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은혜의 지배_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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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은혜의 지배 8장 죄의 지배의 발전: 죄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됨으로써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pMjzJDPa8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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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어 장 죄의 지배의 발전 조에 대한 조학력이 약화됨으로써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주의 집에 발전 죄에 대한 자영력이 약하으로서이어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심자한지 않은 죄가 어떻게 자신의 집력을 발전시켜 하는가 죄와 은혜는 궁극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표를 향하여 부단히 열렬하게 작용 그리고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죄의 작은 유혹 성령의 은혜 역시 보다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나아가는데 기어하는 방식으로 역사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가 어떻게 지배력을 확보하고 발전해
(01:04) 나가는지에 대하여 미리 안다면 제 역사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 안에서 자신의 지배력을 확장해 나감에 있어서 주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으로써이 일을 성취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죄의 작용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죄에 대한 확신을 무뎌지게 하는 것과 신화적으로 민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죄에 대한 확실을 묻어야 합니다. 첫째로 죄에 대한 확실을 묻어지게함으로써 지배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사람의 죄에 대한 잦은 민감함을 치적 민감함과 저항적 민감함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좋아함에 전자는 좋아함에 오는 민감함이고 후자는 싫어함에서 오는 민감함입니다.
(02:05) 비유하자면 전자는 술꾼의 코에 풍경오는 술 냄새이고 후자는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의 코에 와닿는 담배 연기입니다. 신자가 은혜의 지배 아래 있을 때 죄에 대한 저항 저 정 저항적인 민감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양심은 자신이 범하는 죄에 대하여 강한 가책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곧 죄에 대한 확실에서 옵니다. 죄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양심의 가책은 죄의 부모함 곧 담대함을 제개하는 강력한 제동장치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책감이 성령의 도구가 되어 진실한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신자가 은혜 아래 살아갈 때는 언제나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은 자각이 있고 그래서 그 삶에는 언제나 진실한 참회가 있습니다.
(03:05) 그러므로 총교도 헬리스크가의 지적과 같이 참매에 깨어지니야말로 참된 신자의 가장 중요한 표지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은혜의 지배를 벗어나 주의 연향력 아래로 들어가면 갈수록 죄에 대한 정당한 가책이 줄어듭니다. 신자가 은혜 아래 있을 때에는 예상되는 죄책감 때문에 범죄를 실행하지 않게 되고 또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그 재책감 때문에 죄를 유치게 됩니다. 서 정당한 주책감은 신자에게 있어서뿐 아니라 불신자에게 있어서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죄의 집배 아래로 들어갈수록 죄에 대한 정당한 인식을 잃어버리게 되고 죄책감은 흐려지게 됩니다. 주의 집배 아래 있는 신자에게 진실한 참여를 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이 때문입니다.
(04:13) 오늘날 많은 사람들 심지어 신자들 사이에서도 죄는 단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불편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인체의 치명적인 해는 입히지 않지만 불쾌감을 주는 비위생적인 물건처럼 생각할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는 본질 하나님을 향한 적이 있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반감과 대적입니다. 또한 그것은 맹렬한 대담 그리고기로 박수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대적하고 창조의 계획과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숲으로 만들기 위하여 역사하는 실제입니다.
(05:08) 그러면 신자 안에서 죄가 어떻게 죄에 대한 지감을 무리게 만들어 갈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에 대한 생각을 무려지게 함으로써, 둘째로 죄에 대하여 생각을 집중시킴으로써, 셋째로 죄에 대한 치하력 정서를 갖게 함으로써, 넷째로 범죄함으로 마음을 굳어지게함으로써 히 죄에 대한 생각을 묻어지게 함. 첫째로 죄에 대한 생각을 묻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죄의 역사는 생각을 타고 들어옵니다. 생각의 가장 큰 의무는 자신과 영혼을 향해 침투하는 죄를 파악하고 온 기관에 경고하는 것입니다. 어 따라서 죄와의 싸움에서 생각은 마치 막의 파수꾼과 같습니다.
(06:05) 생각을 공격하여 죄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죄가 몰고 올 파괴적인 결과를 미리 알리는 생각의 기능이 수행되지 못하게 하여야만 죄의 속이는 역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죄는 먼저 강한 힘으로 유혹을 생각 속에 어 넣었습니다. 이때 유혹이 지향하는 바를 죄라고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이 부족하거나 생각하는 죄를 실행하고자 하는 욕구가 되면 죄 줄어듭니다. 자신이 범하고자 하는 죄의 정체와 개별적인 계획을 알지 못할 경우 신자는 범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정당한 인식을 갖기가 힘들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가 자신이 행한 죄나 행할 죄에 대한 정당한 죄책감을 갖는 것 갖는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07:01) 이 죄에 대하여 생각을 직중입니다. 둘째로 개별적인 범죄에 대하여 생각을 집중시킵니다. 가 일단 생각을 타고 들어오는데 성공하면 그다음에는 사고를 거기에 친화적으로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범죄가 가져다 줄 즐거움으로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이것이 바로 상상을 통한 범죄이며 이때 이미 죄는 신자의 사고 기능에 깊이 간여하게 됩니다. 따라서 어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신자들의 마음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은혜의 영광 즐거움이 있듯이 죄를 추구하는 신자들에게는 아직 실행하지 않은 범죄에 대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묵상이 가져다주는 신령하고 거룩한 즐거움이며 후자는 죄의 유혹에 대한 굴복이 가져다 주는 육적이고 타락한입니다.
(08:07) 신자가 범죄하고자 하는 죄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점차로 은혜의 지배 아래에서 구축된 인식의 틀은 허물어지게 되고 죄에 대한 최초의 정당한 인식도 흐려집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저항적 민감함은 점차 사라지고 친화적인 민감함이 촉진됩니다. 이러한 작용을 통해서 신자가 죄에 최초에 가지고 있던 죄에 대한 정당한 생각과 죄책감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C 죄에 대하여 정서를 취향시킴 셋째로 죄에 대한 정서를 친화시킵니다. 개별적인 범죄에 대한 반복된 생각은 그것에 대한 친화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킵니다. 죄가 어떤 죄를 절대적인 의미에서 객관적으로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09:08)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되 두 가지로 주셨습니다. 첫째는 사물을 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고 둘째는 그것에 대해 좋아하는 마음이나 싫어하는 마음의 반응입니다. 이것으로써 인간은 어떤 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이 이 마음에 둘 자격을 통해서 사람들은 판단력을 가지게 됩니다. 주에 대한 유혹은 반복적으로 생각을 불러오고이는 주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갈망은 죄에 대한 저항적인 민감음을 감퇴시키고 나아가 지적인 정서를 갖게 하는 가운데 시작되고 강해집니다. 하나님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으로 행하는 범죄에 대하여 그토록 극력하게 경고하신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10:04) 범죄의 실행으로 마음을 굳어지게 합니다. 넷째로 범죄의 실행으로 마음을 굳어지게 합니다. 진자가 제유에 굴복하여 범죄를 실행하게 되면 죄책감은 더욱 급격하게 무어집니다. 더욱이 그 범죄가 반복되면 실책감은 거의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에 대한 반복된 마음의 갈망은 가을 범죄에 대한 제책감을 무려지게 하고 반복적인 죄의 실행은 개별적인 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뿌리가 되는 자신 안에 있는 죄 자체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가책을 급격하게 묻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죄의 역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참여 없이 반복되는 범죄는 나아가 뻔뻔스럽게도 자신이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는 죄를 물리적으로 정당화하기까지 합니다.
(11:03) 그렇게 되면 신자는 은한 곳에서 행하던 죄를 백주에 행하는 대답대 담대함을 보이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죄를 감추는 위선이라는 또 다른 죄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경우이든지 그것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옵니다. 곧 영원히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지는 것과 마음이 급격히 굳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책감도 사라지게 됩니다.이 이 죄에 대하여 친화적으로 민감하게 함. 둘째로 죄는 신자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친화적으로 민감하게함으로써 신자 안에서 자신의 지배를 확대해 갑니다. 이러한 죄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것으로 죄가 신자 안에 있는 자신에 대한 민감함을 제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적극적인 것으로 신자의 자신에 대한 친화적
(12:08) 민감함을 촉촉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는 정확하게 신자 안에서 죄와 은혜가 각각 지배력을 갖는 정도에 비례하여 나타납니다. A 죄에 대한 저항적인 민감함을 제거함. 첫째로 죄에 대한 저항적 민감함을 제거합니다. 자신에 대한 친화력을 증진시킴으로써 신자 안에서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죄의 계 계획은 신자의 마음 안에 있는 자신에 대한 저항적인 민감함을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신자는 처음 회심과 함께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경험을 동반합니다. 이때 신자는 죄와 은혜에 대한 정당한 민감함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13:02) 은혜에 대하여는 치화적인 민감함을 그리고 죄에 대하여는 조항적인 민감함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내면의 질서는 거듭나지 아니한 때에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던 질서가 아니라 중생과 함께 주어진 새 번성의 질서입니다.이 이러한 마음에 질서 있는 상태 안에서 신자는 죄를 정확히 인식하고 판단하며 그 작용에 대항하면서 살게 됩니다.이는 생각이 생각 자신과 영혼에 대해 접근하는 죄를 인식함으로 경계하는 본래 사명을 잘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립된 본성의 질세는 영원히 불변하게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자가 지속적으로 은혜 아래 살아가면 그러한 신령한 질서가 유지되지만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이러한 질서는 흔들리고 마음은 죄에 대한 저항적인 민감함을 상실하게 됩니다.
(14:08) B. 죄에 대한 친하적인 민감함을 갖게 함. 둘째로 죄에 대한 친화적인 민감함을 갖게 합니다. 죄는 자신에 대한 친하적인 민감을 갖게함으로써 지배력을 갖게 됩니다. 신자가 죄에 대하여 친화적인 민감함을 갖게 되는 것은 근론적으로는 신자 안에 있는 부패성 때문이고 실제적으로는 신자 자신이 범죄하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죄에 대한 저항적인 민감함은 사라지고 신화적인 민감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조항적인 민감함은 죄에 대한 화목함과 그 개별적인 죄의 죄에 대한 정직한 인식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지만 죄에 대한 친한적 민감함은 죄에 대한 혐무감을 제거하고 그 계획에 대한 정직한 인식을 흐리게 합니다.
(15:07) 그 대신에 범죄 실행이 가져다를 낙에 대하여 쉽게 지척하게 됩니다. 제가 신자에 이처럼 자신에 대한 신화적 민감함을 가져오려고 하는 것은 그렇게함으로써 신자를 보다 큰 범죄에 쉽게 빠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함으로써 저희는 자신의 궁극적인 계획을 적은 힘으로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는 신자 마음 안에 죄에 대한 친력을 불러일으키고 또 지속되게함으로써 신자 안에 효과적으로 자신의 지배력을 확보해 갑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있어서 죄에 대한 친화적인 민감함이 징대될수록 죄의 작은 유혹에도 커난한 죄를 죽게 됩니다. 죄는 신자 안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지배력을 증대해 나가기 위하여 일합니다.
(16:04) 3. 죄책감과 죄의 지배.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가 최감을 가지고 있어도 죄의 지배 아래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 안에 있는 죄가 그의 죄책감을 묻여지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죄가 신자 안에서 죄책의 인식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양심의 일반 은총적인 성격 때문이고 또 하나는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죄가 양심을 묻게 하고 죄책감을 상당 부분 없애는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 안에서 완전히 그리고 한구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17:01)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 선과 악을 인식할 수 있는 번성의 빛을 주셨고 그리고 타락한 후에도 상당 부분 가능하 기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바로 이러한 양심의 기능을 따라 심판받을 것이라고 예고한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신자에 관하여이 문제를 생각해 볼 때에 신자 안에서는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죄가 일시적으로는 죄책감을 현재이 사라지게 할 수 있어도 항구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와 죄의 결과인 비참함에 대하여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17:54) 그리고 이러한 기능은 단지 불신자가 거듭날 때만 일회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신자가 된 후에도 계속됩니다. 따라서 신자 안에서 성령께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 그 비참한 결과를 선취적으로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그분의 소욕을 따라 살게 하십니다. 죄가 강력하게 역사하거나 어 우세한 지배력을 갖게 될 때에 신자는 현저하게 죄책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 그러한 역사는 한구적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죄책감을 상실하게 하는 죄의 역사가 판구적이라면 한번 죄의 지배로 들어간 신자는 영원히 회개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신작에 있어서는 죄책감을 묻어지게 하는 죄의 역사보다 상구적인 것 상구적인 것은 어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작용입니다.
(18:59) 따라서 똑같은 정도로 죄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죄책감을 느끼는 정도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대책감이 있다 해도 그것이 곧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이는 사도 바울이 심판을 받을 죄인, 심판받을 죄인에 관하여 언급한 바에 의하면 입증됩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전명하며이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리라. 이러한 경우에 인간이 겪는 죄책이라는 것은 죄를 이길 힘을 이길 힘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20:01) 생각의 빛과 양심의 가책이 죄에 대하여 저항하지만 단지 저항만 할로 그것을 물리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 신자 안에서 역사하는 정력이 죄를 짓도록 밀어붙이는 힘은 그 죄에 저항하게 하는 제책감에 힘을 능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가 재책감으로 정력을 어 누리는 것은 마치 마치마치마치 법남물을 흑더미로 막으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할지라도 광명한 배역 광명을 배역한 사람들이며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쫓아내는 요동하는 바다일 뿐입니다.
(21:00) 이러한 상태에서 신자는 마음속에 어떠한 평광도릴 수 없고 만약 그것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죄가 가져다 준 영적인 무감각으로 말미암아 잠시 느끼는 거짓 평강입니다. 신자의 신자됨은 단지 죄에 대한 자책을 가지며 사는데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책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가 단지 그것을 가지고 있을뿐 하늘의 평안 평안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넘치는 기쁨 성령이 교통하시는 위로 같은 것들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면 죄의 집 아래 있음이 틀림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을 주셔서 우리를 자녀 삼으심으로써도 불구하고 마릅니다.
(21:50) 신재 안에 내지한 죄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작용합니다. 죄는 인간을 무모하게 하고 미친 듯이 자기 정욕을 따라 살게 하지만 신자의 영혼 안에서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뱀처럼 지혜롭게 역사합니다. 그 존재는 감춰져 있으며 역사는 역사하는 방식은 너무 은밀합니다. 한 신자의 영적인 깊이는 이러한 죄의 존재와 작용을 감지하고 그에 대해 적당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가 알고 있는 신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모든 지식과 영적인 생활에 대한 경험 그리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죄를 인식하고 죄가 활동하는 경로와 방식을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대처함으로써 죄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그의 경건과 영적 생활의 깊이를 입증하는 대목입니다.
(22:44) 죄가 신자 안에서 지배력을 얻기 위하여 역사하는 방식을 기억해 보십시오. 무엇보다 제일 먼저 생각을 공격함으로써 영혼과 죄의 작용을 살피는 감시탑을 허물어 버리고 그 강교함을 보십시오. 생각을 죄의 집중시으로써 그 죄가 몰고 올 비참한 결과에 대하여 눈멀게 하고 생각이 죄에 대한 저항을 잃어버리는 것만큼 정서를 죄에 대한 실행의 욕으로채우는 것을 보십시오. 이렇게 교모하고 치밀하게 움직이는 제 역사는 강력한 힘을 동반합니다. 신자의 지적감만으로 이것을 이길 수 없는 없음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러한 영혼의 의식 앞에서 주책감 이상이 무엇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미만연하고 있는 죄의 작용을 받아들인 것에 대한 진실한 참회와 성령의 강력한 은혜의 역사 말고 무엇이 이런 위험으로 위험으로부터
(23:49) 신자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아 주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신자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그들을 구원하셨는데 그들이 여전히 주의 지배 아래 노예처럼 사는 것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소원을 무엇 목면 소원이 무엇일까요? 지금이라도 그들의 죄를 참여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사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고 구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불러한 주의 세력을 타파하고 하나님과의 화목한 화목한 관계 속으로 살아가도록 오늘의음
아멘.
한눈에 보는 8장, 죄의 지배의 발전: 죄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됨으로써
I. 죄에 대한 확신을 무디어지게 함.
A. 죄에 대한 생각을 무뎌지게 함.
-생각의 가장 큰 의무는 영혼에 침투하는 죄를 파악하고 온 기관에 경고하는 것입니다.
-죄는 유혹을 통해 생각이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함.
-생각이 무뎌져서 자신이 행하려는 죄의 정체와 계획을 알지 못할 때 범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정당한 인식을 갖기 어려움.
B. 죄에 대해 생각을 집중시킴
-생각을 타고 들어온 죄는 사고 기능이 죄에 친화적으로 집중하게 함.
-지으려는 죄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은혜 아래 구축된 죄에 대한 인식의 틀은 점차 허물어짐
-이것을 통해 처음 가지고 있었던 죄에 대한 정당한 생각과 죄책함으로부터 멀어지게 됨.
C. 죄에 대해 정서를 친화시킴.
-죄에 대한 유혹은 개별적인 범죄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이는 죄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킴.
-이러한 갈망은 죄에 대한 저항적인 민감함을 감퇴시키고 친화적인 정서를 갖게 하는 가운데 지속되고 강해짐.
D. 범죄의 실행으로 마음을 굳어지게 함.
-죄에 대한 반복된 마음의 갈망은 다가올 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느려지게 함.
-반복적인 죄의 실행은 개별적인 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죄 자체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가책을 급격하게 묻여지게 함.
-신자는 반복되는 범죄 가운데 자신을 논리적으로 정당화시킬 구실을 찾거나 위선에 빠지거나 더 큰 죄에 빠지는 대담을 보임.
-이때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고 마음은 급격하게 굳어짐.
II. 죄에 대하여 친화적으로 민감하게 함.
A. 죄에 대한 저항적인 민감함을 제거함.
-회심과 함께 신자는 은혜에 대해서는 친화적인 민감함을, 죄에 대해서는 저항적인 민감함을 갖게 됨.
-영혼을 지배하려는 죄의 계획은 신자의 마음 안에서 자기에 대한 저항적인 민감함을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됨.
B. 죄에 대한 친화적인 민감함을 갖게함.
-신자가 죄에 대해 친화적인 민감함을 갖게 되는 이유는 신자 안에 있는 부패성 때문이며 마음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친화적인 민감함은 죄에 대한 혐오감을 제거하고 죄의 계획에 대한 정직한 인식을 흐려지게 함.
-죄가 신자 안에 죄에 대한 친화적인 민감함을 가져다 주는 것은 신자로 하여금 보다 큰 죄에 쉽게 빠지게 하기 위함.
III. 죄책감과 죄의 지배.
-죄가 양심을 무디게 하고 죄책감을 상당 부분 없애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항구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함.
-성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와 죄의 결과인 비참함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임.
-그러나 죄책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음.
-인간이 갖는 죄책감은 죄를 이길 힘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님.
스터디
제8장
죄의 지배의 발전: 죄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됨으로써
1.죄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죄의 작용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127)
2.죄가 신자 안에서 죄책감을 무디게 만드는 네 단계에 대해 설명해보십시오 (130-132)
3.죄가 신자 안에서 죄에 대해 친화적으로 민감하게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133-134)
4.죄가 죄책감을 무더지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죄책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두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135)
5.이 사실을 통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의 말을 통해 살펴보십시오(137)
6. 죄책감의 기능과 한계는 무엇인지 자신의 생각을 나누어 보십시오(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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