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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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밀은 시대와 세대로부터 숨겨져 왔던 것이나 이제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지점은 비밀이라는 단어와 시대와 세대 그리고 성도들 이라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를 쓰면서 왜 자신이 이 편지를 지금 시점에 골로새 교인들에게 쓰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26절의 이야기입니다. 비밀이 있었는데, 이것이 아무에게도 밝혀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비밀이 발표가 되면 사람들은 놀라게 됩니다. 마치 미국이 이란을 기습적으로 공격한 것 역시 이러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비밀의 내용을 모른다면 아무리 세상에 공개가 되어도 나에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여전히 모르니까요. 바울이 왜 이 시점에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런 편지를 쓰고 있냐면 바로 이 비밀이 공개가 되었는데 골로새 교인들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 비밀이 공개된지 이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이 본문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아시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비밀의 내용을 알아야 하겠지요? 그 내용은 27절에 나옵니다. 그 비밀에 대해 말씀 드리기 전에 먼저 우리는 시대와 세대를 봐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 비밀을 의도적으로 감추셨다고 설명합니다. 사실은 비밀의 힌트가 구약 성경에 수없이 나옵니다만, 사람들은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눈이 가려져 있어서 봐도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이 상황을 바울은 시대와 세대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시대는 어떤 특정한 시간의 구역을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조선 시대입니다. 조선이라는 왕조가 존재했던 시간대가 바로 조선 시대입니다. 그러한 시간대가 많이 있었지만 로마 시대 이전에는 이 비밀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반면 세대는 일반적인 시간대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X세대 Z 세대 MZ 세대 같은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던 시간대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시간대나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도 이 비밀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모든 시간과 사람들에게 숨겨져 왔던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하필 교회가 세워진 골로새 지역에 골로새 사람들에게 이 비밀이 밝혀진 것입니다. 바울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시대와 세대를 구별했습니다. 이제 비밀이 밝혀진 시대가 되었는데 어떤 세대에게 밝혀졌나면 거룩한 세대에게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거룩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밀이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하고 있고 여러분들 귀에 들려지고 있습니다. 성도라는 단어가 바로 거룩한 세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세대에 살고 있는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성도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다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바울은 26절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제 비밀이 공개되었고 시대와 세대가 열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골로새 교인들에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나타난 이 비밀의 영광의 풍성함이 어떠함과 그 비밀이 바로 그리스도, 즉 너희 안에 계시는 영광의 소망이심을 그들에게 알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비밀의 내용이 27절입니다. 이 말씀을 풀기 전에 먼저 고린도전서 2장 7절 이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7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11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15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많은 성경의 번역이 ‘이방인들에게 나타난’ 이 구절을 동사인 알게하다를 붙여서 마치 영광의 풍성함이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알려졌는지를 말하는 것처럼 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좀 더 명확한 해석은 이 비밀의 영광의 풍성함이 이방인들에게 왜 나타났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지점이 사도 바울이 원하는 설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왜 이 시점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 복음이 전파되어야 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아주 매우 충격적인 발언입니다. 유대인들이 들으면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힐 설명입니다. 그것도 유대인인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충격적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자신들만의 하나님이어야 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선민이고 모든 열방들은 개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로 그 열방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있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은 자신들의 편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생각에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이 비밀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러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자신들만의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는데, 그것마저 무너져버리는 것이니까요.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만의 하나님이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교회 안에서 축제를 즐기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내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을 찾으실 겁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그랬던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야기할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교회 안에만 계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교회 안의 축제를 반대하거나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축제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이 하나님되시도록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사실 27절 한구절만으로도 오늘 설교의 내용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분까지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오늘 29절까지 해야 되거든요. 다만 27절의 키포인트는 확실히 이해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그동안 시대와 세대 가운데 숨겨놓았던 역대급 비밀인 예수그리스도를 공개하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가 그 사실을 알기를 사도 바울은 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선포합니다. 모든 지혜로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을 성숙하게 드리고자 함입니다

28절은 문장의 구성을 이해해야 뜻이 파악됩니다. 먼저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라는 구절을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원어에는 ‘판타 안트로포스’ 라는 구절인데, 각각의 사람들의 집단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열방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모든 민족 모든 나라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27절에 이어 바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그리고 그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게 드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의 구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머리 부분이고 몸통 부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지식적인 전달을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형태를 가르치고 꼬리 부분은 그렇게 모든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성숙하게 드려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26-27절에서 내가 왜 이시점에 골로새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고, 28절에서 어떤 목적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주 분명하게 말입니다. 이제 골로새서를 읽으실 때는 바울의 이러한 의도를 이해하고 읽으셔야 합니다.
이 세 단계를 이제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던 모르던 듣던 안듣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포입니다. 일종의 선전 포고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설명이나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광범위하게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번째 단계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단계는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었는데 첫번째가 뉴테테오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훈계하다 충고하다라는 뜻이 강한데, 특별히 행동에 대한 지적을 하는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때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기록을 보고 알수 있습니다. 그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분의 행동과 말씀에 의거하여 전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대상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입니다. 두번째 단어는 ‘디다스코’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하는 뜻이 강합니다. 첫번째 단어가 행동을 중시했다면 이 단어는 생각을 중시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내가 살아봤더니 이렇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익힌 기술과 지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세월이 좀 지나야 가능한 영역입니다만 하루를 살았어도 전달은 가능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설득력은 좀 없을지 몰라도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의 대상도 모든 인류입니다.
이제 좀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대를 가리켜 AI 세대라고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던 아니던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부하고 반항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사실상 우리 기독교인들은 복음 전파라는 사도 바울의 주제를 볼 때, 가히 황금기를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공부하지 않아도 전 세계에 모든 언어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핑계할 수 없습니다. 내가 못한다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면 됩니다. 다만, 이러한 생각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그들이 듣던 말던 반응하던 말던, 예수님의 말씀 행동을 전하고, 내 삶을 통해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이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제약이 있었다면 이젠 더 이상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이 꿈꾸던 시간이 이제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번째 단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을 성숙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부분이 제일 까다롭게 여겨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성장해서 성숙해지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예수님을 거부하고 듣기조차 꺼리는 사람들을 무슨 수로 성숙하게 드릴 수 있을까요? 이것 역시 우리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냥 하는 겁니다. 할 수 있을만큼 하면 됩니다. 대상이 모든 인류일 뿐이지 결과까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민족은 이래서 안되고 어떤 민족은 저래서 안되고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예수님을 전하고 그들을 성숙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목표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분의 사역으로 나는 애쓰고 수고합니다

29절은 바울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바울은 목표를 정확하게 세웠습니다. 대상은 모든 인류이고 예수님을 선포하고 전하고 가르치고 성숙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하루 하루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왜냐고요? 바울 안에는 그 사역을 하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것은 바울의 의지와 능력이 아니라 바울 안에 계시는 그분의 능력과 의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시니 나는 그분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사역 마지막부분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자신의 경험의 최대치를 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분의 능력으로 사역을 해야 합니다. 내힘과 내 능력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역자에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이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제 믿기 시작한 매우 어린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이 편지를 쓴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타락이나 실패가 타락한 교역자들 때문이라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일부는 맞지만 다 맞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첫째 교회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나아가는 중입니다. 잠시 주춤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둘째 리더쉽의 타락이 교회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타락입니다. 근데 그 개인이 하필 지도자였을 뿐입니다. 물론 그 여파나 파장이 매우 크고 아픕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교회는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썩은 곳은 잘라내고 아픈 곳은 싸매면 됩니다.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몇사람의 타락이 혹은 대다수의 타락이 교회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나는 교회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있는 이상, 내가 건강한 이상,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이제 시대와 세대를 통해 숨겨져 있던 비밀이 이제 공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은 교회입니다. 거룩한 무리들에게 입니다. 그리고 목적은 그 비밀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선포하고 그분의 말과 행동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은 내가 경험한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는 원동력은 내힘과 내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역사하시는 능력과 힘입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하기를 바울은 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오늘부터 경험하시고 살아가시는 우리 태멘교회 식구들이 되시기를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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