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26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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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42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새벽을 깨워 주님 앞에 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아직 세상은 고요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향해 깨어 있게 하여 주옵소서. 분주한 생각과 염려를 내려놓고, 이 새벽 오직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드려지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형식이 되지 않게 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지친 마음은 위로하시고, 연약한 믿음은 붙드시며, 오늘 하루를 살아갈 하늘의 힘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한 믿음으로 드리는 예물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일천번제의 결단과 감사의 고백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드리는 손길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고, 모든 순간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2 Corinthians 3:12–18 NKRV
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에 고린도 교회 안에는 사도 바울의 사도권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문제 삼는 유대 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모세의 율법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들이 자랑하던 ‘모세의 율법’과 자신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하게 대조합니다. 그리고 출애굽기에 기록된 ‘모세의 수건’사건을 통해 율법의 역할과 복음의 영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선포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백성들은 그 빛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율법의 영광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장면을 조금 다르게 설명합니다.
모세의 얼굴에 빛나던 영광은 분명 하나님의 영광이었지만,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빛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지는 빛이었습니다. 율법의 영광도 참된 영광이지만, 그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영광을 준비하는 역할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세가 수건을 쓴 이유를 그 영광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백성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말하는 수건은 단순히 얼굴을 가리던 천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상태, 다시말해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4,15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2 Corinthians 3:14–15 NKRV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당시 사람들은 매일 율법을 읽고 예배를 드렸지만, 그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있었지만 그 진짜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문제는 율법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 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고, 예배와 기도 같은 신앙의 습관은 익숙하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이 참된 생명이신 예수님이 아니라 내 노력, 내 의로움, 혹은 세상의 걱정과 염려에 붙들려 있다면, 우리 역시 마음에 수건을 쓴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수건은 어떻게 벗겨질 수 있는 것인가?
본문 16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2 Corinthians 3:16 NKRV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여기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자리를 옮긴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 세상의 문제에 묶여 있던 마음을 돌려 다시 주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입니다. 잠시 마음이 찔리는 정도가 아니라, 삶의 중심을 주님께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수건은 내 힘으로 벗겨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붙들고 있던 것에서 시선을 돌려 살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벗겨지는 것입니다. 빛을 향해 몸을 돌리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처럼, 우리의 시선이 주님께로 향할 때 마음을 덮고 있던 어두움은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시던 밤,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마치 짙은 수건처럼 그의 마음을 가리고 있었고, 결국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율법 아래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는 아마 평생 죄책감에 눌려 숨어 지냈을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스스로를 정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베드로를 바라보셨습니다. 베드로가 그 주님의 사랑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의 마음에 덮고 있던 두려움의 수건이 벗겨진 것 입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작은 여종 앞에서도 떨던 사람이,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베드로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참된 영광이신 주님을 다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2 Corinthians 3:17 NKRV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주님을 바라볼 때 두려움이 물러가고, 성령하나님께서 임하실 때 우리의 묶였던 마음이 풀립니다. 이것이 복음이 주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오늘 바울은 오늘 본문 마지막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2 Corinthians 3:18 NKRV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기서 변화하여라는 말은 애벌레가 나비로 바뀌는 것 처럼, 겉모습만 조금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새로워지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형태가 중요한데 이 단어는 현재형 입니다. 현재형이라는 것은 이 변화가 한 번 일어나고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과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완성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빚고 계시고, 내일도 계속해서 우리를 다듬어 가십니다. 신앙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라가는 여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단어는 수동형입니다. 수동형이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뜻 입니다. 내가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변화가 아니라. 누군가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스스로를 억지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바꾸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어 바울은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라고 말 합니다.
이 표현은 우리의 변화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단계가 있고 과정이 있습니다. 오늘 기도했다고 해서 내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참지 못했던 분노를 이제는 조금 누를 수 있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웃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하며, 원망이 가득하던 자리에 감사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는 증거 입니다. 우리의 변화가 느리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성령 하나님께서는 결코 멈추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변화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완성도 모두 성령 하나님게 달려 있습니다. 율법은 “이것을 하라”고 명령하지만 그것을 이룰 힘까지는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친히 일 하십니다.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함께 하시며 우리를 실제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이 새벽, 세 가지를 당부드립니다.
첫째, 내 죄만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 실수 합니다. 넘어집니다. 남에게 말하지 못할 부끄러운 순간들도 경험 합니다. 그것을 외면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보았다면, 이제 고개를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더러운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면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결국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십자가로 옮기면, 그 죄를 덮고도 남는 은혜가 보입니다. 나의 실패보다 크신 사랑이 보이고, 나의 연약함을 덮고도 남을 크신 능력이 보입니다. 신앙은 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죄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둘째, 내 부족함만 바라보지 말고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왜 니렇게 성품이 부족할까?” “다른 사람들은 믿음이 좋아 보이는데 나만 늘 제자리인 것 같다” 이런 비교와 자책의 생각이 우리 마음을 덮는 또 하나의 수건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내 힘으로 더 거룩해져야 한다” 는 생각은 율법적인 생각입니다. 우리가 조금 부족해 보여도 괜찮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그 부족함 속에서도 성령 하나님게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내 능력을 붙들고 애쓰기 보다,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바라볼 대 낙심 대신 소망이 자라고 자책 대신 감사가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람의 눈보다 주님의 눈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평생 사람의 시선을 참 많이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남들보다 뒤처진 건 아닐까.' '저 사람이 혹시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닐까.' 이런 세상의 비교와 평가의 시선도 우리 마음을 가리는 무서운 수건이 됩니다. 사람은 눈은 날카롭고, 때로는 차갑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은 다릅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기준으로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상처 있고 아직 부족한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영광에서 영광으로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 마음이 흔들리지만, 주님의 눈을 바라보면 마음이 자유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는 “변화는 나의 뼈를 깎는 노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마음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내려놓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모세의 얼굴에 비쳤던 율법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수건을 벗은 정직한 얼굴로 주님을 깊이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억지로 자신을 바꾸려 애쓰기 보다, 주님의 영광 앞에 머무르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의 영이 주시는 참된 자유가운데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며 주님을 더욱 닮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종종 나의 죄와 부족함, 사람의 시선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정작 주님을 깊이 바라보지 못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 기도하는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덮고 있던 수건을 벗겨 주옵소서. 주님께로 시선을 돌리게 하시고,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보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노력과 의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여 주셔서, 오늘도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조금씩 변화되어 가게 하시고, 주의 영이 주시는 자유 가운데 담대히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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