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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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아모스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주제: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하나님의 주권(정의)과 의로운 행위(공의)를 세상에 흐르게 하는 것이다.
질문: 우리는 주님이 오실 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도입]

주님의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그 방법을 아주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바로 ‘정의와 공의를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정의와 공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우리 삶 속에 흐르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깊이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1: 시대적 배경 – 왜 이 말씀을 하셨는가?]

오늘 본문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북이스라엘 시대를 향해 외친 선지자입니다. 원래 그는 남유다 출신으로 양을 치고 뽕나무를 재배하던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북이스라엘로 올라가 말씀을 선포하게 됩니다.
당시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번영을 누렸습니다. 다윗 왕 때의 영토를 거의 회복할 만큼 부강했죠.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입니다. 부유층은 상아 침상에 누워 매일 잔치를 벌였지만, 그 이면에는 가난한 자들을 향한 끔찍한 억압과 착취가 있었습니다. 부와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힘없는 자들은 부패한 지도층에 의해 고통받았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소작농으로 전락시키고, 공평해야 할 재판마저 뇌물로 얼룩졌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신앙의 타락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마저 정치 권력과 결탁했고, 부유층은 착취한 돈으로 화려하고 거창한 제사를 드리며 자신들의 죄악을 포장했습니다. 이처럼 정의와 공의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짜 목적은 단순한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언약 백성답게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권력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 원리인 ‘정의와 공의’를 다시 세우라고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요구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 백성이 된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본문 2: 정의와 공의의 참된 의미]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의’와 ‘공의’는 정확히 무엇일까요? 왜 그것을 물과 강에 비유하셨을까요?
먼저, **정의(히브리어 ‘미쉬파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는 올바른 가치에 합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재판은 사람들이 합의한 ‘법’을 근거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세상의 올바른 가치, 즉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주권’입니다. 골로새서 1:16의 말씀처럼 만물이 주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정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올바른 가치를 따르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공의(히브리어 ‘체다카’)**는 **‘의로운 행위’**를 뜻합니다.
이 두 가지를 본문에 대입해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정의)을 물 같이, 의로운 행위(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물은 생존의 필수 요소입니다. 물이 없으면 어떤 생명도 살아갈 수 없듯,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없이는 단 하루도 온전히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물은 고여 있지 않고 흘러서 강과 바다를 이룹니다. 즉, 우리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주권(정의)을 바탕으로, 세상을 향해 의로운 행위(공의)를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언약 백성의 진짜 삶입니다.

[본문 3: 현대적 적용과 우리의 회개]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이 의로운 행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합니까?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서 예수님은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우리가 방금 앞서 살펴본 '정의와 공의'를 이 계명에 연결해 보겠습니다. 첫째 계명인 **'하나님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따르는 우리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둘째 계명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 정의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의로운 행위', 즉 '공의'**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내 안에 채워진 생수(정의)가,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공의)이라는 강물이 되어 메마른 세상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북이스라엘의 죄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이웃을 괴롭힌 것을 넘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은 것’(정의의 부재)**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도 말라버린 **‘공의의 부재’**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했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종교적 만족만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아모스 4장 4~5절을 보면, 부유층들은 3일마다 십일조를 드리고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바칠 만큼 예배에 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라고 꼬집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나는 이렇게 헌금을 많이 하고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의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들을 결코 그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영적 위선은 수백 년이 지나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서 정확히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종교적 열심은 가득하지만 삶 속에 정의와 공의가 메말라버린 그들을 향해 무서운 책망을 쏟아내셨습니다.
누가복음 11:42"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바리새인들은 잎사귀 하나의 십일조까지 철저히 계산해서 바칠 정도로 예배 의식에는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렸다"**고 탄식하십니다. 하나님의 찢어지는 마음을 알아드리는 ‘진실한 사랑(정의)’도 없고, 가난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공의’도 없는 껍데기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얻은 돈으로 아무리 화려한 제사를 드린들, 정의와 공의가 결여된 그 예배를 우리 주님은 결코 받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물론 북이스라엘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을 대놓고 착취하며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먹고살기가 바쁘고 팍팍하다는 핑계로, 내 주변의 연약한 자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점차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내가 사랑하기 편한 사람만 골라서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마저도 연약한 자들을 향한 시선을 거둔 채, 우리끼리만 즐거워하는 고인 물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뼈아프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는 억압적이고 통제된 사회 속에서 진실을 외치는 주인공의 대사가 나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죠? 누구 잘못입니까?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겠지만,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건 바로 여러분입니다!"
저는 이 대사가 오늘날 기독교인인 저와 여러분의 가슴을 찌르는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흐르지 않고 메말라간다면,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건 바로 우리들 아닐까요? 주일마다 빠짐없이 예배의 자리는 지키면서도, 정작 세상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에는 무관심했다면, 우리의 예배 역시 바리새인들처럼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곳에서 드리는 예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위가 없는 곳에 주님의 날이 임한다면, 그날은 빛이 아니라 어두움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가올 주님의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우리의 예배가 성전 문턱을 넘어 세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정의(하나님 사랑)’가 내 안에 물처럼 채워지고, 이웃을 향한 사랑의 ‘공의(이웃 사랑)’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세상에 흘러가게 하십시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이웃을 경쟁자나 방관할 대상이 아니라, 품어야 할 형제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물 같이, 의로운 행위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는 주님의 준엄한 명령에 순종하여, 참된 예배와 삶으로 주님의 날을 깨어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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