아오라는 초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더 많이 두드려야 할 문은 세상의 문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문입니다. 우리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로 하나님 앞에 울부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열림으로, 보여주심으로, 열어주심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맡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비록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닐지라도, 우리가 그 응답에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며 틀리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제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앞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 검색창 대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끈질기게 구하며 찾고 두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질문이 아닌 우리 인생의 답이 되어주십니다. 그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찾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리는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의 문제 그리고 가정과 교회, 내가 속한 나라와 민족의 문제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립시다. 우리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하며 계속해서 성령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 말미암아 선하신 계획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성도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응답을 받는 삶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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