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요하고 부요한 그리스도인

Understanding_Lee
금요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7 views
Notes
Transcript

본문

누가복음 12:13–21 NKRV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서론 (약 5분)

복음서에는 부자 비유가 많이 등장하고, 물질을 경계하는 비유를 예수님이 많이하시는데
저는 어렸을때 성경에서 ‘부자’에 대한 비유를 읽고, 또 설교를 들을때마다..'아, 이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구나.'
마치 이본문은 재벌가들 , 부자들
그런데 오늘 말씀이 선포된 당시의 배경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큰 무리가 함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절을 보면 수많은 무리가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2:1 NKRV
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중이었지만, 동시에 그 수많은 군중이 다 듣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장년 성도님들과 중고등부 친구들이 함께 있습니다. 이 비유는 특정 계층을 향한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1부: 이 부자,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인물이다 (약 10분)

1. 사건의 발단: 유산 분쟁을 들고 온 한 남자 (13–14절)

누가복음 12:13–14 NKRV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무리 속에서 한 남자가 갑자기 끼어듭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듯한 호칭입니다. 그런데 그가 한 말을 잘 보십시오. 그는 '부탁'을 한 것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 주석가 조엘 그린은 이것이 요청이 아니라 명령에 가깝다고 분석합니다. 이 사람은 이미 자기 마음속에서 판단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그 판단의 승인 도장만 받으러 온 것입니다.(상담)
이 남자는 아마도 동생이었을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형이 더 많은 유산을 받는 것은 관례였습니다. 신명기 21장 16절에는 장자에게 두 배의 몫을 주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분깃이 억울하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당시 청중의 눈에는 이 남자가 억울한 피해자처럼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이것은 단순한 거절이 아닙니다. 이 남자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태도, 즉 유산과 물질에 대한 집착과 탐심을 정확히 지적하신 것입니다.
. 억울하게 유산을 못 받은 상황이라면 정당하게 자기 몫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처럼 보이니까요. "예수님이 너무 박하신 것 아닌가?" 혹은 "사정을 좀 들어주시지"라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럽습니다.예수님이 보시기에 이 남자의 가장 큰 위험은 **'내 몫의 유산이 확보되어야만 내 삶이 안전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태도였습니다
->그래야 부자 비유와 연결됨)

2. 탐심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경고 (15절)

누가복음 12:15 NKRV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그 즉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이어서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생명'은 단순한 목숨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0장 25절 이하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처럼, '생명'은 구원과 참된 삶을 의미하는 은유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그것이 너의 진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소유가 너의 진짜 생명을 위협하는 적이 될 수 있다.'

3. 부자 농부 비유: 표면에서 이면으로 (16–18절)

누가복음 12:16–18 NKRV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이제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표면적으로 읽으면 이 농부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풍년이 들었습니다. 창고가 부족합니다. 더 큰 창고를 짓습니다. 잉여 생산물을 공급 과잉인 지금 시장에 팔지 않고, 가격이 오를 때를 기다려 저장합니다. 현대 경영학적으로 보면 훌륭한 전략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 비유에 숨겨진 두 가지 비밀
. 첫째, 당시 마을 공동체는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부자 농부가 수확물을 쌓아두는 결정은 주변의 가난한 촌부들과 소작농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고, 가장 먼저 타격받는 것은 최저 생계 수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농부의 '합리적 경영'이 이웃들에게는 생계의 위협이 된 것입니다.
둘째, 이 농부는 혼잣말을 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독백을 하는 인물들은 일관되게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합니다.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 있습니다.

4. 비유의 핵심: '어리석은 자'의 정체 (19–21절)

누가복음 12:19–21 NKRV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제 비유의 절정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9절의 부자의 독백을 자세히 보십시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것이 낯설어 보이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바로 그것입니다. 경제적 자유.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내 통장에 돈이 알아서 들어오는 상태. 먹고, 마시고, 쉬고, 즐기는 삶. 이 독백에서 우리는 1인칭 '나'와 '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자기중심적 우주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이웃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가 없습니다. 오직 나와 내 물건만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이 농부는 자기 '영혼'에게 말합니다. '영혼아.' 그는 영혼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영혼을 향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가 영혼에게 약속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쉬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즐거워하는 것. 모두 몸이 누리는 것들입니다. 그는 영혼을 향해 말하면서도, 영혼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단 하나도 제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영혼의 갈증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영혼의 안식은 더 큰 창고가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그는 영혼을 육신의 언어로 달래려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장면입니까. 그는 자기 영혼을 알고 있었지만, 그 영혼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날 밤 그 영혼을 도로 찾으러 오십니다.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영혼이 떠난 자리에 창고만 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사람을 뭐라고 부르십니까? '어리석은 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어리석다(ἄφρων)'는 단어는 지능이 낮다는 말이 아닙니다. 70인역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을 반역하거나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이 농부의 어리석음은 IQ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의 안전과 미래를 설계하는 것, 그 자체가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1절의 핵심 언어를 살펴보겠습니다. '자기를 위하여(재귀형 myself)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 여기서 '위하여'와 '대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전치사는 '에이스(εἰς)-‘떼온입니다. 이 전치사는 방향과 목적을 나타냅니다. '자기를 향하여' 쌓는 자와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한 자. 이것은 쌓느냐 안 쌓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방향의 문제입니다. 이 본문이 말하는 것은 '모든 재물을 헌금하고 거지가 되라'가 아닙니다. 문제는 '자기를 위하여'라는 방향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향하여 쌓는 삶, 그것이 이 부자의 진짜 죄입니다.

2부: 톨스토이가 그린 현대판 어리석은 부자 (약 7분)

—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고3대학입학하고 ..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쓴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학 입학 전에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 이 이야기가 오늘 본문과 너무나 정확하게 겹칩니다.
러시아 시골에 파홈이라는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땅만 충분히 있으면 악마도 무서울 게 없어.' 바로 이 말이 그를 파멸로 이끄는 시작이었습니다.
파홈은 이사를 다니면서 점점 더 넓은 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넓어질수록 더 넓은 땅을 갖고 싶은 욕심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시키르인들이 싼 값에 땅을 판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곳 족장은 파홈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단돈 1,000루블(1억정도)만 내면, 오늘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당신이 걸어서 돌아온 만큼의 땅을 다 주겠소. 단,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돈만 날리는 것이오.'
다음 날 아침, 파홈은 해가 뜨자마자 출발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비옥한 땅이 보이고, 조금만 더 가면 아름다운 숲이 보였습니다.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파홈은 욕심 때문에 돌아올 시간을 계속 늦추었습니다. 정오가 지나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그제야 겁이 났습니다. 너무 멀리 온 것입니다. 그는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발바닥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출발점에 손을 댔습니다. '해냈다! 내 땅이야!'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입에서는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무리하게 달린 탓에 심장이 터져버린 것입니다. 그의 하인은 슬퍼하며 그를 위해 땅을 팠습니다. 파홈이 평생 차지하려 했던 그 넓은 들판이 아니라, 그의 키를 겨우 덮을 수 있는 6피트, 약 1.8미터의 차가운 흙구덩이뿐이었습니다.
파홈이 바보같은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탐심의 사이클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파홈은 완벽하게 같은 사람입니다. 둘 다 합리적이고, 둘 다 열심히 일했고, 둘 다 자신의 계획을 정확히 실행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진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은 말합니다.
마태복음 6:21 NKRV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파홈의 보물은 땅에 있었고, 그의 마음도 땅에 묶여 죽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기도제목
우리의 기도제목을 보면 우리의 보물이 어디 있는지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파홈들이 있습니다. 조금 더 좋은 차, 조금 더 넓은 집, 조금 더 높은 연봉. 그리고 그것을 다 이루면 그때는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족의 임계점은 항상 조금 더 앞에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조금만 더'를 외치다 결국 6피트의 흙구덩이에 눕게 됩니다.

3부: 성경은 부(富)를 어떻게 보는가 (약 10분)

— 청빈론(깨끗한 거지)과 청부론(깨끗한 부자) 사이에서

자,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죄인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질문입니다.
청빈론 : 재물은 신앙의 걸림돌이 되기 쉬우며, 자발적 가난이 영적으로 유익하다: 그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깨끗한 거지가 되어야하나? ->
“무소유” = 불교 법정 스님..??
물질은 선교하고 하나님 나라 쓰임받을수있기 때문에 잘만 쓰면 되기 떄문에 우리는 물질을 가져와서 깨끗한 부자가 되어야하나?->청부론을 따를 때 자칫 빠지기 쉬운 위험도 성경은 함께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자 안되면 믿음이 약한거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지 못한자인가?
기복신앙으로의 변질: "잘 믿으면 무조건 부자가 된다"는 논리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부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지, 신앙의 '성적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볼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창세기는 그가 은과 금과 가축이 많았다고 기록합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기는 그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였다고 말하며 그의 재산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다윗 왕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왕의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들은 모두 위대한 성도들이었고, 동시에 부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그들의 신앙을 훼손하지 않았습니다.->청부론이 맞는거같음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부의 위험성을 매우 강하게 경고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9절과 10절을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9–10 NKRV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돈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돈을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는 것,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청빈론이 맞는거같음!! 부하면안돼!!
신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8장 3절을 보십시오. 눅 8:3
누가복음 8:3 NKRV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요안나와 수산나, 이 여성들은 자신의 소유로 예수님 일행을 섬겼습니다. 그들에게는 섬길 수 있는 물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죄입니까? 아닙니다. 그 물질이 예수님의 사역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루디아를 기억하십니까? 사도행전 16장에 등장하는 그녀는 자주 옷감 장사를 하던 사업가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빌립보 교회의 모판으로 제공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유했기 때문에 다락방이 있었고, 그 다락방에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청부론 맞느거같음
야고보서 5:1–3 NKRV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청빈론이 맞는거같음!! 부하면안돼!!
교회사
프란체스코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만으로 충분함'을 증명했다면,
윌리엄 윌버포스는 흔히 말하는 '금수저'를 넘어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와 삼촌은 발트해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상인이었습니다. 선교/ 교육 특히 노예해방에 돈을 쏟아부음
사교의 제왕:도박과 게임 파티:클럽
->중고등부 변화되어!!
그렇다면 청빈론이 맞습니까, 청부론이 맞습니까? 성경의 답은 이 둘 사이의 긴장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그 균형점이 바로 청지기 신학(Stewardship Theology)입니다/

청지기적 마인드의 밸런스 (Balance)

청지기 정신은 재물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분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청빈론의 영성을 흡수: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고백을 통해 재물에 대한 집착과 탐욕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마음의 중심이 재물이 아닌 하나님께 가 있다는 점이 닮아 있습니다.
청부론의 사명을 흡수:
재물을 악한 것으로 보지 않고, 주인이 맡기신 **'자원'**으로 봅니다. 따라서 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관리하고 늘려서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집니다.
누가복음 12:48 NKRV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를 예로 들며 풍족한 자가 부족한 자를 채우는 원리를 설명합니다. 이것이 성경적 경제 원리입니다. 부가 많은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 그러므로 '청부(淸富)'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맑고 깨끗하게 부유한 그리스도인. 버는 것도 거룩하게, 쓰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 방향을 잡은 사람. 부는 목적지가 아니라 통로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부자와 청지기 그리스도인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4부: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직시하라 (약 8분)

— 우리는 이미 세계 상위 7%다

대한민국은 부자인가?
지금 대한민국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력 기준으로 상위 약 7%에 해당합니다. 치안 수준과 생활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밤 12시에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 있는 나라. 24시간 배달이 되는 나라. 초고속 인터넷이 전국 어디서나 연결되는 나라. 이것이 얼마나 특별한 환경인지 실감이 나십니까? 수요 MT가 끝나고 마라탕을 시켜먹는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 그 일상이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지 실감하십시오.
아까 예배전에 어떤 중1친구가 44,000원 인형뽑기 썻다고 자랑..
가난한 나라 교회 1명을 한달동안 먹일수있는 밥값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란에서는 예배드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는 그리스도인이 있고, 북한에서는 성경 한 권 때문에 처형당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감각하게 누리는 이 일상이 세계 어디서도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오픈도어즈 WWL(world watch list)
조슈아 프로젝트(Joshua Project)의 최신 통계(2026년 기준)에 따른 미전도 종족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미전도 종족 수 및 비율

미전도 종족 수: 약 7,130개
전체 종족 대비 비율: 약 43.5%
24년 연속으로 박해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북한
여전히 전 세계 종족의 40% 이상이 자생적인 교회 공동체 없이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신명기 8:12–19 NKRV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우리나라 이야기?
. 신명기 8장 12절에서 14절, 17절을 보십시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또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까 염려하노라." 모세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그들은 아직 광야에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마치 오늘 한국 교회를 미리 보고 기록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초대교회와 한국 교회 초창기, 70–80년대 권사님 세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시대 성도들은 물질도, 시간도, 몸도 모두 주님께 바쳤습니다. 자녀를 선교사로 보내는 것이 꿈이었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삶의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기도제목은 어떻습니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내 사업의 번창, 주식과 부동산의 상승. 하나님이 '나의 물질적 성공을 보장해주는 분'으로 서서히 축소되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특히 우리 청소년·청년 친구들에게 오늘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세대에는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세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함정은 도박과 불법 스포츠 베팅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청소년 불법 도박의 참여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접근할 수 있는 불법 스포츠 베팅, 카드 게임, 온라인 도박. '한 방'에 대한 유혹. 노력 없이 갑자기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 이것은 파홈의 욕심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아니, 파홈보다 더 나쁩니다. 파홈은 적어도 땅을 직접 걸어서 차지하려 했지만, 도박은 타인의 손실 위에 자신의 이익을 세우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함정은 코인 투기와 '빠른 부자' 심리입니다. 투자와 투기는 다릅니다. 투자는 가치를 창출하는 곳에 자원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투기는 타인이 손해 볼 것을 전제로 내가 이익을 챙기는 것입니다. 고등학생이 수백만 원을 코인에 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 공부하고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과정 없이 단숨에 도약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 자체를 우리는 점검해야 합니다.
세 번째 함정은 게으름과 최소 노력 최대 수익입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는 '일은 최소화하고 수입은 최대화하자'는 사고방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공부를 게을리하고, 핑계가 많고, 노력을 회피하는 것. 이것도 신앙적으로 짚어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입니다. 노동은 타락 이후에 생겨난 저주가 아닙니다. 일하고 창조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창조적 행위입니다. 잠언 10장 4절은 말합니다. '손이 게으르면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하면 부하게 된다.'
요즘 한국교회 은과 금은 있는데 예수가 없는..우리 다음세대

5부: 존 번연의 천로역정 — 욕망인가, 인내인가 (약 5분)

또 다른 예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1678년에 출판된 존 번연의 불후의 명작 '천로역정'입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천성을 향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그 여정의 초반에 크리스천은 '해석자의 집(The Interpreter's House)'에 들르게 됩니다. 이 집은 성령께서 시청각 교육관처럼 사용하시는 장소입니다. 크리스천은 이 집에서 여러 장면을 보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오늘 우리 이야기와 직결됩니다.
해석자는 크리스천에게 두 아이를 보여줍니다. 한 아이의 이름은 '욕망(Passion)'이고, 다른 아이의 이름은 '인내(Patience)'입니다. 욕망은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인내는 조용하고 침착한 모습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이 묻습니다. '왜 욕망은 저렇게 불만스러운 표정입니까?' 해석자가 대답합니다. '두 아이의 보호자가 가장 좋은 선물을 내년에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인내는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욕망은 지금 당장 달라고 떼를 씁니다.'
잠시 후, 누군가가 욕망에게 찾아와 선물 보따리를 가져다줍니다. 욕망은 기뻐하며 그 보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금방 낭비하고 허랑방탕하게 소비해버렸습니다. 결국 빈손이 됩니다. 반면 인내는 기다렸습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훨씬 더 크고 좋은 선물을 받습니다. 해석자는 크리스천에게 이 장면의 의미를 설명해줍니다. '욕망은 이 세상 것들을 상징합니다. 지금 눈앞의 풍요를 즉시 소비하는 사람들. 인내는 내세의 것들을 상징합니다.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현재를 절제하는 사람들.'
고린도후서 4장 18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지금 우리의 모습을 솔직하게 점검해봅시다.
요즘 청년들 헌금아낳ㅁ …필라테스, 맛집 투어, 명품 구매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열면서, 헌금 봉투 앞에서는 '이번 달은 형편이 어려워서'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욕망입니까, 인내입니까? 눈앞의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보물을 쌓고 있습니까?

6부: 역사가 증명하는 후원자 그리스도인 (약 8분)

— 물질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부요한 자들이 세상을 바꿨다

그리스도인이 부유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유하면 죄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의 우리에게 (세계교회와 비교할때) 물질적 부요함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부요하고 부요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18세기 독일에 니콜라우스 폰 친첸도르프(1700–1760)라는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 작센 지방의 넓은 영지를 소유한 부유한 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영지 헤른후트(Herrnhut)를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난민들에게 개방했습니다. 그 가난한 난민들이 정착하여 형성된 것이 바로 모라비안(Moravian) 공동체입니다. 1732년, 이 공동체에서 역사상 최초의 조직적 개신교 선교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인도제도, 아프리카, 북미 원주민 지역, 당시 어떤 교단도 어떤 선교사도 가지 않았던 곳들로 선교사들이 파송되었습니다. 이 모라비안 선교사들은 너무나 충격적인 헌신을 보여줍니다. 서인도제도의 흑인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가 노예로 팔려 가기를 자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유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예들 곁에서 함께 살며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친첸도르프의 귀족으로서의 물질적 자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지가 공동체의 기반이 되었고, 그의 재산이 선교의 발사대가 되었습니다. 친첸도르프는 물질적으로도 부요했고, 영적으로도 부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부요함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이 일어났습니다. 1886년, '이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 이 운동을 통해 수만 명의 선교사들이 세계 각지로 파송되었습니다.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이 물결을 타고 조선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오기 전, 이 땅에는 개신교 교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세운 배재학당(1885년)과 이화학당(1886년)이 한국 근대 교육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885년 호러스 알렌 선교사가 세운 광혜원이 훗날 미국 사업가 루이스 세브란스의 거액 기부로 1904년 세브란스 병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물질적 헌신이 맺은 열매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수혜자들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의 일상적 소비와 선교의 스케일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치킨 10마리, 약 25만 원입니다. 이것이 어느 나라에서는 한 아이의 식사, 교육, 의료를 포함한 6개월치 양육비입니다. 명품 가방 하나, 약 250만 원. 이것이 어느 선교지에서는 현지 신학생이나 교회 지도자의 1년 학비와 생활비입니다. 차를 살 때 '조금 더 좋은 옵션'을 선택하는 데 드는 1,000만 원. 이 금액이면 선교지에 교실 하나를 세울 수 있고, 작은 예배당 하나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한 마을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나도 헌금안하고….아이들 영혼을 섬기는데 안쓰면…1000만원

7부: 오늘, 기도제목을 바꿔라 (약 4분)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자녀에대한 기도제목을 바꾸라 !! 좋은 대학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직장을 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기도에 한 가지가 빠져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파홈처럼 계속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2장 2절처럼 '내가 복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제가 이 물질로 수많은 영혼을 섬길 수 있는,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부요한 자가 되게 해주세요. 주님, 제가 한국과 세계 선교를 위해 물질로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 기도를 드리는 순간, 여러분의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좋은 대학도, 좋은 직장도, 부유함도 모두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에이스의 방향이 '자기를 위하여'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로 바뀌는 것입니다.
고3 친구들, 지금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찬양팀을 섬기고, 봉사를 하고, 예배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한 번 한 번을 모두 카운트하고 계십니다. 단 하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요일 MT를 마치고 마라탕을 시켜먹는 우리 친구들. 그 일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실감하십시오. 아무리 가난하다고 느껴도, 우리는 이미 세계 기준으로 충분히 부요합니다. 그 충분함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입니다.
히브리서 6:10 NKRV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결론: 우리의 섬김은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리 (약 3분)

마태복음 10:42 NKRV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19–21)
오늘 설교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겠습니다.
자기를 위해 한 것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주님을 위해 한 것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드린 헌금, 우리가 섬긴 시간, 우리가 봉사한 몸, 우리가 후원한 선교사, 우리가 사랑으로 건넨 냉수 한 그릇. 이 땅에서는 기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 말씀처럼,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을 쌓았습니다. 창고가 다 무너졌습니다. 파홈은 눈에 보이는 땅을 향해 달려가다 죽었습니다. 욕망(Passion)은 지금 당장 받으려다 결국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내는 기다렸고, 더 좋은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선교 헌신은, 우리의 물질적 섬김은, 우리의 시간과 몸의 봉사는, 하늘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찬양처럼, 우리의 섬김은 하늘에서 해같이 빛날 것입니다. 그 빛은 절대 꺼지지 않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한 가지 결단을 함께 드립시다.
"나는 오늘부터, 물질적으로도 부요하고 영적으로도 부요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단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쌓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흘려보내는 삶을 살겠습니다. 부요하고 부요하게."
기도하겠습니다.

V. 기도문

오늘 말씀의 결론은 결국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이라는 걸 정말로 아는 사람은, 나머지를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물질도, 시간도, 몸도 자연스럽게 흘러나갑니다. 억지로 헌신하는 게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을 이미 가졌으니까 나머지를 기꺼이 내려놓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놓은 것들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하늘에 쌓입니다. 좀도 동록도 해하지 못하고, 도둑도 훔쳐가지 못하는 곳에 영원히 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 21절이 말하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의 삶입니다. 이 고백을 찬양으로 함께 드리겠습니다.
물질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부요한 청지기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주님, 우리에게 주신 물질과 능력과 시간이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쌓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흘려보내는 삶을 살게 하시고, 복을 받는 자에 머물지 않고 복이 되는 자로 세워주옵소서."
풍요 속에서 무감각해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주님, 세계 상위 7%의 풍요 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둔감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도 핍박받는 형제자매들과 가난 속에 신음하는 이웃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 깨어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음세대를 위한 기도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