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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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

2. 찬송가 79장
3. 대표기도 방일주 권사
4. 성경봉독 창세기 1:26-31
Genesis 1:26–31 NKRV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5. 설교 “우리의 형상”
큰형아의 권세
제가 첫째의 권세가 얼마나 강한지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치부 예배 때 일어난 일입니다. 저희 아이 셋이 다 유치부 예배를 드리는데요. 첫째, 둘째, 셋째 아들들이 다 유치부 예배를 함께 드립니다. 유치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느 날은 이제 유치부 담당 목사님께서 앞에 나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희 첫째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가서 그림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둘째 셋째는 가만히 앉아서 형아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앞에 나가는 큰 형을 쳐다보며 눈만 따라가는 겁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겠죠. ‘어떻게 하는거지?’, ‘나가면 되는건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큰 형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첫째가 자리에 앉더니 옆에 동생들을 쳐다보곤 손가락만 ‘까딱까딱’ 하는 겁니다.
그제서야 두 동생은 부리나케 일어나서 앞에 나가서 그림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첫째 장남의 권세입니다. 손만 까닥까닥하면 두 동생들이 움직입니다. 형의 손가락 지시에 충성스럽게 반응하는 두 동생의 몸짓이었습니다. 이것이 첫째 형의 파워입니다.
남동생 셋을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남동생 셋을 둔 큰 형아로써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4형제중 첫째로써 그 자리를 지키고, 권세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하는지 여실히 드러난 장면입니다. 집에서는 어떻게 다스리는지 차마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다스림’
이처럼 사람은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입니다. 이 ‘다스림’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권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26절에 보면요.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든다고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무엇일까요?
먼저 형상이라는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형상”은 히브리어로 צֶ֫לֶם 쩨렘이라고 합니다. 이 ‘쩨렘’은 ‘본체로부터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원래의 것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떨어져 나온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의 것이 있고 거기서부터 떨어져 나온 일부를 말합니다.
이것이 어디에 많이 쓰이냐면 ‘우상’이라는 단어로도 많이 쓰입니다. 구약시대에 우상들 있죠. 이 우상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도 ‘쩨렘’을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자신들의 신을 만들면서 나무로, 돌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신이라고 여기죠. 그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이 ‘형상’은 우상숭배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우상과 같은 의미로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숭배자들은 자신들의 우상을 세워놓고 그것에게 절하고, 그것이 신인 것처럼 여기고, 그것이 우리에게 복을 주고, 우리를 다스리기를 빕니다.
이렇게 우상숭배자들에게 쓰이면 안 좋은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 우리의 형상도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신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자신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신의 통치와 권세를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신한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통치와 다스림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고 자신과 연결된 형상을 만들어서 자신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양’이라는 단어도 나오는데요. 형상과 모양의 큰 구별은 없습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모양이라는 단어인 ‘데무트’는 ‘닮았다’라는 뜻이 있고요. ‘견본’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외모나 성격, 본성 이러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모양을 닮았다라고 할 때 전통적으로 무엇이 닮았다고 말해왔냐면요.
‘지성’, ‘미적’, ‘도덕성’ 이런 것들이 하나님과 닮았다. 지적이고, 미적이고, 도덕적인 것이 하나님과 닮은 인간의 모양이다라고 밝혀져 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형상과 모양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고요. 같이 한번에 말할 수 있는 의미와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상과 모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죠.
다만 이 형상과 모양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인데 ‘다스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곧 하나님의 통치권을 대신 받은 인간의 권한입니다.
26절에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하신다음에 26절 맽 끝에 가면 “다스리게 하자”라고 문장을 마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 어떻게 쓰시려고 하냐면, ‘다스리게 하자’는데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어서 다스리는데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직접 다스리기보다 사람을 만들어서 그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고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28절에도 보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은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미켈란젤로 그림
그림을 하나 보겠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입니다. 1511-1512년에 로마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중의 하나입니다. 수많은 패러디가 있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왼쪽에 있는 사람은 ‘아담’이고요.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할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당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신앙이 반영되기도 했고요. 동시에 남성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는 사고방식이 보이기도 합니다. 각각 팔을 내밀어서 손가락을 마주합니다. 이것은 아담이 하나님을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손가락이 맞닿는 순간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서 맞닿는 순간 창조가 완료되고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들은 미켈란젤로가 이 그림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제안한 것은 “하나님을 따라 함”“하나님을 닮은 외양”을 염두에 뒀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미켈란젤로의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주장은 의학계에서 제기되었습니다. 인간 뇌 모양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오른쪽에 하나님과 사람을 둘러싼 분홍색 모양이 인간의 뇌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은 마치 뇌의 내부 모양과 같습니다.
해부학을 연구했던 미켈란젤로는 뇌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다 맞다고 할 수는 없고 현대 뇌과학에 비하면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지만 당시 지식에 비해 꽤 많은 부분이 맞다고 합니다.
손가락을 뻗고 있는 부분도 뇌의 앞부분으로써 전액골 피질입니다. 전액골 피질은 뇌의 가장 창조적이고 독특한 부분이자 최종 결정을 하는 부분입니다. 뇌의 이 부분으로부터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와 아담에게 닿아서 연결시키고 창조했다는 해석이 놀라운 점입니다.
이렇게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형상은 뇌라고 부를 수 있는 ‘이성’이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뇌가 아니냐, 이성이 아니냐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이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체중에서 가장 이성이 발달한 생명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성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모두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성은 하나님의 형상 안에 들어있는 것이자 일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새뮤얼 박의 <전쟁 때의 창조> 그림 하나를 또 보겠습니다.
새뮤얼 박의 <전쟁 때의 창조III>입니다. 아담의 창조를 패러디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새뮤얼은 어린시절에 가족들 모두가 나치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아서 간신히 떠돌아다니며 살아가다가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이 그림은 그때의 경험이 녹아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패러디했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새뮤얼 박의 그림에 아담은 지쳐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아담이 있는 장소는 폭격을 맞았습니다. 집이 다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그림도 폭격에 맞아 다 사라지고 손만 남아있습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상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폭격에 맞아 없고, 손만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인지 안 계신 것인지 간신히 계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간신히 존재하십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아담으로 그려진 새뮤얼 박 자신이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뻗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 때를 상상하고 기대하는 희망으로 지치고 폐허가 된 자신의 삶 속에서 계신지 확신할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뻗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화려하고 장엄한 아담의 창조는 사라졌습니다. 머리가 빡빡 깎이고, 집은 폐허가 되고, 쓰러진 자신의 몸에서 손가락 하나를 뻗어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새뮤얼 박은 여기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절망에 빠진 인간이 최후의 여력을 다해 간신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찾는 데에 힘을 쓰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암시”합니다.
동시에 인간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다고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곧 ‘다스림’입니다. 그러나 이 다스리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형상’과 ‘모양’의 의미였던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연결된 일부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 다스리는 권한이 누구로부터 왔는지 어떠한 목적이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다스리는 존재는 대리 통치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대리자입니다. 그러니 그 역할을 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 내가 누구로부터 떼어져 나왔는지, 내가 누구와 연결되어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스리는 것을 행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일을 대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긴밀히 연결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모습 가운데 그 형상으로써 다스림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의 두 번째 의미는 ‘함께하는 관계’입니다.
27절에 보면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이라는 존재를 창조하시는데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십니다. 한 가지 종류로만 만드실 수도 있었을텐데 남성과 여성이라는 다른 존재를 만드십니다.
처음부터 한 종류로 만드셨으면 다툴 일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을텐데요. 결혼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결혼 못해서 슬퍼할 일도 없고, 결혼 안하는 자식들 때문에 속썩일 일도 없었을텐데요.
저희 아내가 외제차를 박은 적이 있어요. 그 전화를 받고 저는 이제 우리 집 망했구나 생각했습니다. 전재산을 바쳐도 안 될텐데 가슴이 철렁하는 일도 없었을텐데요. 저도 아내한테 애들 돌보는 일이 꼼꼼하지 못하다고 혼 날 일도 없고요. 청소 대충한다고 혼날 일도 없을텐데요.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자체가 관계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함께하는 존재로 계시기 때문에, 삼위일체로써 홀로 계시지 않고 함께 관계하는 속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과 생명들을 창조하실 때도 모든 것이 관계의 형태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몰트만이라는 신학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페리코레시스’라고 해서 ‘상호사랑’, ‘상호침투’, ‘상호내주’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으로써 서로 관계하시고, 그 안에서 서로 사랑하시고, 서로 회의하시고, 서로 침투하시고, 서로 내주하시면서 역사해가시고 일을 이루어가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속성과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도 함께 관계하는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관계하는 사람으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관계하고 상호작용하는 존재로써 창조하셨습니다. 그 함께 하는 관계가 우리의 본래 모습이자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다스림’입니다. 그 다스림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연결된 우리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써 세상과 사람을 다스릴 때 함께 하는 관계로써 이루어졌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요. 모든 생명과 사람들과 함께 관계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신 통치권으로 세상과 사람을 다스려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우리의 형상과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떼어져 나왔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다스리는 능력과 권한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든 자리에는 다스리라고 주신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은 분명히 다스려야하는 위치에 있으실 것입니다.
집에서 가장으로, 엄마로, 집안의 내무부장관으로, 또는 일터에서 여러 직급으로 우리에게 다스리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권한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인간이라면 태초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이자 본성입니다. 그 가정과 일터에서도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연결된 자로써 다스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과 뿌리가 있어야 그리스도인으로써 내 역할을 건강하게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우리는 많은 다스리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직분으로, 모든 부서와 모든 모임의 리더와 직책으로 다스리는 위치에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 다스리는 위치에서 내 자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고, 내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것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어진 다스리는 자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을 위해 대신 통치하라고 주신 자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리 통치를 맡기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 내가 생각한 내 모습이랑 다른데?’라고 하시면 우리에게 책임이 따를 것입니다.
우리의 통치권은 나에게 통치권을 주신 하나님을 향해 두려움과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를 대신 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삶의 모든 자리에서, 다스리는 권한이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나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고, 내가 하나님인양, 내가 최고 통치자인양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내 정체성을 잊지 않게 하시고, 내게 통치권을 주신 분이 누구이신지 바로 알고 그 일을 대신하는 자로써 겸손하게, 충실하게 대리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형상, 우리의 형상이 되게 하옵소서.
6. 찬송가 436장
7. 교회소식
8. 합심기도
9. 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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