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은 빚진 자의 자세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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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5:14-19
레위기 5:14-19
[서론: 우리가 짊어진 '빚'의 무게]
[서론: 우리가 짊어진 '빚'의 무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어깨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단어가 하나 있다면 아마도 ‘빚’일 것입니다. 매월 갚아나가야 하는 주택 담보 대출, 사업이나 개인의 생활을 위한 대출.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지고 있는 마음의 빚이나 관계의 빚까지. 이 '빚'이라는 것은 참 무섭습니다. 빚을 지면 마음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다 갚기 전까지는 늘 죄인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은행에 진 빚은 갚다 갚다 도저히 안 되면 파산 선고라도 할 수 있지만, 우리 인생에는 내 죽음으로도 끝낼 수 없는 가장 무섭고도 치명적인 빚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적인 현실을 가리켜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죄의 빚을 진 사람들이다.” 세상의 빚도 이렇게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데, 창조주 하나님 앞에 진 죄의 빚은 얼마나 우리 영혼을 짓누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레위기의 5대 제사 중 마지막 제사인 ‘속건제’는, 바로 이 숨 막히는 영적인 ‘빚’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친히 어떻게 해결해주시는지 보여주는 참으로 눈물겨운 제사입니다. 오늘 이 밤, 속건제에 담긴 하나님의 철저하신 성품과 우리를 향한 십자가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깨닫고, 빚진 자의 무거운 짐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1: 손해를 갚아내는 제사, 속건제]
[본론 1: 손해를 갚아내는 제사, 속건제]
레위기에 등장하는 속건제는 히브리어로 ‘아샴’이라고 부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내 마음의 죄를 씻어낸다는 의미를 넘어, 구약 성경 전체에서 ‘배상하다’, ‘보상하다’라는 뜻으로 아주 강하게 쓰입니다. 즉, 속건제는 내가 지은 죄로 인해 누군가에게 발생한 ‘손해와 빚’을 갚아내는 제사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제사를 드려야 하는 두 가지 중요한 경우가 나옵니다. 첫째는 비고의적으로 여호와의 성물(하나님께 바쳐진 예물 등)에 손해를 입혔을 때입니다. 둘째는 남의 물건을 속여서 빼앗거나, 주운 물건을 숨기고 거짓 맹세하는 등 이웃의 마음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재산에 해를 끼쳤을 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으로 두렵고도 정확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그냥 “그래, 마음속으로 회개했으니 다 괜찮다” 하고 슬쩍 넘어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손상된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내 욕심 때문에 눈물지은 이웃의 아픔은 반드시 ‘배상’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갚으라고 하십니까? 내가 끼친 원래 손해액에 오분의 일(20%)을 벌금처럼 더하여 120%로 배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끌고 와서 하나님 앞에 속건 제물로 피 흘려 바쳐야 했습니다. 이웃에게 지은 죄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이기에 하나님께도 생명으로 책임을 져야 했던 것입니다.
[본론 2: 갚을 길 없는 빚, 그리고 영원한 속건제물]
[본론 2: 갚을 길 없는 빚, 그리고 영원한 속건제물]
성도 여러분, 이 엄격한 속건제의 말씀을 들으면서 혹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저는 교회 헌금을 떼먹은 적도 없고, 교회 물건을 훼손한 적도 없습니다. 남에게 사기를 쳐서 재산을 빼앗은 적은 더더욱 없고요. 그러니 이 속건제의 말씀은 사실 저랑은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 같네요."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성경이 말하는 '성물(하나님의 것)'이 단지 예배당에 있는 의자나 마이크, 혹은 십일조 봉투만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호흡, 하루 24시간이라는 귀한 시간,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재능... 이 모든 것이 사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성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 귀한 성물들을 어떻게 취급합니까? 마치 내 것인 양 착각하며, 내 육신의 즐거움과 성공만을 위해 함부로 낭비하고 허비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들을 내 이기심을 위해 써버렸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물을 훼손하고 영광을 도둑질한 무서운 ‘속건제의 빚’입니다.
이웃에게 끼친 손해는 또 어떻습니까? 꼭 남의 지갑을 훔치고 사기를 쳐야만 죄입니까?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무심코 내뱉은 날 선 말 한마디로, 가장 가까운 배우자와 자녀의 마음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적은 없습니까? 직장에서, 혹은 교회 안에서 내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버린 적은 없습니까? 이 모든 것이 반드시 120%로 배상해야 할 '명백한 폭력이자 손해'입니다.
이 엄격한 속건제의 거울 앞에 우리의 일상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십시오. 우리는 하루라도, 아니 단 한 시간이라도 영적인 빚을 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철저한 파산자들입니다. 속건제의 법대로라면, 우리는 매일매일 이 수많은 죄의 빚에 120%의 이자를 쳐서 하나님께 갚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 무서운 빚의 청구서를 우리에게 내밉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우리가 진 이 엄청난 죄의 빚은 결국 내 ‘생명’을 내놓아야만 끝이 나는 형벌입니다. 아니! 생명의 생명을 내어놓아도 부족한 형국입니다.
그런데요,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 꼼짝없이 사망의 선고를 기다리던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기쁜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빚을 갚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영원한 속건제물'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0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갚아야 할 모든 죄의 빚을 120%, 아니 완벽하게 전액 상환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다 이루었다!”는 말은 곧 “너의 모든 빚이 완벽하게 지불되었다!”는 영광스러운 선포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이 복음을 믿으십니까? 믿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론 3: 은혜에 빚진 자로 살아가는 삶]
[본론 3: 은혜에 빚진 자로 살아가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이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을 가리켜 끊임없이 “나는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이 대목에서 아마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아니! 방금 전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죗값을 완벽하게 탕감해 주시고 다 해결해 주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 믿으면 자유인이라면서요? 그런데 또 빚진 자라니요! 기껏 빚 다 갚아주셨는데 다시 빚쟁이로 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맞습니다. 여러분의 그 의문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빚을 다 탕감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우리를 또다시 빚진 자라고 부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짊어진 빚의 ‘종류’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 목숨을 내놓고 영원한 지옥에서 갚아야 했던 그 무섭고 저주스러운 ‘죄의 빚, 사망의 빚’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영원히 끝났습니다. 전액 상환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과 심판에 쫓기는 두려운 채무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망의 빚이 청산된 자리에 완전히 새로운 빚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은혜의 빚, 사랑의 빚’, 그리고 ‘영광의 빚’입니다.
도저히 갚을 능력도, 자격도 없는 나를 위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의 생명을 일방적으로 내어주셨기에, 우리는 평생을 두고 갚아도 다 갚지 못할 너무나 벅찬 ‘사랑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죽어 마땅한 자를 구원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인데, 쓸모없는 우리를 다시 부르셔서 감히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특권, 곧 사명이라는 ‘영광의 빚’까지 지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빚은 갚을수록 사람을 피 말리게 하고 억울하게 만들지만, 십자가의 은혜에 빚진 자는 그 사랑과 영광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이제 우리는 쫓기는 채무자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그 무한한 사랑과 은혜에 '거룩하게 빚진 자'로 기꺼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은혜에 빚진 자였던 사도 바울, 그는 과연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로서 누릴 수 있던 세상의 화려한 성공을 기꺼이 '배설물'로 던져버렸습니다. 편안하게 살 권리를 포기하고 매 맞고 굶주리며, 세상의 눈에는 참으로 ‘바보 같은 삶'을 선택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십자가 은혜에 빚을 졌기에, 내 목숨조차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뼈저린 고백이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께 이 생명의 빚을 지고 산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을 온몸으로 살아냈던 한 청년을 소개하려 합니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 청년 바보 의사’ 故 안수현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려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장래가 촉망받는 내과 의사였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인생, 소위 말하는 엘리트였습니다. 그런데 병원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바보 의사’라고 불렀습니다. 왜일까요? 그가 너무 바보같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의사로서 진료만 딱 보고 끝내면 되는데, 그는 퇴근도 하지 않고 밤낮으로 중환자실에 남아 죽어가는 환자들의 손을 붙잡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퇴원하지 못하는 가난한 조선족 환자의 병원비를 자기 월급을 털어서 몰래 내주었습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가 빠지고 절망에 빠진 환자들을 위해, 자기 돈으로 수많은 찬양 CD와 신앙 서적을 사서 일일이 편지를 써서 병실마다 돌렸습니다. 심지어 병원의 청소 아주머니, 식당 아주머니, 구두 닦는 할아버지의 굳은 손을 잡으며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가족처럼 섬겼습니다.
동료 의사들이 답답해서 물었습니다. “야, 넌 의사야! 적당히 좀 해라. 왜 네 돈 써가며, 네 잠 줄여가며 그렇게 피곤하게, 바보같이 사냐?”
그때마다 안수현 형제가 남겼던 일기장에는 그가 이렇게 바보처럼 손해 보며 사는 단 하나의 이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나를 굳게 붙들어 매고 있는 십자가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내 육신은 쇠잔해져도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내 몸을 기꺼이 드리겠나이다.”
2006년, 그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되어 33살이라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병원장이나 고위직 인사들이 아니라, 그가 자기 월급을 털어 병원비를 내주었던 가난한 환자들, 그가 위로했던 암 환자들, 병원 청소 아주머니와 구두닦이 할아버지 등 무려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구름 떼처럼 몰려와 엎드려 통곡했습니다.
그 장례식장은 단순한 슬픔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나를 위해 전부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빚진 자로 살겠다"고 결단했던 한 사람의 삶이, 이 차갑고 이기적인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고 위대하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증거의 자리였습니다.
사랑하는 동암교회 성도 여러분. 이 바보 의사 안수현 형제의 삶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를 통과한 '거룩한 빚진 자'의 진짜 삶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셨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인데!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쌓아 올린 자리인데!"라며 내 통장의 잔고와 내 자존심에만 혈안이 되어 살아갑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라고 하면, 이웃을 위해 조금 손해를 보라고 하면 "내가 왜 손해를 봅니까? 내 권리입니다!"라며 핏대를 세웁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 욕심과 혈기가 치밀어 오르고 이 팍팍한 세상의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는 그 순간,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 흘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를 묵상하시기를 원합니다.
내 목숨을 다 내놓아도 갚지 못할 그 영원한 사망의 빚, 지옥의 빚을 십자가에서 일방적으로 탕감해 주셨는데... 우리를 살리시려고 온몸의 피와 물을 다 쏟아내셨는데, 어찌 우리가 내 알량한 시간 좀 뺏긴다고, 내 돈 만 원 더 손해 본다고 억울해하며 이웃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 뒤로 물러서며 핑계를 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누리는 이 생명, 하루의 호흡,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 값으로 얻어낸 기적입니다. 그 십자가 속건제의 은혜를 가슴 저리게 아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내 밥그릇만 챙기던 부끄러운 발걸음을 돌이킵니다. 남은 평생, 내게 주어진 직장, 내 가정, 내 교회가 ‘예수님께 진 빚을 갚는 거룩한 사명의 자리’임을 깨닫고, 안수현 형제처럼 기꺼이 손해 보고 기꺼이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생명의 빚을 진 자,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진짜 성도의 삶입니다.
[결론: 십자가의 은혜를 가슴에 품고]
[결론: 십자가의 은혜를 가슴에 품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이 밤,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던 모든 죄와 사망의 빚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영원히, 그리고 완벽하게 청산되었음을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쫓기고 정죄감에 시달리는 사망의 채무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살리신 그 십자가의 피 묻은 사랑에 벅차게 빚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한 주간 우리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이 동암교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내 밥그릇, 내 얄팍한 자존심만 챙기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부끄러운 삶을 이제는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바보 의사 안수현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눈에는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괜찮습니다. 나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주님을 위해, 기꺼이 내 이웃을 품고 용서하며 섬기는 '은혜에 빚진 자'의 거룩한 삶을 살아내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흘리는 헌신의 땀방울과 십자가를 위한 바보 같은 사랑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힘 있게 증거되는 복되고 아름다운 동암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영원한 사망의 빚을 십자가의 피 값으로 완벽하게 탕감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일만 달란트의 엄청난 은혜를 입고도, 작은 자존심 하나 꺾지 못해 이웃을 미워하고 얄팍하게 내 밥그릇만 챙기며 살아온 우리의 교만을 이 시간 십자가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이제는 십자가의 사랑에 ‘거룩하게 빚진 자’로 살기 원합니다. 세상의 눈에는 조금 손해 보고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해 기꺼이 이웃을 품고 용서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번 한 주간 우리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동암교회 안에서 내 자존심은 십자가에 못 박고,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복음을 증거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속건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