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27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84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이 새벽에 저희를 깨워 주시고 주님 앞에 나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삶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들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우리의 앞길과 가정과 생업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립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은 아시고, 우리가 할 수 없어도 주님은 능히 하실 수 있음을 믿사오니 오늘도 우리를 붙들어 주업소서.
특별히 육체의 질병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병상에 있는 이들, 치료 중에 있는 이들, 오랜 통증과 싸우는 이들에게 회복의 은혜와 견딜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한, 마음의 질병으로 힘겨워하는 성도들도 기억하여 주셔서
우울과 불안, 상처와 외로움 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주님의 평안을 부어 주시고,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셔서, 낙심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시옵소서.
이 시간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올려 드립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손길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셔서 감사의 고백이 더욱더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다함께 성경보겠습니다.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4:7-9 입니다. 합독합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린도 후서 당시 고린도는 지중해의 중요한 두 항구를 끼고 있는 아주 크고 부유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물질이 풍요롭다 보니, 고린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과 세상적인 성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돈이 얼마나 많은지, 겉모습이 얼마나 건강하고 번듯한지, 그리고 말을 얼마나 유창하게 잘하는지를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문화는 고린도 교회 안에도 그대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 역시, 세상 사람들처럼 화려하고 강한 것을 추구하였습니다.
그결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도 보이는 것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눈에 비친 사도 바울의 모습은 그들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사도라는 이름과 다르게 바울은 몸에 병이 있어서 늘 아팠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는 일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모아둔 재산도 없어서 텐트를 만드는 노동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헬라 철학자들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말솜씨도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의 사도 됨을 의심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늘 약하고 초라하며 고생만 하는 사람이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세상 사람들도 부러워할 만한 번듯한 모습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당시 고린도 교회 분위기라면,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도인지를 사람들에게 내세워야 했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사역을 해왔는지, 자신을 통해 얼마나 큰 기적들이 일어났는지를 편지에 길게 쓸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강함과 유능함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유능함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억지로 포장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사람의 존재를 질그릇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말 하는 질그릇은 가마에서 정성껏 구워낸 비싼 도자기가 아니라, 당시 시장에서 싼값에 거래되던 평범한 흙그릇입니다. 흙을 대충 빚어 만든 투박한 그릇입니다.
당시 질그릇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금이 가고, 바닥에 떨어지면 바로 깨져 버리는 아주 약한 그릇입니다.
그래서 질그릇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상처받기 쉽고 고난에 흔들리며 쉽게 깨어지는 약한 질그릇임을 솔직하게 인정 하였습니다.
자신은 결코 세상이 기대하는 단단한 금그릇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깨지기 쉬운, 그래서 누구하나 소중히 여기지 않는 그 질그릇 안에 보배가 담겨 있다고 고백합니다.
흙으로 빚어진 연약한 우리 안에 가장 귀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상식적으로 귀한 물건은 귀한 것에 담기 마련입니다. 값비싼 보석을 종이봉투에 아무렇게나 넣어 두지 않습니다.
귀한 그릇은 그에 어울리는 상자에 담고, 소중한 선물일수록 정성스러운 포장으로 감싸서 전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누군가에게 귀한 것을 선물할 때 아무렇게나 건네지 않습니다. 좋은 포장지로 곱게 싸고, 리본을 묶고, 정성을 더해 건넵니다.
겉모습이 그 안에 담긴 가치를 드러내 주어야 한다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일하십니다.
세상이라면 가장 빛나고 단단한 그릇을 선택했을 텐데, 하나님은 연약한 질그릇을 택하십니다.
겉으로 화려하고 흠 없는 포장을 고르실 것 같은데, 하나님은 쉽게 금이 가고 깨질 수 있는 그릇에 가장 귀한 보배를 담으십니다.
그 이유는 본문 7절 하반절의 말씀처럼, 그 큰 능력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다시말해 그릇이 대단해 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보배가 얼마나 귀한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릇이 화려하고 흠집이 없으면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내용물보다 그릇을 먼저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릇이 초라하고 낡았을 때 비로소 그 틈 사이로 안에 담긴 보배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살면서 단단하고 번듯한 그릇이 되지 못해 불안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 가난함, 건강하지 못한 몸과 모난 성격들을 보며 스스로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함이나 튼튼함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나의 약함과 한계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금이 간 질그릇 같은 나의 약한 틈 사이로,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서 이 원리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모세와 떨기나무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본 떨기나무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물기가 다 빠져나가 바짝 마르고 앙상한 가시만 남은 식물이었습니다.
그 나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땔감으로 쓰이는 그런 나무입니다. 그런데 그 마른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보통의 나무라면 금방 타서 재가 되었겠지만 그 나무는 타서 없어지지 않고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타고 있는 떨기나무가 열에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 평범하고 마른 나무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떨기나무가 바로 질그릇 같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언제든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우리 안에 하나님이 보배처럼 함께하시면, 세상의 어려움이 다가와도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에, 오늘 본문 8-9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8절에 나오는 “우겨쌈을 당하여도”라는 말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수확한 포도송이를 틀에 넣고, 무거운 돌로 짓눌러 즙을 짜내는 모습을 의미 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우겨쌈을 당한다는 것은, 사방이 꽉 막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태, 삶의 무게가 나를 강하게 눌러 숨조차 쉬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런 시간을 실제로 겪었습니다.
길이 막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답답함을 겪었고, 원수들에게 쫓기며 끊임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때로는 폭력으로 인해 땅에 내던져지듯 거꾸러뜨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흙으로 빚은 질그릇이 포도를 짓누르는 돌처럼 무거운 압박을 받고, 거칠게 땅에 던져진다면 그 질그릇이 부서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질그릇은 본래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이런 고백이 가능한 이유는 질그릇 자체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보배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때문입니다.
세상의 압박은 분명 무겁습니다. 고난의 돌은 분명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를 누르는 고난보다 더 크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하지만 망하지 않습니다. 눌리지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넘어지지만 완전히 부서지지 않습니다.
혹시 이 새벽 기도의 자리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나오신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아무리 애써도 쉽게 풀리지 않는 가족 간의 문제,
직장에서 얽히고설킨 관계들,
앞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어려움,
점점 약해져 가는 건강 때문에
사방이 막힌 듯한 답답함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힘겨운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스스로를 바라보며 “나는 왜 이렇게 연약하고” “왜 나는 이렇게 부족하지?” 하며 마음이 가라앉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현실의 무게에 흔들리는 약한 질그릇이 맞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도 숨이 막힐 만큼 무겁고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나는 약하지만 내 안에는 생명의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가장 귀한 보배이신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파도가 우리를 땅바닥에 넘어뜨려도 우리는 버려지지 않습니다.
현실의 무게가 아무리 강하게 나를 눌러도,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붙잡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질그릇인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나는 볼 품없는 질그릇 같고 삶의 무게는 여전히 나를 누르지만, 영원히 함께하시는 주님이 나의 참된 보배가 되시기에 오늘 하루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의 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새 힘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내 안의 보배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다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 오늘 이 새벽에 질그릇 같이 약한 저희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 속에서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상처받지만, 내 안에 주님이 보배로 함께 계심을 믿게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 우리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현실의 답답함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보배이신 주님의 능력으로 오늘 하루도 넉넉히 이기며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