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에 슬피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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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해설
I. 본문 해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식민지에 대한 종교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칙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받은 것은 주전 537년이었다.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이 정치적 지도자가 되고 대제사장 예수아가 신앙적 지도자가 되어서 1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제2의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 건축되었다(스 6:15).
이어서 제2차 바벨론 포로 귀환은 주전 458년 아닥사스다 1세 왕 때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아닥사스다 1세는 에스더의 남편이었던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이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포로 교환을 실행했던 인물은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였다.
1차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약 80년쯤 지난 시점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되었으나 백성들은 신앙적으로 타락하였다. 특히 그들은 이방 민족과 통혼하여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위협을 받았다(스 9:14).
특히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의 죄악이 매우 컸는데, 이에 에스라는 보이는 성전 못지않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안에 있어야 마땅할 보이지 않는 성전의 재건에 힘을 쏟았다.
에스라가 이끈 제2차 바벨론 포로 귀환 후 13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이방 민족들의 시기로 예루살렘 성문이 불타고 성벽이 허물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초를 겪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느 1:3).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호의를 입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3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다.
당시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왕 가까이에서 그를 자문하고 보필하던 자로서 있던 꽤 높은 고위직이었던 인물이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의 온갖 방해 공작을 뚫고 단 52일 만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여 도성 공사를 마무리하였다(느 6:15).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후 부채 탕감과 같은 실질적 사회 개혁을 단행했고, 예루살렘의 인구를 재배치하였다(느 5:10, 7:4).
왜냐하면 이 예루살렘에 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었어요. 왜냐면 타 민족들의 이제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아무도 다 안 살려고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그렇게 되면 안 되니까 그렇게 되면 안 되니까 각 지파별로 최소한 몇 명은 살아라. 그리고 에서 자진에서 예루살렘의 살겠다는 사람은 그 수와 상관없이 또 허락을 받고 그런 것들이 여기 인구 재배 시스템에 끌리는 거예요. 이게 이 느헤미야는 성경에서 굉장히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준 사람과 하고 52일 만에 그 공격하는 사람들. 그래서 한 손에 창칼을 들고, 한손에 망치를 들고 그렇게 공격을 막아내면서 성을 건축했다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겁니다.
그는 유대 총독으로 예루살렘에 부임했으나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 상태에 대한 깊은 슬픔을 가지고 있던 자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어려운 고비마다 짧게 혹은 길게 하나님을 향하여 소위 화살 기도를 드린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 곧 기도의 사람이었다(느 2:4, 4:4-5, 6:9).
느헤미야는 자신이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지도자 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가르치는 데 있어서 언제나 학사 에스라를 앞세우고 자신을 뒤로 물러섰던 겸손한 덕이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피폐하기 짝이 없었다. 제1차 바벨론 포로 귀환에 감격은 사라지고 귀족들의 착취 이후로 백성들의 삶은 팍팍해져만 갔다.
더욱이 가난한 백성들을 상대로 한 고리 대금업의 유행과 기근 등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느 5:3-5, 7, 11, 12-13).
수십 년간의 영적 침체와 이방 민족들과의 통혼으로 인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들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에 그들은 일곱째 날 유대인의 월력으로 티쉬레이 월, 곧 오늘날의 태양력으로 9-10월경에 온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느 8:1).
여기서 ‘수문앞 광장’이라는 표현은 예루살렘 백성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서는 이 문을 통해 기혼 샘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그 문 앞에는 커다란 광장이 있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율법 낭독회를 가졌다(느 8:2-9).
당시로서 그것은 매우 특별한 행사였다. 이로 인하여 영적으로 말라 비틀어져서 거의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소생하게 만드는 부흥의 역사를 불러오게 되었다.
II. 주의 말씀에 슬피우다
II. 주의 말씀에 슬피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기를 요청하였다. 거기에는 남자나 여자나 말씀을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모였다.
에스라는 그날 초하룻날에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아가 새벽부터 정오까지 읽었다(느 8:3).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을 송축하였고, 모든 백성들이 모두 손을 들고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였다(느 8:6).
A. 율법을 해석하다.
A. 율법을 해석하다.
첫째로 에스라와 여러 레위 사람들의 율법을 해석하였다(느 8:6-8). 그들은 율법책을 장시간에 걸쳐 낭독하는 모임을 가진 후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느 8:3, 8).
그리하여 이후에는 더 긴 시간에 걸쳐 이미 회중들에게 낭독한 율법의 말씀을 해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건하게 모여 있는 회중들을 향해 에스라가 율법책을 단지 낭독하기만 할 때 분위기는 성스러웠으나 별다른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낭독하는 소리와 무거운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에스라는 많은 율법 교사들과 레위 사람들이 함께 광장에 서 있는 백성들에게 낭독한 율법의 말씀을 해석하여 그 뜻을 깨닫게 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온 백성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느 8:8-9 상)
여기서 “낭독하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와이 크레우”인데, 이는 크게 소리를 내어 읽는 동작을 가리킨다.
그리고 주어가 3인칭 남성 복수다. 처음에는 에스라 혼자 율법 책을 읽었지만(느 8:3), 후에는 13명의 교사들과 레위 사람들이 함께 율법을 읽고 해석해 주었다(느 8:7).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지만 백성들이 그것을 낭독하는 소리로만 들을 때는 감동이 적었다.
그러나 율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사들이 그 의미를 해석하고 그것을 그들의 삶에 적용해 줄 때에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오랫동안 돌같이 굳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한순간에 물처럼 녹아내리게 되었다(느 8:9).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지게 하고, 죽은 자처럼 영혼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은 수많은 종류의 불순종과 죄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때로는 그렇게 생겨난 영적 침체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되어서 마치 그것이 운명처럼 여겨지게도 된다.
그러나 그런 영혼의 침체와 영적 죽음의 상태에서 다시 거룩한 생명력을 회복하게 되는 것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때 일어난다.
그것도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 줄 때 일어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석하는 일의 처음과 나중을 간섭하시는 성령의 은혜로운 사역에 의하여 듣는 이들에게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성경의 본문은 항상 해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해석의 역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통해 사람들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올바르게 해석될 때 그것은 좌우, 날선 금과 같이 운동력이 있어 사람들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역사한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생각해 보라. 성령이 임하자마자 사도들은 놀라운 지혜로 구약에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해석하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마음에 찔려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바로 섬에 있어서 성경을 해석하는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올바르게 교육을 받고 하나님을 만난 설교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가 기록된 성경의 깊은 의미와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드러내 보여줄 때 거기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제자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께서 낙심한 그들을 책망하시며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듯이 해석해 주셨다.
그리고 음식을 잡수실 때에 그들의 마음의 눈을 밝아지게 하셨더니 그들이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서로에게 말하였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이에 대해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리차드 백스터는 자신의 책 기독교 신앙 지침서 제3장 1절 말씀을 듣는 법에 관한 지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입니다. 그러나 검은 칼집에 칼집에서 뽑혀 휘둘려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상처를 입히지 못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이 검을 뽑아 휘두르는 것입니다.
1741년 7월 8일 수요일 이른 오후 뉴 잉글랜드 엔필드에서 있었던 한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해석될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운명적 신뢰다.
당시 매사추세신 세
뉴잉글랜드라고 이야기한 거는 뭐냐 하면 1774년에 미국이 독립하잖아요.
74년 이후에는 미국이라고 불러야 되고, 그 이전까지는 뉴잉글랜드라고 불러야 돼요.
학술적인 명칭이에요. 그다음에
당시 메사츠에서 노세턴 제1교회 담임 목회를 하던 조나던 네제오즈는 그곳으로부터 약 35km 떨어진 엔필드 지역의 목회자들로부터 그 지역 주민들의 신앙적 쇄신을 위한 특별 집회에서 설교자로 초청을 받았다.
이때 이미 영국의 위대한 순회 설교자 조지 히펠트가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뉴 인근의 동부 지역 전체를 훑으며 대규모 야외 집회를 열었고, 그가 설교하는 곳마다 수만 명의 군중들이 응집했다.
그렇게 부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전하다 내조 같던 뉴 잉글랜드 목회자들이 그 부흥의 불씨를 이어받아 각 마을마다 자생적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변에서 강력한 부흥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엔필드의 사람들은 유독 그런 신령한 유리들에 대하여 이상할 정도로 냉담하고 냉담하고 영적으로 변화되지 아니하려는 완고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엠필도와 인근 지역의 목자들은 엔필도 사람들이 거룩한 부흥에서 소외된 채 불신앙적 교만과 안일에 빠져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런 놀라운 부흥이 엔필드와 인근 지역에도 일어나기를 갈망했다.
그래서 당시 엔필드 인근 지역인 롱 메도우 제1교회의 목사인 스티븐 윌리암스, 레바난 지역의 목사인 엘리오즈 휠록과 같은 목회자들이 조나드 네즈를 초청하여 엔필드 연합집회의 자가 설교자로 가게 되었다.
1741년 7월 8일 수요일 이른 오후 조나단 에드워즈는 역사의 길이 남아 있고 유명한 설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을 전하게 되었다.
당시 뉴잉글랜드의 전반적인 상황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초기 청교도들의 개척 정신과 신앙적 열정이 점차 사라지고 세속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해지게 되었다.
그 당시 에조지가 설교한 본문은 신명기 32장 35절이었다.
보복은 내 것이라 그들이 실종한 그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화난 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신명기 32장 35절 조나도 에듀어즈는 아주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재성을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해 갔다.
조나던 에듀어즈는 이 설교에서 탈락한 인간이 처한 위태로운 상태를 10가지 논증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니 치밀한 논쟁을 통해서 에듀어지는 회중들에게 언제든지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죄인들은 당장이라도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 10가지 논 중의 핵심적인 요약은 다음과 같았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죄인들을 지옥에 던지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이 하나님의 공의에 비춰 볼 때 재인은 지옥에 떨어져 합당하다.
3. 죄인은 이미 지옥에 떨어지도록 판결을 받은 상태에 있다.
4.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진노는 이미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나 세상에 있는 죄인들에게나 동일하다.
사단은 하나님이 허락하시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죄인의 영혼을 낚아챌 준비가 되어 있다.
6. 인간의 영혼 안에 지옥의 불길이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다.
7. 눈앞에 육체적인 죽음의 징후가 안 보인다고 해서 결코 심판으로부터 안전한 것이 아니다.
팔 이 진노 앞에서 자신을 스스로 보존하려는 인간의 지혜, 어떠한 시도도 죄인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 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면서 지옥의 형벌을 피하려고 하는 모든 노력은 헛될 것이다.
10. 그다음
10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자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따라서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이 불타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운 주권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순간 그 자비를 거두실 것이며, 그때는 모든 죄인들이 심판을 받을 때다.
에드워드의 설교가 주예와 교리에 대한 설명을 거쳐서 적용의 단계에 들어가게 되자 예배당의 분위기는 갑작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그토록 행복하고 고만했던 회중들이 설교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지하게 설교하고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 말씀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그들의 마음을 찔렀다.
이때 조나단 에드워즈는 지옥굴 위에 있는 거미의 비유를 들면서 하나님의 거미줄 위에 매달려 있는 가증한 거미처럼 지옥의 불길 위에 당신을 들고 계십니다라고 교만한 회장들을 질타하였다.
성경을 해석하는 설교가 중간을 넘어서서 이제 그렇게 해석된 성경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회중들의 삶에 적용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자 회중석 여기저기 있어 억눌렸던 신앙적 감정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두 사람의 신음소리 시작된 것이 곧 수많은 사람들의 거대한 비명과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변했다.
그들은 부르짖었다. 오 하나님, 내가 어찌하여 구원을 얻겠습니까?
당시 수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울부짖는 비명에 소리가 너무 커서 에드워드는 혈기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철저한 원고 소교주의자였다. 그는 그 당시 소위 옥타보라고 불리는 작은 크기의 수제 노트의 설계 원고를 작성했는데, 가로 세로 10 곱하기 15센티미터의 빽빽한 글씨로 약 7천 단어, 4일자 단어는 길이로 써가지고 왔다.
또한 당시 전하던 에드워즈는 지독한 근시였기 때문에 손에서 원고를 5에서 10cm 눈 가까이에 내가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준비한 설계 원고 중 본문 주회가 약 10%, 교류 인술이 약 20%, 실천적 적용이 약 30%, 70%로 구성되었다.
에드워드는 설교를 통해 말한 세 가지의 주장점을 분명하였다.
첫째는 죄인은 미끄러운 길을 걷는 사람 같다. 그래서 그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
주재료는 결국 그는 갑작스러운 한 해를 맞이하며, 에드워드는 이런 상태에서 인간은 결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셋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죄인이 당장 지옥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다.
스스로 조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손길이 그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였다.
잔잔하게 시작된 설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가는 것을 들었을 때 수많은 회중들은 누구도 만류할 수 없는 단말마적 비명과 울음으로 부르짖었다.
주나다 엔즈머즈는 자신의 설교하는 목소리가 회중들의 비명과 울음소리에 묻힌 것을 확인하고는 설교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앞에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스티브 윌리엄스 목사가 설교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오자라고 붙들며 울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 아니십니까? 조나단 의조제의 술교가 정점을 향해 치닫게 되었을 때 기이한 광경들이 연출되기 시작하였다.
회중들은 자신들이 앉아 있는 의자를 꽉 움켜쥐거나 예배당에 나무 기둥의 팔을 혈색이 하얗게 될 때까지 필사적으로 꽉 붙잡았다.
왜냐하면 설교를 통해 에조우즈가 지옥의 심판에 관해 묘사하는 것들을 듣는 중에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당장이라도 바닥이 꺼지고 지옥에 불덩어리가 솟구쳐 올라 올 것처럼 압도하는 공포를 온 회중들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약 1시간 정도 이어졌을 설교 후에도 교인들은 예배당을 떠나지 못했다.
예배당 바닥에 있는 바닥에는 회개하다가 탈진해 찢어진 사람들로 가득 찼고, 어떤 사람은 실신했으며, 어떤 이들은 가슴을 치면서 계속해서 통곡하며 울었다.
당시 에필드 교회에 모인 교인들은 약 500명 정도로서 예배당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꽉 차게 모였다고 한다.
집회가 끝난 후 조나단 에드워즈의 동료 목사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밤이 늦도록 울고 있는 성도들 사이를 다니며 복음을 다시 설명해 주고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고 한다.
이튿날 에필드 앤필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받아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느끼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당시의 예배와 설교 및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보도는 스티븐 윌리엄 목사가 생생하게 그때 일을 특별한 열심을 가지고 기록해 두었기에 지금도 그 현장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날 전하던 에도즈 목사는 설교 중에 소리 지르지 않았다.
나았다. 그는 시종일관 조용히 설교 원고를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그가 성경을 풀어주며 해석하자 성령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죄인들의 가슴 안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해석되고 거기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누군가가 성경을 해석한다 해서 언제나 필연적으로 거기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저절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시에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있었다.
그들도 성경을 해석했다. 그리고 그들의 해석에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성경을 해석할 때 죄인들을 각성하게 하고 거기로부터 돌이켜 십자가로 회개하게 하는 놀라운 영적 변화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설교자가 성경을 앞에 놓고 설교할 본문을 해설 해석할 때 성령의 조명이 필요하고, 또한 그 해석의 결과를 설교라는 행위로부터 선포할 때도 듣는 사람들 마음에 성령의 강력한 조명의 역사가 필요하다.
그러한 조명을 넘어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설교 내용을 설교 행위로 전환할 때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야 한다.
당시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는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 비범한 설교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예수께서 팔복산에 올라 산상수훈을 설교하셨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산상수훈은 예수께서 실제로 설교하셨던 아주 긴 내용들 중에 중요한 골자만을 줄여서 남겨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팔복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래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비유에 이르기까지 꽤 긴 설교를 하셨을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모두 끝났을 때 거의 무수히 모인 청중들은 모두가 동일하게 그분으로부터 어떤 아우라를 느꼈다.
그것은 예수의 인격과 예수께서 성경을 가르치시는 방식으로 말미암아 듣는 이들에게는 깊은 감화를 더해 주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경을 해석하시고 조용하시는 그분께 어떠한 반론도 제기할 수 없게끔 만드는 어떤 웅혼한 신적 권위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심에 우리들이 그의 가르침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복음 7장 28에서 29절. 이에 비교하여 우리의 말씀 사역은 얼마나 초라한가?
종종 나름대로
여기 나오는 이 내용을 이제 나는 설교의 내용을 보고 놀란 게 아니라 설교가 전달되는 방식을 보고 놀란 거야.
그렇게 나는 해석을 해요. 그래서 이제 그게 설교 원고는 서먼이라고 얘기하고, 그거를 외치면서 설교하는 건 프리칭이라고 그러거든 프리칭에 놀라는 거예요.
왜 다른 서기관이나 사 다른 서기관이나 그런 사람들하고는 전혀 다른 어떤 권위를 가지고 말했다는 거.
그다음에 계속해서
이에 비교하여 우리의 말씀 사역은 얼마나 초라한가?
종종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교를 준비하고 또 마음을 다하여 그것을 회중에게 전달하지만, 그 설교를 통해 나타나는 초라한 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낙심하게 된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설교는 하나님을 거부하려는 강퍅한 심령을 가진 교만한 사람들에게 조차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설교는 어떠한가 교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말씀을 깨닫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하나님의 현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더욱이 우리의 설교는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또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온갖 사상들을 굴복시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기에 능하지 못하다.
우리가 사꾼 목자의 길을 가고자 뜻을 세운 적은 없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선한 목자의 표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어느덧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설교들을 직업적으로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 의무가 되어 버렸다.
급기야 우리도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 말씀을 가지고 양떼들에게 그분을 만나라고 독촉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선한 목사의 표상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신학적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편의 설교가 죽었던 영혼들을 살리는 거룩한 부흥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모두 불이지만, 하나는 피치는 불빛 곧 성령의 조명이고, 또 하나는 태우는 불길 곧 성령의 능력이다.
전자를 성령의 조명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대하는 인간의 지성의 이해력에 더해지는 성령의 비추심인데, 이를 통하여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리한 점을 얻게 된다.
첫째로는 설교자가 성경을 해석할 때 성령의 조명하심으로써 성경 본문에 대한 정확하고도 탁월한 통찰을 갖게 해준다.
그리하여 그분의 뜻을 알리시는 그분의 마음까지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둘째로는 그렇게 성경을 해석해낸 결과를 먼저 설교자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 실천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라. 거룩한 부흥을 위해 쓰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성령을 인격적으로 깊이 체험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성령 체험은 어떤 경우에도 한 가지 공통적인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자신의 신앙과 삶에 대해 갖는 의미를 체험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17세기 청교도 신학의 황태자로 불렸던 존 오에는 거듭남의 가장 중요한 표지는 성령의 비추심이고, 그것이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과 함께 그 모든 책들의 내용이 조리단정하게 이해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저 노예는 자신의 책 그의 말씀 안에 게시된 대로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한 원인과 방법, 그리고 수단들을 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의 빛은 인간 지성에 영적 미각을 주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고 즐기게 합니다.
이 수단 곧 성령의 조명에 의한 말씀은 그들에게 더 이상 죽은 우물의 글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되며 그들의 영혼의 풍미를 줍니다.
이처럼 성령의 종약이란 이미 있는 인간의 지성에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어떤 사물들, 특히 신령한 사물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과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만드셨다.
그리하여 인간의 자연적 이성만을 사용해도 그 성경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지성의 교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자 하셨다.
우리가 성경의 의미를 이해함에 있어서 성령의 조명은 아무리 뛰어난 지적 능력이나 많은 지식으로써도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조명에 관하여 17세기 제네바 아카데미의 학장이자 개혁파 정통주의자였던 프란시스크 트레티뉴스에는 자신의 책 변증신학 강요 논제의 제2항 질문 6 제21절에서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성경은 그 자체로 믿을 만한 권위 곧 자증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관련해서는 성령의 조명을 통하지 않고는 달리 그 진정한 뜻이 알려질 수 없습니다.
성령의 조명에 관한 그거네. 우리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갈
성령의 조명에 관해 우리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성하와 조명의 관계이다. 거듭나고 회심한 모든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신다.
따라서 그는 성령의 조명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신자는 넓은 의미에서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이기에 언제든지 성경을 읽거나 연구할 때 조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 의미에서의 평범한 조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때에 그보다 더 뛰어난 의미에서의 성령의 조명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리고 이러한 조명의 가능성은 단지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신다는 한 가지 사실 위해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보다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특별한 성령의 조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는 이미 거듭나서 성령이 내조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더욱 특별한 성령의 조명을 갈망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갈망은 반드시 열렬하고도 끈질길 기도로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사실에 관하여 탁월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
천사 박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중세 시대 최고의 지성인 중에 한 사람이었던 신학자 보나 멘트라이이다.
이제 교회 역사 속에서 천사 박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두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은 뭐라고 불리냐면 독도를 안젤리쿠스, 안젤리 안젤리쿠스 라틴어로 NGL이 참사잖아요.
독토를 안젤리쿠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예요. 그리고 이제 독토 세라 세라피쿠스는 뭐냐 하면 스랍 있죠.
스랍 천사들이 여러 계급이 있는데 그중에 스랍 있잖아요.
그 스랍에서 나온 말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같은 천사같긴 한데 하나는 이제 안젤리쿠스고 하나는 이제 세라피쿠스인데 그 두 개의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은 그나마 천세 박사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보나벤츄라예요.
그래서 10건으로 된 전집을 만들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어요.
그다음에
그는 자신의 책 하나님을 찾아가는 마음의 여정 제7장에서 다음과 같이 정곡을 찌르는 말을 남겼다.
잘 들어보세요.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갈망하는 자 외에는 아무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로 뼛속까지 타오르는 자 외에는 아무도 갈망할 수 없습니다.
놀랍지 않아요. 이런 얘기는 경험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쓰는 얘기예요.
계속 이렇게 성령의 조명하심에 대해 깨닫고 나니 그동안 우리의 말씀 사역이 물에 흠뻑 젖어 젖은 나무 토막을 불태우는 것처럼 힘겨웠던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지 않는가 모닥불을 향하여 큰 숨을 내쉬어 볼 때 내가 원하는 것은 치열한 불꽃이었건만, 불꽃은 어디로 간 데 없고, 쉼 없이 눈을 찌르는 연기만이 온몸을 괴롭게 한다.
그것이 나의 목회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자 성경을 열지만, 거기에는 단지 눈을 찌르는 연기가 있을 뿐, 성경이 간직했던 진리를 밝히는 빛이나 우리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는 불꽃은 없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상 역사하지도 않는 죽은 그 중 하나로 성경 말씀을 대하고 거기서 그렇게 설교를 준비했으니, 거기 어디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인 내 마음속에서 살아서 역사할 성령의 특별한 조명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거듭나기 전에는 눈을 감은 맹인이었고, 그 후 지금에는 눈 뜬 맹인이니 둘 사이의 차이가 무엇이 그리 뛰어나기에 우리는 내 나의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들을 보게 하소서라고 강구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의도하지 않았어도 나의 목회는 눈 뜬 소경이 눈 감은 소경들을 인도하는 격이 되었다.
이러한 일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그러한 처지에도 통곡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며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였겠는가.
그래서 원하지 않는 예배가 있기에 마음에 없는 설교를 하고 자신도 깨얹은 적이 없는 말씀의 돌멩이에 타인의 영혼들을 애정도 없이 외치는 위선적인 일들이 반복하면서 어찌 사는 녹차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교회의 성장을 꿈꾸지만 그렇게 꿈꾸는 것만큼 순전해지고자 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으니, 내 마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불자는 갈망이 없었고, 그래서 성경 말씀이 내 영혼의 눈앞에서 활짝 열리기를 간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진 기독교에 관한 많은 지식은 기껏해야 서기관들의 그것 같았고, 신앙에 관한 천박하게 맺힌 얕은 지식들은 바리새인들이 극과 같아서 남을 비판하는 데나 쓰이기 일쑤였다.
그렇게 해서 설교를 하시고 준비된 말씀은 처음부터 그 기원이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혹시 하늘의 능력이 임하지는 않을까 생각했으니, 이것을 어찌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것은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확률에 대한 희미한 기대였으니, 설교자로서 얼마나 터무니없는 바람이었던가.
서교여서 강단에서 성경을 한 손으로 싸잡고 뒤흔드는 자신감 대신 겸비하게 무릎 꿇고 그것을 한쪽이라도 열어서 그 말씀이 나의 생각을 사로잡아 성령께 복종시키기를 기대하지 아니하였더라.
한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앞에서 활짝 열린 것 같은 특별한 조명의 은혜를 경험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성경을 읽거나 묵상할 때 마치 어린아이가 돌판에서 난생 처음 보는 광경, 흐르는 처음 보는 광경, 흐르는 별 울려퍼지는 뇌성과 땅,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떨어지는 번개불을 보면서 주님의 권능에 압도당하는 경외심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때가 언제인가?
그래서 마치 배고픈 갓난 아이가 엄마를 찾는 것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얼마나 오래전의 일인가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이토록 비워 이토록 바위같이, 강철같이 만들어 버렸던가?
다시 도나도나 이제 어제의 설교로 돌아가자 그가 엔필드에서 차분하게 읽어주던 한 편의 설교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은 제1차 대각성 운동의 정점을 온 세상에 알리는 찬란한 신호탄이 되었다.
나는 그날 때마다 했던 어시다에 난 그 설교의 원고가 설교학적으로, 성경, 신학적으로 뛰어나기에 탁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그 설교의 원고가 에드워즈가 선택한 그 성경 본문을 다루는 데 있어서 영원한 표준이 될 거라는 사실에는 더더욱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그의 설교 원본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풀었다기보다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말하고자 했던 선제적 결심이 본문 해석에 투영되었다고 퇴역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들 가운데는 그런 정도의 설교 원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중에 그 성경 본문을 마주칠 때 나나 에드워드처럼 눈 부시도록 밝은 조명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믿는다.
적어도 두라던 에드워드 자신이 신명기의 그 본문 말씀을 설교할 때만큼은 양심상 설교자인 자신은 하나님 손에 붙잡힌 채 불기류에 매달려 있는 징그러운 거위가 아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미 성령의 특별한 조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길고 먼 기찻길을 힘차게 달려 달리다가 멈춰선 철마 한복판에는 싸늘한 게 식은 엔진이 있다.
수십 양의 기차간을 매단 채로 대륙을 가로지를 때 힘차게 요동치던 기관차의 내연 기관의 역동적인 작용을 생각해 보라.
한 번의 예배를 위한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갓난 아이처럼 너무나 배가 고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신령한 젖을을 알고 그것을 먹고자 안달하던 적이 우리에게 과연 있었던가 배가 고픈 갓난 아기가 아이가 채 눈도 뜨지 못한 채 엄마의 젖가슴을 얼굴을 부비며 입을 벌려서 젖꼭지를 찾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때 그 아이에게는 엄마의 젖 말고는 아무것도 대신할 것이 없으니, 그 무엇을 준다 해도 갓난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설교자가 설교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본성을 닮은 그분의 자녀로서 내가 하나의 성경 본문을 안에서 자기 자신의 주인 영혼을 가득 채울 신령한 젖을 얻기 위해서 사모했던 적이 있었는가?
마치 사슴이 시인물을 찾기에 가득한 것 같이, 그렇게 죽음에 이른 것 같은 타는 목마름으로 내 지성에 비춰줄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남을 위해 토요의 노래를 부를 많지 갈망을 느껴본 때가 있었는가 신자로서 믿음과 목회자로서의 섬김을 위한 엔진은 성령의 조명과 역사가 없어서 싸늘하게 식었는데, 어찌 그 마음에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나의 신앙의 엔진, 곧 나의 신앙과 섬김의 심정을 위해 울어줄 자가 누구인가?
나 자신도 나를 위해 울지 못하고 있으니, 그러나 나 자신을 나 자신의 처지 때문에 눈물이 나지 않아
그다음 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을 모시고 오셨을 때 같이 있던 그 제자 중에서 도대체 그 누가 그분의 신령한 슬픔에 동참하였던가 그들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또한 지금 이렇게 깊이 잠들어 있는 내 영혼을 위해서 그분 홀로 내 마음 문 앞에서 통곡하실 분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말이다. 나는 그분이 통곡하시는 그 문 안쪽에 있으면서도 나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분이 내 마음 문 앞에서 흐느끼시는 울음소리를 느낄 수도 없으리 많지 굳은 마음이 되었다.
그분 곁에서 그분과 함께 그분을 위해, 또 나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 우르르 울어줄 자가 어디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설교로 지금 나를 새로운 세계로 초청하고 계신 것이다.
우선 나부터 스스로 죽은 자처럼 살아 있는 내 고귀한 영혼을 위해 마음껏 울라고 부르시고 계신 것이다.
그 회사 속에서 교회와 개인이 위기를 만날 때마다 자주 낭송되었던 고백 기도가 떠오른다.
나의 죄, 나의 죄, 나의 큰 죄로
이게 교회사에서 아주 유명한 기도요. 메야 꿀파, 메야 꿀파, 메야 막시마 꿀파 모든 교황들과 또 시부님들과 그런 사람들이 다 이렇게 위기의 순간에 성도들과 함께 누구를 탓하지 않고 자기의 죄라고 가슴을 쳤던 거예요.
이런 신앙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 계속.
그러므로 제1차 대각성 운동의 항로를 움직였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유명한 설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붙잡힌 죄인들이라는 설교를 이해함에 있어서 한 설교자의 위대성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그러한 설교를 가능하게 했던 에드워즈의 일생에 걸친 지성적 엄마 성경 본문에 대해 그의 지성에 비추던 탁월한 조명을 주셨던 성령의 역사와 그리고 그것을 어린아이처럼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성의 순복, 그리고 받아들인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적용할 줄 아는 헌신된 의지들을 뛰어난 모범을 함께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수문 앞 광장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울린 에스라의 설교는 특별한 은혜를 기대해야 하는 날에 특별한 말씀을 공교히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평소처럼 율법을 낭독하고 낭독된 율법을 하나씩 해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에 들러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때 수라는 단지 율법의 전공자로서의 상식을 따라 율법을 율법으로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일은 당시 제사장이나 서기관 등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에스라와 레이 사람들은 율법을 해석하되 성령의 찬란한 조명을 통하여 그의 지성의 세계가 새롭게 열리는 것과 같은 특별한 체험 속에서 그 일을 하였던 것이다.
수문앞 광장에 있었던
수문 앞 광장에서 있었던 에스라의 집회는 주전 444년경에 있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 일이 있기 13년쯤인 주전 458년에 이미 성령의 찬란한 조명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함에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그때의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어느 날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한 원주민들과 통혼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고 있었는데,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이 일에 더욱 열심히 일하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에스라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그는 한때 소박하지만 작지 않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해 더욱 열심히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윤레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타락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모든 기대와 꿈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다.
그때 그는 아무도 찾거나 작거나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다.
경건한 슬픔에 찬 마음으로 에스라는 조용히 여호와의 성전으로 갔다.
그리고 그 앞에 홀로 엎드려 울며 기도하였다. 에스라는 하루 종일 주 앞에 엎드려 망연자실한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율법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현재 이스라엘의 탈락 사이에서 자신을 재물로 바치려는 듯이 한없이 울고만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인데도 에스라가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 주저앉아 엎드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것은 성령에 의한 일종의 조명이었다.
그 비추심으로, 그 비추심으로써 에스라는 두 가지 사실에 특별히 눈 뜨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율법의 깊은 의미를 알았고,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깊은 죄악의 심각성을 보게 되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탈락한 이스라엘의 제약 때문에 절망하여 엎드려 우는 에스라의 모습은 탈락한 우리와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서 정보자가 되어 게스만의 동산에 엎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예포가 아니겠는가 목회자인 나의 사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을 바르고 풍부하게 해석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찬란한 성품들을 보여주고, 그래도 돌이키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서는 자신의 영혼이 그러한 것처럼 통곡하며 울려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깨달음을 보여주 양무리들을 실제적인 삶의 개으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목회자의 사명은 복잡하지 않다. 너무나 명료하고 분명하다.
그 일이 복잡하고 힘겹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주님의 종이 될 것인가 언제까지 머뭇거리며 가야 할 길을 마치 가지 않아도 될 것처럼 달리는 것도 아니고 멈추는 것도 아닌 걸음질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에게 니에미와 같은 개혁의 의지가 없다면 베슬로와 같은 풍예의 영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더 이상 망설이지 말자.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있는 그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자.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행하자. 신자로서조차 망가진 나를 다시 불꽃 같은 설교자로, 선령한 목회자로 다시 새롭게 세워주시기를 간구하자.
말씀이 슬피 울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이 슬피 울었다.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의 율법이 해석될 때 그 말씀을 깨닫고 울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를 통해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에서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네미야 8장 9절에 다른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네미야 8장 9절 하에 나오는 울지 말라를 고려하여 해설처럼 첨가한 것이다.
제사장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해 주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 말씀의 뜻을 다 깨달았다. 율법의 말씀이 그토록 큰 회개를 불러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또 그들이 깨닫고 듣고 깨달은 율법은 그때 수납 광장에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성전에서도 다른 곳에도 들었을 것이다. 다른 때는 율법이 그냥 들리기만 할 뿐 아무런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했는데, 왜 그때 수납 광장에서만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을까?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는 율법의 말씀을 해석해 주던 에스가의 교사들의 마음 안에 일어난 성령의 조명이 특별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의 말씀과 일치하고 탁월할 때 그 해석은 말씀의 깊은 의미를 드러내고 그 해석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게 된다.
물론 에스라는 원래 말씀의 사람이었다. 그는 주야로 율법을 연구하며 또한 몸소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평소의 훈련도 율법을 잘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해석자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조명은 그것보다 더 특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준비할 때 즉각적으로 주시는 선물과 같은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에스라는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율법에 대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직관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었다 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기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성경을 대할 때 어떤 특별한 성령의 조명이 있기를 간구해야 된다.
둘째로는 설교자가 성령의 조명을 통해 깨닫게 된 말씀을 전할 때 부어주시는 성령의 권능이다.
조명이 설교 내용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면, 본능 곧 능력은 설교 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때 부어주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은 말씀의 권세로 나타난다.
그것은 권위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 나타난 청중들의 반응을 통해서 입증된다.
무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대할 때 특별한 성령의 조명으로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또한 해석된 말씀을 전달할 때 성령의 놀라운 능력이 함께 역사하기를 간구해야 한다.
부흥의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특별한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다.
성경을 연구하며 깨달은 바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인간이 전달하는 말뿐이 아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으로 함께 강력하게 역사하기를 간구해야 된다.
셋째로는 해석된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임하는 특별한 성령의 조명이 필요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조명은 이미 가지고 있는 지성의 능력에 뛰어난 이해력을 도와주는 성령의 사역이다.
설교자가 아무리 뛰어난 조명을 받아서 말씀에 깊고 희오한 의미를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청취자의 이해력, 특히 신령한 것들에 대한 이해력에 아무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시인도 설교자가 아니라 율법을 믿는 독자로서 하나님께 영만을 열어주시도록 강구하였다.
또한 이것은 복음의 신비에 관하여 신령한 비밀의 말씀을 전하던 바울 사도가 자신의 청중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제목이기도 하였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에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우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언제나 자신이 이미 깨닫고 알게 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청중들의 그것 사이에 큰 격차가 격차가 있음을 느꼈다.
그리하여 자신의 양떼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신처럼 자라나기를 갈망하였다.
자라가기를 갈망하였다. 이것은 물론 그가 지닌 학식과 성경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도 기인한 것이기도 하였으나, 특별히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깨달아 알게 된 복음의 깊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허락된 성령의 놀라운 조명이 자신의 청취자들에게도 함께하기를 간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선교 역사에서도 풍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특히 19세기 중반에 아프리카의 영적 부흥에 새 시대를 열었던 앤드류 머레이 의 사역에서 일어난 대부흥의 역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다.
앤드류 머레이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선교 사역하던 그의 아버지 앤드류 머레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선교지 옛 목회자가 부족했던 개혁 화난 개혁 교회의 요청으로 1822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44년 동안 흐프라 레이 교회에서 목회와 선교 사역에 헌신했다.
그는 아들 앤드루 모레이가 승인받는 1860년 남아공의 대부흥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부터 매주 금요일 밤마다 자신의 서재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부흥을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왔다.
앤드류 머레이는 10세, 10세의 어린 나이로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떠나 거기서 공부하기를 마치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였다.
당시 유럽의 대부분의 신학교와 마찬가지로 위트레흐트 대학도 자유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앤드루 밀레의 형 존과 함께 제코르 다바르 히브리어로 말씀을 기억하라라는 기도 모임을 결성해 영적 침체를 이기고 자유주의 신앙과 싸우며 분투했다.
그 후 존 모레이는 1800,
그 후 존 머레이는 185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화란 개혁 교회에 소속되었던 최초의 신학교 스탈렌 보시 신학교의 초대 교수들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앤드의 머리에는 화란에서 공부하는 동안 단지 지적 신학이 아닌 영혼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말씀을 위해 헌신하도록 소명을 받았다.
1848년 20세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목사 안수를 받은 앤드류 머레이는 곧바로 남아 남아 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가자 뒤로 남아 아프리카 공화국의 광활한 지역인 오렌지 자유주의 유일한 목사로 임명이 되어 수천 킬로미터를 말을 타고 이동하며 흩어진 보호인들, 곧 화랑계 남아공 이주자들을 위해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165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희망봉의 정착지를 건설했을 때 네덜란드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로서 주로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했다.
초기에는 이들은 네덜란드 이주민 혹은 자유 시민이라고 불렀으나 점차 이들이 종사하는 주된 생업인 농업을 지시하는 단어인 보호인으로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단어는 공교롭게도 네덜란드, 아프리카, 아프리카, 아프리카, 서로 모두 농부를 뜻한다.
보호인이라는 명칭이 단순한 생업을 지시하는 것을 넘어서서 민족적인 정체성의 자각을 의미하는 개념이 추가되었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글레이트 트랙 사건이었다.
여기서 트랙은 이동이라는 뜻인데, 이는 고난과 인내, 자유와 독립, 민주적 정체성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1795년 뉴이젠 버그 전투에서 네덜란드, 영국, 네덜란드가 영국에 패배함으로써 케이프타운은 영국의 지배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후 1803년 유럽의 평화 조약인 아미맹 조약에 따라 케이프 타운의 지배권은 네덜란드로 넘겨졌다.
그러나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다시 치열해지자 영국은 또다시 케이프타운의 전략적 중요성을 절감했다.
결국 영국군은 1806년 다시 한 번 블라우 베르크 전투에서 네덜란드 수비대를 격파함으로써 케이프 타운의 손을 타운을 손에 넣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영국의 통제와 부당한 정책 공용어로서 영어의 사용을 강제한 것과 노예 제도 폐지 등의 보호인들을 감당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민족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우마차를 끌고 멀고 험한 길을 이동하라는 뜻을 가진 레이트 트랙, 화란으로 후르트 트랙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이는 화란 사람들의 연구에 반발하여 자유로운 신앙을 찾아서 아프리카 내륙 깊이 이동하는 운동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때 이 위대한 결단과 함께 내륙으로 이주를 시도했던 사람들을 가리켜 프로 트레커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세 목사 안수를 받은 앤디루모레이가 처음 파송을 받을 지역이 바로 이 사람들이 정착한 내륙 지역이었다.
1859년에서 1860년 초 사이에 앤디르 모레이는 선교사이자 목회자로서 중요한 영적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1857년 대공황을 겪고 있던 미국에서 일어난 뉴욕 기도회의 부흥 사건과 1859년 일어난 아일랜드의 부흥 소식이었다.
그 소식들을 들은 앤드류 머레이는 그러한 부흥이 지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일어나기를 갈망하
1857년에 뉴욕에서 대부흥이 일어났는데 한 비즈니스 맨이 이제 대공황을 겪어서 경제적으로 다 무너지고 실업자들이 당선되니까 이제 맨나탄에서 12시에 기도를 하기로 하고 모여 맨 처음에 혼자 모여요.
혼자 나갔어요. 그래서 6명이 모이고 20명이 모이고 해가지고 수천 명이 모이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그 숫자가 1만 5천 명까지 되고 그런 기도 모임이 이제 뉴욕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 각 지역에서 막 생겨서 대부흥이 일어나요.
그 소식이 이제 여기 들려온 거예요. 근데 왜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그런 걸 이제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계속 읽으세요.
그리하여 앤드리 머레이는 같은 해 부흥의 소식이라는 작은 책자를 발간하여 성도들에게 거룩한 부흥을 위한 갈망을 가지고 기도하도록 촉구했다.
185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화란 교육 교회는 형식주의와 깊은 영적 침대에 빠져 있었다.
앤드류 어레이는 1860년 6월에 우스터 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했다.
그전까지는 오렌지 자유주의에 있는 중심 지역인 블럼 폰테인의 초대 담임 목사로 재직하였다.
앤드루 머레이가 우스터 교회의 새로운 목회자로 부임했을 때에는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거룩한 부흥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상태였다.
그가 우스터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역의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집회 기간은 1860년 4월 18일에서 19일까지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역에서 약 300명이 넘는 각 교회와 단체의 대표들이 모여서 집회를 가졌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 교단 내에 존재하던 신학적 갈등과 사역에 있어서 오해의 벽이 무너지고 목회자들은 한마음이 되었다.
그들은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부흥을 위해 강구할 것을 결의했다.
당시 집회 분위기는 진지하고 엄숙하였다. 강력한 회심의 역사는 부족했으나 참석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래서 후일 앤드리버레이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때 우리는 모두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대회 마지막 날 참석자들은 각자 지교회로 돌아가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부흥을 위한 기도 모임을 갖기로 공식적으로 의결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행정적 결의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스터 대회 참석자들에게 부어주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은 단지 앞으로 일어날 더 크고 위대한 부흥의 예고편일 따름이었다.
1860년 5월에 우스터 대회가 은혜 가운데 끝났고, 거기에 참석했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부흥을 사모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와 같은 수많은 모임 가운데 우스터 마을 외곽에 위치한 잔드블리트라는 농장 지역에서 이루어진 기도 모임이 있었다.
당시 잔드블리트의 기도 모임을 인도하던 사람은 야코부스 파우였는데, 당시 그는 23세의 신학생이면서 우스터 근처에 유색인 학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1860년 6월 11일 월요일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에 있었던 기도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당시에 평소와 다름없이 기도회가 진행되던 중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
모인 그들 중에서 리베라는 흑인 소녀, 곧 농장에서 노동하던 약 15세 가량의 자매가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기도는 대표 기도자로서 드린 기도가 아니었다.
당시 사회와 교회의 분위기로 볼 때 흑인이고 나이 어린 그녀가 대표 기도를 맡았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도 모임을 인도했던 인도하던 야고브스 파우의 증언에 따르면 상황은 이러했다.
기도 모임을 진행하고 있던 중 사회자가 누구든지 기도하고 싶은 감동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라고 했거나 함께 찬송을 부른 후에 잠시 침묵하면서 각자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때 리베 자매가 성령의 강권적인 감동을 받아서 아주 큰 소리로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이때 그녀의 기도는 짧고 강력한 영혼의 비명처럼 들렸다.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녀의 짧은 기도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가 거기 모인 사람들의 폐부를 관통하였고, 이어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함께 큰 음성으로 열렬히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원 회중이 통곡하면서 통성으로 열렬히 기도하는 폭발적 현상이 나타났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너무나 놀란 기도인 조자 야고브 스파오는 급히 사람을 보내어 앤드리 모레의 목사에게 도움을 구하였다.
그가 앤드리 머리의 목사에게 급히 보낸 전과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잔 블리티드 기도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빨리 오셔서 우리를 지도해 주십시오.
기도에 관한 보고를 받은 앤드리 머리 목사는 단숨에 잠블리들이 기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때는 이미 기도 모임에 강력한 성령의 임재와 통곡 소리, 부르짖는 통성 기도 등으로 모인 장소를 가득 채우고 있을 때였다.
벤드레 모리앤 목사는 이런 부흥의 현장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상식으로 판단하려고 하였다.
그는 아수라장처럼 통곡하며 통설로 기도하고 있는 회중들을 향해 주먹으로 강을 강단을 내리치며 외쳤다.
그다음 수
이 사건에 관하여 앤드루 머리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전기 작가이자 스텔렌보스대학교 신학학, 신학부 신학학 교수였던 요네스 요한네스 디 디 플라샤 플래시 플래시 플레시는 1919년에 49년인가요?
아니 19년, 19년에 출판된 자신의 책 남 아프리카의 앤드리머리의 생애에에서 다음과 같이 그때 했던 앤드리 모레의 말을 인용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기는 모든 것이 혼란뿐입니다.
그때 잔트플라트는 잔드 블리트 농장. 잔드블리트 농장에서 일하던 유색인 노동자들 중 한 경건한 노인이 열심히 기도 모임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고 있었다.
그는 비록 학식에 있어서는 보잘것없는 노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현재적으로 역사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믿었다.
기도 모임에 무질서를 꾸짖는 앤드루 머레이 목사를 향해 뚜렷한 어조로 응답했다.
목사님 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께서 여기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노인의 정곡을 찌르는 듯하는 제가 환경을 좀 잘못 갖고 와가지고 천천히 뜻밖의 발언을 들은 앤데이 모레인은 몸짓 하였다.
그러나 엔드이 모레인은 노인들의 발언 한마디로 기도 모임이 혼란스럽다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는 않았다.
앤드 모레이는 조용히 기도 모임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2월 11일 월요일에는 엔조이머레이 에서, 잔드 플라우에서 저녁 시간에만 모여서 기도했지만, 이튿날에는 우스터 우스도 본 교회에서 오전과 오후에 걸쳐서 기도회가 진행했다.
어제 저녁,
어제 저녁 잔드볼리틀은
장자 물리트 기도회
기도회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더 많은 교인들이 우스타 교회 기도회 들어왔다.
19 1860년 6월 12일
6월 12일 오전 집회에서 앤드리 모레 목사는 고린도전서 14장 33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을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집에서의 영적 질서라는 제목으로 약 15분에서 20분 정도 설교했다.
그런데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설교라기보다는 전날 있었던 소란스러움이 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종의 권면이었다.
앤드리 모레이 목사가 설교를 마친 후 말했다. 이제 질서 있게 기도합시다 하고 말하여 어느 장로에게서 대표 기도를 시켰다.
그러나 그 장로가 세월 열 마디도 기도하지 않았을 때, 모든 교인들이 억제할 수 없는 거룩하고 강력한 정동을 느끼며 심한 통곡과 눈물로 통송 기도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억제할 수 없고 상식적인 질서의 틀 안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성왕의 강력한 역사였다.
그 장로가 기도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갑자기 회중석에서 신음소리와 흐느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예배당 전체가 마치 거센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소리에 압도되었다.
앤드리아 모라의 목사는 장로의 기도가 회중들의 통성 기도에 가로막혀 버린 것을 심각한 무질서로 받아들였고, 다시 한 번 강단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외쳤다.
조용히 하십시오. 내가 명하노니 모두 조용히 하시오.
그러나 한 번 터진 기도의 폭발적 힘은 앤드류 머리의 목사의 권위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결국 그들의 기도를 멈추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강단에서 가만히 서서 돌아가는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앤드리 모라의 목사는 다시 한 번 강단상에 서서 회중들을 진정시키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제 들었던 노인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성령의 음성을 강력하게 느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책망하시는 음성이었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으려고 하느냐 그때 앤드레 머리의 목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냥 무질서하게 소리 지르며 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열정적인 분위기 안에서 놀라운 내적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의 신음 소리와 부르짖으면 서로 달라도 그렇게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이유는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모두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고통 속에 울부짖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데서 오는 절망적 신음이며 탄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인위적인 광란이 아니라 죄악 때문에 죽게 된 자신의 영혼을 제발 살려달라는 단발마저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 곁에는 스텔렌보시 대학교 신학부에서 신약학과 교회사를 가르치시는 교수 니콜라스 야코부스 호프 메이어가 있었다.
앤듀르 머리의 목사는 처연한 듯이 강단에서 내려오면서 야코부스 파오나에게 나직이 많이 났다.
당시 그가 발언했던 내용에 대해서는 요한네스 디 플래시가 자신의 책 남아프리카의 앤드류 워리의 생애 195에서 196쪽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나의 통제 바깥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여기서 일하고 계십니다. 마침내 앤드류 모레인 목사는 성령의 역사를 인간이 생각하는 질서로 제안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훗날 그의 유명한 책들인 그리스도의 영광 전적인 복종의 핵심 사상이 되었다.
그것이 일시적인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참된 부흥이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그것은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로는 죄에 대한 강력한 자각과 진실한 회개였다.
둘째로는 새벽 기도와 철야 기도의 실천이 자생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사이에도 기도의 불길이 강력하게 타올랐다.
셋째로는 지속적인 성령의 내주하심과 거룩함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때 부흥을 경험한 이들 중 대다수는 성령의 충만한 내조하심을 보여주었으며, 도덕적인 순결과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넷째로는 이러한 부흥의 경험을 통해 선교지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적으로 부흥에 대한 열망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앤듀르 머리의 전기와 그의 동료들과 주고받은 서신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화란 개혁 교회의 회의록 등에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로 남아 있다.
특히 당시 교단의 회의록 자료에는 그때 있었던 부흥의 현상은 이렇게 조사하고 공식화했어 어떻게 조사하고 공식화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부흥에 남긴 가장 값진 유산 가운데 하나는 사역자이자 작가로서의 앤드류 모레이 목사의 신앙과 신학 사상에 지울 수 없이 남겨진 흔적이다.
그것은 이후 앤드류 모레의 목사의 사상과 삶을 부흥 이전과 이후로 갈라 놓을 정도였다.
그다음 사 부흥에 대한 경험 이후로 그러한 경험은 어레이로 하여금 더욱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생명적 연합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동행의 삶, 그리고 그리스도를 담도록 새롭게 빚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현존하시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꾸준히 강조하도록 만들었다.
부흥이 있기 전 앤드루머르의 목사는 매우 균형 잡힌 사람이었다.
파라나이피은 신학적 유산과 스코폴랜드의 청교도 언약 사상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이었다.
또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깊은 경험과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부족한 것을 보게 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부흥에 대한 갈망이었다.
특히 1857년에 있었던 뉴욕의 기도 운동의 부흥과 아일랜드에서 들려오는 부흥의 소식은 사역적으로, 영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던 그에게 새로운 갈망을 선사하였다.
그것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부흥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러한 갈망은 성령께서 앤들머리의 목사의 마음에 주신 성령의 눈부신 조명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영혼을 어루만지시고 지나가신 사람들만이 간직할 수 있는 결코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어 줄 수 없는 거룩함과 능력이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이자 성결운동의 지도자이며 주석가였던 프레드릭 브라더 톤 마이어는 189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웰링턴에 있는 앤드리 머레이의 자택에서 그를 만난 경험을 다음과 같이 간증하였다.
우리는 그의 서재로 인도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연약하고 자그마한 최고의 영적인 거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우리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들어 올려져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갔으며, 그의 기도가 끝났을 때 우리는 자신들이 다시 지상에 내려왔음을 깨닫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근데 이 프레드릭 마이어는 아주 유명한 주석가였고 또 설교가이기도 했어요.
원래는 이제 프레드릭 마이어가 이 앤드루 머레이에게 좀 이제 이렇게 조언도 해주고 충고도 해주려고 갔다가 그의 거룩한 인품에 완전히 감동을 받으면서 겸손해졌다.
그래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조명으로 해석되고 그분의 능력으로 선포될 때 대중들은 반드시 죄를 자극하고 회개한다는 것이다.
수문앞 광장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해석해 주는 내용들을 들었을 때 울며 회개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회중들의 심령이 강박하기 때문에 자신처럼 훌륭한 설계자의 설교를 흔들려 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자신의 훌륭한 설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혼들은 변화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있겠는가 필요 이상의 휴식과 의미 없는 일을 하느냐고 낭비한 시간을 오히려 회심하지 아니한 영혼들을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데 바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보다는 더 많은 성도들이 나의 설교에 눈물을 흘리며 그리스도께 돌아오지 아니하겠는가?
수루앞 광장을 가득 메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공경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박하고 주간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이었다.
그러나 율법이 낭독되고 있어서 낭독되고 이어서 해석되기 시작하자 그 끔찍한 죄인들의 마음에 같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온 회중은 율법의 해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 받으며 들었고, 그 말씀은 자신의 현재 신앙의 상태와 삶 전반에 걸쳐서 깊이 생각하며 적용했고, 자신과 공동체의 죄악을 깊이 회개하였다.
왜냐하면 이제야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광장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다.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최초의 진실하고도 강력한 회개였다.
만약 누가 내게 부흥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한 번의 수많은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 앞에서 깨달은 자신과 공동체의 죄악을 심한 통곡과 눈물로 회개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부흥에 관한 모든 것을 말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없이는 결코 참된 부흥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것이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철거했던 앤 필드에서도, 앤드류 머레이가 목격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스터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께 울고 부르짖고 매달리고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큰 통곡과 많은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그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피어린 통곡은 결단코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갈망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주어지는 것이었으니, 그분의 사랑으로 말미암는 용서의 확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꾼이 아니었겠는가.
삶 적용과 결론, 도대체 무엇이 변했는가?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기에 우리는 목회에서는 이런 부흥을 거의 보지 못한 채 복음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가 마치 저 산꼭대기에 갈아서 붙여놓은 천수답 농부는 가뭄이 들어 비 한 방울,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늦은 봄날 뙤약볕에 저 아래 계곡물을 물찌개로 짊어지고 나르기를 계속하고 있다.
며칠째 계속되는 고단, 고단한 노역에 어깨의 등가죽이 벗겨져 핏물이 삼배옷을 붉게 물들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보자. 솔직히 말하자면 부흥이 없는 날에도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들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회심과 부흥이 없는 목회를 자신의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아니 정확하게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놀라운 회심과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목회자들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회개하도록 이끌어야 할 교인들, 죄와 무지로 말미암아 깊은 침체에 빠져 있는 신자들과 다름없이 한 무리가 되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들려주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부끄럽게 한다.
교회의 대체할 수 없는 영광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속된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고, 목회의 영광은 영혼들이 진실로 회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회의 본분과 목회의 영광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 있는 우리가 어찌 참된 목회자라고 불릴 수 있겠는가.
왜 나는 나의 연약한 교회를 위해, 병든 조국 교회를 위해 울지 않는 것일까 왜 나는 부흥이 없는 오늘날의 영적 상황에 대해 서러워하지 않는 것일까 왜 나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아니면 누가 영적으로 이토록 가난한 내 교회와 영적으로 내리막길을 달리는 조국 교회와 생기를 잃어 마른 뼈와 같이 되어버린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찢으면서 울어줄 것인가 참된 설교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설교는 증거의 구름들이고, 그 말씀을 붙들고 통곡하며 씨름하는 목회자의 불타는 가슴은 하나님의 낙뢰를 기다린다.
마침내 그 구름들이 모여 폭우가 될 것이고, 쏟아지는 장대비를 내려다보는 하늘에서는 우리소리를 동반한 번갯불이 이 벌판에서 저 광야를 가로지르며 번뜩이며 떨어질 것이다.
마침내 천수답에는 모내기 하기에 충분한 물이 가득하리라.
나의 두 눈이 감기고, 내 초라한 시신이 흙 이불이 덮이기 전에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보고 싶다.
따라서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조국 교회의 영적인 마당이 은혜의 단비가 주는 물들로 가득 차는 부흥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이시오 이 조국 교회의 친히 부흥을 주시러 내려오시기 위해 길이 필요하시다면, 나의 육체를 가르셔서 당신이 오실 길로 삼으소서.
아멘, 아멘
오늘의 설계를 완성한 소감을 얘기해 보자.
네 일단 방대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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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레 우 카라는 이제 소리를 지르다 이런 뜻인데 여기서는 이제 큰 소리로 있다 그렇게 됩니다.
이 이레 우바 세페르베토라트 하엘로인 그 하나님의 율법 책을 율법 율법의 책을 큰 소리로 읽고 어떻게 어떻게 읽었냐면 해석을 하면서 읽었어요.
메포레시 해석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송 세켈 숨은 두 다거든요.
색켈은 여기서 의미예요. 의미를 의미를 두었다.
의미를 제자리에 갖다 놨다 그런 뜻이죠. 그러니까 바르게 해석을 했다 이런 뜻이에요.
그랬더니 마야비누 그들이 마음 이끄라 낭독하는 바를 마이야비누 깨닫게 되었더라 이렇게 됩니다.
우리 말 성경하고 다르죠. 그죠 9절에 가서 와이 오멜 느헤미야 후 하 샤카 느헤미야 곧 독 총독인 느헤미야와 그리고 에스라 하코헨 하소페르 그 제사장이자 그 서기관인 에스라와 베하리비인 하메비님 에트하암 그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는 레위 사람들이 이렇게 아그레스야 사람들이 와이오멜 말하였습니다.
누구에게 레 레콜하암 그 모든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하이 하 하이 카도시 후 바 아도나이 엘로의 캠 오늘은 오늘은 이 날은 거룩한 성일이다.
누구에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한 거룩한 성이리다.
네 그러니까 왜가 아니라 r 피트 발레우 베알 티백후 그러니 알티트 아벨루 슬퍼하지 말고 또 소리 내어 울지 말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보킴 콜하암 그 모든 백성들이 보기 큰소리 내어 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샤메암 그들이 그 토라의 말씀을 케샤의 암 들을 때에 모든 백성이 울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이리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아라 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가 없냐 하면은 우리말 성경에 뭐라 그러냐면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탓을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에게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하니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그게 없는 거예요.
히브리 성경에는 근데 이제 그래도 말이 안 되지는 않는 게 뭐냐 하면 그 뒤에 보면은 이제 뭐라고 나오냐 하면은 그 뒤에 뭐라고 나오냐면은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 모든 백성이 토라의 말씀을 들을 때에 소리 내어 울었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 구절을 앞으로 뺀 거예요. 빼가지고 번역을 한 겁니다.
그 정도로 보시고 제목은 제가 정해드릴게요. 주의 말씀에 슬피 울다 이렇게 일단 제목을 정해놓고 두 대지나 세 대지로 나누어서 설교를 준비해 보세요.
본문 1 본문 해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식민지에 대한 종교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칙령을 내렸다.
본문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주의 말씀에 슬피 울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이리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 본문 해설 페르시아의
본문을 잘 보세요. 이렇게 되지 않아요 낭독하다에다가 동그라미를 치고 해석하여 동그라미 치고 깨닫게 동그라미 치고 다 우는지라 동그라미 치고 뒤에 이야기는 이 설교에서 지금 직접적으로 다뤄야 될 이야기는 아니에요.
4개잖아요. 근데 뭐냐 하면 그중에서 약한 게 뭐냐 하면 낭독하고야 왜 낭독할 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그러니까 그거는 삭제해버리고 나면 뭐가 남아요 해석하다 깨닫다 울다 이런 식으로 잡아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이제 그다음에 이제 해석하다 깨닫게 하다. 이렇게 만약에 나누려면 그러면 이제 더 내용이 풍부해져야 돼요.
그래서 해석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거를 보여주고 그다음에 해석할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를 보여주고 또 해석된 것을 못 깨닫는 것도 보여주고 깨닫는 것도 보여주고 이렇게 하면서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다 우는지라 말씀에 대한 다른 해석이 없으니까 깨달을 수 없고 깨닫지 못하니까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그런 말을 해요. 유명한 명언이 적어놓으세요.
우는 자가 깨달은 자입니다. 우는 자가 깨달은 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말씀을 들을 때 뭔가 울고 있으면 뭔가를 깨달았다는 거예요.
가슴에 다가왔다는 거죠. 교인들이 정기적으로 예배 시간에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은 나쁜 사람이 돼요.
시간이 흐를수록 말씀에 대해서 무디어지고 나쁜 사람이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서부터 기도하셔야 될 게 우리 교회는 예배의 감격이 있는 등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의 감격이 있는 한빛 교회입니다.
써붙여요. 아예 그리고 예배의 감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란 말이죠.
시작해 주세요.
일 본문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