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메시아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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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기도제목
(1) 오늘도 힘주시고, 특별히 병중에 있는 성도님들, 주님 위로하여주시고, 온전히 치료하여 달라고
(2) 다음세대위해 기도합시다. 올한해 홀리몰리, 홀리아크, 홀리본 더 부흥되게 하시고,, 또 실기와 수능과 면접을 고3 재수, 3수친구들, 이번에 꼭 대학가서 청년부가서 신앙생활 잘하게 해달라고
(3) 선교를 위해 기도합시다.
(4) 마지막으로 청년대학부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청년들의 직장, 취업, 결혼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우리 청년부 부흥을 위해서
주님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 영광위해 살아가는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송가 :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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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본문: 요한복음 7: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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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살면서 억울하게 오해를 받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내 말의 일부만 잘려서 전달되거나, 누군가의 편견 어린 시선이 나의 전부가 되어버린 경험. 그 답답함,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오해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사소한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풀립니다. 그러나 어떤 오해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꿔버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오해(영원한 운명을 결젓짓는),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영원을 결정짓는 치명적인 오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일부' 정보만을 가지고 전부를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함께 이 질문 앞에 서봤으면 합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1. 담대한 예수님, 침묵하는 당국 (25–26절)
1. 담대한 예수님, 침묵하는 당국 (25–26절)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7장 25절부터 36절, 이 단락의 핵심 주제는 사실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 구원자인가?" 요한은 이 결정적인 질문을 앞에 두고,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이 보인 반응들을 하나하나 기록해나갑니다. 믿는 자도, 의심하는 자도, 체포하려는 자도 — 모두가 이 한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2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 앞에도 똑같이 놓여 있습니다.
그 반응들 가운데 첫 번째 장면이 25–26절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당국이 이미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막연한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부터 이미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 분위기를 생생하게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6절에서 이들이 당황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완전히 공개적으로 가르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당국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습니다. 죽이려는 자들이 있는데, 그 앞에서 담대히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 권위 앞에 결국 입을 닫아버린 당국.
군중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렇게 담대히 말하는데 왜 아무도 막지 못하는 거지? 혹시 당국도 저 사람이 그리스도인 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짧은 침묵이 이미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인간의 어떤 권력으로도 쉽게 제압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요한은 이 장면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이 반응, 이 당혹감, 이 수군거림 자체가 이미 하나의 증언입니다.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당시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놓치지않고 기록!!
2. 첫 번째 오해 — "우린 저 사람 출신을 안다" (27–29절)
2. 첫 번째 오해 — "우린 저 사람 출신을 안다" (27–29절)
그런데 27절에서 군중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하나의 통념이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실 때는 그 출신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무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나사렛 출신, 목수 요셉의 아들. 이것이 그들의 결론이었습니다.
요한복음1에서 나다나엘이 처음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시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나사렛은 당시 사람들이 무시하던 동네였습니다. 변변한 것 하나 없는, 이름도 없는 갈릴리의 작은 마을. 그들은 그 동네 이름 하나만으로 예수님 전체를 판단해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이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에 대해 딱 한 가지 정보만 듣고, 그것으로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해버리는 일. "저 사람은 ○○ 출신이래", "저 사람은 어떤 집안이래" — 그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순간들.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것을 했습니다.
->틀린 이해 -
구약성경 미가 5장 2절에 이미 메시아의 출생지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 예수님은 실제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구약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으로 이사하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하시면서, 사람들은 그것만 보고 단정 지어버렸습니다. "저 사람은 갈릴리 촌구석 나사렛 출신이야."
더 근본적인 문제는 28–29절에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육체적 출생지만 알았을 뿐, 예수님의 참된 기원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두 가지 '나심'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육신으로 태어나신 역사적 나심, 그리고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 계신 신적 기원. 사람들은 전자만 보고 후자를 완전히 놓쳐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가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의 아들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십니다. 목수의 아들이라는 껍데기 뒤에 가려진 예수님의 참된 정체, 그것을 그들은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덧붙이십니다.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한다." 이 말씀이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백성이라고 자부했습니다. 율법을 가졌고, 성전을 가졌고, 선지자들의 말씀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아는 그 하나님을, 너희는 사실 모른다고. 왜냐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을 알아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오해 — 그러나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다
3.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오해 — 그러나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다
이런 오해, 오늘날에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SNS에 떠도는 왜곡된 예수님의 이미지,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모습 때문에 예수님 자체가 오해받는 현실. 누군가 교회에서 상처를 받으면, 예수님이 아니라 그 상처를 준 사람의 이미지로 예수님을 판단해버립니다. 어떤 이는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 몇 개를 보고 기독교 전체를 정죄합니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말합니다. "예수는 탁월한 도덕 교사였을 뿐", "인류가 본받아야 할 훌륭한 위인". 이런 말들, 주변에서 많이 들으실 겁니다.
2천 년 전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사렛 출신 목수 아들"이라는 일부 정보로 예수님을 판단했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꼰대들의 하나님", "비과학적인 기적을 믿는 종교"라는 일부 이미지로 예수님을 판단합니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오해의 구조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은 참 인간이시지만, 동시에 참 하나님이십니다. 31절에서 군중도 이것을 느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실지라도 이 사람보다 더 많은 표적을 행하겠느냐?" 그 기적들 —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다를 잠잠하게 하신 그 능력 — 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군중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단순한 도덕 교사라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위인이라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분은 도덕적 모범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유일한 구원자,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모든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할 때 이 핵심이 흐려지면 안 됩니다. 트렌디한 언어로 포장하다가 예수님의 신성이 빠진 복음, 사람들의 호감을 얻으려다 구원자가 아닌 멘토로 전락한 예수님 —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말한 것처럼, 십자가는 세상에 미련해 보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복음이 아니라, 담대히 선포해야 할 복음입니다.
결론 — 바른 예수를 전하는 자로
결론 — 바른 예수를 전하는 자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우리 주변에 넘쳐납니다. 직장 동료, 가족, 친구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실제로 경험하고, 그분의 성품대로 변화된 우리의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도덕 교사가 아닌 구원자로, 위인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종교의 창시자가 아닌 죄와 죽음을 이기신 살아계신 주님으로. 그 예수님과 깊이 동행하고, 그분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 — 그것이 가장 강력한 전도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맛본 자만이, 바른 예수를 전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그 귀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V. 기도문
V. 기도문
하나님 우리가 교회에서 거짓된 가르침을 경계하게 하시고, 또 잘못된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가 되지 않게하시고 오직 참된 복음을 겸손히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ord’s Prayers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