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2026 0301 사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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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서론
서론
오늘은 특별한 날이 세 가지 겹쳐 있습니다. 3·1절, 삼일절입니다. 107년 전 오늘, 이 땅의 사람들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시던 그 여정의 두 번째 주간입니다. 거기에 오늘 새가족 편입예배까지.
저는 오늘 이 세 가지가 우연히 겹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겁니다.
여러분, 살면서 가장 든든하게 여겼던 것이 갑자기 사라진 적이 있으십니까?
(PPT02)부모님일 수도 있고, 직장일 수도 있고, 절대 떠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의 그 공허함. 발밑이 쑥 꺼지는 느낌. 이사야가 딱 그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 라고 분명하게 명시하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었습니다. 52년간 유다를 이끌어온, 남왕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시대에 나라는 부강했고, 백성은 안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교만하여 나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이사야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웃시야의 죽음은 단순한 왕 한 명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한 시대가 끝난 것이었습니다. 심리적 안전망이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어디로 갔을까요?
성전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평생 잊지 못할 것을 보았습니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PPT03)땅의 왕이 사라진 그 자리에, 하늘 왕이 계셨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보좌가 있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를 함께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는 것, 내 부정함이 정결케 되는 것, 그리고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이사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1.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다 (1-4절)
1.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다 (1-4절)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사야의 눈앞에 스랍들이 있었습니다. 날개가 여섯인 천상의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서로 외칩니다. (PPT04)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여기서 잠깐 멈춰야 합니다. 히브리어는 최상급 표현이 없습니다. 강조하려면 반복합니다. '거룩하다'를 두 번 말하면 '매우 거룩하다'. 그런데 세 번? קָדוֹשׁ קָדוֹשׁ קָדוֹשׁ (카도시, 카도시, 카도시) → 절대적 거룩의 최상급 선언. 성경 전체에서 이 '세 번 반복' 표현은 단 두 곳뿐입니다. 이사야 6:3과 요한계시록 4:8. 하나님의 거룩함은 언어가 담아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있다는 뜻입니다.
거룩(카도시)의 핵심 의미는 '구별됨'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분이십니다. 그 거룩함의 무게가 성전에 임하자, 문지방이 진동하고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에 압도됩니다. 아이돌 콘서트 현장에서, 스포츠 경기 결정적 순간에, 아니면 오래 기다리던 합격 통보 문자 한 통에.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느끼는 압도감은 그 어떤 것과도 다릅니다. 스랍들이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 발을 가렸습니다. 천상의 존재들조차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는 스스로를 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지금 여러분의 '웃시야'는 무엇입니까?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사라진 것, 혹은 사라질까 봐 두려운 것이 있으십니까?
그 두려움이 드는 그 순간이 사실은 하나님을 가장 선명하게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사야는 위기의 순간에 성전에 갔고,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땅의 왕이 사라지자, 하늘 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 삶의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다면, 이 말씀이 우리를 향한 것입니다.
"웃시야가 죽어도, 보좌는 흔들리지 않는다."
2. 부정한 입술이 정결케 되다 (5-7절)
2. 부정한 입술이 정결케 되다 (5-7절)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PPT05)거룩한 하나님을 본 이사야의 첫 반응이 이겁니다. '화로다 나여!' 이게 예절 바른 겸손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이게 얼마나 강렬한 표현인지 느껴집니다. אוֹי-לִי / נִדְמֵיתִי (아이-리 / 니드메이티) → '화로다 나여!' / '나는 소멸되었다!'
'니드메이티'의 어근 다맘(דָּמַם)은 '침묵케 되다, 잘려나가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나는 죄인입니다'가 아닙니다. '나는 이미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 존재의 공포입니다. 느낌이 좀 다르죠? 이사야는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다.' 여기서 '부정하다(타메, טָמֵא)'는 단어는 제의적 부정함을 뜻합니다. 단순히 나쁜 말을 했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 자체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자신이 '자격이 없음'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것이, 봉사를 많이 한 것이 기준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부정한 입술'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PPT06)스랍이 제단에서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에 댑니다. 여기서 '제단의 숯(리츠파, רִצְפָּה)'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됩니다. רִצְפָּה (리츠파) (제단에서 타오르는 숯) → 단순한 불이 아닌, 번제단의 속죄 불꽃
히브리 독자들에게 '제단의 숯'은 즉각적으로 '속죄 제물이 타오르는 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사야의 죄를 정결케 한 것은 그냥 열기가 아니었습니다. 제물의 죽음, 즉 대속의 불꽃이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는 우리에게 이 장면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제단의 숯불'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신약이 답을 줍니다.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사야가 본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케 한 제단의 불꽃은, 궁극적으로 갈보리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우리를 정결케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결심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부정한 입술을 가지고 고백한다는 것, 그것이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해진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는 부정합니다'라고 내어놓는 순간, 제단의 숯불이 임합니다.
3.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하다 (8절)
3.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하다 (8절)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정결함을 받은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PPT07)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묻고 계십니다. 이사야는 소명을 받으러 성전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찾으러 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자신의 부정함을 고백하고, 정결함을 경험한 이사야. 그 이사야가 하나님의 질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들었습니다. (PPT08)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הִנְנִי שְׁלָחֵנִי (히네니 쉴라헤니) → '나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히네니(הִנְנִי)'는 완전한 현존의 선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러 갈 때(창 22:1),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출 3:4) 쓴 바로 그 단어입니다. '나는 지금 여기, 온전히 당신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쉴라헤니(שְׁלָחֵנִי)'의 어근 샬라흐(שָׁלַח)는 신약의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 사도)의 구약적 뿌리입니다. 권위에 의해 목적을 가지고 파송된 자.
이사야의 '나를 보내소서'는 대단한 자신감의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화로다 나여, 나는 소멸되었다'고 무너졌던 사람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정결함을 받은 그가 응답했습니다. 이것이 사명의 순서입니다. 능력이 있어서 파송받는 것이 아닙니다. 정결케 되었기 때문에 파송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았기에 주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화 1 | '작은 손'을 든 안드레
제자들 중에 안드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형제. 설교 기록도 없고, 대표적인 기적도 그의 이름으로 기록된 것이 별로 없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사건 직전, 안드레가 한 일이 있습니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아이 한 명을 발견합니다. 그 아이 손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안드레는 그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스스로도 의심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그런데 그날, 오천 명이 먹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는 늘 거대한 무대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 가져가는 것. 그것이 파송입니다. (PPT09)
예화 2 | '나를 보내소서'가 역사를 바꿀 때
107년 전 오늘 3월 1일로 돌아가 봅시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화학당의 유관순은 스물도 채 되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그녀는 알았습니다. 일어서면 잡힌다는 것을. 그래도 일어섰습니다.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외쳤습니다. 결국 투옥되고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신앙 배경은 기독교였습니다. 이사야의 '나를 보내소서'가, 그녀의 삶에서 '이 나라를 위해 내가 가겠습니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진정한 '나를 보내소서'는 삶의 현장에서 대가를 치르는 헌신입니다.
오늘 새가족 교육을 마치고 처음 이 자리에 앉으신 분들,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교회로 이끄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PPT10)오늘 함께하는 편입예배는 단순히 교회에서 '멤버십 카드'를 발급해 주는 행사가 아닙니다. 이사야가 '나를 보내소서'라고 손을 든 것처럼, 오늘 여러분도 손을 드는 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파송 공동체에 오늘 공식적으로 합류하시는 겁니다.
결론
결론
오늘 우리는 이사야와 함께 세 자리에 섰습니다.
(PPT11)첫 번째 자리. 하나님의 영광 앞.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내 인생의 안전망이 무너질 때, 하나님이 드러나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보좌가 있습니다.
두 번째 자리. 제단의 숯불 앞.
부정한 입술을 인정하고 고백했을 때, 제단의 숯불이 그 입술을 정결케 했습니다. 사순절의 여정 위에서 우리는 압니다. 그 숯불의 완성이 십자가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오늘도 우리를 정결케 하십니다.
세 번째 자리. 하나님의 질문 앞.
"내가 누구를 보낼까?" 그 질문 앞에 이사야는 손을 들었습니다.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강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정결케 하심을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응답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PPT12)"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 기도
결단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부정한 입술을 가진 저희가 주님 앞에 섰습니다. 제단의 숯불로 이사야를 정결케 하셨듯,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저희를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저희 모두가, 특히 새롭게 이 공동체에 합류하는 형제자매들이 담대히 고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6 © 한빛교회 | 윤영천 목사 설교 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