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도 도망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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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로의 부름
예배로의 부름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본문
본문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I.설교의 주제
I.설교의 주제
주요소 :
보조요소 :
1)
2)
3)
II. 설교의 목표
II. 설교의 목표
설교문: 아무도 없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설교문: 아무도 없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본문: 창세기 39장 1-12절
서론 — 성경의 '넘사벽' 인물
서론 — 성경의 '넘사벽' 인물
성경을 읽다 보면, 솔직히 좀 억울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간음죄에 살인까지 저질렀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 속였고, 모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약속의 땅 문턱에서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렇다 할 실수나 죄가 거의 기록되지 않는, 소위 '넘사벽' 인물들이 있습니다. 다니엘, 에녹, 사무엘, 룻, 느헤미야…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만날 요셉.
요셉은 진짜입니다. 형들에게 팔리고, 노예가 되고, 억울한 누명까지 썼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죄를 짓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요셉도 오늘 본문에서 도망칩니다.옷을 잡혀 벗겨지면서까지, 그냥 뛰어나갑니다.
오늘 요셉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단순한 '유혹을 이긴 이야기'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 유혹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1. 유혹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성경은 보디발의 아내 외모를 한 마디도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예뻤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무 말도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요셉이 이긴 유혹이 단순히 '아름다운 여자' 때문만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녀는 당시 이집트 최고 권력자 중 하나인 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였습니다. 노예 신분인 요셉에게 그녀의 유혹에 응한다는 것은 단순한 성적 유혹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뒷배'를 얻는 권력의 유혹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한 번만 눈 감으면, 네 신세가 달라질 수도 있어."
그리고 성경은 그 유혹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날마다입니다. 한 번 튕겨내면 끝이 아니라, 매일 아침 출근하면 그 유혹이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이건 요셉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유혹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유혹은 잠의 유혹입니다. 일단 일어나기 싫습니다. 겨우 일어났다 싶으면 두 번째,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유혹이 옵니다. 그리고 결국 손이 가는 건 스마트폰입니다. 남자애들은 주로 게임, 여자애들은 드라마, 웹툰, 카톡, DM, 쇼핑… 나머지 전부입니다. (웃음)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게으름의 유혹이 있습니다.
이 모든 유혹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공부입니다. 성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날마다 싸웠듯이, 여러분도 매일 아침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얼마나 지치는 전쟁인지, 조금은 알 것 같지 않나요?
2. 결정적 순간 — "아무도 없었다"-
2. 결정적 순간 — "아무도 없었다"-
절대 들키지않고 알리바이 증인/완벽하게 경찰에게 잡히지않는 범죄를 완전범죄라고 말한다 흔히
절대 들키지않고 알리바이 증인/완벽하게 경찰에게 잡히지않는 범죄를 완전범죄라고 말한다 흔히
완전 범죄가능~~
완전 범죄가능~~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저는 이 구절이 이 본문에서 가장 무서운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쁜 여자가 유혹한다 — 버틸 수 있습니다. 권력이 유혹한다 —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 이게 진짜 유혹입니다.
사람은 다 봅니다. 남이 볼 때는 버팁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진짜 우리 자신이 됩니다.
스마트폰 켜고 혼자 방에 있을 때. 부모님이 출장 가고 집에 혼자 있을 때. 늦은 밤 아무도 모르게 검색창에 손이 갈 때.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요셉에게 물으십니다. "아무도 없을 때, 너는 누구냐?"
여기서 한 가지 정말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어디서 뭘하시든지 다 아신다” -천국 CCTV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 — 이 말은 사실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죄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 말은 엄청난 위로입니다. "힘들지? 외롭지? 괜찮아, 하나님이 함께하셔."
그런데 숨어서 죄를 지으려는 사람에게 이 말은 무서운 경고입니다. "어디를 가도, 어디에 숨어도,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자, 지금 옆에 있는 친구에게 한번 인사해볼까요? 그냥 이렇게 해보세요.
"친구야~ 너 숨어서 죄지을 생각 하지 마!" (웃음)
3. 요셉의 대답 — 코람 데오 (Coram Deo)
3. 요셉의 대답 — 코람 데오 (Coram Deo)
보디발의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청하고, 결정적인 순간엔 옷을 붙잡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보디발 장군한테 들키면 어떡해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알면 창피해요"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이게 바로 코람 데오(Coram Deo) 정신입니다.
이 표현은 종교개혁자들이 특별히 강조한 말입니다. 라틴어로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 개념은 성경의 맨 처음 계명과도 연결됩니다. 십계명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 앞에 두지 말라"는 말씀에서 **"앞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파님"(פָּנִים), 즉 **'얼굴' 혹은 '면전'**이라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내 얼굴 앞에, 내 면전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하나님은 항상 우리 면전에 계십니다. 코람 데오 —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산다는 것은, 아무도 없을 때도 하나님의 얼굴을 의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어도, 카메라가 없어도, 부모님이 몰라도 —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 요셉이 바로 그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말해볼까요? 리더 친구들 중에, 죄를 지으려고 했는데 신기하게 막힌 경험 있지 않나요?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딱 그 타이밍에 부모님이 들어오시거나, 하필 목사님을 마주치거나.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신 겁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도 보고 계신다는 겁니다. 막지 않으신다고 안 보시는 게 아닙니다. 그냥 조용히 보시면서, 복을 줄까 말까 결정하고 계십니다.
4. 머리로 이긴 게 아니라, 몸으로 도망쳤다
4. 머리로 이긴 게 아니라, 몸으로 도망쳤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걸 봐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요셉이 어떻게 했는지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요셉은 신학 토론을 하지 않았습니다. "잠깐, 이것이 과연 옳은가 그른가를 논해봅시다" — 이러지 않았습니다.
그냥 뛰었습니다. 옷도 버리고.
이게 포인트입니다.
지난 1세기동안 교회에서 기독교 세계관 교육이 굉장히 유행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배운 것처럼, 세계관 교육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머릿속에 제대로 심는 것, 그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 머릿속에 좋은 세계관이 가득하면, 몸은 자동으로 따라올까요?
제임스 K.A. 스미스라는 신학자가 『Desiring the Kingdom』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데카르트 이후 우리는 인간을 너무 '머리' 중심으로, 주지주의적으로 봐왔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욕망하는 존재, 사랑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욕망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새겨진 습관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
그가 즐겨 드는 예화가 있습니다. 바로 '쇼핑몰 예전' 이야기입니다.
쇼핑몰에 가보면, 그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배당처럼 설계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 감각적인 음악, 완벽하게 진열된 상품들. 쇼핑몰에 가기 전까지는 없던 욕망이, 쇼핑몰에 들어가는 순간 생겨납니다. 보니까 갖고 싶어지고, 맡으니까 먹고 싶어지고, 입어보니까 사고 싶어지는 겁니다.
스미스의 핵심 명제는 결국 이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우리의 욕망을 만든다."
이 이야기를 새뮤얼 제임스(Samuel James)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쇼핑몰이 이제는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했다고.
오프라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몸매 좋은 사람들을 인스타그램에서 보게 되니까, 없던 욕망이 생깁니다. 오프라인에서는 몰랐을 최신 전자기기들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니까, 없던 구매 욕구가 생깁니다. 몰랐으면 먹고 싶지도 않았을 맛집들을 릴스에서 보게 되니까, 갑자기 거기 가야 할 것 같아집니다.
여기서 저 개인적인 예화 하나 드릴게요. 두바이 쫀득 쿠키, 소위 '두쫀쿠' 아시죠? 사람들이 SNS를 안 했으면 그게 유행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보니까 욕망이 생긴 겁니다.
저는 가끔 나은이를 보면서 진심으로 존경할 때가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데, 저보다 유행에 대해 더 모릅니다. (웃음)처음엔 신기했는데,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만큼 스마트폰을 덜 보고, 공부와 신앙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구나 싶어서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물론 새뮤얼 제임스 본인도 인정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공간을 아예 안 볼 수는 없다고. 완전한 차단이 아니라 절제가 답이라고.
그러나 방향은 분명합니다. 최대한 피하고, 최대한 절제하면서, 내 욕망이 형성되는 공간을 의식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요셉이 매일 아침 그 집에 출근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걸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신학 토론 없이 몸이 먼저 도망쳤던 겁니다. 머릿속 세계관이 아니라, 매일의 습관이 그 순간 그를 살렸습니다.
5. 적용 — 3월, 새 학기를 앞둔 너희에게
5. 적용 — 3월, 새 학기를 앞둔 너희에게
곧 3월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중1이 되는 친구들, 고1이 되는 친구들, 지금 이게 진짜 중요한 순간입니다.
저 여기서 고백 하나 할게요.
어제 결혼한 한나 선생님, 3년 전에 결혼한 영기 쌤, 5년 전에 결혼한 저 목사님. 우리 셋 다 중고등부 때 교회에서 공부 많이 했습니다. 그 새가족실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이 다 결혼했어요. (웃음)
여러분도 멋지게 준비하세요. 근데 진짜로 — 환경이 너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스마트폰 세대입니다. 저는 그때 피처폰이었어요. 언제 어디서나 자극적인 콘텐츠에 접근하는 게 지금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손 안에 그게 다 있어요.
요셉에게 "아무도 없는 집"이 유혹의 공간이었다면, 여러분에게는 **"아무도 없는 방 + 스마트폰"**이 그 공간입니다.
시편이 뭐로 시작하는지 아세요?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악인을 따르지 않고, 서지 않고, 앉지도 않는다. 최고의 지혜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잠언 7장에도 한 젊은이가 나오는데, 황혼 때 괜히 외진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유혹에 빠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왜 거기를 갔냐"고.
새 학기에 친구를 진짜 지혜롭게 선택하세요.집에 PC가 있으면 공부 안 됩니다. 환경을 바꾸세요.
6. 유일한 대안 — 거룩한 예전 (Holy Liturgy)
6. 유일한 대안 — 거룩한 예전 (Holy Liturgy)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임스 스미스가 말합니다. 욕망은 **예전(Liturgy)**으로 형성된다고. 세상은 매일 광고와 콘텐츠와 SNS로 우리의 욕망을 훈련시킵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룩한 예전으로 맞서야 합니다.
매일 아침 큐티. 기도. 찬양. 셀 단톡방에서 나누는 말씀 한 줄. 믿음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저도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저도 스스로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매일 이 예전에 의지합니다.
요셉이 매일 싸울 수 있었던 건 그가 특별히 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 설교로만 끝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 셀 모임 때, 이 내용으로 조금 깊게 나눠봅시다.각자 어떤 유혹과 싸우고 있는지, 어떤 환경을 바꾸고 싶은지, 어떤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가고 싶은지 — 믿음의 친구들 앞에서 솔직하게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결론 — 아무도 없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결론 — 아무도 없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오늘 밤, 방문 닫고 혼자 있을 때. 아무도 없을 때. 카메라도 없고, 부모님도 모르고, 목사님도 모를 때.
그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요셉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 한 가지 사실이 요셉을 지켰습니다. 그 한 가지 사실이 여러분을 지킬 것입니다.
새 학기, 새 친구, 새 환경. 코람 데오 —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로 마칩니다.
V. 기도문
V. 기도문
하나님 우리가 교회에서 거짓된 가르침을 경계하게 하시고, 또 잘못된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가 되지 않게하시고 오직 참된 복음을 겸손히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ord’s Prayers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